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만식 작가의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이라는 작품의 제목은 학교를 졸업해 사회에는 나왔지만 취직이 되지 않는 불안정한 인생을 완성됐지만 팔리지 않는 기성품에 빗댄 표현입니다. 소설 속에서 실업자 인텔리인 P는 고민 끝에 아들 창선을 학교가 아닌 인쇄소로 보내게 됩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근거로 ‘창선이를 취직시킨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는가’에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먼저, P는 창선을 학교에 보낼 경제적 여건이 안됩니다.
주인공P는 비싼 담배를 사거나 책과 양복을 저당 잡아 얻은 돈으로 술과 유흥에 탕진합니다. 이런 행동에서 가난의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에 있었습니다. 작품의 배경인 1930년대의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였습니다. 그 무렵 젊은이들은 일제의 무단통치와 경제공황으로 인해 만혼 풍조와 결혼 기피가 사회현상으로 떠오를 만큼 실업과 빈곤이 심각했습니다. P의 형마저도 학비를 대지 못해 창선이 학교를 나오게 되었는데 월세와 끼니를 감당 할 능력도 없는 P에게는 학교가 아닌 인쇄소로 창선을 보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인쇄소에서 기술을 배우는 것은 좋은 기회입니다.
소설 제목의 배경에서 알 수 있듯이 민족계몽운동을 바탕으로 한 뜨거운 교육열에 대학까지 졸업한 지식인들은 이미 사회에 넘쳐났습니다. 실업자 인텔리의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P는 아들이 학교에서 의미 없는 교육을 받기보다 자신과 같은 레디메이드 인생으로 살지 않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고등교육까지 받았음에도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지 못하고 제 뜻을 펴지 못한다면 기술을 배워 경제적인 여유를 갖추는 편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어린나이부터 견습공으로 시작해 기술을 배운다면 분명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고 그 분야에서 명예와 자부심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P가 아들 창선을 미래가 불투명한 학교로 보내지 않고 견습공이 되게 한 것은 경제적, 직업적인 측면에서 창선을 위한 선택입니다.
마지막으로, 일제강점기 시대의 교육은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일제의 통치 하에 학교에서는 일본이 우리 민족을 억압하기 위해 고안된 교육 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초대 조선총독부총독 데라우치가 1911년 8월에 공포한 조선교육령에 따르면 조선교육령의 목표는 일본에 대하여 충량한 국민을 양성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학비를 감당하기 어려운 형편에 현대의 교육보다 뒤떨어지고 비윤리적인 일제의 교육을 굳이 받으려 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가 학교에 다니며 공부하고 또래들과 어울려 사회생활을 배우는 것은 바람직하고 장려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시대는 일제강점기이고 고등교육까지 배워도 뜻을 펴지 못하는 사회였습니다. P와 창선은 현재의 학생들과는 다른 시대상황과 악조건에 놓여있었고 무엇보다도 학교를 다닌다고 해도 희망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러한 이유로 창선이를 취직시킨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