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납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미디어뿐만 아니라 우리 성당 찬미받으소서 분과에서도 지구를 플라스틱 쓰레기로부터 구출하자는 캠페인으로 요란하지만, 자고 나면 배달되는 택배에서 나오는 각종 플라스틱은 내 집 울타리 안에서도 속절없이 쌓여만 간다. 그중에서도 가공 식품을 담은 스티로폼 용기는 종이 박스처럼 접을 수도 없기에 그 부피가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다. 지난 몇 달간 집안 여기저기 흩어져 버려진 스티로폼 박스를 재활용에 버리기 위해 한 군데 모아 놓으니 그야말로 산더미 같았다. 차에 옮겨 실으려면 서너 개씩 묶어야겠기에 나일론 끈을 찾으려고 창고로 향했다.
이제부터가 오늘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본론이다.
그런데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끈이 보이지 않는다.한참을 찾다가 포기하고 안사람을 부른다. 부름을 받고 다가온 안사람은 창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손을 뻗어 '이거 찾는 거냐'며 한마디 남기고 총총히 사라져간다. 이렇게 바로 눈앞에 있는 걸 못 찾고 바쁜 사람을 불러대고 난리냐는 뉘앙스를 잔뜩 풍기면서 말이다.
이런 상황은 혼인 이후 몇십 년을 이어온 일상 생활의 루틴 같은 장면이라 별로 특별하지도 않다. 오히려 서로 언성을 높이며 뒤끝작렬 사태로 번지지 않은 게 다행이다 싶었지만, 그래도 이번엔 좀 짚고넘어가야 할 뭔가가 있을 것 같았다.
최근 영국 데일리메일이 민간 보험사를 통해 영국 성인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대부분의 사람이 매일 잃어버린 물건을 찾기 위해 10분 이상을 쓴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이를 사람이 평균 80년을 산다고 가정하고 환산해 보니 200일이 조금 넘는다. 말인즉슨 사람들은 오로지 물건을 찾아 헤매느라 6~7개월의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사람에게 항상 물건을 못 찾는다고 벌써 치매가 온 게 아니냐는 핀잔을 듣는 것이 억울한 나로서는 이런 남녀 일반론적 조사보다는 나를 대변해 줄 좀더 과학적이고 논리적이면서 구체적인 반박 근거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여자는 왜 길치가 많고, 남자는 왜 걸핏하면 물건을 잃어버리는지를 뇌 영상 촬영을 통해 밝혀졌다는 흥미로운 컨텐츠를 발견하고서 반가운 마음에 다소 길더라도 양해를 구하며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요약하면 공간을 지각하는 방식에 남녀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미국 얼바인 캘리포니아대학 프란시스코 아얄라 박사 팀은 남녀 각 10명에게 아름다운 그림이나 사진을 보여주면서 MEG(뇌 자동 영상장치)로 뇌의 미세한 신호를 측정했다.
그랬더니 그림을 볼 때 남녀 모두 공간 인지와 관련이 있는 뇌의 두정엽이 활성화됐다.
단, 남자는 오른쪽 두정엽만, 여자는 좌우 두정엽이 모두 활성화됐다.
남자는 주로 오른쪽 뇌를 이용해 ‘좌표 방식’으로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목적지를 찾아 운전할 때 남자의 뇌는 전체 지도를 그린 뒤 목적지를 공간 속의 한 점으로 인식해 찾아가기 때문에 약간 길이 어긋나도 공간 속의 위치를 기억해
원 위치를 찾아오는 능력이 뛰어날 수 있다.
반면 집 안의 물건을 좌표 방식으로 기억하진 않기 때문에 뻔히 보이는 열쇠를 찾아 온 집안을 헤매기도 하는 것이다.
반면 여자는 좌우 두정엽을 모두 이용해 ‘무엇의 위, 아래, 오른쪽, 왼쪽에 무엇이 있다’는 식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A빌딩의 왼쪽에 B빌딩이 있고…”라고 기억하기 때문에, 운전하다 길을 잘못 들어 A빌딩이 시야에 사라지는 순간 동서남북을 분간하기 어렵다.
반면 집안에선 서로 상관 관계가 없는 물건들이라도 “무엇 옆에 무엇” 식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잘 찾아낸다는 것이다.
남녀 사이의 이런 차이는 진화론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고 한다.
앞에서 얘기한 아얄라 박사는 또한 “원시시대에 사냥을 맡은 남성은 움직이는 사냥감을 추적했기 때문에 좌표로 공간을 인식하는 방식을 발달시켰고, 채집을 맡은 여성은 나무의 상대적 위치를 기억하는 방식을 발달시켰다”면서 “남성은 동쪽을 기준으로 잡아 전체 공간을 파악하고, 여성은 확실한 기준점을 중심으로 사물의 위치를 파악한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앞에서 나는 분명히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끈이 보이지 않는다'고 적었다. 그런데 안사람이 문제의 그 끈을 찾은 곳은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고 지목한 지점에서 불과 30cm 안쪽이었다. 나로서는 억울한 노릇이지만 불과 30cm 거리도 스캔해내지 못하는 나의 부실한 주의력 내지는 관찰력을 탓하며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위에서 인용한 아얄라 박사의 과학적 근거가 나의 이런 억울함을 거의 해소해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한다.
인터넷에 있는 이런 컨텐츠도 눈에 띄었다.
"남자는 원래 창조시부터 안구(눈동자)가 여자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먼 거리를 쳐다 볼 수 있는 터널 시야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멀리 있는 것을 보는데 훨씬 적합하다. 꼭 망원경과 비슷하다. 망원경은 멀리 있는 것은 잘 볼 수 있지만 대신 주변 근처는 보지 못한다.
그러니 직선으로 코 앞에 보이는 것만 잘 볼 수가 있다. 당연히 물건을 찾을 때도 눈이라는 레이더를 통해 한 눈에 파악한 다음 물건을 찾는 것이 아니라 바로 코 앞에 있는 물건만 잘 보기 때문에 결국 눈을 물건에 맞추어야만 한다. 그래서 남자들은 물건을 찾을 때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 하더라도 찾고자 하는 물건과 남자의 눈이 바로 앞에 마주치지 아니하면, 다시 말해서 조금이라도 각도가 빗나가면 그 물건의 존재를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여자들은 태초에 둥지를 지키는 사명을 가지고 창조되었기 때문에 시야가 아주 넓다. 어느 정도 넓은가 하면 코를 중심으로 해서 좌우로 45도, 위아래로 45도 정도는 그냥 한 눈에 다 들어오게 되어 있다."
위 얘기대로라면 내가 왜 안사람으로부터 냉장고에서
반찬 그릇 좀 꺼내오라는 분부를 받으면 냉장고 문을 연 채 한참을 스캔만 하다가 결국 찾는데 실패하는지 그 이유가 충분히 설명되고도 남을 것 같다. 결국 그동안 냉장고 문 오래 열어서 전기 요금만 축냈지 평생 도움이 안 된다는 나에 대한 안사람의 구박이 얼마나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처사였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과학적이고 논리 정연한 설명이 안사람에게 한 번 무너진 신뢰를 완벽하게 회복시켜 주지는 못한다 하더러도 어느 정도만이라도 효과를 보일 수 있다면 오늘 나의 인터넷 서핑은 남는 장사를 한 셈이서 다행이다.
내친김에 우리집 안사람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내들에게 한마디만 더 보태고 싶다. 남편들이 둔 물건이 비록 좀 삐뚜로 놓였거나 어질러진 상태로 놓였더라도 아내의 입장에서 정리정돈을 명분으로 제발 자리를 옮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바이다. 이 방법만이 남자로서 태생적으로 타고난 터널 시야 탓으로 목표물이 단지 몇십 cm만 벗어나도 찾지 못하는 핸디캡을 극복하는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 아닐까 생각해서 감히 말씀 올리니 너그럽게 가납하어 주시기를...^^
2024. 5. 10
뱀발 - 사실 나의 이런 지속적인 호소로 요즘은 불가피하게 내 물건을 옮길 경우 가끔은 내게 옮긴 장소를 알려 주는 안사람의 배려에 감사하는 바이다.^^
https://www.tiktok.com/@seok_27/video/7279642455425813761
첫댓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