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량초과 / 이임순
세월 이기는 장사 없다는 말을 공감한다. 보기와 달리 강단져 건강하다 생각했다. 누가 뭐래도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깜박할 때가 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증상이 올 구정 무렵에 있더니 횟수가 늘어난다. 잠자는 시간이 부쩍 줄어든 후라 고단해 그럴 거라며 가볍게 넘겼다. 그러던 차에 망각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다. 고개가 갸웃해진다. 자신이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 했던가. 내가 착각 속에 살고 있지 않은지 의문이 든다.
가끔 안경을 벗는다. 잡무를 마치고 책상에 앉으면서 쓰려고 보니 없다.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기억력이 떨어진 것은 모르겠는데 유독 이것만은 쉬 눈에 띄지 않는다. 발이 달려 저 혼자 움직일 리 만무하고 다른 사람이 욕심낼 것도 아니다. 내게 필요하니 찾느라 시간을 낭비한다. 움직인 동선을 따라 눈을 부릅뜬다. 그런데도 쉬 눈에 띄지 않는다.
누가 숨겨 두기라도 한 것처럼 짜증이 나며 좁은 속내가 드러난다. 꽝 소리가 나게 문을 닫고 혼자 구시렁거리기도 한다. 그러다 제‘풀에 지친다. 얼굴을 찡그리고 컴퓨터 가까이 눈을 대고 화면을 보다 말고 일어선다. 책꽂이로 눈이 간다. 그렇게 찾아도 없던 안경이 책 위에 덩그러이 있다. 얄밉다. 그 언저리를 몇 번이나 눈을 번득이며 오갔다. 어디 이뿐이랴.
며칠 전에는 바늘을 어디 두었는지 몰라 시간을 축냈다. 쌀 포대에 감긴 실을 풀어 모아두었다 서류 묶을 때 쓴다. 쓰던 것이 동이나 다른 실꾸리를 가져와 보니 당연히 있어야 할 그것이 없다. 끝이 뾰족해 하마터면 다칠 수도 있어 일하던 주위를 세심히 살폈다. 혹시 서류에 끼었나 싶어 털어도 봤으나 허사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하는 수 없이 귀가 큰 다른 바늘을 가져 와 실을 궤다 필통으로 눈이 간다. 그렇게 찾아도 없던 것이 그 속에 볼펜과 나란히 있다. 한심한 생각에 헛웃음이 나왔다.
분명 안전한 곳에 두고도 생각해 내지 못하고 애태우며 찾다니 나이를 탓해야 할까? 건망증을 원망할까? 모든 것을 다 기억하면 머리가 무거워 다닐 수 없으니 내 몸이 알아서 암기할 수 있는 정도를 조정한다고 스스로 위안한다. 억지를 부린다 해도 별수 없다. 정신 건강에 좋으려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은 선에서 최대한 자존감을 지킨다. 누가 뭐래도 내 건강 지킴이는 자신이다. 그러니 스스로 다독이고 격려도 한다.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고 하지 않던가.
나이를 더해 갈수록 추한 모습은 감추고 싶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존감도 지키는 것이 건강한 생활의 일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순간의 잊음이 늘어난다. 그렇다고 주눅들 필요는 없으나 피해 갈 수도 없다. 누구라도 맞닥뜨리는 것이 시간의 흐름이고, 거역할 수 없는 현실이다.
작년에 어린이집에서 했던 일이 서류로 남는다. 크고 작은 행사가 줄을 이었다. 그 결과를 종류별로 한데 묶는다. 그러면서 미흡했던 점을 발견도 하고 이어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느끼기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했던 순간이 감사로 다가와 눈시울을 붉힌다. 희노애락의 감정이 섞여 순간적으로 생각을 멈추기도 한다. 그러다 깜박한다. 이것을 어찌 나이 탓을 하랴.
세월의 더께가 쌓일수록 잊음의 횟수가 늘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우리 몸의 리듬이다. 오만 것을 다 기억하면 그 무게에 짓눌려 제대로 설 수가 없다. 그래서 기억이 헐거워진다고 생각하면 지나친 오만일까?
몸이 무디어지듯 기억도 느슨해진다. 그런데도 하고 싶은 일이 줄을 잇는다. 생각이 정해지면 실천으로 옮긴다. 이런 과정이 늘어나면서 몸이 쉴 틈이 없다. 재미난 생활을 즐기면서 삶의 질도 높이고 싶은 욕심이 나이와 무관하게 생긴다. 이제 정리할 때라고 친구는 말한다. 그러면 손 놓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이냐고 묻는다. 대답이 없다
인생은 즐기면서 사는 것이다. 새로운 것을 알아 가는 재미는 실천으로 느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뇌가 용량을 초과한다. 순간의 기억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은 육신을 지탱하는 무게가 불어나 잠깐 쉬는 중이라고 하면 자신만을 위한 억측일까?
아무려면 어떠랴. 내 생활이 즐거운 것을. 순간의 멈춤이 있어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는데 이것이 망각일까? 난 두뇌의 용량초과라며 자존감을 세운다.
첫댓글 용량초과, 재밌습니다.
망각이라 표현하기 싫어 억지 부리는 것이지요.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하시는 일이 많으셔서 용량초과가 맞는 것 같아요..
고맙습니다.대부분은 하찮은 일들입니다.
선생님, 쉬엄쉬엄... 하세요. 용량초과 중이십니다.
고맙습니다. 그래서 즐기면서 하려고 합니다.
몇 번 말하지만 선생님 참 대단하세요. 이제 쉴 때도 됐는데 아직 열정적으로 일하는 걸 보면 빼깽이 같은 몸인데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요?
고맙습니다. 젖 먹던 힘까지 쓰는 중입니다.
정말 선생님은 용량초과에도 잘 견디시네요. 대단하시네요.
과찬의 말씀입니다. 견디려고 노력하면서 즐기기도 합니다. 고맙습니다.
선생님은 용량 초과가 분명합니다. 너무 많은 일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