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새내기 / 복향옥
딸이 초등학교 6학년이던 해였다. 예술고를 생각하고 있다는 말에 고민할 것도 없이 흔쾌히 맞장구를 쳐 주었다. 어릴 때부터 노래나 악기 다루는 일에 소질 있다는 말을 종종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딸에게 바람을 넣었다. 너한텐 예술고가 딱이야, 너 같은 아이가 음악을 해야 해, 하면서 그동안 지내 온 시간을 나열했다. 교회에서 찬양이랑 워십(몸찬양)을 하고 피아노랑 플루트를 연주하고 시립합창단에서 활동하는 등의 일이 마치 미리 짜여져 있었던 것처럼 호들갑 떨었다. 그때 당시, 전남 동부권 어디에 예술고등학교가 생긴다는 말이 돌고 있었는데 그 역시 너를 위한 일인가 보다, 하면서 소설을 써 댔다. 하지만 ‘정신이 없다’는 말을 절절하게 체득하며 가게를 운영하던 내게는 아이한테 기울일 시간이 별로 없었다. 어영부영하는 사이, 딸은 중학교 3학년이 돼 있었고 그제야 아이의 희망 사항이 생각났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예고 입시반을 운영하는 음악 학원장에게 물으니 이미 늦었단다. 플루트도 피아노나 바이올린처럼 아주 어려서부터 한 애들이나 가능하다고, 아니면 아무리 늦어도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매일매일 죽어라 연습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옆에 서 있던 딸 눈에는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그 일이 있고난 며칠 후, 원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예전에 플루트 연주하는 걸 잠깐 본 적이 있는데 부는 힘이 있는 것 같다며, 다른 관악기를 추천했다. 트롬본이었다. 초견(처음 보는 악보를 바로 읽어 내는) 능력도 칭찬했다. 또 좋은 강사를 소개해 줘서 곧, 순천청소년시향 단원도 되고 예고 합격도 이뤄냈다. 그렇게 본인이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또 그 길을 가게 될 줄 알았다. 고3 생활이 막 시작되던 3월이었다. 잘 피해 간다고 생각했던 코로나에 붙잡히고 말았다. 일주일간의 격리 말고도 목을 보호해야 한다는 강사의 말에 따라 한 달을 더 쉬게 됐다. 한 달 만에 연습을 시작한 딸은 많이 힘들어했다. 친구들은 피나는 연습하는 동안 오히려 자신은 퇴보했다는 중압감이 더 부담을 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무조건 위로만 했다. 여름이 시작될 무렵, 목감기인 것 같다고 했다. 머리도 아프고 온몸이 무겁다는 말도 종종 했다. 나는 나름 고3병이려니 생각하면서 격려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등굣길에 자기 숨소리가 들린다는 말에 아차 싶었다. 아이의 가슴에 귀를 대니 쌕쌕 소리가 들렸다. 학교가 아닌 병원으로 차를 돌렸다. 예상대로 의사는 천식으로 진단을 내렸다. 그는 잔뜩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동안 힘들었겠다. 머리 안 아팠어?” 했다. 순간 내 머리가 지끈했다. 그동안 꾀병이라고 판단하거나 다른 애들도 다 겪는, 반드시 치러내야 하는 과정이라고 여겼던 게 너무 미안했다. 의사는 또 목 관리 잘할 걸 당부했다. 트롬본을 연주한다는 말에 그가 펄쩍 뛰었다. 성대가 상할 수 있으니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얘 지금, 고3인데요.”했다가 더 혼났다. 연주하다 기침이라도 하면 어쩔 거냐고 했다. 더구나 ‘협연해야 하는 악기’라는 의사의 말에 어깨를 짓누르던 어떤 힘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음악 한다고 제대로 공부한 적도, 다른 걸 생각해 본 적도 없으니 본인은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런데도 나는 가끔 빨리 진로를 정해서 준비해야 한다며 채근하곤 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아들이 한소리 했다. 남들은 십 년 이상, 또는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준비해온 입시를 어떻게 몇 달 만에 해낼 수 있겠느냐며 내버려 두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막바지에 선택한 길이 ‘문예창작’이었다.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특별히 문예 창작에 소질 있어서라기보다 평생 할 수 있는 일이고 더욱이 내가 아는 분야라는 게 반가웠는지도 모른다. 또 지금은 빛이 안 보여도 꾸준히 하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고, 또 그게 아니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해도 절대 손해날 일 없다는 확신에 박수를 보냈다.
개강 후 오리엔테이션 하던 며칠은 가볍게 다니는 듯하더니 하루는 잔뜩 풀이 죽어 귀가했다. 다른 친구들처럼 자기는 글짓기 대회에 입상할 만큼 쓰기 실력도 없고 책도 많이 읽지 못해서 잘 해낼 수 있을까 겁이 난단다. 말로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여. 음악 하느라 시간이 없었으니 책 못 읽은 건 내 잘못이 아니다, 그러니 모르는 게 많은 건 당연하다, 그렇게 생각해. 넌 대신 음악을 좀 알잖아. 그 경험이 나중엔 글 쓰는 데 좋은 재료가 될 거야. 그래도 도서부 동아리에 있었던 게 어디야?” 하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내 마음도 묵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내 마음 한쪽에서도 그런 생각이, 가끔 들락거렸기 때문이다. 다행히 몇 마디 듣고 돌아서면 얼마 안 있다가 기분을 바꾸는 아이여서 걱정하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후에 봤을 때는 해맑아져 있었다.
딸은 진짜 새내기다. 모르는 게 많다. 공부를 안 해서 그렇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처럼 체험학습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런 것들이 딸아이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는 없지만, 모르는 것들은 그것들대로 또 다른 경험이 될 테니 염려 말라고 말해 줘야겠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별로 없는 게 인생이라고 고리타분하게 말해도 빙그레 웃으며 들어주니 참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