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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그 때 그 사람] 부드럽고 사려깊은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연주를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좀 더 좋은 연주를 위해 바꾸고 설득하는 일, 정말 어려운 일이겠죠? 대표적으로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지휘자입니다. 재미있게도 연주할 때 가장 많이 움직이고 가운데에서 제일 주목받는 위치이지만 무대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 유일한 음악가가 지휘자죠.
지휘자의 하는 일은 자신이 연주를 잘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지시를 받는 이들의 연주가 조금이라도 더 좋아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위치입니다. 음악가들을 설득하고, 연주를 듣는 청중들의 마음도 움직여야 하는 의무가 있는 자리죠.
어려운 지휘자의 자리이지만 음악 외적으로도 존경받고 오랫동안 사랑받았던 인물을 생각해보면 그렇게 많은 인물들이 생각나지 않는데요, 오늘의 주인공은 이른바 훌륭한 인품과 매너로 사랑받았던 지휘자를 얘기할 때 맨 처음 거론되는 인물이죠.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입니다.
이탈리아 출신의 줄리니는 폭넓은 레퍼토리와 완성도 높은 연주로 알려졌지만, 그만큼 따뜻한 분위기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던 인물로도 유명하죠. 만년에 이르기까지 건강하게 활동했지만, 병으로 쓰러진 부인을 돌보기 위해 은퇴를 선언했던 순애보의 주인공이기도 했습니다.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는 1914년 이탈리아 바를레타에서 태어나 볼차노에서 자랐습니다.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작곡과 비올라를 배웠으며 재학 중에 로마의 아우구스토 관현악단의 첼리스트로 있으면서 지휘자 브루노 발터, 오토 클렘페러 등과 만나서 교류를 했죠.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을 졸업하고 나서는 베르나르디오 몰리나리에게 배웠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군대를 가게 됩니다. 전후에는 아드리아노 극장에서 아우구스토 관현악단을 지휘해 성공을 거두었고 1946년 로마 RAI 교향악단의 음악감독 및 수석 지휘자가 되었습니다.
1949년에 베네치아 음악제, 1952년 피렌체 음악제 등에도 출연했고요, 1950년에는 밀라노 RAI 교향악단을 창설해 수석 지휘자가 되었는데, 하이든의 오페라 《달의 세계》 지휘를 들은 토스카니니가 그의 집을 찾아왔다고 하죠.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토스카니니가 죽을 때까지 계속되었다고 하니까 대단합니다.
이후 줄리니는 빅토르 데 사바타의 뒤를 이어 1953년 라 스칼라 극장 음악 감독으로 취임했고 특히 1955년 에든버러 음악제에서의 연주는 큰 화제를 모았죠. 1969년 시카고 교향악단 수석 객원 지휘자, 1973년 빈 교향악단 수석 지휘자 등을 지냈고. 1978년에는 주빈 메타의 뒤를 이어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음악 감독에 취임해 슈베르트의 교향곡과 베토벤의 교향곡 등을 연주하고 녹음도 했습니다.
1984년 아내의 간병을 위해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의 감독직을 사임했는데요, 그는 단원들 앞에서 "지금까지 아내가 나를 돌봐주었소. 이제 내가 아내를 돌봐줄 차례입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고 말했죠. 1998년 지휘자 자리에서 은퇴했으며 2005년 이탈리아의 브레시아에서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음반은 매우 오랜 기간동안 만들어졌는데요, 1960년대에는 영국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많은 녹음을 했고, 시카고 심포니와는 말러9번, 드보르작 9번, 슈베르트 9번 등의 녹음이 대표적입니다. 빈 심포니와도 많은 녹음을 했는데,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와 함께 한 베토벤의 협주곡집이 대표적이죠. 그 후 만년에는 빈 필과 함께 브람스와 브루크너 등의 교향곡을 녹음했습니다.
우리나라 청중들에게 줄리니는 지휘자 정명훈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죠. 정명훈은 18세에 런던에서 줄리니가 연주하는 베토벤 교향곡 제7번을 듣고 작품의 핵심을 짚어내는 연주에 깊은 감명을 받았으며 전설적인 피아노 교사였던 영국의 마리아 쿠르치오의 소개로 무대 뒤에서 그를 만났습니다.
이후 줄리어드를 졸업한 정명훈은 오디션을 거쳐 그의 어시스턴트가 되었는데 긴장한 탓인지 1년이 넘도록 단 한 번의 질문도 직접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굉장히 난해한 곡을 받고 고민 끝에 "왜 이 곡은 좋은 소리가 나지 않을까요?" 하고 물었는데, 줄리니는 며칠 후 짧지만, 매우 중요한 답을 해주었다고 하죠.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는 대답이었습니다.
정명훈은 결국 ‘음악가는 결국 스스로 정답을 찾아야 한다’ 는 간단하지만 소중한 가르침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 없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줄리니는 1980년 정명훈을 부지휘자로 발탁했고 이것은 정명훈이 세계 정상급 지휘자로 급부상하는 밑받침이 되어주었습니다. 또한, 정명훈이 복잡한 정치적인 이유로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에서 물러나 그를 찾아왔을 때도 많은 격려를 해 주었다고 하죠.
줄리니는 부드럽고 사려 깊은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졌죠. 80세를 넘긴 피아니스트 호로비츠와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협연할 당시 나이가 든 호로비츠의 연주가 자꾸 느려지자 "너무 위대한 분과 오래간만에 협연을 하니까 우리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긴장을 해서 자꾸 속도가 빨라지네요. 이 오케스트라를 위해서 다시 한 번 녹음을 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하고 그의 기분을 부드럽게 배려한 제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가 교향악단과 헤어질 때 했던 마지막 고별사도 참 인상 깊은데요, “저는 여러분들의 이름이나 얼굴은 잊어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음악을 사랑했던 여러분들의 뜨거운 눈빛만은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라는 말로 이별을 고했다고 하죠. 그의 따뜻한 마음과 음악에 대한 정성이 음반을 통해 생생히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이 기사는 KBS 팟캐스트 '클래식 음악가 이야기 - 김주영의 그 때 그 사람' 5월 22일 방송 '지휘자,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를 기사화한 것입니다]
![]() 스토리텔러 김주영 : 피아니스트이자 음악 칼럼니스트인 김주영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하고 모스크바 국립 음악원 대학원에서 석사 및 연주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모스크바 프로코피에프 예술기념 국제 콩쿠르 1위 없는 2위, 파리 그랜드 국제 피아노 콩쿠르 2위 등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KBS 주최 한국의 음악가 음반을 녹음하였고, KBS 클래식 FM ‘KBS 음악실’에서 '김주영의 그 때 그 사람' 코너와 1라디오 '문화공감' 의 '올 댓 클래식' 코너, 세종문화회관 세종예술 아카데미 ‘정오의 음악회’ 진행자로서 클래식을 알리고 있다. 약 300여 명의 인터뷰를 진행했던 'KBS 음악실' MC로서의 활동과 그 외 여러 방송 경험의 초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며, 음악의 전 분야를 섭렵하려는 의욕이 늘 가득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