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방학이 끝날쯤이었다. 교정에는 새 학기의 들뜬 분위기가 일렁이고 있었다. 본부에 가 등록을 마치고 오랜만에 동아리 방으로 향했다. 느긋하게 그동안 쌓인 회포를 풀 예정이었다.
2 웃고 떠드는 사이 누군가가 들어오며 내 이름을 불렀다.
"어떤 남자가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답니다."
모든 눈이 나에게 쏠렸다. "우우"하는 소리도 들렸다. 한둘은 내 팔을 잡고 가지 말라고 장난을 쳤다.
3 섭섭함과 짜증을 누르며 밖으로 나왔다. 정문 입구에서 만나자고 하는 걸 보니까 우리 학교 학생은 아니다. 그렇다면 내 이름과 전공을 대며 넓은 캠퍼스를 찾아다녔을 것이다. 도무지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4 정문 근처에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얼핏 둘러봐도 아는 얼굴은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웃으며 다가왔다.
"누구신지? 잘 모르겠는데요."
"내 00다. 동창인데 뭔 말을 높이노, 말 놔라"
그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득의만만하게 말했다.
5 그는 생전 처음으로 대구에 왔다고 했다. 나와 편지하던 여자 동창에게 우리 집 주소를 알아내었다. 그 주소로 어렵게 찾아갔는데 이사 갔다는 말을 들었단다. 할 수 없이 동사무소를 찾아가 두꺼운 전출입 대장을 오랜 시간 대조해 이사 간 집 주소를 찾아내었다고 했다. 직원에게 보여주며 어디쯤이냐고 물었더니 통장 집을 가르쳐 주더란다.
6 통장님이 말하길, 그 집은 왜 찾느냐고 하면서 그 집 인적사항을 대보라고 하시더란다. 아는 대로 얘기했더니, 어느 대학 다니는 딸을 찾느냐고 물으셨단다.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심했다고 했다. 우리 엄마가 돌아가시고 이사 갔다는 소식을 들어서 많이 걱정했다고 했다.
7 그날 여동생이 혼자 집에 있었다. 동생은 멀끔하게 생긴 선배가 언니를 찾아와 대책 없이 서 있으니, 등록하러 갔다며 친절하게 학교까지 안내해 주었다.
8 그는 5학년때 내 짝이었다. 자신도 학교에 등록하러 가는 길인데,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지 장황하게 털어놓았다. 하지만 맹숭하게 대하는 내 태도에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황당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9 그림자가 비스듬히 길어진 국민학교 운동장이었다. 놀던 아이들도 대부분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며 예쁜 어린이용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배운 지 얼마 안 됐는데 '씽씽' 달려 나가는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호사스런 기분이 들고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몇 바퀴 달리다 보니, 저쪽에 동생들을 돌보며 놀고 있는 짝꿍이 보였다. 가까이 지날 때 한 번 흘깃 돌아보았다.
10 그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자신을 일별 하던 순간을 오랫동안 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나도 행복했던 그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즐겁고 만족스러워 웃는 얼굴일 때 한 번 흘깃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 일별이 한동안 서로를 힘들게 했다. 모든 것이 서툰 처음이었으니, 만남에 관해서도 모를 수밖에 없었다.
11 일별이든 눈을 빤히 쳐다보든 본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행위이다. 사람들이 만날 때 관심이 있으면 무심코 일별을 자주 하게 된다. 요즘 말로 일종의 '플러팅'인 셈이다. 관심이 생기면 눈이 가고 마음도 흘러갈 수 있다. 반면 "뭘 봐요, 왜 봐."라고
소리치며 시비가 붙을 수도 있다.
12 후에도 그는 느닷없이 불쑥 찾아와서 자신의 얘기를 많이 했다. 내 기분은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만해했다. "니가 본모습과 생각은 니가 만들어낸 '허상'일뿐이다. 나도 나를 많이 위해주는 사람을 좋아하면 얼마나 행복하겠냐, 그렇지 못해서 정말 안타깝다."라고 말했더니 조금 수긍하는 눈치였다.
13 그의 기분이 얼마간이라도 행복했다면 다행한 일이다. 그 일로 느낀 것이 많다. 자신의 감정보다 상대의 마음을 먼저 살피게 되었고, 마음이 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귀중하고 축복 받은 것인지 일찌감치 알게 되었다.
14 내가 살던 곳은, 유교사상이 남아있던 고지식한 고장이었고, 1970년은 그런 시대였다. 대부분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남자아이를 편애했고 여자들을 조금 무시했다. 그렇게 자란 애들이 모여 서로가 "나는 여자애 누구를 좋아하니 만나지 말라"라고 선언했단다. 또 분노한 건 다른 동창들이 다 알도록 소문을 퍼트렸다는 것이었다. 내 경우는 십 년이 지난 뒤에 사실을 알게 되었다.
15 일본의 '와타나베' 수녀는 '미소에는 마술과 같은 힘이 있다. 보는 사람을 뿌듯하게 해 주며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라고 했다. 만약, 그가 시끄럽지 않고 조용하게 나를 대했다면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주 가끔 모교 행사에 가면, 서로 일별 하는 그와 나를, 지켜보는 동창들의 장난기 어린 일별을 느낄 수 있었다.
※일별 : 한 번 흘낏 봄
2026. 4. 2
첫댓글 대학생 시절에 초등학교 5학년때 짝궁인 남자 친구가 찾아왔던 풋풋한 낭만의 추억담 이네요.
일별이 무엇인가 의문이었는데, 한번 흘낏보고 헤어진 얘기이니, 그 一瞥(언뜻 볼ㆍ흘낏 볼 별)이 一別(헤어질 별)이 되어버려서 아쉽습니다.
많이 보수적이 었습니다.
덕분에 한자 낱말 하나 배웠습니다.
한자 공책에 적어 놓습니다(평시에 모르는 한자 나오며는 찾아서 기록함).
"만약, 그가 조용하고 겸손하게 나를 대했다면 우리는 좋은 친구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한 것은 당시에 서로 사귀지 못했던 나의 소극성으로 당시의 아쉬움을 변명하는듯이 보입니다.
지금 회고해보니 ''한번 교제했으면 할 것을 하는 마음은 있었지요?"
잘 읽었습니다.
사귈 기회는 많았어요. 계속 왔었거든요.
인연이 아니었겠지요,ㅎㅎ 고맙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의 남자 이야기를 풀어내셨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일별'이 추억을 부르네요.
감사해요.
학교까지 데리고 왔다고 나한테 화를 냈어요.ㅎ 나는 잘 한다고 했는데ᆢ
너의 고은 마음은 알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두 분이 참 정겹네요.
자매끼리의 우애가 참 부럽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도록 지속되길 바랍니다. 세자매가 수필 작가가 된다고 하니, 참 희유한 일입니다.
조상님의 음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