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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립공원 太白山(Ⅱ)
- 위 치 : 강원 태백시 문곡소도동, 영월군 상동면,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 높 이 : 1,567m, (문수봉 1,517m)
1. 일 시 : 2013. 1. 31. 06:00 ~
2. 장 소 : 太白山
3. 참석인원 : 49명 (새내기 12명)
4. 등산코스
▶ 기본코스 : 유일사매표소 - 유일사쉼터 - 장군봉(장군단) - 영봉(천왕단) - 하단 - 부쇠봉 - 문수봉 - 소문수봉 - 제당골 - 단군성전 -
당골광장 제2주차장 (11,3km)
▶ 병행코스 : 유일사매표소 - 유일사쉼터 - 장군봉(장군단) - 영봉(천왕단) - 망경사 - 단군성전 - 당골광장제2주차장 (8,4km)
5. 다녀온길 : KBS앞 - 중앙고속도로(제천IC) - 38번국도 영월, 태백방면 - 청령포진출 88 지방도 - 31번국도 녹전. 상동방면 - 화방재 - 유일사매표소주차장(9하차),
당골광장(승차)
6. 오늘활동 상황
○ 06:00 --- KBS앞 출발(제천휴게소 경유)
○ 08:50 --- 유일사매표소주차장 도착
○ 09:05 --- 단체기념사진촬영 및 일정안내
○ 10:10 --- 들머리진입
○ 09:53 --- 유일사쉼터
○ 09:56 --- 유일사
○ 10:19 --- 주목군락지
○ 10:47 --- 장군봉(장군단)
○ 10:56 --- 영봉(천왕단)
○ 11:07 --- 단종비각
○ 11:10 --- 망경사
○ 11:28 --- 하단
○ 11:30 --- 점심식사(문수봉팀)
○ 12:23 --- 부쇠봉
○ 12:53 --- 문수봉
○ 13:14 --- 소문수봉
○ 14:02 --- 제당골
○ 14:14 --- 단군성전
○ 14:17 --- 눈축제장
○ 14:30 --- 제2주차장 도착(문수봉팀)
○ 14:58 --- 제2주차장 출발
○ 18:15 --- KBS앞 도착
7. 태백산살펴보기
□ 개관
- 태백산은 예부터 삼한의 명산, 전국 12대 명산이라 하여 '민족의 영산' 이라 일컫는다. 태백산은 가파르지 않고 험하지 않아 초보자나,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 수 있다. 2시간이면 천제단에 이르고 하산까지 4시간이면 족하다. 따라서 가족 산행으로도 적합하다. 산 정상에는 고산식물이 자생하고 봄이면 산철쭉이 만개하고 여름에는 울창한 수목과 차고 깨끗한 계곡물이 흐르며, 가을에는 오색단풍으로 수놓으며 겨울에는 흰 눈으로 뒤덮인 주목군락의 설경을 이룬다. 산 정상에 태고 때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이 있다.
- 천제단은 둘레 27m, 폭8m, 높이3m의 자연석으로 쌓은 20평가량의 원형 돌제단이다. 삼국사기에 왕이 친히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고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신라에서 오악 가운데 태백산을 북악으로 받들어 봄, 가을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1991년 국가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된 이 천제단은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방백수령과 백성들이 천제를 지냈고, 구한말에는 쓰러져가는 우국지사들이, 일제 때는 독립군들이 천제를 올렸던 성스런 제단이다. 태백시에서는 매년 10월3일 개천절에 태백제를 개최하며 천제를 올린다.
- 천제단을 중심으로 5분 거리인 북쪽 300m 지점이 태백산의 주봉인 가장 높은 장군봉, 남동쪽으로 능선을 타고 가면 멀리 수만 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문수봉이 있다. 서울에서 내려온 한 처사가 쌓고 있는 돌탑군이 있다.
- 천제단에서 유일사 쪽으로 내려가는 능선 중간과 문수봉으로 가는 중간에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사찰로는 망경사, 백단사, 유일사, 만덕사, 청원사등이 있다. 태백산은 겨울의 눈과 설화가 환상적이다. 주목과 어우러진 설화는 동화속의 설경이다. 적설량이 많고 바람이 세차기로 유명하여 눈이 잘 녹지 않고 계속 쌓인다. 세차게 몰아치는 바람이 눈을 날려 설화를 만든다.
- 매년 1월중순에서 하순 사이에 태백산 눈 꽃 축제가 태백시 일원에서 열린다. 화려한 눈축제에 앞서 눈조각 경연대회가 태백산 당골에서 개최된다. 또한 태백산은 일출산행으로 인기 있다. 새해를 맞이하는 첫 일출을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 태백산 철쭉은 가장 늦게 핀다. 철쭉 봉화가 중부권을 거쳐 태백산에 이르는 시기는 6월 첫 주부터 둘째 주까지. 유일사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보면 정상부근에 주목과 철쭉 밭이 어우러져 있다. 태백산 철쭉은 동해의 거센 비바람에 씻긴 듯 연분홍. 검은 주목과 연분홍빛 철쭉 대비가 일품이다. 강원도 태백시의 봄 축제인 태백산 철쭉제가 6월 초순에서 중순경에 태백산도립공원 일대에서 개최된다.
- 산 정상 밑 해발 1,500m에는 단종대왕을 모신 단종비각과 한국명수 100선중 으뜸인 용정이라는 우물이 있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망경사 절 입구의 용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샘물. 개천절에 올리는 천제(天祭)의 제수(祭水)로 쓰인다. 또한 당골에는 매년 개천절에 제를 올리는 단군성전이 있다.
□ 주변볼거리
- 태백에는 국내에서 가장 높은 역인 추전역(해발 855m)과 가장 높은 포장도로인 만항재(1,330m)가 있다. 태백8경으로 천제단, 문수봉, 주목군락, 일출, 황지, 검룡소, 구문소, 용연동굴이 있다.
- 낙동강 1천3백리의 발원지인 황지에서는 하루 5천 톤의 물이 솟아 드넓은 영남평야를 흘러 남해에 이른다.금대봉골에 있는 검룡소는 1천3백 여리를 흘러 서해로 들어가는 한강의 발원지이다.
인기명산 100 중 9위
- 겨울의 눈과 설화가 환상적인 태백산, 주목과 어우러진 설화는 동화 속의 설경 같다. 적설량이 많고 바람이 세차기로 유명하여 눈이 늦겨울까지 잘 녹지 않고 계속 쌓인다.
- 가파르거나 험하지 않은 등산로는 초보자나, 남녀노소 누구나 오를 수 있어 강원지역의 대표적인 눈 산행으로 1-2월에 집중적으로 찾는 겨울 명산이다.
철쭉이 만개하는 5월에도 인기가 있다. 두위봉과 함께 강원지역의 철쭉명산이기도 하다.
산림청 선정 100 명산 선정사유
- 예로부터 삼한의 명산이라 불리었으며 산 정상에는 고산 식물이 자생하고 겨울 흰 눈으로 덮인 주목군락의 설경 등 경관이 뛰어나며 도립공원으로 지정(1989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 삼국사기에 따르면 산 정상에 있는 천제단에서 왕이 친히 천제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음. 망경사, 백단사 등이 유명
8. 등산기행
□ 산행안내준비
<태백산등산안내도>
- 태백산은 매년 1, 2월 중 한겨울 심설 산행지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산 중 한곳이다. 2008년도에서 2010년도까지는 유일사매표소 - 장군봉 - 영봉(천왕단) - 망경사 - 당골코스를 반복해서 다녀왔고, 2011. 1. 20은 백단사 - 반재 - 망경사 - 영봉(천왕단) - 문수봉 - 당골코스, 2012. 1. 26은 화방재 - 사길치 - 장군봉 - 영봉(천제단) - 문수봉 - 당골코스를 다녀왔다. 태백산도립공원내 지정탐방로 5개 코스 중 금천계곡코스를 제외한 모든 코스를 다녀온 셈이다. 태백산은 매년 이곳 눈 축제기간에 맞추다 보니 당골이 단골 날머리가 된 셈이다. 금년 1, 2월 산행일정을 짤 당시만 하더라도 금천계곡 날머리를 염두에 두었었다. 그러나 참가신청하신 분 중 대부분이 태백산 눈 축제에 코드를 맞추신 분들이 상당하기 때문에 이를 간과하기 쉽지 아니하였다.
- 지난 몇 년 동안 태백산 눈 축제 행사기간 중 당골광장 주차장 사정이 여의치 못하여 날머리에서의 통제 불능 상황이 재연될까봐 안내준비를 하면서도 이점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우리 일행이 타고 온 버스가 주차해 있는 현 위치를 참여하신 모든 분들에게 적기적소에서 신속하게 전달하는 과정이 너무나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문수봉을 경유하여 당골로 하산하는 코스를 기본코스로 보고 천왕단에서 망경사를 경유하여 당골로 바로 하산하는 코스를 병행하여 운영하다 보니 항상 통제의 어려움을 감수해야만 했다.
- 태백산도립공원은 1989. 5. 13 강원도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17.44㎢이다. 높이 1,567m의 태백산과 태백석탄박물관, 황지(黃池)·용정(龍井) 등 태백산 일원의 명소 및 문화유적을 포함하고 있다. 태백산은 백두대간의 중앙부에 솟아 있는 민족의 영산으로, 삼신산 가운데 하나이자 웅장하고 장중한 산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봉은 장군봉(將軍峰)이며, 산 정상부에는 고산식물이 많이 자생한다. 특히 국내의 대표적 주목 군락지로 유명하며, 6월 초순 무렵의 철쭉과 일출 역시 명승으로 꼽힌다. 태백산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길목에 있는 산이기에 살펴보고 넘어간다.
▶ 백두대간
- 백두대간(白頭大幹)은 ‘백두에서 비롯한 큰 산줄기’라는 뜻으로 이 땅을 동과 서로 크게 갈라 놓은 산줄기인 1개의 대간(大幹)과 정간(正幹), 13개의 정맥(正脈)으로 나뉜다. 백두산에서 시작되어 갈라진 산줄기는 모든 강의 유역을 경계 지었다. 산은 물을 낳고 물은 산을 가르지 않는다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에 따라 동해안, 서해안으로 흘러드는 강을 양분하는 큰 산줄기를 대간, 정간이라 하고, 그로부터 갈라져 각각의 강을 경계 짓는 분수산맥(分水山脈)을 정맥이라 하였다. 대간은 총연장 1,470km(남한 : 670km)로 백두산에서 시작해서 두류산, 금강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 영취산, 지리산으로 이어지고 정간은 함경북도 두류산에서 북쪽으로 장백정간이 있으며 청천강을 기준으로 한 청북정맥, 청남정맥, 한강을 에워싸는 한남, 한북정맥, 금강을 두른 금남과 금북, 낙동강 좌우의 낙동, 낙남정맥, 임진강과 예성강 사이의 임진북예성남맥, 그리고 해서정맥, 호남정맥, 한남금북정맥, 금남호남정맥 등 13정맥이 있다. 대간을 중심으로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간 산줄기들은 지역을 구분 짓는 경계선이 되어 각 지역의 언어, 습관, 풍속 등과 부족국가의 영역을 이루었고, 삼국의 국경을 비롯한 조선시대의 행정경계가 되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자연스러운 각 지방의 분계선이 되었다. 따라서 백두대간은 이 땅의 지세(地勢)를 파악하고 지리를 밝히는 근본이 된다.
▶ 낙동정맥
- 낙동정맥은 국내 제일의 오지를 포함하고 있다. 낙동강의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의 황지연못과 한몸이 되어 남쪽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산줄기다. 동해안과 마주하며 부산의 금정산까지 이어진다. 낙동강의 수계를 형성하는 유역권 전체가 낙동강 물줄기를 중심으로 한쪽은 백두대간이고 한쪽은 낙동정맥이 된다. 낙동정맥은 경상도 전체를 가로 지르는 거대한 산줄기로 아직까지 제대로 조사나 연구된 바 없는 산줄기로 우리의 인식에서도 '미지의 세계' 로 남아있는 자연의 보고다. 낙동정맥 구간은 강원도 남부와 경상도 전체를 아우르는 광활한 산줄기다. 지도상의 능선 거리만 약410㎞이고 고도와 기복을 감안한 실제거리는 약 700㎞에 이른다. 관할 행정구역은 강원도, 경상북도, 경상남도, 울산광역시, 부산광역시 등 3개도, 2개 광역시, 7개 시, 7개 군, 7개 구 (강 원 도 : 태백시, 삼척시, 경상북도 : 봉화군, 울진군, 영암군, 청송군, 영덕군, 포항시, 영천시, 경주시, 청도군, 경상남도 : 밀양시, 양산시, 울산광역시 : 울주군, 부산광역시 : 금정구, 북구, 동래구, 부산진구, 사상구, 서구 사하구) 등에 자리 잡고 있다. 낙동정맥에 속한 산은 매봉산(천의봉), 백병산, 면산, 묘봉, 삭갓봉, 진조산, 통고산, 칠보산, 백암산, 굴아우봉, 독경산, 맹동산, 명동산, 대돈산, 왕거암, 침곡산, 운주산, 도덕산, 삼성산, 어림산, 관산, 사룡산, 단석산, 백운산, 고헌산, 운문봉, 가지산, 능동산, 간월산, 신불산, 취서산, 정족산, 천성산, 원효산, 계명봉, 금정산, 백양산, 고원견산, 구덕산, 봉화산 등이 있다.
<태백산등산지도>
-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난 몇 년 동안 유일사코스, 백단사코스, 문수봉코스, 화방재코스, 당골코스를 당골을 나들목으로 반복 체험한바 있다. 이는 태백산 눈 꽃 축제기간에 맞추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태백산도립공원에서 소개하고 있는 코스 중 유일하게 체험하지 못한 코스가 금천 - 문수봉 - 부쇠봉 - 천제단으로 이어지는 7,8km/4시간 소요되는 금천코스이다. 금천코스와 백단사코스 유일사코스를 연계하면 11,8 ~ 12,2 km/6시간~6시간30분 소요코스이다. 이는 하루일정으로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코스이기에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이를 역으로 운영하여 문수봉을 거쳐 금천을 날머리로 잡는다면 상당시간 운영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남은 금천코스 체험과 눈 꽃 축제 체험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위해서는 금천과 당골을 날머리를 병행하여 운영하는 무리수를 두어야만 했다. 그러나 날머리 분산운영에 따른 통제의 어려움을 감수하기에는 예측할 수 없는 현장의 상황이 결정을 어렵게 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금천코스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당골을 날머리로 잡고 아래와 같이 안내준비를 하였다. 또한 오늘 춘천 출발시간을 예년에 비하여 한 시간 앞당긴 것은 제2주차장 선점을 위한 방편이었음을 십분 이해하여 주시기 바란다.
- 태백산도립공원에서 관리하고 있는 등산로는 아래와 같이 5개의 코스가 있다. 지난해는 화방재에서 시산제를 올린 후 사길령매표소 입구를 들머리로 하여 영봉 천왕단에서 문수봉을 거쳐 당골광장으로 하산하는 코스를 기본코스로 잡고, 영봉 천왕단에서 당골광장으로 곧바로 하산하는 코스를 병행하여 운영하였다. 금년에는 들머리만 바꿔 유일사매표소 - 유일사쉼터 - 장군봉 - 영봉 - 부쇠봉 - 문수봉 - 부문수봉 - 당골광장 코스를 기본코스로 보고, 영봉 천왕단 - 망경사 - 당골광장으로 곧바로 하산하는 코스를 병행코스로 잡고 안내준비를 마무리 하였다.
등산코스(태백산도립공원제공)
► 백단사 코스 : 백단사입구 → 반재 → 망경사 → 천제단 (4km / 2시간)
► 문수봉 코스 : 당골광장 → 제당골 → 문수봉 →천제단 (7,3km / 3시간)
► 유일사 코스 : 유일사입구 → 유일사 → 장군봉 → 천제단 (4km / 2시간)
► 당 골 코스 : 당골광장 → 반재 → 망경사 → 천제단 (4.4km / 2시간30분)
► 금 천 코스 : 금천 → 문수봉 → 부쇠봉 → 천제단 (7.8km / 4시간)
□ 산행안내
<단체기념사진>
- 오늘은 대한민국 첫 우주발사체(로켓) 나로호(KSLV-1)가 30일 오후 4시 위성을 정상궤도에 진입시키는데 성공했다. 나로호는 이날 전남 고흥에 자리 잡은 나로 우주센터에서 발사돼 9분 후 궤도진입에 성공했다. 발사 3번 만이며 지난해 10월 26일, 11월 29일에 부품결함으로 발사 중단 된지 3개월여 만이다. 이의 최종 성공여부는 31일 새벽 위성과의 교신이 성공하느냐에 따라 갈린다. 오후 6시 경 나로과학위성의 전파 신호가 잡히면 대한민국은 자체 개발한 우주발사체를 자국 발사대에서 쏘아 올려 위성 궤도 진입에 성공한 이른바 '스페이스 클럽'의 11번째 회원국이 된다. 우리나라 땅에서 처음 발사된 인공위성인 나로과학위성이 31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 지상국과의 교신에 성공했다. 이로써 나로호 사업의 최종 성공이 확정됐다. 인공위성연구센터는 나로과학위성이 정해진 타원 궤도를 돌아 우리나라 인근 상공을 지난 31일 오전 3시 27분 12초 첫 번째 교신을 시도해 성공했다고 밝혔다. 라는 감격에 넘치는, 흥분을 감출 수 없는 뉴스를 들으면서 산행안내준비를 마무리 한 정기산행 일정이기에 그 어느 때 보다도 더 큰 의미를 갖는 일상으로 기억되리라 본다.
- 매 년 한겨울 심설산행과 더불어 눈꽃축제기간에 맞춰 찾는 태백산은 버스 한 대 정원이 늘 모자라는 실정이었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정원의 10% 정도의 사고율을 감안한 접수마감이었는데 오히려 더 초과하는 바람에 현장에서 발길을 돌려야하는 불미스러운 사안이 발생하여 안타까움을 삼켜야만 했다. 며칠 전부터 버스 한 대 정원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접수 마감할까? 말까? 를 저울질하며 고민 아닌 고민 속에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기도 하였다. 얼마 만에 누려보는 객기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제발 오늘을 계기로 차고 넘치는 분위기가 쭉 이어지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 주간날씨예보에 의하면 태백시 문곡소도동 일원 날씨는 구름 많고 3 ~ 10℃ 분포를 보일 것으로 예보하였다. 지난해는 장군봉에서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구간을 지나면서 칼바람과 박무의 영향으로 시산제 첫날부터 점심식사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로 호된 신고식을 치른바 있다. 그렇지만 오늘은 봄 날씨 같은 좋은 산행환경 속에서 태백의 정기를 듬뿍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기상변화 없이 딱 맞아 떨어졌다. 춘천을 출발하면서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안개가 짙어 시원한 조망은 기대를 걸지 않았었는데 녹전을 지나면서 시야가 훤하게 트이기 시작하여 화방재를 넘으면서 화창한 날씨로 시야가 확 트이는 바람에 만세삼창이라도 부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 빠른 길 찾기 정보에 의하면 춘천KBS방송총국에서 유일사매표소까지 204,9km / 3시간21분으로 제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보는 석항에서 수라리재를 넘어 녹전을 거쳐 상동방향으로 이어지는 31번 국도로 안내하고 있었다. 이 길은 수라리재 구간에 S코스가 많기 때문에 늘 38번 국도를 타고 태백시를 경유하여 문곡소도동으로 접근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38번국도 영월직전 청령포에서 진출하여 새로 개설한 88지방도로를 타고 가다가 녹전에서 31번국도와 합류하여 상동을 거쳐 접근했던 것이다. 그 결과 예정시간을 20분을 앞당겨 여유 있게 목적지에 홈인하여 일상을 열었다.
- 오늘 버스 대기 주차장은 당골 제2주차장을 기본으로 예고하고 사정이 여의치 않을 경우 현장의 상황에 따라 적의 조치할 요량이었는데 권 희 성 기사님의 배려덕분에 예정대로 제2주차장을 확보하여 일정운영이 순조로웠다.
<사길령매표소>
- 11:05 사길령매표소 경유
- 들머리에 든지 25분만에 사길령매표소를 경유하였다. 매표소 직전에 있는 백두대간 사길령 비석이 눈길을 끈다. 비석 뒷면에 사길령 유래가 새겨져 있다. 태백산도립공원내에는 당골, 유일사, 백단사, 사길령에 매표소가 있다. 이 지점에 매표소관리사무소, 태백산등산안내도, 간이화장실 등이 있다. 여기서부터 영봉 천제단까지 4,1km이다. 유일사매표소와 유사한 거리다, 다만 화방재 들머리에서 매표소까지 약 0,5km 정도 더 소요된다.
- 태백산 사길령(四吉嶺)은 태백산 북쪽 백두대간 등마루에 위치하여 옛날 경상도로 통하던 고갯길이었다. 삼국시대에는 태백산 꼭대기로 나있는 천령(天嶺) 길을 통해 왕래하였으나 길이 높고 험하여 고려시대에 와서는 지금의 사길령으로 새로이 길을 내면서 새길령이라 하였다. 사길령은 교통의 요로였기에 오가는 길손들이 영로(嶺路)의 무사안전을 위해 고갯마루에 당우(堂宇)를 짓고 태백산령께 제사하기를 천여 년이 지났으며, 지금까지 매년 음력 4월15일에 태백산산령님께 국민태안과 우순풍조와 마을의 안녕을 빌며 제사하고 있다.
<태백산 산령각비문>
- 11:22 태백산 산령각 경유
- 사길령매표소에서 약 17분 소요되었다. 이 지점에 태백산산령각, 태백산산령각유래 안내판, 천제단 3,6km, 유일사쉼터 1,9km, 사길령매표소 0,5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 쉬면서 복장을 가다듬고 선, 후미가 합류하여 전열을 가다듬고 출발하였다.
- 여기서 제를 지내게 된 유래를 살펴본다. 태백산정상으로 이어지는 산마루로 나 있는 길이 사길령이다. 옛날 강원도와 경상도로 통하는 큰 길이 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 길이 불편해서 고려시대 때 새로운 길을 뚫었는데 옛길 대신 새로이 길을 뚫었기에 ‘새길’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그 고개를 ‘샛길재’라고 하여, 강원도와 경상도를 오가며 장사하던 보부상들에 의하여 건립된 산령각에서 매년 제사를 지낸 것에서 유래되었다.
- 여기에는 전설도 있다. 옛날 고갯마루에 도적이 성행하였고, 범이 나타나 사람을 해치는 것도 비일비재하여 고갯마루에 산령각을 짓고 안전을 기원했던 곳으로 영월 땅에서 사약을 받고 돌아가신 조선 제6대 임금이신 단종대왕이 사후 그 혼령이 되어 태백산의 산령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고, 새길재(또는 사길령) 산령각의 신위는 다른 산령각의 신위와 다르게 단종대왕이라고 하여 산령각 내부에는 백마를 탄 어린 임금이 그려진 탱화가 안치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유일사매표소>
- 유일사매표소는 태백시 문곡소도동 혈동리 260-17번지에 위치한다. 태백산도립공원 내에 있는 당골매표소, 백단사매표소. 사길령매표소와 함께 등산로 나들목을 지키며 입장료 징수와 더불어 공원지킴이 역할을 하고 있다. 영봉 천왕단(천제단)에 오르는 코스 중 백단사매표소와 함께 가장 짧은 코스이기 때문에 이곳을 찾는 고객이 가장 많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 모두산악회도 지금껏 유일사매표소 들머리 입산 경험이 가장 많았다.
- 유일사매표소주차장 단체고객은 우리 모두산악회 일행 분들이 유일하였다. 개별산행이나 팀 산행객들이 타고 온 승용차가 만 차를 이룰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지만 이미 대부분 입산 후였기 때문에 여유 있게 행장을 차리고 들머리에 들었다. 봄 날씨를 방불케 할 정도로 포근한 날씨에 덕분에 방한재킷은 일찌감치 벗어 배낭에 수납하고 집티에 가벼운 바람막이 자켓 차림으로 입산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땀이 날 정도였다. 탐방로는 먼저 내린 눈의 양이 상당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스패츠 착용이 필요 없을 정도로 잘 다져져 있었다.
- 오늘 나들목이 있는 문곡소도(文曲.所道)동은 1998년 행정개편 때 문곡(文曲)동과 소도(所道)동이 통합되어 생겨난 행정구역이다. 문곡(文曲)은 처음에는 마삼터(馬參基 )라고 부르던 마을인데 마을 북쪽 굼배리에서 낙동강 상류의 물이 크게 굽이쳐 흐르므로 “클구비” 라 하였다가 점차 클구비를 글그미로, 글그미를 글금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를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巨曲', ‘大曲' 으로 쓰다가 나중에는 글금을 글월 문(文), 굽을 곡(曲)을 합 하여 ‘文曲' 으로 쓰게 되었다. 글구미를 ‘文古味' 로 쓴 적도 있고 ‘文谷' 이라고 쓴 적도 있지만 모두 크게 굽이친다는 클구비에서 온 말이다. 마삼터라는 말은 고려 때 최초로 마삼(馬參) 이란 사람이 개척하여서 붙인 이름이다. 소도(所道)는 천제를 올리는 태백산 아래에 자리한 신성불가침 지역이란 의미의 명칭에서 유래하였다. 삼한(三韓)시대 때, 매년 5 월과 10 월에 각 읍(邑)별로 일정한 장소에서 하늘에 제사하며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빌었는데, 이 제사하는 장소를 소도(蘇塗)라 하였다. 태백시의 소도도 그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한때 이곳은 “바디” 라고 불렸는데,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 의 고조부 이안사가 전주에서 이곳으로 피난해 살면서 바디(베틀의 부속품)를 만들어 팔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그 바디를 한자로 하니, “바” 는 所로 “디”는 비슷한 소리의 道로 표기하여 소도(所道)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정동(鄭洞)이라고도 불렀다. 옛날 당골 안쪽 정가 터에 정씨 26 가구가 집단으로 이주해 와서 살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
<유일사 쉼터>
- 유일사 쉼터 경유
- 유일사매표소에서 50분 정도 소요되었다. 이 지점에 간이매점, 천제단 1,7km, 유일사매표소 2,3km, 사길령매표소 2,4km를 알리는 이정표, 유일사 100m를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또한 유일사 전용 생활필수품 운반용 허름한 케이블카가 눈길을 끈다. 바로 이지점이 지난해 사길령매표소에서 올라온 길목 합류지점이다. 여기서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선발대를 먼저 출발시키고 유일사로 발길을 돌렸다.
<유일사>
- 유일사는 언제나 산행일정에서 벗어나 있어 방문할 기회를 잡지 못했었다. 본인으로서는 오늘이 처녀 탐방인 셈이다. 언제인가 기회가 오겠지! 하고 늘 그냥 지나치면서 아쉬움을 남기곤 하였던 곳이다. 유일사매표소에서 2,4km, 유일사쉼터에서 0,1km 지점에 있으면서 탐방로에서 살짝 비켜 앉아 있기 때문에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었는데 오늘 자연스럽게 탐방기회를 잡고 말았다. 오늘 워낙 날씨가 맑아서 유일사쉼터에서 유일사 무량수전 지붕을 비롯한 경내 협곡이 훤히 내려다 보였기 때문에 구미에 충동질을 한 격이었다. 오늘 일정운영상 시간도 충분하고 산행후기 자료도 챙길 겸 겸사겸사해서 단숨에 내려가 남몰래 도둑질 하듯 평소의 오랜 소망을 풀고 올라왔다.
- 유일사는 태백시 문곡소도동 47번지에 위치하며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에 속한다. 태백산 백단사에서 이소선이 백일기도 중에 사찰을 창건하라는 부처님의 현몽을 받고 1959. 4. 10 현 위치에 창건하였다고 한다. 유일사매표소에서 입산하여 0,5km쯤 올라가다가 이정표설치지점 갈림길에서 진행방향 오른쪽으로 2km 정도 올라가거나 능선안부 갈림길에서 접근할 수 있다. 유일사는 태백지역의 유일한 비구니 사찰이다. 경내에는 법당, 인법당, 칠성각, 독성각,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주목군락지>
- 들머리에든지 한 시간 20여분 만에 주목군락지 정점에 올랐다. 이 지점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주목의 진수를 맛 볼 수 있는 지점 중 핵심 요충지이다. 수세 좋은 주목나무 밑은 어김없이 단골 포토지점이 되어 반질반질하게 질이 들었다. 또한 시원한 조망을 즐길 수 있는 지점이지만 연무가 드리워져 원경에 대한 조망은 제한적이었다. 다만 함백산 정상 정점은 운무가 사라져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서는 바람에 선경(仙境)을 보는 듯 탄성이 절로 터졌다. 성능 좋은 카메라만 소지하였다면 한 건 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지만 마음에 담고 만족해야만 했다. 지난해 이곳에는 사진작가들이 포진하고 작품 활동에 몰두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그림 같은 상고대나 눈꽃이 피지 않았기 때문인지 한 분도 없었다. 오늘은 태백산에서 상고대나 눈꽃을 보지 못한 유일한 날로 기억되리라 본다. 아무튼 봄 산행 같은 겨울산행을 태백산에서 맞이하는 영광과 더불어 홀가분하게 눈옷을 벗어 던진 주목나무 면면을 알뜰히 살필 수 있는 즐거움을 함께 누렸다.
- 朱木은 주목과에 속한 상록 침엽 교목이다. 큰 주목은 높이 22미터, 지름 2미터에 달한다. 가지가 사방으로 퍼지고 큰 가지와 원대는 적갈색이며 껍질이 얕게 갈라진다. 잎은 나선 모양으로 달리는데 옆으로 벋은 가지에는 깃처럼 두 줄로 배열되며, 표면은 짙은 녹색이다. 꽃은 잎겨드랑이에 달리며, 4월에 핀다. 기구, 조각, 건축재 또는 붉은빛의 염료로 쓰고, 정원수로 재배한다. 고산 지대에서 자라는데 우리나라, 일본, 사할린, 대만, 중국 등지에 분포한다. 학명은 Taxus cuspidata이다.
-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고 할 만큼 생명력이 길고 끈질긴 나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태백산, 함백산, 계방산, 소백산, 오대산, 설악산 등 높은 산악지대나 추운 지방에서 주로 자란다. 그 중에서도 태백산의 주목 군락지는 그 규모에서 앞선다. 태백산의 주목 군락은 장군봉에 이르기 전과 문수봉을 지나면서 절정을 이룬다. 특히, 겨울철 태백산에 눈이 덮이면 주목에 덮인 눈들과 함께 멋진 설경을 보여 준다. 태백산의 겨울 산행과 더불어 한겨울이면 사진작가들이 이 설경을 담기 위하여 이곳에 올라 작품 활동에 여념이 없다. 이곳의 주목은 매 그루마다 이름표를 붙여 보호수로 관리하고 있다. 태백산에서 자라는 주목은 2,805주이며 그 중 높이 11m이상 되는 것은 49주이고 지름 1m이상 되는 나무도 15주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름이 가장 큰 나무는 1.44m로서 수령은 500년 이상으로 우리나라에서 주목 서식지중 가장 대단위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다. 주목은 태백산을 대표하는 나무로서 설경은 장관을 이룬다. 주목은 고산 지대에서 자라며 높이 20m, 지름 2m에 달한다. 한국ㆍ일본ㆍ중국 동북부ㆍ시베리아 등지에 분포한다. 일본산으로 원줄기가 곧게 서지 않고 밑에서 여러 개로 갈라지는 것은 눈주목(var. nana)이라고 하며, 잎이 보다 넓고 회색이 도는 것은 회솔나무(var. latifolia)라고 하며 울릉도와 북쪽에서 자란다. 원줄기가 비스듬히 자라면서 땅에 닿은 가지에서 뿌리가 내리는 것은 설악눈주목(T. caespitosa)이라고 하며 설악산 대청봉 근처에서 눈잣나무와 같이 자란다.
<장군봉 정상석>
- 유일사매표소에서 장군봉까지 1시간47분 소요되었다. 유일사를 경유하지 아니하였다면 1시간30분대 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장군봉의 높이는 1,567m로 태백산의 최고봉이다. 지금까지의 겨울산행 중 장군봉 능선에 오르면 칼바람이 극에 달했었는데 오늘은 훈풍에 돛을 달고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오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포근함을 느꼈다. 지난해는 장군단 돌담 벽에 붙어 칼바람을 피했었는데 오늘을 옷깃을 여미는 대신 확 풀어 제치고 객기를 부릴 정도였다. 카메라 동상을 예방하기 위해 방풍재킷 속에 숨겼다 꺼내기를 반복하였고 두터운 장갑속의 손가락이 꽁꽁 얼어 디카 셔터를 겨우 눌렀을 정도였는데 오늘은 얇은 장갑까지 벗고 여유를 부릴 만큼 호시절을 만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갈무리하였다.
<장군단>
- 장군단은 천왕단에서 북쪽으로 약 3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천제단이다. 편마암(片麻岩)으로 만들었으며 높이 2m, 둘레 20m로 타원형(楕圓形) 석단(石壇)이다. 남쪽에는 제단 위로 오르내릴 수 있는 계단이 있다. 매년 개천절(開天節)에 제사를 지내고 있는 천왕단과는 달리, 비교적 원형(原形)이 잘 보존되어 있다. 높이로 봐서 태백산의 주봉인 셈이다. 태백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로 주목과 고사목이 많아 겨울에 흰 눈이 덮이면 장관을 이룬다. 장군봉과 영봉 0,3km 능선구간 나뭇가지와 고사목에 설화와 상고대가 만발하여 마치 흰 꽃밭을 연상하게 하였다. 여기서 북쪽의 죽미산(竹嵋山:917m), 남쪽의 일월산(日月山:1,219m)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낙동강의 여러 지류가 여기서 발원한다. 여기서 뒤에 따라 올라오던 일행 몇몇 분을 맞이한 다음 영봉으로 향했다.
<태백산 정상석>
- 유일사매표소에서 영봉까지 1시간56분 걸렸다. 지난해에는 장군봉에서 0,3km 능선 구간이 그야말로 마의 구간이었다. 안면마스크나 바라클라바로 중무장을 하고 두건을 푹 눌러 썼기 때문에 겉모습을 보고는 피아 식별이 어려웠었는데 오늘은 딴 세상에 온 듯 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또한 당골, 사길령매표소, 백단사매표소 등에서 올라온 산객들이 정상에서 합류하면서 인산인해를 이뤄 정상 표석이나 천왕단을 배경으로 인증 샷을 남기는 데에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려야만 했었다. 그런데 오늘은 어서 오십시오! 무사통과였다. 평일이지만 제20회 태백산 눈 축제 기간이기 때문에 지난해 버금갈 정도로 정상 주변이 복잡할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의외의 결과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 태백산 정상 표석은 태백산의 장엄함, 위대함, 역사성을 표현하기 위해 태백산의 글씨를 太자는 북위서체, 白자는 행서체, 山자는 고문자체로 썼다고 한다. 그 어느 산의 정상표석 보다도 크고 장엄하며 위엄이 있었다.
- 태백산은 태백산맥의 종주(宗主)이자 모산(母山)이다.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함경남도 원산의 남쪽에 있는 황룡산(黃龍山)에서 비롯한 태백산맥이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두타산(頭陀山) 등을 거쳐 이곳에서 힘껏 솟구쳤으며, 여기에서 서남쪽으로 소백산맥이 분기된다. 태백산의 북쪽에 대덕산(1,307m), 서쪽에 백운산(1,426m)과 매봉산(1,268m), 서남쪽에 장산(1,409m), 북쪽에 함백산(1,573m), 동쪽에 연화산(1,171m)· 백병산(1,259m) 등이 시원하게 조망되는 곳이다. 또한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낙조는 장엄하여 세속을 떠난 천상계를 연상케 하고 맑은 날 멀리 동해 바다를 볼 수 있는 것도 태백산이 가지고 있는 자랑거리 중 하나이다. 그러나 오늘은 날씨가 봄날처럼 해맑았음에도 불구하고 연무가 깔리는 바람에 함백산 정상 정점과 앞으로 경유할 문수봉 일원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원경에 대한 시원한 조망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이상난동으로 인하여 상고대와 눈꽃 그리고 시원한 조망을 잃은 셈이다. 그래도 포근하고 따사로운 햇살이 더 좋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이점에 대한 정답은 독자 각자의 몫으로 돌린다.
- 정상에서 당골 하산 팀과 문수봉 팀으로 나뉘었다. 유일사매표소 들머리에 들기 전 산행일정 안내를 하면서 정상에서 당골로 곧바로 하산할 뜻을 가지고 계신 분들을 파악할 당시만하더라도 정상에 올라가봐야 알겠다는 식으로 시큰둥한 반응이었는데 막상 정상에 오르고 나니 문수봉 팀은 소수의견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선발 팀 중에서 문수봉을 경유하실 분 6명을 먼저 출발시키고 후미 팀과 합류한 다음 제대를 다시 편성할 요량이었다.
<천왕단 (한배검)>
- 천제단은 국가중요민속자료 제228호로 지정되었으며 태백 8경 중 제1경이기도 하다. 천제단은 옛 사람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설치한 제단으로 삼국사기를 비롯한 옛 기록에 "신라에서는 태백산을 3산 5악(三山五岳) 중의 하나인 북악(北岳)이라하고 제사를 받들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영산(靈山)으로 섬겨 왔음을 알 수 있다. 태백산 정상에 위치한 천제단은 천왕단(天王檀)을 중심으로 북쪽에 장군단(將軍檀), 남쪽에는 그보다 작은 하단의 3기로 구성 되었으며 적석으로 쌓아 신역(神域)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 있는 천왕단은 자연석으로 쌓은 둘레 27.5m, 높이 3m, 좌우폭 7.76m, 전후폭 8.26m의 타원형이며, 녹니편마암의 자연석으로 쌓아져 있는데 윗쪽은 원형이고 아래쪽은 사각형이다. 이러한 구도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 때문이다.단군조선시대 구을(丘乙)임금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이 제단은 상고시대 부터 하늘에 제사하던 제단으로 단군조선시대에는 남태백산으로 국가에서 치제하였고, 삼한시대에는 천군이 주재하며 천제를 올린 곳이다. 신라초기에는 혁거세왕이 천제를 올렸고 그 후 일성왕이 친히 북순하여 천제를 올렸으며 기림왕은 춘천에서 망제(望祭)를 올렸다.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방백수령(方伯守令)과 백성들이 천제를 지냈으며 구한말에는 쓰러져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우국지사들이 천제를 올렸고, 한말 의병장 신돌석 장군은 백마를 잡아 천제를 올렸고 일제 때는 독립군들이 천제를 올린 성스런 제단이다. 지금도 천제의 유풍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으며 산꼭대기에 이같이 큰 제단이 있는 곳은 본토에서 하나밖에 없다. 천제단은 다른 이름으로 구령단(九靈壇) 또는 구령탑(九靈塔)이라 하고 마고탑(麻姑塔)이라 하기도 한다. 특히, 해마다 개천절에는 이곳에서 제사를 받드는데 중앙에 태극기(太極旗)와 칠성기(七星旗)를 꽂고 주변에는 33천기(天旗)와 28수기(宿 旗)를 세우며 9종류의 제물을 갖춘다. 이 주변의 계곡 일대에는 치성을 드리는 기도처로 사용된 크고 작은 적석탑과 석단들이 있으며 함부로 짐승을 잡거나 나무를 꺽는 일을 금하고 있다.
- 영봉 천제단 한배검에 대해서 살펴본다. 천제는 매년 10월 3일 낮 12시 태백산 영봉 천제단에서 봉행된다. 주최는 대한민국 천제보존회가 하고 태백문화원이 주관한다. 천제는 일 년에 딱 한번 하는 제례행사이다. 하늘에 영험과 소원을 빌고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그런 장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곳 천제에 참석한 사람들은 음복 때 내려주는 제물을 먹으면 행운이 따른다고 하여 서로 먹으려고도 한다. 또한 소지는 개인들이 천제단에 올리는 禮로 각 가정의 행운과 가족의 행복, 건강을 기원한다.
- 천제단은 천왕단을 중심에 두고 3기로 이루어져 있다. 북쪽으로 300m 지점에 장군단, 남쪽 300m 지점에 하단이 있다. 3개 제단이 북에서 남으로 일직선상에 있는데, 영봉(1560m)에 위치한 천왕단은 자연석으로 쌓여진 높이 2.4m, 둘레 27.5m, 면적 66㎡(20평)의 타원형이다. 태백산의 정상인 장군봉(1567m)에 위치한 장군단은 세로의 직사각형, 측면은 삼각형으로 천왕단보다 조금 작은 규모. 하단은 장군단보다 작은 규모로, 가로의 직사각형이다. 태백문화원 김강산 원장에 의하면 3개의 제단은 그 형상이 각각 ○ △ □으로, ○은 하늘, □은 땅, △은 사람, 즉 천지인(天地人)을 의미한다고 한다. 천제단은 단순하게 돌을 쌓아올린 건축물이 아닌 셈이다. 천왕단은 하늘에, 장군단은 사람에, 하단은 땅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천제를 지낼 때는 살아 있는 소를 바쳤는데, 제단 앞에 매어놓고 내려 왔다. 이때 뒤를 돌아보면 소가 아까워 그런다며 신이 벌을 준다고 했다는데, 3일 후 다시 올라가 소를 거두어 썼다고 한다. 하지만 부득이한 사정으로 태백산을 찾지 못할 때는, 멀리서 태백산을 향해 망제(望祭)를 지냈다고 한다. 신라 기림왕은 변방이 심상치 않던 시절, 춘천에서 태백산을 바라보고 망제를 지냈는데 낙랑과 대방이 항복하고 모든 것이 원만히 이루어졌다고 한다(삼국유사). 이후 태백산은 바라보고 정성껏 제사만 하여도 감응하는 영산(靈山)으로 여겨졌다. 조선시대에는 천제를 지내느라 오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어깨가 부딪치고 앞 사람의 뒤꿈치를 밟을 정도였다고 한다. 옛 기록에 "신라에서는 태백산을 3산 5악(三山五岳) 중의 하나인 북악(北岳)이라 하고 제사를 받들었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영산(靈山)으로 섬겨 왔음을 알 수 있다.
- 단군조선시대 구을(丘乙)임금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이 제단은 상고시대부터 하늘에 제사하던 제단으로 단군조선시대에는 남태백산으로 국가에서 치제하였고, 삼한시대에는 천군이 주재하며 천제를 올린 곳이다. 신라초기에는 혁거세왕이 천제를 올렸고 그 후 일성왕이 친히 북순하여 천제를 올렸으며 기림왕은 춘천에서 망제(望祭)를 올렸다.
-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는 동안 방백수령(方伯守令)과 백성들이 천제를 지냈으며 구한말에는 쓰러져가는 나라를 구하고자 우국지사들이 천제를 올렸고, 한말 의병장 신돌석 장군은 백마를 잡아 천제를 올렸고 일제때는 독립군들이 천제를 올린 성스런 제단이다. 지금도 천제의 유풍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으며 산꼭대기에 이같이 큰 제단이 있는곳은 본토에서 하나밖에 없다. 천제단은 다른 이름으로 구령단(九靈壇) 또는 구령탑(九靈塔)이라 하고 마고탑(麻姑塔)이라 하기도 한다. 특히, 해마다 개천절에는 이곳에서 제사를 받드는데 중앙에 태극기(太極旗)와 칠성기(七星旗)를 꽂고 주변에는 33 천기(天旗)와 28수기(宿 旗)를 세우며 9종류의 제물을 갖춘다. 이 주변의 계곡 일대에는 치성을 드리는 기도처 로 사용된 크고 작은 적석탑과 석단들이 있으며 함부로 짐승을 잡거나 나무를 꺾는 일을 금하고 있다.
천왕단 앞 문수봉방향 안내판에 있는 안축의 “칠언율시” “등태백산”을 살펴본다. 긴 하늘 바로 지나 자연 속에 들어서니 그제야 알고 보니 절정에 올랐구나. 한 덩이 흰 해는 머리위에 나직하고 몸이 구름 쫒아가니 내가 학을 탄 것인가 길이 벼랑에 걸렸으니 하늘 오르는 사다리인 듯 비와서 만 골짜기 물이 휘몰려 넘치니 굽이져 도는 오십천을 건널 일이 걱정이다.
- 태백산에 천제를 올린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
▶ 환단고기(桓檀古記)
- 五世檀君 丘乙, 壬戌元年命築壇干太白山遺使致祭
(5세 단군 구을 임술원년에 태백산에 천제단을 축조하라 명하시고 사자를 보내어 제사하게 하였다)
▶부도지(符都誌)
- 復興祭市之法建天符小都於南太白築壇於中臺
(제시의법을 부흥키 위해 남태백산에 천부소도를 건설하고 가운데 봉우리에 천부단을 쌓았다)
▶삼국사기(三國史記)
- 逸聖尼師今 五年十月 北巡親祀太白山
(일성왕 5년 10월에 왕이 친히 태백산에 올라 천제를 올렸다)
基臨尼師今 三年三月 至牛頭州望祭太白山樂浪帶方兩國歸服
(기림왕 3년3월에 왕이 춘천에 이르러 태백산을 바라보고 망제를 올렸으니 낙랑과 대방이 항복하여 왔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誌)
- 太伯山載府西南新羅擬五岳爲北岳有祠名曰太伯天王堂諸郡人民春秋祀之
(태백산은 삼척부의 서남쪽에 있는데 신라때 오악 가운데 북악이라 하였다. 산꼭대기에는 신사가 있는데 이름하여 태백천왕당이라 한다. 여러 고을 백성들이 봄, 가을로 천제를 올린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
- 太白山 新羅時北岳載中祀山頂俗稱天王堂本道及慶尙道傍邑人春秋祀之繫牛於神座前狼狼不顧而走曰如顧之神如不恭而罪之過三日府收其牛而用之名之曰退牛
(태백산은 신라 때 북악으로 중사의 제를 올리던 곳이다. 산꼭대기에는 세간에서 말하는 천왕당이 있어 강원도와 경상도의 인접 고을 사람들이 봄, 가을로 제사한다. 제사를 할 때에는 신좌 앞에 소를 매어놓고 3일이 지난 후에 부에서 그 소를 거두어 가 쓰는데 이름하여 퇴우라 한다)
太白山祠 在山頂俗稱天王堂本道及慶尙道傍邑人春秋祀之
(태백산사는 산꼭대기에 있는데 세간에서 이르기를 천왕당이라 한다. 강원도(본도)와 경상도의 인근 고을 사람들이 봄 가을로 제사한다)
▶ 척주지(陟州誌)
- 太白山在府西百二十里神羅北岳載中祀風俗信鬼其絶頂作天王祠春秋大祀
(태백산은 삼척부의 서쪽 120리에 있는데 신라때 북악으로 중사의 제를 올린 곳이다. 세간에 신을 믿는 풍습이 있어 산꼭대기에 천왕사를 짓고 봄, 가을로 크게 제사한다) <자료출처: 태백시청>
<단종비각>
- 선발 팀 중 문수봉 경유하실 분 6명을 먼저 출발시키고 난 다음 후미를 기다리는 막간을 이용하여 산행후기 자료를 챙기기 위해 망경사를 향했다. 정상에서 망경사로 내려가는 길몫 오른쪽으로 단종비각이 있다. 전경 사진만 한 컷 담아 가지고 망경사로 향했다.
- 태백산 용정에서 천제단 쪽으로 100m 정도의 거리에 단종비각이 있다. 비각 내에 안치된 비석의 전면에는 조선국태백산단종대왕지비(朝鮮國太白山端宗大王之碑)라 각자하였다. 비각의 전면에는 “단종비각”(端宗碑閣)이라 쓴 현판이 걸렸으며 탄허스님의 친필로 알려지고 있다. 조선 제6대 임금인 단종이 영월에 유배오자 호장이 태백산의 머루, 다래를 따서 자주 진상하였는데 어느 날 진상차 영월로 가는 도중 곤룡포차림으로 백마를 타고 태백산으로 오는 단종을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어디로 가시나이까? 하고 묻자 나는 태백산으로 가느니라 하고 사라져 버렸다. 호장이 영월 땅에 도착해 보니 단종이 그날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이로부터 단종이 승하한 뒤 태백산 산신령이 되었다고 전해지게 되었고 그 후 주민들이 의논하여 단종의 영혼을 위로하고 산신령으로 모시기로 하여 매년 음력 9월3일 제를 지내고 있다.
- 단종(端宗, 1441년 음력 7월 23일 ~ 1457년 음력 12월 24일, 재위 1452년~1455년)은 조선의 제6대 왕이다. 본관은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고, 휘는 홍위(弘暐)이다. 1455년 숙부 세조의 정변으로 양위하였다가, 세조 측근들의 탄핵으로 강원도 영월군 청령포로 유배되었다가 암살되었다. 폐위되어 죽어서 시호를 받지 못한 채 노산군(魯山君)으로 불리다가 이후 중종 때에 복권 상소가 올려 졌으나 거절당했고, 숙종 대에 가서야 성리학자들의 건의로 정종과 함께 묘호와 시호가 올려 져 정식 시호는 단종공의온문순정안장경순돈효대왕(端宗恭懿溫文純定安莊景順郭孝大王)이다. 세종의 장남인 문종과 현덕왕후의 외아들이며, 조선 왕조 최초의 왕세손이기도 하다.1452년부터 1455년까지 재위하는 동안 1452년부터 1453년까지 김종서가 섭정하였고 1453년부터 1455년 퇴위할 때까지 숙부 수양대군(훗날 세조)가 섭정하였다.(위키백과)
<망경사 대웅전>
- 망경사는 정상에서 0,4km지점 양지바른 곳에 있다. 여기서 문수봉이 바로 코앞에 건너다보인다. 이곳이 이곳을 지나는 산객들의 단골 밥자리인데 오늘은 아니었다. 시간대로 봐서 겨우 11:10을 갓 넘긴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망경사와 용정각은 보수공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음에도 출입을 금지하는 금줄이 처져 있었다. 출입이 허용돼 보았자 겨우 사진 한 컷 담는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에 정상에서 내려온 목적은 달성한 셈이었다. 우리나라 3대 영산(靈山)인 지리산, 소백산(小白山)과 함께 민족의 영산(靈山)으로 알려진 태백산(太白山) 천제단 아래 해발1,470미터 지점에 자리한 망경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오대산 월정사(月精寺)의 말사다. 신라 진덕여왕 652년 자장(慈藏)이 창건하였다. 자장이 함백산 정암사(淨岩寺)에서 노년을 보내던 중 현재의 망경사터에 문수보살 석상(石象)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암자를 지어 그 석상을 모셨다고 전해온다. 1950년 6.25전쟁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나중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부속건물로는 대웅전과 용정각, 요사채, 객사 등이 있다.
<용정각>
- 지금까지 용정에서 시원한 물 한 바가지 마셔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은 기회를 잡나 싶었는데 결국 오늘도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용정 급수전이 꽁꽁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용정은 태백산 망경사(望鏡寺)옆에 있는 우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솟아 나오는 샘이다. 물이 솟아 나오는 지점은 해발 1,470m정도의 고지대이고 또한 우리나라 100대 명수 중에서 가장 차고 물맛이 좋고 가장 높은 곳에서 솟는 샘이다. 샘에다 용정각을 짓고 용신에 제사를 올리기에 용정이라 한다. 일설에는 이 우물이 용왕국과 통하여 있다고 한다. 옛날부터 이 물로 천제를 올릴 때 제수(祭水)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곳 용정은 낙동강 발원지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삼국시대 때부터 태백산 천제단에서 하느님께 제사를 지낼 때 이 샘물을 제수(제사지낼 때 사용하는 물)로 사용하였는데 용궁에 연결되어 있어 가물 때나 장마 때나 수량이 한결 같고 부정한 사람이 마시면 물이 혼탁해 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 망경사 경내에서 머무를 겨를도 없이 사진 몇 컷 담아가지고 정상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미 정상에서 당골 방향으로 하산 하는 분들이 상당하였다. 후미의 동정을 파악해 보니 시방 정상에 있다는 전갈이었다. 정상에 도착해 보니 잔류한 대부분의 일행 분들께서 이미 망경사 방향 하산을 결심한 듯 하였다. 회장님께서 문수봉 경유하실 뜻을 접으시고 그 분들 안내를 자청해 주셨다.
<하단>
- 회장님 일행 분들이 망경사로 출발하면서 고문님을 비롯한 후미일행 분들과 합류하였다. 그 분들의 의사를 타진해 본 즉 문수봉은 가도 좋고 안가도 좋다는 식으로 무미건조한 반응이었다. 이분들이 안 간다고 버티면 여기서부터 나 홀로 산행을 해야 하는 기구한 운명이었다. 날씨도 좋고, 시간도 많으니 쉬엄쉬엄 문수봉을 경유하자는 제의를 해 본 다음 반응이 없으면 본인 혼자라도 문수봉으로 향할 각오였다. 그런데 고문님 외 두 분이 찬성하시는 바람에 원군을 얻은 듯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총무님께서는 반대를 하시면서 망경사 방향으로 먼저 출발하는 것은 분명히 보았는데 신출귀몰하게도 어느새 하단 방향으로 진로를 바꾸는 자선을 베풀어 주셨다. 이런 상황을 그냥 보고 지나칠 내가 아님을 독자님들은 다 아실 터이기에 한 말씀 짚고 넘어간다. 총무님! 왜 이리로 오셨어요? 총무님 때문에 시방 짝이 안 맞잖아요? 라고 시비 아닌 시비를 거는 바람에 한바탕 웃음보가 터지기도 하였다. 이로서 오늘 문수봉 팀은 선발 팀 6명, 후미 팀 5명으로 막을 내렸다.
- 하단은 영봉 천왕단에서 남쪽 부쇠봉방향 300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밀양박공지묘비 바로 뒤에 있는 하단은 옛사람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설치한 3기의 천제단 중 하나이다. 천왕단에서 망경사를 거쳐 곧바로 하산할 경우 하단은 그냥 지나친다. 하단은 천왕단이나 장군단에 비해 규모가 가장 작고 이름도 알 수가 없어 하단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양지바르고 칼바람을 비켜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이곳을 지날 때면 언제나 산객들의 밥자리로 이용되는데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후미 팀 5명이 하단 뒤 주목나무 밑에 밥자리를 펴고 민생고를 해결하였다. 포근한 날씨 덕분에 장감을 벗어 던지고 여유를 부리기도 하였다.
<부쇠봉>
- 부쇠봉은 지금까지 눈도장과 발도장을 찍지 못하고 매번 간과한 봉이다. 일정운영 시간에 쫒기고 정강이를 웃도는 눈길에 러셀을 해야 하는 부담을 항상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 상황을 돌파하지 못하고 다음기회로 미루기를 반복했던 곳이다. 그러나 오늘은 일정운영상 시간도 여유가 있고, 날씨 또한 좋았다. 절호의 찬스를 놓일 수 없는 숙명의 날로 접수하였다. 점심식사 도중 부쇠봉에 관한 의견을 피력한 바 있었지만 오늘 역시 현장의 상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고 여러 사람 고생할 필요 없이 단독 등정을 결심하였다. 총무님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부쇠봉갈림길에서 작별을 고했다.
- 부쇠봉은 천제단 0,8km, 문수봉에서 2,2km를 알리는 부쇠봉갈림길 이정표에서 진행방향 오른쪽 백두대간 방향으로 진로를 잡아야 한다. 그러나 백두대간 진로만 안내되었지 부쇠봉에 관한 언급이 없었기 때문에 불안감을 떨쳐버리지 못한 채 눈 위에 발도장을 찍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는 스패츠를 착용하지 않고도 문제가 없었는데 여기서부터는 아니올시다. 이었다.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바람에 완전무장을 하고 다시 도전장을 던졌다. 먼저 다녀가신 산객들의 묵은 발자국이 희미하게 간간히 이어졌기 때문에 진로를 이탈할 염려는 없었지만
혹시라도 부쇠봉은커녕 삼천포로 빠지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에 그냥 되돌아갈까? 를 뇌까리면서 망설이기도 하였지만 기왕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지 하는 심정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부쇠봉갈림길에서 10여분 남짓 가면서 청옥산 14,9km, 봉화박천계곡 3,7km, 부쇠봉 0,2km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왔다. 구세주를 만난 격이었다. 이정표에 석포파출소와 석포소방서 전화번호가 안내된 것으로 봐서 관할 행정구역이 경북 봉화군으로 짐작이 갔다. 이 지점에서 다시 10여분 남짓 능선길을 오르면서 부쇠봉 정상에 도착하였다. 이정표에서 정상직선 전망대 구간이 오늘 일정 중 가장 힘겨웠던 마의 구간이었다. 눈보라가 쌓아놓은 눈 더미에 스틱을 짚으면 스틱손잡이가 모자랄 정도였다. 한번 빠지고 나면 지난해 매봉 정상에서와 같은 상황이 재연되었다. 한 참을 허우적대야만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정상 인증 샷을 남길 수 없어 눈 속에 묻힌 정상석을 손질해놓고 한 컷 담고 나니 감개무량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길을 알았으니 다음 기회에는 반드시 안내할 것이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발길을 재촉하였다. 부쇠봉 정상을 벗어나면서 헬기장이 곧바로 나왔고 곧이어 문수봉 탐방로와 합류하였다. 이 구간에서 25분 이상 지체하였으니 앞서가신 분들을 따라 잡으려면 속도전을 펼쳐야만 했다. 문수봉 마지막 오름 구간에서 다시 합류하여 동행하였다.
- 부쇠봉은 해발 1,546,5m이다. 천제단이 있는 수두머리와 문수봉 사이에 있는 산봉우리이다. 이 봉우리에서 남으로 뻗은 산줄기가 소백산맥의 시초가 된다. 옛날 신라 때 이곳 산봉우리에서 남으로 뻗은 산등으로 길이 있어 경상도와 강원도를 통하는 요로(要路)였다. 고려 때 그 길은 천평으로 해서 새길령으로 넘어 혈리로 소도로 통하게 새로이 개척하자 이 길은 아주 작은 소롯 길로 변했고 천제를 지내러 오는 경상도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였다. 이 산봉우리는 해발 1,546.5m로 그동안 우리나라 지도에 태백산 높이로 잘못 인식되게 한 봉우리이다. 또한 이 산봉우리는 중국(中國)의 태산(泰山)과 높이가 같은 산으로 그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부쇠봉의 뜻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근처에 차돌이 있어 부싯돌(부쇳돌)로 사용하지 않았나 의심도 되고 그 부쇠를 부소로 보아 단군의 아들 부소왕자를 뜻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영봉이 단군께 제사지내는 장소라면 그 아래에 있는 작은 산봉우리가 그 아들봉일 것이고 전하는 말에 부소(扶蘇)가 구령탑을 쌓았다고 한다.
<문수봉>
- “문수(文殊)”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준말로 여러 부처의 지혜(智慧)를 맡은 보살로 풀이한다. 또한 석가여래를 좌측에서 모시며, 오른쪽에서 모시는 보현보살과 더불어 삼존불(三尊佛)을 이룬다. 오른손에 지검(智劍), 왼손에는 연꽃을 든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나 경궤(經軌)에 따라서는 다른 것을 가졌거나 다른 형상으로써 설명되기도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신라 때 자장율사가 문수봉에서 문수보살상을 조성했다는 이야기는 근거가 없는 이야기로 아무런 곳에도 문헌으로 나와 있지 않다. 다만 정선군 고한읍의 정암사에서 자장이 입적한 사실이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는데 아마도 그 사실을 이곳에다가 확대 견강부회한 것이 아닌가 한다.
- 문수봉 정상에 오르니 2주전 다녀온 속리산 문수봉이 언 듯 떠올랐다. 이곳 문수봉은 태백산에서 조망이 제일 좋은 곳이다. 우리 일행이 경유해 온 장군단, 천왕단, 망경사 일원은 시원하게 건너다 보였고 함백산 정상 정점만이 문무사이로 얼굴을 빠끔히 내놓고 애간장을 녹였다. 문수봉 정상 너덜지역에는 정상 표주 뒤 돌탑을 비롯하여 총 다섯 기의 돌탑을 옹기종기 정교하게 쌓아 놓았다. 여기서 정상주를 나누면서 문수봉 오기를 참 잘했지요? 라는 물음에 네!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지금까지 유일사로, 망경사로, 부쇠봉으로 동분서주 뛰어 다닌 피로가 싹 가시면서 쾌감이 배가됨을 느꼈다.
- 문수봉은 태백산 동쪽 봉우리로 해발 1,517m이다. 13:00이 임박하면서 문수봉 정상에 올랐다. 유일사매표소에서 들머리에든지 4시간이 채 안된 시간대였고 하산예정시간 2시간을 남긴 상황이었다. 여기서 4,3km만 내려가면 당골 제2주차장이기 때문에 상당히 여유가 있었다. 문수봉은 산봉우리가 바위 너덜로 조성되어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옛날 이 산봉우리의 바위로 문수불상을 다듬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수봉 위에는 돌이 많다. 그 돌무더기를 멀리서 보면 마치 눈이 쌓여 있는 듯하다하여 태백산의 이름이 이곳에서 나왔다는 이야기가 척주지에 다음 내용과 같이 게재되어 있다.「태백산 가운데 가장 높고 큰 것이 문수산이다. 꼭대기에 크고 작은 돌무더기가 있어 바라다보면 흰 눈이 쌓여 있는 듯 하여 문수사력산이라 한다. 산꼭대기에 부처의 유적(문수상을 이곳에서 조성)이 있고 태백산의 실지 이름이 이곳에서 나왔다고 한다.」
- 옛날부터 태백산에는 절이 없었다. 그것은 민간신앙의 본거지였고 정상에 천제단이 있기에 외래종교를 거부한 민족적 자존심의 현장이었다. 태백산에 문수상을 안치한 작은 암자가 생기게 된 것은, 병자호란으로 민심이 극도로 흉흉해서, 민폐가 심한 천제를 지내지 못하게 하고, 청의 간섭으로 우리의 주체사상이 잠시 좌절된 틈을 타고 요승 충학이란 사람이 천왕당을 불 지르고 그 아래에 작은 절을 세우고 봉화 땅 물야의 문수산에 있던 공벽암의 문수상을 옮겨와 안치한바 있었으나 그 후 폐허가 되고 말았다.
- 문수상은 6.25사변 전까지 만경사터에 있었으나 공비토벌을 위해 작전상 주둔했던 군인들에 의해 불태워지고 문수상은 발파되어 버렸다. 부서진 문수상의 돌조각은 용정우물 윗쪽 산등에 쌓여져 있는데 태백산에서는 볼 수 없는 돌비늘이 석인 화강암 조각들이다. 이것으로 봐도 문수상은 문수봉 꼭대기에서 조성한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옮겨온 것임을 입증한다 하겠다. 30여 년 전 정가터 아래에 대왕암이란 절이 있을 때 문수봉의 돌로 불상을 조성하려다 좌대만 다듬다가 만 것이 문수봉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소문수봉>
- 소문수봉은 문수봉에서 0,8km지점에 위치해 있다. 소문수봉직전 금천갈림길2지점에서 0,5km 지점에 위치해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부담 없이 경유할 수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소문수봉 1,465m를 알리는 표주와 당골광장 3,5km, 천제단 3,8km, 문수봉 0,8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제당골 이정표>
- 제당골 입구 다리 왼쪽으로 문수봉 3,6km, 당골 0,7km를 알리는 이정표가 있다. 다리에서 잠시 내려오면서 무속인들의 기도처가 있다. 오늘은 무속인 두 분께서 두 손을 합장한 채 소망을 염원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제단에 진설된 과일과 막걸 리가 눈에 들어왔지만 과일보다는 막걸리가 더 간절하였다. 갈증이 나면서 목이 컬컬하였기 때문이다. 제당골이란 이름의 유래는 찾을 수 없었지만 아마도 국사당이나 당집은 없을망정 도무속인들 의 기도처가 무수히 많았던 곳이기 때문에 제당골이란 이름이 붙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 당골(堂谷)은 태백산 정상에서 소도동쪽으로 뻗어 내린 계곡으로 태백산 중턱 용정에서 발원한 물과 여러 골짜기에서 발원한 물이 합쳐져 개울을 이루며 흐르는데 약 3㎞로 경사가 완만하고 계곡에 반석이 많아 놀기 좋으며 계곡의 물은 차디차서 한 여름에도 손발을 1분도 담가두지 못한다. 계곡을 따라 많은 당집(신을 모셔 놓고 받들어 위하는 집)이 있어 당골마을(계곡)이라 하며 계곡 내에는 신선암, 병풍암등의 명소와 높이 50여 미터의 기암절벽이 솟아있는데 그 모양이 흡사 장군이 칼을 차고 서 있는 것 같은 형상이라 장군바위라 하며 태백산 도립공원 내에 있는 계곡으로 공원 입장 시 입장료가 징수되며 공원 내에는 동양최대의 석탄박물관과 눈썰매장, 중요 민속자료 등의 여러 관광자원이 있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 태백산 정상에서 소도동쪽으로 뻗어내려 태백산 중턱 용정에서 발원한 물과 태백산 골짜기들에서 발원한 물이 합쳐져 이루어지며 약 3km로 경사가 완만하고 계곡에 반석이 많으며, 물이 차가워 한여름에도 손발을 1분도 담가두지 못한다. 계곡을 따라 오르면 태백산 정상에 이르게 되며, 태백산으로 오르는 길 중 하나이다. 계곡의 주위 숲과 절벽 및 기암괴석은 절경을 이루며 가뭄에도 계곡의 물이 크게 줄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당골계곡을 따라 주변에 작은 부락이 있었으며 당집이 많아 무속의 근거지가 되어 당골마을 이라 일컫는다.
대왕암, 백남사, 천지암, 용화사등의 암자와 당집이 많았으나, 모두 철거 되었고 지금은 빈터만 남아 있다. 당골은 육산(肉山)인 태백산에서 드물게 볼 수 있는 기암 절경으로 신선암, 병풍암, 장군바위 등의 명소가 있다. 지금은 태백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당골계곡을 본거지로 개발되어 관리사무소 및 관광객 편의 부대시설등 기반시설이 완료되어 있어 연중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으며, 태백석탄박물관, 단군성전, 눈썰매장, 콘도형 태백산민박촌을 비롯하여 야영장등이 잘 갖추어져 있다.
<국조성전>
- 동행하던 일행 분들을 눈 축제장으로 먼저 내려 보내고 국조성전으로 발길을 돌렸다. 단군의 영정이 봉안된 성전 전경 한 컷을 담기 위해서이다. 국조성전은 우리 겨례의 시조(始祖)인 단군(檀君) 할아버지를 모신 성역(聖域)으로서 그 이름을 단군성전(檀君聖殿)이라 한다. 단기 4308년(서기1975년) 국조단군봉사회(國祖檀君奉祀會)가 구성되어 단기 4315년(서기1982년) 이 지역의 뜻있는 분들이 성금으로 성전(聖殿)을 창건하였다. 단기4326년(서기1993년) 태백산도립공원 개발계획에 의거 성전(聖殿)을 개축하여 국조단군봉사회(國祖檀君奉祀會)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매년 10월3일 개천절(開天節)에 단군제례(檀君祭禮)를 지내고 있다. 성전(聖殿)의 규모는 전체 대지면적 2,370㎡에 성전(聖殿)이 62.4㎡ 기타 부대시설로 이루어져 있으며, 성전(聖殿) 안에는 단군(檀君) 할아버지의 영령(英靈)과 영정(影幀)을 봉안(奉安)하여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기리고 있다.
- 단군(檀君 또는 壇君) 또는 단군왕검(檀君王儉)은 한민족의 시조이자 고조선의 건국자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역사서에 등장하는 인물로,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그를 한민족의 조상으로 인정하고 있다. 한민족의 역사에서 시조로 추앙받았으며 대종교 등의 종교에서는 신앙의 대상이기도 하다. 환검(桓儉)이라고도 한다. 단군은 직책으로 보이며 왕검, 왕험(王儉)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국의 역사서 중에 하나인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 동국통감 외기 등에 나오는 한민족의 으뜸가는 조상의 이름이다. 단군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 동국통감 외기 등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기원전 2333년에 아사달(阿斯達) 또는 평양에 도읍을 두고 고조선을 건국하여 1000여 년 동안 다스렸다고 전해지며 단군의 뒤를 이어 기자가 조선을 다스렸다고 한다. 단군은 고조선의 왕위에서 물러난 이후 아사달의 산신이 되었다고 한다. 1000여 년 동안 고조선을 다스렸다고 하는 기록은 현실성이 없기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이미 단군은 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고조선의 누대에 걸친 국왕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 단군에 대한 기록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삼국유사이다. 삼국유사에는 중국의 역사서 위서(魏書)와 현전하지 않는 한국의 역사서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단군에 대한 단편적인 사실을 전하고 있다. 위서에는 단군이 아사달에 도읍을 두고 조선(朝鮮)을 건국했다는 내용만 기록되어 있으며, 고기에는 단군의 출생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간략한 생애가 나타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단군은 하늘에서 내려온 환웅과 곰이 사람으로 변한 웅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단군은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을 건국하였으며 후에 다시 아사달로 수도를 옮겨 1500년 동안 나라를 다스렸다. 기묘년(기원전 1122년)에 기자가 조선에 오자 장당경(藏唐京)으로 옮겼다가 다시 돌아와 아사달의 산신이 되었으며 그때 나이가 1908세였다고 한다. 삼국유사의 단군은 ‘제단 단(壇)’으로 표기되어 있다.<자료출처 : 위키백과>
<눈 조각 전시장>
- 제20회 태백산 눈 꽃 축제가 1. 25부터 2. 3까지 10일간 태백산도립공원을 비롯하여 오토리조트와 황지연못 일원에서 열리고 있어 불거리가 풍성하였다. 지난해에는 개장 전날 다녀왔기 때문에 입장을 할 수 없어 그냥 지나치면서 눈 팅을 했었는데 오늘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무르익어 고무적이었다. 오늘 당골광장 제2주차장까지 하산 예정시간이 15:00이기 때문에 아직도 상당시간 여유가 있었다. 후미 중 후미 신세임에도 불구하고 상당시간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호젓하게 행사장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 있었다.
- 14:30이 넘어가면 제2주차장에 홈인하였다. 하산예정시간보다 무려 30여분 단축한 셈이다. 단축이라기보다는 운영시간을 다섯 시간에서 여섯 시간으로 여유 있게 잡은 결과일 뿐이다. 오늘 참석하신 분들 상당수가 등산보다는 눈 꽃 축제장에 더 관심을 보였기 때문에 하산예정시간을 잡으면서 이 점을 감안했었는데 모두가 만족한 표정을 읽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주차장은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만 차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 희 성 기사님의 기지와 배려 덕분에 행사 전용차량만 출입이 가능한 제2주차장을 확보하는 개가를 올렸다. 그 바람에 당골 입구 대형주차장까지 이동시간 20여분 상장을 번 셈이다.
<석탄박물관>
- 석탄박물관은 일부 몇몇 분들께서 입장하여 관람하였다. 석탄박물관은 태백시 문곡소도동 166번지에 위치하며 1997. 5. 27일 개관하였다. 우리나라의 주요 에너지 자원이었던 석탄의 모든 것을 한곳에 모아 일목요연하게 전시하는 곳이다. 석탄의 탄생과 석탄산업의 발전, 태백의 희귀광석 그리고 고생대에서 현재까지의 역사변천사를 관람객의 입장을 고려하여 자동모니터를 이용, 이해를 빠르게 하고 있다. 7개의 실내 전시실과 지하전시실 1개, 옥외 야외 전시실 각 2개등을 갖춘 석탄박물관으로 규모면에서 세계최대이다. 특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여 빠른 속도로 실제 수직갱 1,000m를 내려가는 효과를 연출하며 갱도 내에서의 붕락사고 위험을 가상 체험할 수 있도록 하여 보는 것 뿐 만 아니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기존 전시관의 전시 방식에서 탈피, 도입부에서부터 동적인 분위기를 유도하고, 주 관람 대상인 청소년 및 저학년 아동들의 심리와 행동특징 등을 고려하여 관람시설을 제작하였다.
- 탄전지대의 본산인 태백이 석탄산업 합리화에 의해 40개가 넘는 탄광 등이 모두 문을 닫고 겨우 한 두 개만 남게 되자 국가기간산업의 원동력이 되었던 석탄의 역할과 그 역사적 사실들을 한 곳에 모아 체계적으로 일목요연하게 전시 연출하여 역사적 교육의 학습장으로 활용하며, 아울러 우리들에게 잊혀져가는 석탄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고 석탄산업의 쇠퇴로 인한 지역 경제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 국내 최대의 석탄 박물관을 건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 도립공원 제2주차장 현장의 사정상 음식물 취급을 금지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여 하산행사는 귀로 버스 내에서 갖기로 하고 서둘러 귀로에 올랐다.
☐ 산행을 마치고
- 태백산은 모두산악회 입문 이후 오늘로서 여섯 번째 정기산행이었다. 매년 이맘때면 어김없이 정기산행으로 다녀오는 태백산이지만 매번 그 느낌은 새로움으로 다가섰다. 그 때마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같은 코스임에도 불구하고 받아드려지는 느낌이 그때마다 다른 것은 왜일까? 아마도 매번 동행하는 분들을 달리하기도 하였고 또한 그날그날의 산행환경이 늘 달랐던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였을 것으로 보지만 정답을 구할 수 없었다. 눈에 그려지는 태백산하는 보지 않아도 늘 눈 덮이고, 바람 불고, 상고대나 눈꽃이 나뭇가지가 휘어질 정도로 주렁주렁 열린 모습이었다. 눈감고 새로운 모습의 태백산하를 연상해 보지만 다른 모습은 그려지지가 않았다. 아예 밑그림을 그릴수가 없었다. 태백산하에 전개된 새로운 모습의 그림을 그릴 수 없는 것은 한겨울 심설산행에 국한된 일정의 반복이었기에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드려야만 했다. 그저 봄, 여름, 가을의 모습은 퇴직 전 출장길에 잠시 다녀온 것이 전부였기에 기억이 가물가물할 따름이었다. 앞으로 기회가 온다면 철쭉꽃 활짝 핀 봄이나 단풍을 겨냥한 가을 산행을 염두에 두고 마지막 남은 금천계곡코스 연계 방안을 모색해 보았다
- 태백산도립공원 내 5개 지정탐방로 중 이제 남은 코스는 금천코스이다. 금천계곡은 태백산 동쪽에 위치한다. 잣나무골 안쪽에 아방골, 뼝깨골로 들어가면 기암괴석과 주위 경관이 원시림으로 우거져 있다. 금천계곡을 계속 올라가면 문수봉으로 이어진다. 청소년 수련장과 야영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계곡의 맑은 물이 일품이다. 이 금천계곡은 태백에서 처음으로 석탄이 발견되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오늘 코스 중 문수봉 직전이나 소문수봉을 지나 금천계곡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이어졌지만 아쉬움을 남긴 채 다음 과제로 남기고 발길을 돌렸다.
- 오늘 태백산행은 본인 개인의 입장에서 평소의 소망을 이룬 하루로 기억될 것으로 본다. 유일사 처녀 탐방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부쇠봉이란 이름만 되새기면서 대리만족해야 했던 해묵은 과제 하나를 풀어버린 하루였기 때문이다. 모두와 함께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이제 길을 확인한 이상 다음 기회에는 반드시 안내할 것을 다짐해 본다. 부쇠봉가림길 아정표 설치 지점에서 백두대간 방향으로 20여분 정도 우회하거나, 부쇠봉갈림길에서 문수봉방향으로 직진하다가 능선안부 갈림길에서 오른쪽 헬기장 방향으로 내려갔다가 되돌아오는 방법을 염두에 두었다.
- 오늘 영상을 웃도는 포근한 봄 날씨 속에 겨울산행일정 두 코스를 병행하여 운영하는 과정에서 통제의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정운영에 적극 협조해 주시고, 안전 산행해 주신 모든 분들과 귤 한 상자를 협찬하여 입맛을 돋워 주신 배원주, 유정희 내외분에게 깊이 감사드리면서 태백산에서의 일상정리를 여기서 마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