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無火)기념 Party를 기다리며
저에게 약점이 있다면 제 아내에게 화를 낼 만한 것도 아닌 것에 불끈 화를 내곤 뒤돌아서면 금세 후회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돌이켜 아내에게 사과하지만 이를 즉각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또다시 어찌 그리 속이 좁냐며 속을 뒤집어 놓은 적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런데 8개월 전에 화를 내는 나의 모습이 너무 보기 싫어 결단했습니다. 다시는 화를 내지 않기로 서약하고 몇몇 동료 목사 부부에게 점심을 대접하면서 1년간 화를 내지 않고 지내면 무화(無火)기념 Party를 열겠다고 하였습니다.
저의 성향이 굳어진 이유는 어렸을 때 버림받았다는 상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4살 때에 자녀가 없는 고모 댁에 보내졌습니다. 저의 집은 7남매의 여섯째로 제 밑에 여동생이 있습니다. 고모님은 아이를 못 낳게 되자 고모부가 첩을 얻어 두 집 살림하였습니다. 그러니 여인으로서 얼마나 씁쓸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잖습니까? 그런 누님을 동정하여 아버지가 저를 보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박탈감이 제게는 있었습니다. 강원도 춘천에서 시발택시(어감이 좋지 않습니다만 실제로 있었던 택시입니다.)를 타고 강원도 홍천의 시골 마을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11월 말의 날씨가 을씨년스럽게 추웠을 때였습니다. 저는 차 안에서 자고 있다가 다 왔다고 깨워서 일어나보니 밖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제 마음에는 두려움과 더불어 설움의 눈물이 왈칵 뒤엎어 왔습니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지 말아야 한다는 결심과 더불어 입을 꼭 다물고 참아 내었습니다. 고모의 손을 꼭 잡고 논둑길을 걸어가면서도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습니다. 내가 울면 고모가 나를 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지요. 네 살짜리 꼬마가 버림을 당하지 않으려고 엄마 떨어진 설움을 삼킨 것입니다.
그때의 추억은 제게 마음의 상처를 주었고 제 마음에는 누구에게 버림을 받으면 어떻게 하나라는 묘한 심리가 자리를 잡고 있었지요. 부부 싸움을 하다가도 내뱉는 말이 그러면 집을 나가라고 고함을 지르는 것입니다. 그 말은 버림받지 않으려는 방어적인 기제였습니다.
이런 상처로 인하여 어떤 환경이 주어지면 분노를 나타내는 것은 분명 죄었습니다. 저는 저의 혈기에 대하여 죄라고 단정하고 십자가 앞에 나가 회개하였습니다. 회개를 통하여 안에서 화의 뿌리가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면서 8개월간 아내에게 화를 내지 않고 지내왔습니다. 이제 앞으로 4개월만 지나면 저는 무화기념 파티를 양식집에서 동료 목사 부부들과 함께 치를 예정에 있습니다. 화내지 않고 8개월을 지낸 제가 대견스럽게 여겨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잠 16:3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