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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師母)님 론
신천 함석헌
뛰기는 파발말이 뛰고
요즘 사모님 본래의 뜻이 망각(忘却)되고 상관이나 윗사람의 부인이면 덮어놓고 붙이는 칭호가 되고 말았습니다. 일부 사모님 계급의 아내의 지위를 벗어난 행동이나 남편의 일에 대한 과도한 용훼(容喙), 그리고 이러한 사모님, 그룹의 유영술(游泳術) 여하에 따라 남편의 관직이 좌우되는 등의 우려할만한 상태에 있습니다. 이 기회에 이런 폐풍을 강력히 꾸짖는 글을 써 주십시오.
이런 원고청탁서를 써 가지고 와서 「여원(女苑)」사의 편집자가 나더러 글을 쓰라한다. 생각해 보면 할 말은 이것으로 다 됐는데, 또 무엇을 더 쓰라할까? 또 욕을 하려거든 생각 난 자신이 하지 않고 왜 나더러 하라 할까? 「불속의 밤알을 집어내게 한다」는 옛말같이 어려운 노릇은 나더러 하라 하고 이익은 잡지사가 얻잔 말인가? 그렇지 않으면 모든 것을 전문적으로 갈라 맡아 하는 세상이 되어서 욕도 하는 사람이 도맡아 하란 말인가? 나는 욕만 하는 사람으로 누가 내세웠던가?「뛰기는 파발말이 뛰고 먹기는 흥정군이 먹는다」고 옛 부터 그러는 세상이니 그럴 법도 하지만, 나는 한 줌 되는 겨를 얻어먹고 어떤 놈을 태웠는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그저 채찍에 몰려 뛰는 짐승은 아니오, 손을 데며 집어 낸 밤알을 엉뚱한 놈이 먹고 있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으리 만큼 어리석고 비겁한 물건도 아니다. 욕을 하는 때도 있지만 그것은 민중이 한 입이 되어 그 책망을 같이 하기를 바래서 하는 마지 못해하는 일이지, 결코 나 혼자 도맡아 하잔 것이 아니다.
민중(民衆)이 버린 건 하나님이 버린 것
예수는 십자가에 혼자 죽잔 사람이 아니었다.「나를 따라와!」했다. 따라가야 사형장밖에 될 것 없지만 그래도 저 자신이「죽어야 산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민중을 끌고 가서 한데서 죽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기만 하면 하늘나라가 곧 이루어진다!) 그랬기 때문에 소위 제자(弟子)라던 것이 한 놈도 따라 죽는 놈이 없고, 있다는 건 좌우 한 놈씩 강도 밖에 없었을 때「어찌 나를 버리시나이까?」하고 탄식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민중이 버린 것이 곧 하느님이 버린 것 아닌가? 그러기에 그가 헤롯을 가르쳐「저 여우」라 할 때는 자기만 그러고 민중더러는「임금님」하라 하기 위해서 한말이 아니었다. 역시 민중더러 저것을 「우리의 포도 동산을 해하는」「여우」로 알아라. 『저 여우 간다!』하여 내쫓아라 한 말이었다.
그러므로 나더러 책망을 하라면 우선 책망하라는 그 사람부터 책망하고 싶다. 곧 편집자로 대표되는 지식인 교양인 말이다. 그들은 배워 얻은 학문의 탓으로 세상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빤히 알면서도, 뱃 속에서는 실뱀 같은 밸이 조금 꼼틀꼼틀 하지 않는 것 아니면서도,「이 악하고 음란한 세대」에서의 대접과 윗자리를 빼앗길가 두려워하여 점잖만 빼고 신문 잡지나 읽고 있고, 가다 이따금 단순한 맘이 솔직히 욕하는 것을 보면 민중 앞에서는 『그 말 참 잘했다』하여 그를 추어 죽을 고로 넣고 권력자 앞에서는 홀딱 뒤집혀『그거 불평분자에요』『불온해요』『험구야요』해서 집어먹는다. 비겁! 더럽다! 세상에 보기 싫은 것이 기성종교의 직업종교가 같이, 낡은 제도의 직업 교육자 같이, 썩어진 사상의 직업문인 같이 심한 것은 없다. 세례 요한도 참지 못해「이 독사의 새끼들아!」했고, 그 양같은 예수도,「망하려므나!」했고, 소크라테스도, 키에르케고르도, 쇼도 욕을 했건만 그들은 점잖다. 같지 않은 것들이 사모님 행세하는 것이 보기 싫거든 입을 가진 저들 자신이 목소리를 높여「이 여우같은 년들아!」할 말이지 누구 보고 해 달랄 것이 무엇인가? 여우 보다 더한 놈들!
미운 건 사모(師母)님이 아니라 만들어준 사람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제일에 나는 같지 않은 것들이 사모님 소리 듣는 꼴을 본 일이 없다. 그런 계급이 있는 줄이야 안다면 아는 일이지만 언제 그런「물건」에 접 해본 일이 없다. 장관은 커녕 언제 순사도 찾아간 일이 한 번도 없으니 누구를 보고「사모님」이라는지「사모(蛇母)님」이라든지 들었을 리가 없다. 내가 찾아갔다면 정말 선생님 댁이니 사모님 소리 듣는 이는 참말 사모님이다. 그러니 보기 싫은 꼴 보는 것은 그 꼴 스스로 만든 그 자신들이다. 끼리끼리 다니는 고로 여우같은 것이 사모님 소리 듣는 것을 보지 않나? 그러면 놀랄 것도 분할 것도 없지. 스스로 제가 한소리니 그래도 양심이 채 죽지 않아서 하는 말인가? 그래서 대신 욕해 달란 것인가?
되지 못한 사모님은 저이 스스로가 된 것이 아니다. 만들어 준 것이지. 그러므로 미운 것은 사모님이 아니오『저것이 사모님도 아무 것도 아니지』속으로는 그러면서도 입으로 「사모님」하는 여우 보다 더한 그놈들이다. 그놈이 누군가? 아무리 해도 무식한 대중은 아니겠지! 옷도 변변히 못 입은 백성은 아니겠지! 민중은 예법도 모른다. 그래 서로서로 「그지어머니」「그지아버지」그것을 좀 면해 보잔 간사한 것들의 입에서「사모님」은 나온다. 어제까지 야미 시장에 다니고 밤거리에 서던 것들이 오늘 비단 치마를 입고 사모님이 되는 것은 지식인의 죄다. 양단 치마바람이 교육계를 어지럽힌다고 세상에서 그러지만 사실 미운 것은 그 바람에 끌려 돌아가는 소위 교육자란 물건들이지 그 치마 그것이 아니다. 치마야 본래 치마 밖에 못되는 것을.
사모님이 나오기 전에 벌써 선생이 죽었다
사모님이라 할 때 사실은 결단 난 것은 사모님이 아니고 선생님이다. 본래 사모님이란 것은 그 자체의 자격 때문에 붙은 것이 아니다. 스승님을 아버지로 알기 때문에 그 부인을 사모님이라 불렀을 뿐이다. 그러므로 스승이 스승대로만 있으면「사모님」이 잘못 가 붙을 리가 없다. 사모님은 아무것도 못되는 것을 사모님이라 하는 것은 스승도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스승이라 선생이라 부른데서 나온 따라 생긴 꼴이다. 사모님 계급이 남편의 일에 지나치게 주둥이를 넣느니, 유영술을 하느니 하지만 그 책임도 남편에 있지 그 아내에게 있지 않다. 사내놈이란 것이 벼슬이 하고 싶거든 제가 하지 계집을 내세우는 것은 무엇인가? 아첨을 해도 장관 그 자체나 보고 하지 그 계집, 보고 하는 놈이 사내의 기백이 있나? 또 제가 맘대로 못하고 계집의 귓속말에 좌우 되는 물건들이 장관은 무슨 장관일가? 불쌍한 건 백성입니다. 가엾은 건 민중입니다. 이불 속에서 하는 운동에 나라가 이리 돌고 저리 돌다니! 사모님이 사모(死母)님인가? 본래 우리나라가 계집 때문에 망하는 나라니라!
스승이 뭔가?「진리가 있는데 스승이 있다(道之所存師之所存)1)」이제 스승도 아무것도 아닌 것을 스승이라 선생이라 하는 것은 스승을 내버린 증거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지 않기에 개를 보고 아버지라 하지, 아버지가 아버지대로 있다면 그 칭호가 조금이라도 다른데 쓰일 리가 없다.「사모님」이 나오기 전에 선생이 벌써 죽었다.
선생이 죽은 것은 도리가 죽은 거요, 진리가 죽은 거다. 그러니 나무랠 것은 무심한 계집이 아니라 이 나라의 종교, 교육이다. 무식한 민중 보고 왜 선생 모르느냐 하지 마라, 그럴수록 책임은 먼저 배워서 소위 선생이란 네게 있지 않나?
아 사모(死母)님………
세력이 있는데 아첨해 붙기는 해야겠고, 본래 그 물건이 무엇이 있는 것은 아니고 전에 무슨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만 남의 밑을 잘 핥기 때문에 감투를 쓴 것인데 그렇다고「밑핥기 선수님」하고 불을 수도 없고, 두루 생각해야 다 내다 버려 별로 쓰이지 않는 그 대신 어디다 쓰거나 아무도 탓할 사람도 없는 둥구스럼 해 보이는 것이 저「선생」이기 때문에 가져다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 순경 보고도 선생님, 형사 보고도 선생님, 남의 집 문간지기 보고도 선생님이 되었고, 그 안에 들어가면 사모님이 된 것이다. 선생의 값이 이렇게 됐고 종교 교육의 운명이 이리 되었다. 이렇고도 나라가 망하지 않는 재주가 있을까? 사모님들! 선생님들!「선생님 사모님」의 밑을 핥는 선생님들! 생각해 보십시오! 날치기를 보고 대통령님, 국부님 하면 법률로 곧 다스릴 것이다. 그것은 참 대통령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날치기보다 더한 것들을 보고 선생님 사모님 하는데는 왜 아무도 책망도 않나? 해도 남더러 대신 해 달라나? 선생이 참 살아있고 선생 그리워하는 마음이 참 있으면 그럴 리가 없다. 그러나 반드시 봉건시대가 아니고라도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임금, 스승, 아비가 하나란 말은 옳은 말인데, 스승이 정말 죽었다면 임금이나 아비도 살아 있는 것이 못될 것이다. 교육이 잘못되고 나라나 가정이 잘 될 수 없다. 선생님 칭호가 되는 대로 쓰이는 것은 교육이 잘못된 증거다. 교육이 잘못 된 것은 참 스승 없단 말이오, 참 스승 없는 것은 사람들이 스승 대접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오, 스승 대접 하지 않는 것은 위로 발달하잔 정신없단 말이다. 그럼 죽었단 말이 아닌가? 아, 사모님(死母)! 당신들은 죽은 백성의 무덤 위에서 춤을 추고 굿을 할렵니까? 통곡을 할렵니까?
아니꼽게 보는 눈도 역시 봉건적(封建的)
도대체 선생도 아닌 밑핥기 선수 보고 선생이라기는 왜 하며 또 거기다 익은 밤과 생 고기를 제공하는 것 밖에 되는 것 없는 존재를 보고 사모님이라고는 왜하나?「사모님」이 잘못 쓰인다 걱정은 왜 하나? 그대의 머리가 청동(靑銅)냄새가 나! 이 사람들이 아직도 봉건 시대의 떼를 벗지 못했다. 사람을 그저 부르지 못하고 무슨 관직, 존호(尊呼)를 붙여서야 부른다니, 뭐라 부를까? 아무개하고 이름을 부르면 그만 아닌가? 그런데 썩어진 사상 때문에 아직도 이름을 부르면 실례라 하고 무엇을 붙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때문에 끌려 온 것이 선생이다. 선생은 본래는 벼슬도 지위도 아니다. 맹자의 말대로 그것은 하늘 벼슬(天爵)이다. 덕이 있어서 남의 푯대가 되겠는 고로 누가 준다는 것 없이 저절로 붙은 것, 다시 말하면 하느님이 민중의 입을 통해 주신 것이다. 그래 세속적으로 무슨 지위가 없어도 높이느라고 스승이라 선생이라 했다. 그러나 인제 봉건 시대는 지났고 민중의 시대가 되었는데 누구나 다 대접을 해야겠는데 부를 적당한 칭호가 없으므로 이「선생」이 유행하게 되었다. 옳다면 옳게 된 것이다. 그렇지, 다 선생이오, 다 사모님이 돼야지, 그런데 그것을 쓰는 심리는 결코 민주적인 사상이 아니고 봉건적인 생각에서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듣기가 싫고, 그것이 아니꼽게 보는 눈도 역시 봉건적인 찌꺼기를 깨끗이 씻지 못한 생각이다. 그들이 나무래는 것은 스승의 길(師道)을 위하여서라기보다는 역시 계급적인 의식에서 많이 된다.
그리고 보면 이「사모님」은 사회적 혁명이 되어가는 한중간에 나타나는 꼴의 하나다. 후(后), 비(妃), 빈(嬪) 부인(夫人)이런 따위가 없어지고 모든 아내가 꼭 같은 자격을 가지게 되노라고 이 변동이 생기는 것이다. 이제 가다가는 선생도 사모도 다 없어지고 동지(同志)나 형제가 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다. 이러고 보면 공산주의 사회에서「동무」란 것을 억지로 쓰게 하는 데도 역사적 뜻이 있다. 열층 스무층의 계급을 붙여 부르는 것 보다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강제로 해서는 뜻이 없고, 또 역시 「동무」가지고는 아니 된다. 동지, 뜻을 같이하는 존재지 결코 그저 동물적으로 같은 무리만은 아니다. 그 보다 더 좋은 것은 형제 아닌가? 한 근본에서 나온 인격적인 관계 아닌가?
도리가 아주 죽는 법은 없다
그것은 그렇고, 하여간 사모님 계급의 노름이란 몰락해 가는 특권계급의 마지막 춤이다. 보기는 싫지만 참고 있으면 오래 가지 못할 것이오, 또 그 꼴을 없애려면 그「선생」「사모」보고 욕해도 소용없다. 이것은 우연한 현상이 아니고 우리 역사의 한 필연적인 꼴이다. 벼슬자리가 계집들의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좌우 된다는데 이 정치의 성격이 들어나 있다. 돈과 계집과 술과 칼, 이것들은 언제나 도리가 죽어 버린 밤에 나오는 귀신들이다. 이것들은 언제나 사부 합창을 하는 법이다. 지금 우리 귀에 들리는 것이 무엇인가? 그러나 도리가 결코 아주 죽는 법은 없다. 언제나 이 사부 합창이 돌개바람을 쳐 끝장에 오르면 저녁에 슬픈 만가(輓歌)와 함께 서해바다에 빠졌던 금성이 새 시대의 비너스로 동편 하늘에 오른다. 미처 돌아가는「사모님」의 춤은 오래지 못하다. 윗 대가리는 떨어지고야 만다.
본래 「사모님」이라는 선무당처럼 날뛰는 떼의 나오는 출처가 신부님 목사님과 선생님에 있느니 만큼 그 보기 흉한 꼴이 없어지려면 종교, 교육이 새로 나와야 한다. 종교가, 교육가가 하늘이 주는 천작(天爵)을 이용하여 민중위에 특권을 부리는 한은「선생님」「사모님」은 역시 여우 무리 돼지 무리에 도둑을 아니 맞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대신 종교 교육의 다스리는 나라는 계급도 특권도 없는 자유 평등의 정신의 나라인 것이, 따라서 정치 같은 것으로는 견줄 수도 없는 나라인 것이 목사 교사의 인격의 빛에 의하여 방사되어 나온다면, 그리하여 정치적으로 얽혀지는 단순한 편의(便宜)에 지나지 않는 것임이 알려진다면, 비늘도 없는 미꾸라지 같은 것들이 사모님의 탈을 쓰고 이 사회에 흐린 물을 일으키며 꼬리를 치고 다니는 일은 없을 것이다.
1) 한유(韓愈 :768-824)의 사설(師說)
여원 1959년 6월
저작집30; 7-307
전집20; 5-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