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가는 인생 설계사
2023년 한 해가 역사의 긴 여행길을 떠나고 약속처럼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신년벽두(新年劈頭)에 한 지인이 새해 덕담 한 마디를 건네주었다. 그는 우리의 근원적인 삶의 자세를 생각하는 질문을 던지면서 한해 삶의 좌표를 찍자고 했다. 어차피 왔다가 가야 할 인생인데 어떻게 갈 것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 보면서 새해 설계도를 제시한 것이다. 즉 ‘왔다가 갈 것인가? 살다가 갈 것인가?’ 전자의 인생은 모태에서 태어나 부모와 사회 공동체의 도움을 받으면서 본능적 욕망과 소유를 향해 밤낮 일하다가 죽는 사람이다. 후자의 인생은 자신이 누구인가 혹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면서 자기 계발과 사회변혁을 위한 주제와 프로그램을 만들고 거기에 최선을 다하며 살다가 죽는 사람이다.
정신분석학자 에리히 프롬(Erich Seligmann Fromm)은 자신의 책《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적 양식과 존재적 양식의 삶을 사는 두 종류의 사람을 언급했다. 프롬은 인간이 사는 세상은 전적으로 소유지향과 이윤 추구로 처방된 사회이기 때문에 존재적 실존양식의 실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유를 겨냥하는 실존을 유일한 생존방식으로 여긴다. 물질적인 소유와 성취에 주력한다. 그러나 게 중에는 존재적 양식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개인의 내적 성장과 함께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존재를 중요시한다. 누구든지 두 양식의 굴레 안에서 어떤 사람은 이렇게 혹은 저렇게 살다가 결국은 죽음이란 종착역에 이르는 것이 인생이다. 왔다가 가는 사람은 개미처럼 일만 하며 소유에 초점을 맞추어 사는 사람이라면 살다가 가는 사람은 꽃을 생성시키는 나비 혹은 벌처럼 사는 존재의 가치를 알고 사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왔다고 하지만 어떻게 해서 살다가 가는 인생이 될 수 있을까? 한 해 처음에 서서 이 질문에 성실하게 대답하면서 새해 대문을 여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 분명하다. 이는 왔다가 가는 인생의 출처를 깨달을 때 가능하다. ‘갔다’는 말은 죽음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죽었다, 사망했다, 졸했다 등의 표현도 있지만 ‘돌아갔다’는 말은 친근하고도 완곡한 표현이다. 충청도 사람은 간결하게 ‘갔슈’라고 한다는데 이 말은 ‘왔음’을 전제한다. 이미 이 땅에 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디로 가는가’는 첨예한 관심사항일진대 아쉽게도 정작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문제가 걱정된 적이 있었다. 그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곳을 ‘아버지의 집’(요 14:2)이라고 알려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셨고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부르라고 가르치셨다(마 6:9). 우리의 귀소(歸巢)가 아버지의 집이며 그 길이 곧 예수님 자신임을 밝히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돌아갈 자가 없느니라”(요 14:6). 어디서 왔고 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를 몰라서 걱정하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생명이 무엇일까?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복잡한 주제이지만 단어 그대로 해석한다면 창조주가 살라고(生) 명령하신 것(命)이 생명(生命)이다. 이 땅의 모든 생명은 바로 그분의 명령을 받고 이곳에 온 존재들이다. 하나님의 명령이 있어서 왔으니 또 그분의 명령이 있을 때 가는 것이 생명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참새 한 마리조차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락하셔야 땅에 떨어진다고 말씀하셨다(마 10:29). 하물며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신”(시편 8:5) 인간들을 말해 뭐 하랴? 진정 삶이란 창조주의 명령에 따라서 이 땅에 오게 됨으로써 시작되고 돌아감으로써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창조하신 이 땅의 모든 피조물 가운데 단연코 인간은 창조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이 세상을 잘 다스리는 일(창 1:28)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사 43:21)이다. 바꿔 말하면 이는 인간이 이 땅에 와서 살아야 할 이유이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그분의 뜻대로 순종하며 잘 살았다. 그런 인간이 그만 마귀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불순종의 삶을 살게 된 것은 두고두고 아쉬운 역사다. 그 후 인간은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풍랑을 만나 표류하는 일엽편주(一葉片舟)처럼 이 땅에 왔지만 목적을 상실한 채 방황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야말로 왔다가 가는 인생이 된 것이다. 천하 미물은 창조주가 정해준 본능에 충실하게 자기 역할을 하다가 가는데 그런 인간은 무위도식(無爲徒食), 허장성세(虛張聲勢), 자화자찬(自畵自讚) 하다가 그냥 가는 인생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께로 이어지는 폐문을 여신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창조주의 섭리를 깨닫게 될 때 비로소 ‘살다가 가는’ 인생이 된다. 주 안에서 거듭 난 사람처럼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고 또한 그 나라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이 된다(요 3:3, 5). 이제 2024년 새해를 맞이하여 그리스도인은 개, 돼지처럼 ‘왔다가 가는’ 사람이 아니라 ‘살다가 가는’ 존귀한 삶을 살아야 한다. 무의미한 인생의 겉옷을 벗어버리고 참된 인생의 행보를 보이도록 한 해 인생 설계도를 잘 그리는 설계사가 되어야 한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립보서 3:14).
첫댓글 우리의설계사이신하나님아버지께묻고묻는삶이성공한삶이아닐까요.?목사님감사합니다.
주님을 향한 푯대와 방향이 변함이 없는 믿음으로 남은 여생되기를 기도합니다 🙏
Forev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