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은 언제나 디테일에 숨어 있다. 겉모습만 보고 모른다. 자세히 따져보아야 안다.
371쪽부터. 아버지는 장례를 구경하러온 마을 사람들이 마을로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일일이 인사를 건넸다. 사람들이 전부 삼촌의 무덤을 떠나자 아버지는 다시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가 여전히 삼촌과 링링의 무덤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삼촌의 무덤 앞에 서 있는 할아버지의 얼굴은 평온하기만 했다.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일이 일어났다 해도 그게 무슨 일인지 잘 모르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조용했지만 또 약간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어리둥절하면서도 뭔가 알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어리둥절하면서도 뭔가 알 것 같은 얼굴로 무덤 앞에 서 있었다. 한 노인이 자신이 읽을 줄 모르는 묘비의 문구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는 것 같았다. 아주 조용하고 평온하게 마음으로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때 아버지가 몸을 돌려 할아버지에게로 다가와 물었다.
“아버지, 이만 하면 동생에게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 형 노릇을 한 셈이죠?”
할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아버지가 좀 더 가벼운 목소리로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관묘에 금은관을 했잖아요. 거기에 비하면 량과 링링의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쳐다보기만 할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또 말했다.
“죽은 두 사람이 뭐 그리 대단한 사람들이겠어요?”
할아버지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버지가 말투를 조금 부드럽게 바꿔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는 평생 저 두 사람에게 미안한 일을 한 적이 없어요. 저 애들이 뭐 그리 대단한 인물이라고요. 저는 저 애들에게 면목이 서고도 남아요. 저 애들도 저를 위해 뭔가를 했어야 한다고요.”
아버지가 또 말했다.
“아버지, 제발 잊지 마세요. 앞으로 또 누가 예전에 피를 사고팔던 이야기를 거론하면 그게 전부 제 동생 딩량이 한 일이라고, 저 딩후이와는 애당초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고 하세요. 저 딩후이는 평생 매혈 우두머리를 한 적이 없다고 하시라고요.”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이나 말을 안 하고 있다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후이야, 이 아비한테 솔직하게 대답해다오. 상부에서 각 마을의 간부들에게 고급 관을 하나씩 주지 않았느냐? 한데 어째서 껀주와 유에진에게는 관이 지급되지 않은 게냐?”
아버지가 또 할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들에게 줄 관 값이 전부 량과 링링의 관을 사는 데 들어간 거예요.”
아버지는 담담한 어투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버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그 금은행목관이 하늘에서 떨어졌겠어요? 제가 동목관 백 개를 살 돈으로 그걸 산 것이라고요.”
말을 마친 아버지는 몸을 돌린 채 더 이상 할아버지를 쳐다보지 않았다. 할아버지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상관없이 여전히 담담한 어투로 자기 할 말만 하고 있었다.
“저 가요. 나중에 또 뵈러 올게요.”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자신이 딩씨 마을을 떠나는 일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 말을 마친 아버지는 정말로 삼촌의 무덤을 떠났다.
할아버지 곁을 떠났다. 할아버지 곁은 떠나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잊지 마세요, 아버지. 앞으로 누가 매혈에 관해 물어보더라도 전부 제 동생 딩량이 한 일이라고 해야 돼요. 사람들이 묻지 않으면 딩량의 무덤을 열어 물어보라고 하세요.”
딩후이는 매혈조직의 우두머리로 돈을 벌다가 AIDS가 만연하자 관을 팔아서 또 돈을 벌었다. 정부가 환자들이 죽으면 쓰라고 마을에 지급한 관을 가로채서 팔아먹는 짓을 했다. 그런 돈으로 동생의 장례를 후하게 지내주고 할아버지 입막음을 하려는 것. 나중에는 죽은 자를 결혼시키는 음혼까지 알선하면서 돈을 번다. 정말 벼룩의 간 빼먹기다. 어제 다 읽었다. 2017년 6월 16일
<딩씨 마을의 꿈에서 몇 가지 생각할 점>
1. 중심 소재
- AIDS 창궐과 비극
- 주사바늘 한 개를 여러 사람에게 썼다. 돈 버는 욕망에 눈이 멀어서 위생적으로 처리하지 못했다. 주사바늘, 약솜 비용까지 아끼려고 했다.
- 병의 이미지 : 에이즈, 열병, 가뭄, 재앙 (↔ 홍수, 콜레라) 소설의 배경이 지금 가뭄과 같다.
- 병의 심리 : 전염병. 격리된다. 다른 사람과 다르다. 이런 느낌이 가장 무섭다.
- 에이즈 질병의 특성 : 전염병, 불치병, 죽을병. 모든 인간관계 파탄
2. 우리 주변에 ‘아버지’ 같은 욕망의 화신이 얼마나 많을까?
- 매혈 우두머리(정부의 지대추구, 특권) → AIDS 열병 창궐 → 죽음 시체 처리 → 관 가로채서 팔기 → 죽은 영혼결혼 즉 음혼의 거간까지 해서 돈을 번다. 벼룩의 간 빼 먹기 → 결국 최고의 부자가 된다.
- 6.25의 비극을 이용해서 돈벌이, 복지시설 운영을 돈벌이의 최고 수단으로
- 부를 축적하는 과정은 모두 그렇지 않을까.
- 우리나라도 매혈한 적이 있었다.
- 지금도 중국에서는 장기 밀매를 하고 그러지 않나.
3. 아버지라는 인물 분석
- 언제나 큰 일을 할 사람. 욕망의 화신. 물불 가리지 않는 끝없는 욕망. 반드시 성공하고야 마는 존재. 죽기 전에는 실패를 모르는 존재
- 아들의 음혼이 허세인줄 알았는데 그것도 사업의 과정이었음
- 부를 쌓으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
4. 할아버지가 마을에서 영향력을 잃어가는 과정
- 큰 아들이 마을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다는 죄의식 때문에 할아버지가 영향력을 잃어가게 된다. 늘 개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할아버지가 마을에서 영향력을 잃어가는 과정이 마을 도덕의 몰락 과정
- 끝까지 양심을 지킨 단 한 사람이 할아버지
5. 비극 속에 또 비극, 비극 속에 사랑
- 죽어가면서 도둑질, 죽어가면서 권력을 만들고 행세하려고 함
- 링링과 삼촌의 사랑. 죽어가면서도 그짓이야? 모든 것을 다 바친 사랑, 죽음을 받아들이고 순수한 사랑을 택함
6. 소설 기법 상 특이점
- 나 = 죽은 화자 2017년 6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