울진 불영사
2026년 07월 26일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입니다.
〈천축산불영사기 天竺山佛影寺記〉에 의하면 651년(진덕여왕 5)에 의상(義湘)이 창건했다고 하며 다음과 같은 창건설화가 전합니다.
즉 의상대사가 동해로 향하고 있는데 계곡에 어린 오색의 서기를 발견하고 가보니 연못 안에 9마리의 용이 있었습니다. 이에 도술로 가랑잎에 '火'자를 써서 연못에 던지니 갑자기 물이 끓어올라 용들이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친 자리에 절을 지었다고 합니다. 그뒤 의상대사가 다시 불영사를 방문할 때 한 노인이 '부처님이 돌아오시는구나'라고 하여 불귀사라고도 불렸습니다. 창건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했는데, 1396년(태조 5)에 나한전만 빼고 모두 소실된 것을 이듬해에 소설이 중건했습니다.
임진왜란 때 다시 영산전만 남고 모두 전소된 것을 1609년에는 성원이, 1701년에는 진성이, 1721년에는 천옥이 중건했습니다. 현존 당우로는 응진전(보물 제730호)·대웅보전(보물 제1201호)·극락전·명부전·조사전·칠성각·응향각 등이 있습니다. 이밖에 3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양성당부도·불영사사적비 등이 있습니다.
일주문
1992년 봄에 회주 일운스님이 신축한 것이라고 합니다.
천축사불영사(天竺山佛影寺) 편액
일주문 뒤편
불영교
불영사로 들어가는 다리입니다.
울창한 숲길과 108개 연꽃이 새겨진 이 다리 아래 상하로15km를 굽이 흐르는 불영계곡이 이어져 있습니다.
불영계곡
명상의 길
불영사 부도
조선시대 불영사의 주지를 지낸 양성당 혜능선사 승탑과 승비입니다.
부도의 모양은 지대석, 기단석과 탑신 및 상륜부로 구성된 석종형입니다.
대충 다듬은 지대석(地臺石) 위에 놓여 있는 높이 185㎝의 석종형 부도로, 표면에 연꽃무늬를 새겼습니다. 아랫면은 연꽃을 위로 보이게 조각하고, 어깨부분에는 연꽃을 아래로 보이게 조각하였습니다.
불영사 부도(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
불영사 부도는 조선시대 불영사의 주지를 지낸 양성당(養性堂) 혜능선사(惠能禪師 1621~1696)의 사리를 모신 사리탑입니다. 양성당 선사의 법명은 혜능이고, 자는 중열(中悅)이고, 세속의 성은 남씨로 1696년(조선 숙종 22년) 12월 17일 앉은 채로 입적하였습니다. 이때 나온 사리로 그 해 이 부도를 건립하였습니다.
부도의 모양은 지대석, 기단석과 탑신 및 상륜부로 구성된 석종형입니다. 기단석의 옆면에는 8판의 중복 양각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신석은 하부에 6판의 앙련을, 상부에 14판의 복련을 장식하였습니다. 상륜부는 연꽃봉오리모양의 보주를 조각하였습니다.
부도는 전체적으로 세련되고 치석이 잘되었으며, 장식문양 등에서 정교한 수법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부도비에는 혜능 선사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데, 1738년(조선 영조 14년)에 설치하였습니다. 비문은 영의정을 지낸 최석정(崔錫鼎: 1646~1715)이 찬한 것으로 「명곡집』에 실려 있습니다.
부도비
부도비의 규모는 높이 1.96m, 폭 58㎝, 두께 17㎝입니다. 비(碑) 머리는 조선 통식(通式)으로 되어 있고, 비좌(碑座)는 직사각형으로 다듬었습니다.
계속해서 걸어 들어가면 먼저 보이는 공간은 수행공간으로서 관람제한 구역입니다.
희운당, 법운당, 백운당, 청납당의 전각들이 있습니다.
백운당, 법운당
희운당
반양당, 극락전
극락전
조선 영조15년(1739)에 창건하였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중앙에 세분 중 가운데 앉은 분은 아미타여래불이시고, 좌우편에는 관음세지보살과 대세지보살이시며 건너편 서화는 도량을 수호하시는 도량신을 모신 곳입니다.
극락전(極樂殿) 편액
해사 김성근(海士 金聲根, 1835~1919)이 쓴 편액에는 ‘임자윤추(壬子閏秋) 칠칠옹(七七翁) 해사(海士)'라는 관지(款識)가 있습니다.
김성근이 78세가 된 1912년에 쓴 글씨임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중앙에 아미타여래불이시고, 좌우편에는 관음세지보살과 양대보살이 협시하고 있습니다.
아미타여래불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
신중탱
수련
칠성각
정면 3칸의 맞배지붕인 철성각 입니다.
민간신앙인 칠성여래(북두칠성신)을 봉안하는 전각입니다.
칠성각(七星閣) 편액
칠성탱
칠성여래(북두칠성신)
응진전(보물 제730호)
응진전은 석가모니부처와 그의 제자를 모신 전각입니다. 이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작고 아담한 다포계 홑처마 맞배기와집입니다. 기단은 자연석을 허튼층 쌓기하였으며, 건물의 앞면에는 어칸에 출입을 위한 사분합문(四分閤門)을 두었으며, 좌·우 협칸에 벽을 두고 벽 위쪽에 작은 광창을 달았습니다. 좌·우 하인방과 기둥에는 툇마루를 두었던 흔적이 있습니다.
공포의 구성은 내 · 외 2출목 (外二出目)입니다. 일반적으로 맞배지붕 건물은 주심포계이며, 공포도 앞· 뒷면에만 하는 것이 보통인데 특이하게 이 건물은 건물 4면에 모두 공포를 배치하였습니다.
응진전은 1984년 해체·보수 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해 1578년 (선조 11), 1629년(인조 7), 1666년(현종 7), 1716년(숙종 42)과 1843년 (헌종 9) 등 여러 차례 보수되었음이 밝혀졌으며, 상량문에 영산전(靈山殿)으로 적혀있어서 어느 시기에 석가모니의 제자들도 함께 봉안되면서 응진전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은 조선 전기의 수법이 일부 남아 있으나, 전체적으로 조선 중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응진전(應眞殿) 편액
중앙 석가모니불과 좌우에 자씨미륵보살, 제화가라보살을 협시불로 봉안하였습니다.
석가모니불
자씨미륵보살
제화가라보살
좌우에는 흙을 구워 만든 16나한상을 배열하였습니다.
천장
천장 역시 매우 오래된 목조 건축의 아취가 잘 담겨 있습니다.
화려한 단청으로 장색했지만 단청들은 색이 많이 바랬고 더러는 또 지워졌습니다.
천장을 살펴보면 건물 크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매우 큰 대들보가 천장을 가로지르고 있는데, 천장 가운데에는 사각의 특 속에 아름다운 연꽃들을 새겨 넣었습니다.
건물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기 위해 우물 정장 모양을 천장으로 꾸몄습니다.
건물에 남아있는 단청은 안쪽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 조선 중기의 문양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1984년 건물을 해체·보수할 때 중수상량문이 나왔으며,종도리 밑에서는 1716년에 쓴 묵서명이 발견되어 1578년 이후 5차례의 보수가 있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법단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으로 미래불인 미륵보살을 좌측에.과거불인 제화갈라보살을 우측 보살로 두고 있고삼 불 뒤로 후불탱화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불영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로 보물 제730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자연석으로 허튼층쌓기를 했는데 지형에 따라 안쪽은 높고 뒤쪽은 낮게 조성했습니다. 자연 그대로의 주춧돌에 약간의 배흘림이 있는 기둥을 세웠으며, 가운데 칸에는 4 분합문을 달았고 양쪽 협칸은 벽으로 되어 있습니다.
공포는 다포계인데 건물의 4면에 모두 포작을 짜 올렸으며,첨차와 쇠서 등에는 조선 초기의 수법이 남아 있지만전체적으로 조선 중기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응진전은 건물 출입문 양옆으로 실창을 달았고 건물 양면에도 공포가 둘려져 있는 점이 특징입니다.
의상전
의상전(義湘殿)은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로조선시대 후기의 건물입니다.
안에는 의상 대사의 상과 진영을 비롯하여 원효대사, 종봉대선사, 청허대선사의 영정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인현왕후(仁顯王后)의 복을 비는 "인현왕후원당"으로 확인된 바 있어 더욱 의미가 깊습니다.
불영사에는 왕실과의 인연으로 원당이 세워지게 되었으니,의상전은 불영사가 갖는 왕실과의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이기도 하다. 인현왕후의 원당(願堂)으로 알려진 불영사 의상전은 인현왕후와 관련이 깊습니다.
의상전(義湘殿) 편액
인현왕후와 관련된 다음과 설화가 전합니다. 「1689년(조선 숙종 15년) 인현왕후가 폐출되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인현왕후의 꿈속에 한 노승이 나타났습니다. 그 노승은 인현왕후에게자신은 불영사에서 왔으며 힘든 시기가 이제 다 끝났으니3일 정도 있으면 좋은 소식이 들릴 것이라는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3일 뒤에 정말 인현왕후는 폐비 신분에서 복위됨과 동시에궁으로 입궐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인현왕후는꿈에서 자신에게 예언을 들려준 노승을 찾아 나섰는데, 그가 불영사의 양성(養性)이라는 승려임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양성이 세상을 떠난 뒤였기 때문에, 인현왕후는 감사를 표하기 위해 불영사 사방 10리 안의 땅을 불영사에 시주하고 금표(禁標)를 세워 불영사를 보호했다고 합니다.
2002년에 의상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옛 상량문을 발견했습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성후(인현왕후)의 은덕을 받아불영사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절의 한 켠에인현왕후의 원당을 1894년(조선 고종 31년)에 세우고 봉축한다.' 하였습니다.
1894년이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지은 것인데 이때까지도전승이 유지되었음을 보면, 대부분 내용이 구전설화일지라도 어느 정도는 실화를 기반으로 했을 가능성은 있습니다.
의상전 내부에는 의상대사의 조소상과 여러 고승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습니다.
의상대사의 조소상(彫塑像)
양성혜능(1415~1516)
설운당 봉인대선사(좌), 청허대선사(서산대사 휴정 1520~1604)(우)
사명대사(1544~1610)
원효대사(617~686)(좌), 의상대사(625~702)(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