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진주대첩 충절의 논개
신무영공(身無靈空)이니
몸은 본래 없고
영은 깊고 시공초월하여
볼수도 없고
생각할수도 없고 개념으로 알수도 없다
오직 하나되는 믿음으로
감동할 뿐
며칠전 지인으로부터 문자편지를 받았다
충절의 논개
조선시대 1574년 전라북도 장수 선비였던
부친 주달문' 과 모친 '허씨'사이에 둘째로 태어난
주논개
부친이 일찍 세상을 뜨자 숙부의 집에 어머니와 함께 지냈는데
용모가 출중하고 재주와 지혜가 뛰어났다
장수 고을의 부호가
민며느리로 삼고자 그 댓가로 그녀의 숙부에게 쌀 50석 을 지불하였지만
논개 모녀는 거부하고 모친의 고향인 경상도 땅으로 도주해 지내다
그부호에게 발각되어 장수현감에게 넘겨져 재판을 받았다
당시 현감은 충의공 최경회인데
논개 모녀의 억울하고 딱한 처지를 알고 무죄석방 하였다
오갈 데 없는 그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겨 자신의 관저에서 기거하도록 하였다
얼마후 부인과 사별한 최경회는
자신의 호감을 논개에게 알렸고
논개의 승낙을 받아 곧바로 자신의 후부인 (후처)으로 맞아들였다
그후 임진왜란이 일어나
최경회는 전라도 의병장이 되어 의병을 모집했고
공로를 인정받아 경상도 병마절도사(종 2품)가 되어 왜구와 싸우다 순국했다
남편을 잃고 비통해 하던 논개는 애국과 남편의 복수를 동시에 실현하고자
왜장을 죽일 것을 결심하고
기생으로 분장하여
왜군 장수들이 승전에 들떠 술에 취해 있을 때
가파른 바위끝에서 유혹하였다
적장의 우두머리는 자신의 용기를 과시하듯 논개에게 접근해 왔고
논개는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낀채
적장을 끌어안고 진주 남강에 뛰어들어
꽃다운 나이를 조국에 바쳤다.
그녀의 충절을 기린 변영노 시인의 멋진 시가 있다
"(1절)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 붙은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논개●
https://youtu.be/1woECqpjHNo
첫댓글 2차 진주대첩
가장 많은 왜구 3만명이 죽은 전투
남원 황진장군
최경회 장군
김천일
고종후
대부분 호남 장군 및 의병장
도원수 권율은 도피했고
의령 곽재우는 참전을 피한 전투입니다 .
슬프다 호남 의병과 장군들은 영남을 지키고자 목숨을 바쳤거늘 역사는 호영남의 반목이 여전합니다. 원장님의 글 속에서 역사적 사건을 되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