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하는 교회 / 레 11:45
지난 9일 밤 설교부탁이 있었다. 이 모임의 명칭이 자유와 하나를 위한 성서읽기회라 하면서 이 명칭에 맞게 설교를 부탁했다. 요즘 컴퓨터 시대라 그런지 목회하는데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곳이 점점 많이져가고 있다. 또한 목회 연구자료실이라는 단체가 설립되어 원하는 성구와 그 취지 등을 컴퓨터에 입력시키면 그 취지에 맞게 설교 4편이 다양하게 제작되어 나온다. 그중 하나를 골라서 설교를 하면 여기 모인 여러분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할 것인데, 저는 컴퓨터를 구입할 여력이 되지 않아 그렇게 하지 못해 죄송하다.
저는 이 모임의 명칭이 성서읽기회라 해서 성서만 열심히 읽어라 하고 설교를 마쳐도 되겠지라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러나 이 모임의 목적이 단순히 성서를 읽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말하기를 성서읽기라고 말하지 않고 성서공부나 성서연구라고 한다. 성서공부는 단지 성서가 어떻게 개개인의 신앙적 사건에 될 수 있는가가 관심사이며, 성서연구는 성서이해에 있어서 성서적 언어, 사회과학적 접근, 종교문화적 배경 등을 참조하면서 성서를 보다 폭넓게 관찰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임이 추구하는 성서읽기는 성서공부와 성서연구의 방법을 동원하여 성서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함과 동시에 자신과 공동체의 신앙적 사건이 되어야먄 한다. 이러한 성서읽기 모임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이 땅의 현실과 교회의 현실 등을 바로 알아야 한다. 본 설교에서 간단히 몇마디로 나타내려고 한다.
1) 이 땅에 사는 우리의 당면문제는 민주화이다.
이 민주화는 남북통일과 관련이 되어 있다. 남북의 분단은 남북한 통치자들에게 국가안보라는 미명 아래 군사독재의 구실을 제공하고 있다. 독재정치는 또한 부의 편재를 초래하여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점점 더 심각해져 가고 있다. 대한민국은 국가 총에산의 40%를 무력유지와 증강이라는 국방비에 쏟아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이 대통령이 되어도 이 나라의 경제 난국을 타개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경제가 이렇게 된 것은 국방비 때문만이 아니라 독재자들의 경제정책의 잘못에도 그 근원이 있다고 본다. 농민, 노동자를 외면하는 경제개발과 외채문제, 다국적기업 등을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이 저보다 더 잘 알 것이므로 생략하고 비약시켜서 말한다면 결국 이 땅의 민주화 = 남북통일 = 독재정치 종식 = 경제적 평등으로 등식을 성립할 수 있다,
2) 우리가 소속된 교회 현실을 알아야 한다.
교회의 상황도 목회를 하면서 보면 한쪽면 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회에서 생활하면서 교회의 모임에 참여하는 여러분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같아 제가 아는 범위에서 몇마디 하겠다. 개신교 선교 100주년이라고 떠들던 때가 엊그제 같다. 선교사들의 주도 아래 우리나라의 교회는 시퍼렇게 멍든 상태이다. 선교사들은 이 땅에 교파를 심어주었고, 이와 더불어 지방색을 더욱 심화시켰으며, 극단적 보수주의를 주로 심었으며, 한국의 자원들을 약탈하는 경제침략의 앞잡이들이었다. 이런 선교사들의 성향이 뿌리내려 가면서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이어져 왔다.
⚫ 우리 교회의 현황은 - 파벌의식 및 지방색이 강하다. 자기 신앙과 조금만 달라도 이단시한다. 권위주의가 판을 친다.
⚫ 선배목사와 후배 목회자 간의 문제가 있다. - 자기가 어려울 때는 이용하고 필요없다고 느끼면 배척한다. 어떤 지방은 목사와 전도사 간에 한 식탁에도 앉지 않는다.
⚫ 목사와 장로 간의 문제 - 노회 등에서의 정치 싸움(누가 노회의 실권을 가지는가?). 장로와 평신도 간의 문제도 심각해져 가고 있다.
⚫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독재가 가장 심한 곳이 교회이다. 교회가 대형화 중산층화 되어가면서 가난한 자들이 발붙일 곳이 없다. 기성 교회는 사회 경제적인 하부구조와 유리된 신앙을 강조하므로 지배자(독재정부)의 이데올로기와 야합한다(이용당한다).
⚫ 기복주의 신앙을 강조하며 설교시 헌금 강조가 많다. 결국 현실과 거리가 멀어져가는 교회가 생긴다. 교회가 축복에 대한 개념을 정립할 때가 되었다. 필요 이상 많은 것을 가지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고루 나누어 쓰면서 누리는 기쁨이 축복이다.
지난 겨울 서울에서 운동권 학생들이 사회와 무관한 대형교회는 화염병을 던져 불질러 버려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그중 사회에 관심을 갖고 조금이라도 사회 봉사를 하는 교회는 화염병 세례 받을 교회에서 제외시켰다는 말이 떠돌았다. 일반인들이 교회를 향해 말하는 비난의 소리를 교회는 들을줄 알아야 한다.
3) 우리의 사회현실과 교회의 현실을 알고 이 모임을 이끌어가야 한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우리는 성서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함과 동시에 자신과 공동체의 신앙적 사건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현대신학의 방향(흐름)을 알야야 한다. 서구신학을 흔히 말하기를 책상신학이며 관념신학이며 말장난의 신학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하나님 신앙은 믿는 자의 신앙적 행위에 있는 것이지 어떤 신적 존재를 사색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요즘 시화과학적 접근을 통해 성서를 보고 있다. 이런 벙법을 통해 새롭게 나타나거나 나타난 신학은 다음과 같다.
⚫ 신식민주의인 미국 중심의 수탈적인 경제 정치 정책에 항거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가운데 이룩된 남미의 해방신학.
⚫ 생명의 신비를 예찬하는 아프리카 문화를 야만적인 것이라고 유럽의 물질문명이 아프리카의 문명을 발달시킨 것에 대응하여 아프리카 문화가 성서의 진리와 일치됨을 밝히는 아프리카 문화해방신학.
⚫ 미국에서 오랫동안 노예생활을 경험한 흑인들의 인종해방을 위한 흑인해방신학.
⚫ 수천년을 두고 남자에게 종속적인 입장에서 설움을 당하고 있던 여성들의 여성해방신학.
⚫ 수백년 동안 총칼을 든 백인 침입자들에게 학대를 받아오며 멸종위기에 놓인 미국 본토인(인디언)들의 생명문화신학.
⚫ 다국적 기업, 인구문제, 소비성향(사치)의 증가로 인해 발생하는 공해로 인해 인간과 자연이 파괴되는 것에 대응하기 위한 생태학적 신학.
⚫ 교회가 우리 동족들 사이에 정의가 이룩되도록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수천년을 두고 투쟁하여온 민중들을 발견하였다. 이 민중들의 얼룩진 핏자국을 더듬다가 이곳에도 정의의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그들에게 인간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셨으며, 점점 더 그들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세워주셔서 역사의 주체가 되게해 주신 흔적을 비교 연구하면서 성서의 진리에 더 깊은 면을 발견하고 우리 역사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게 된 민중신학 등이 있다.
이런 신학들은 물질주의적 폭력주의적 개인주의적인 서구문화를 비평하고 생명적이고 자유롭고 평등한 문화와 사회제도의 창출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신학들의 흐름에 의해 모든 성서해석은 인간을 위해 있어야 한다. 곧 인권, 인간생명의 존엄과 관련되어야 한디. 이것에서 인간의 구원을 찾고 해방을 찾아야 한다.
여기에서 자유와 하나를 위한 성서읽기회의 방향을 찾았으면 한다. 인간은 고립된 사적 실존으로 생각될 수 없고 하나님과 겨레의 사회 안에서 실존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이 모임은 이 민족의 역사와 교회의 새로운 방향모색을 위해 신앙고백을 새롭게 해야 한다. 성서연구는 나의 지식 축적으로 그쳐서는 안된다. 기독교와 성서를 바로 알고, 이 땅의 현실을 바로 알 수 있는 공부가 되어야 하며,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모임은 제 의견이지만 평신도 교회로 전환해야 한다. 교파없는 초교파적인 교회, 권위가 없는 평등의 교회, 독재가 아닌 민주와 자유의 교회, 앨리트들이 대다수이지만 민중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교회, 개성이 다르지만 하나로 뭉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현대 기성교회에 경종을 울려주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오늘 본문처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해방시킨) 여호와라’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자기들만의 아성을 쌓고 그 게토 속에 파묻힌 교회에서 해방시키려고 인도하신줄 믿어야 한다. 처음 초대교회가 생길 때 유대교로부터 이단시 당하고 박해를 받았고, 개신교가 카톨릭으로부터 프로테스탄트라고 이단시 당했다. 그러나 역사는 이들이 이단이 아님을 증명했다. 자유와 하나를 위한 성서읽기회도 처음엔 기성교회로부터 눈총을 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새상의 고통이 없다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있을 수 없다. 예수도 십자가의 고난이 없었다면 부활이란 생각도 못햇을 것이다. 새로운 탄생을 위해 자유와 하나를 위한 성서읽기회는 무엇인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뜻을 이 모임의 뜻에 맞추려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신앙도 신학도 아니다. 이 모임은 우리 민족의 과제를 안고 씨름하는 모임으로, 기성교회의 개혁을 위해 새바람을 불어넣는 평신도 교회로, 출애굽하는 교회로 발전이 있기를 바란다.
< 기 도 >
사랑의 주님, 여기 주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자들이 모여 자유와 하나를 위한 성서읽기회의 모임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 모임을 주님이 이끌어 주시고 주관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이 모임이 이 민족과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넣는 출애굽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87. 1.18. 자유와 하나를 위한 성서읽기회 창립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