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1 지석묘 존재 농가 전경 |
사진 2 지석묘 전경 |
사진 3 지석묘 크기 측정 |
사진 4 지석묘 상부 노출 성혈 |
Ⅰ-ⅲ 지석묘 발견을 통해 인식한 유적 주변 시민들의 인식
동 지석묘를 발견하면서,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의 시각에,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특히 신북 지역과, 서면, 우두동 지역등, 춘천시 문화재 분포 지도상에 포함된 시민들의 피해 의식이, 상당히 강한 것은 그동안 여러 사례를 통해 인지되어 왔으나, 이번 지석묘 발견 사례에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유적의 보존과 발견보고에 맹점이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번 지석묘 발견 사례에서도 인식된 사항이지만, 유적이 존재하는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들은, 유적의 공개로 이하여 나타날 수 있는 불이익을 감안하여, 유적의 존재를 감추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는데, 농가 소유주와의 대화를 통해 유적의 존재를 공개하기로 합의 하는 데는 많은 노력이 수반되었다.
Ⅰ-ⅳ 춘천시 와 강원도의 문화재 정책의 문제는?
동 지석묘를 발견하면서, 그동안 알려진 유적들에 대한 재검토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춘천시에 산재하는 유적의 존재는, 가장최근에 조사된 자료가 1997년 한림대 박물관,강원도,춘천시가 공동조사한 “춘천의 역사와 문화유적”이 유일하다.
전술 자료와 더불어, 2004년 강원문화재 연구소 발행 “춘천지역 지석묘군 발굴조사 보고서”를 함께 검토하였는데. 본 자료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일제강점기 춘천지역의 유적들에 대한 조사내용을 담은 유리원판 사진을 부록으로 수록하여, 본격적인 개발이 이루어지기전의 유적의 존재를 알 수 있었다.
1997년 조사 이후, 간헐적으로 대지의 조성 전답의 개량 등으로 인한 유적의 발견 사례가 나타나는 경우를 제외하고, 춘천시 전체에 산재된 유적의 존재는, 1997년 이후 어떤 유적이 존재하는지, 유적의 보존에 대한 대책은 수립하고 있는지, 의문을 제기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
문화재 정책에 있어 몆 분의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알게된 정보로, 문화재는 현존상태에서의 보존이 가장 적절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는데, 필자 역시 동의하는 내용으로, 백년도 못사는 인간의 지식으로 수백년 수천년된 유적을 평가하는 잣대를 대는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문화재 현상 보존 정책의 문제는, 개발등으로 훼손우려가 있는 문화재에 대한 보존 방안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대책으로는 문화재 현상 보존을 담보 할 수 없다는 이해가 상충하는 부분을 감안하지 못하고 있다.
3년간의 답사를 통해 알게된 사실로, 전술한 1997년 조사 춘천의 역사 유적 자료에 보고된 자료중 상당수의 유적이,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고 방치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번 지석묘발견과 함께 검토의 과정에서 발견한 사실로, 산천2리 지석묘군의(3) 사례를 살펴보면 1997년 조사당시 7개의 괴석과 반경 50m 인근에 2기의 추정 지석등 최소 5기 이상의 지석이 존재한다고 조사되었는데 이 일대는 농가와 전답이 위치한 지역으로 1997년 이후 많은 지형변화가 있었던 것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문제는 지속적으로 지형의 변형과 훼손이 진행되지만 지석에 대한 어떠한 안내판이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지석으로 인한 농사의 어려움 등으로 지석을 훼손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데 농민들과 농가 소유주의 의지에만 의존하기에는 유적의 가치가 너무 크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1997년 조사 이후 새롭게 발견되는 유적과, 미 발견 유적들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이루어 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조사를 통해 추가로 발견된 유적들과, 방치된 유적들에 대한 훼손 방지, 안내판 설치등의 조치를 통하여, 유적의 존재를 알리고 보존에 힘쓰도록 하여야 하겠다.
Ⅱ 춘천 맥국설과 맥국 논란에 대한 제언
춘천이 맥국의 고장 이라는 건 이미 많은 시민들이 알고 있고 자부심을 가지는 지역의 고유한 역사 자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계나 역사관련 단체들이 맥국을 보는 시각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채, 논란이 종식되지 못하고 존재 여부마져 확인하지 못하는 답보상태를 거듭하고 있다.
춘천의 역사 정체성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유적으로 많은 이들이 맥국의 존재와 춘천 이궁을 들고 있는데 이는 다른 지역이 가지지 못한 역사적 우월의식에서 비롯되어 진다고 보지만 이런 의식은 지역의 정체성과 맞물려 중요한 자산이며 미래로 나가기위한 동력이 되기도 한다.
(3)산천2리 지석묘: 1997년 발간된 춘천의 역사와 문화유적 p55~p56에 의하면 산천2리 지석묘군은 산천2리 한지식 씨 농가의 울타리부분과 나대지에 괴석7기가 발견되었고 반경 50m~100m 안에 자리하는 2기의 추정 지석과 함께 최소 5기 이상의 지석묘가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춘천 맥국설에 불을 지핀 논문으로는 대개가 김택균 선생의 석사학위논문(4)을 들고 있는데 이 후로도 최복규 박사의 논문 “춘천지역의 유적과 맥국”(5) 과 “춘천 맥국의 재조명”(6) 김용백 박사의 논문 춘천맥국 연구등(7) 에서 신북지역에 전승되어 오는 구전과 지명의 유래 현재 까지도 남아있는 맥 관련 지명등의 연구를 통한 문헌 사적 의미와 발굴된 유물들의 연대 말갈과,낙랑,삼국과의 관계성, 신라의 춘천 귀속등을 근거로 맥국의 존재를 인정하는 논문이 발표되었고 백제문화재 연구회장인 한종섭은 “맥국왕도 유적조사에 대하여”(8)를 통해 발산리의 특정 지역을 맥국의 왕도로 지정하기도 하였다.
전술 논문과는 다른방향에서 문헌을 분석하여 맥국의 존재를 한시적으로 부인하는 논문을 발표한 김창석 박사의 논문(9)과 고고학적 연구를 기반으로 맥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논문이 발표되기도 하였는데 심재연 박사의 논문(10) 등 여러편의 논문을 통해 맥국의 존재가 논쟁의 불씨를 제공하는 형국이 된 것으로 이해된다.
맥국과 관련한 인용 논문중 심재연 박사의 논문은 읽지를 못한 관계로 어떤 내용을 담았는지 정확히 이해하고 있지 못함을 밝히고자 하며 다만 심재연 박사와의 대화에서 고고학적 발굴 결과를 토대로 판단해보면 맥국의 존재 여부를 증명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말로 현재까지의 연구결과로는 맥국의 존재를 부정하는 논문으로 분류하였음을 밝히고자 한다.
(4) 김택균의 논문은 1985년 백산학보에 발표한 석사학위논문 춘천맥국설에관한 연구와 2005년 9월30일 춘천시,강원향토문화연구회 공동개최 맥국관련 학술토론회에서 발표한 문헌자료를 통해본 춘천의 맥국으로 문헌을 통한 맥국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였다.
(5)최복규의 논문은 “춘천지역의 유적과 맥국” 으로 춘천지역에서 조사된 집자리 유적을 중심으로 그동안 알려진 문헌을 통해 매국의 존재를 주장하고 있다,
(6) 최복규박사는 2005년 강원향토사 연구회 주최 맥국관련 대토론회 발표논문 춘천 맥국의 재조명을 통해서도 맥국의 존재를 인정하고있다.
(7) 김용백 문학 박사학위논문 으로(2010) 춘천맥국연구를 통해 방대한 유물 조사자료와 중국의 문헌, 삼국사기,각종 지리서등의 문헌을 분석하여 맥국의 존재를 증명하고자 하였다.
(8) 한종섭 : 백제문화재 연구회장으로 2005년 강원향토사연구회가 주관한 맥국관련 대 토론회에서 맥국왕도 유적조사에 다혀 발표문을 통해 발산리 왕뒤마을 안쪽 500여 m 지역을 특징하여 맥국의 왕도라 주장하며, 수리봉 산성의 존재, 내성과 외성의 존재등 구체적 지리를 명시하여 맥국의 왕도라 주장하고 있다.
(9) 김창석의 논문은 문헌사료를 바탕으로 맥국의 존재를 부장하였는데 맥국설에 관한 일고를 통해 맥국과 관련한 부정적인 시각을 보여주고있다.
(10) 심재연의 논문은 필자가 읽지를 못한 관계로 자세한 내용을 기술하지 못하였으나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고고학적 발굴 사례를 통해보면 현재까지 맥국으로 단정지을 어떠한 근거도 나와있지 않다는 주장을 하고있다.
Ⅱ-ⅰ맥국은 존재 하였는가 ?
춘천지역 역사관련 단체 구성원 뿐 아니라, 춘천시민이라면 거의가 생각하는 물음으로 생각되는 맥국의 존재 여부, 어디에서 해답을 찾아야 할까?
그동안 맥국의 존재를 인정하는 논문에는, 최복규 박사의 논문처럼 춘천지역의 유적과 신북지역의 유적, 유물을 기반으로, 맥국의 존재에 다가서려는 시도가 있었고 김용백 박사의 논문에서는, 방대한 유적의 발굴조사 결과를 통한, 청동기 유물과 초기 철기 유물사이에서 발견되는 새로운 형태의 유물, 삼국사기와 중국의 문헌등 문헌사료를 통한 맥국과의 연관성 연구를 통해, 맥국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보는 논문이 있으며, 김창석 박사의 논문에서는 문헌사적 의미로 검토하여, 맥국으로 단정 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주장도 제기 되는등, 논란만 가중되는 형국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
Ⅱ-ⅱ 논란이 있어도 맥국은 존재 한다
전술한 바와 같이 춘천지역 맥국과 관련하여 그동안 많은 논란과 존재의 유무에 대한 찬반의 시각이 공존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견해는 맥국은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고자 한다. 이유는 맥국과 관련한 그동안의 연구결과를 보면 춘천에는 성읍국가 단계에서 연맹국가 단계로 발전해가는 과정까지 신라에 복속이 되는 7세기 무렵까지 어떠한 정치체가 자리했을 가능성을 부인하는 학자는 없다는 사실이다.
맥국의 존재에 대해 부정하는 의견을 가진 학자들조차 이 견해에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춘천에는 그 집단의 명칭이 맥국이 되었든 아니면 다른 명칭을 가진 부족국가가 되었든 준국가 형태의 정치체가 존재 하였다는건 부정하기 힘든 사실로 보인다.
문헌사적으로 맥국의 존재를 인정하는 그룹과 인정하지 않는 그룹의 견해는 공통적으로 가탐이 쓴 고군금곡지와 삼국사기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문헌사적으로 맥국을 인정하는 그룹의 주장은 가탐의 고군금곡지 이후 삼국사기를 거쳐 수많은 사료와 지리지에 등장하는 맥국의 존재에 대하여 부정 할 수 없다는 것이고, 문헌사적으로 맥국의 존재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그룹의 주장역시 문헌상의 근거가 가탐의 고군금곡지를 근거로 삼국사기와 여러 지리서에 인용되었고, 고군금곡지가 맥국성립 시대로 알려진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2,3세기에 기록된 역사가 아닌 그보다 훨씬 후대인 9세기에 기록된 역사로 구전에 의존하여 기술된 관계의 오류를 지적하나 그럴 경우 역사서의 바이블로 꼽히는 삼국사기 처럼 후대에 쓰인 역사서들에 대한 의문은 꼬리를 물수밖에 없는 형편이기에 문헌사적인 의미는 존재한다고 결론을 내리고 고고학적 결과가 나타날 때 까지 존재한다 안한다의 소모적 논쟁은 중지하여야 한다고 소결하고자 한다.
그 동안 맥국과 관련한 논문을 발표한 다수의 학자들의 견해도 이와 유사한데 문헌사적으로 존재하는 맥국은 있는 것이고 이를 뒷밭침할 고고학적 근거와 왕궁터의 발굴 인장등의 증거를 찾아내는 작업은 계속되어야 한다.
맺는말
Ⅰ장에서 전술한 바와 같이 춘천지역의 지리적 특성과 지형적 특성에 기반하여 춘천시내 곳곳과 신북읍 서면 일대에서는 앞으로도 새로운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문화재는 그 지역의 정체성과 맥을 같이하고 현대에 들어 지역의 발전동력이 되는 자산의 성격도 함께 지니고 있다. 이런 문화재를 보존하고 관리 하는건 과거의 유산을 미래세대에게 잘 넘겨주어야 하는 현대인들의 책무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지역의 역사 유적과 유물에 대한 지자체와 시민의 노력은 Ⅰ장에서 기술한대로 위태롭기 그지없는 현실이다.
선사유적부터 역사유적 근대 유적을 망라해 다양한 유적과 유물이 출토되는 춘천이 아직도 출토된 유물을 보관 전시할 박물관 하나 없이 국립 춘천박물관에 의존하는 현실에서 후대들에게 지역의 자산으로서의 유적과 유물을 어찌 전달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현실이다.
시민들의 입장에서도 자신의 재산권과 관련이 될까봐 유적과 유물의 존재를 숨기려고 급급 하는 현실을 타개하지 않는 한 춘천은 유구한 역사를 우리시대에서 끝낼 수도 있을 것 이란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유적과 유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도입이 절실하다.
시민이 유적이나 유물의 발견을 통해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지자체 차원의 대책을 수립하여야 하며, 새롭게 발견되는 유적과 그동안 조사된 유적에 관해서는 훼손이 이루어 지지 않도록, 안내판의 설치 보호 대책의 강구등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Ⅱ장에서 기술한 춘천맥국과 관련하여, 더 이상의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한 전문가 토론회, 좌담회등을 거쳐 맥국의 존재를 규명하기 위한 방안의 제시, 발굴조사등의 대책을 수립하여, 춘천맥국이 그동안 시민들의 가슴에 자부심으로 자리 한 대로, 지역의 역사 정체성과 유산으로 남을 수 있도록, 공동의 과제로 연구해나가길 촉구하며 글을 맺고자 한다.
서두에 기술한대로 전공자가 아닌 시민의 시각에서 생각하는 글이라, 전공자의 관점에서 무리한 인용과 근거의 부족등의 문제가 대두될 개연성이 높음을 인정하면서, 문제의 지적에 앞서 전공자의 시각에서는 일반 시민이 가진 인식으로 판단하여 향후 연구에 참고하기를 바랄뿐이다.
참고문헌: 한림대학교 강원도,춘천시 공동발행 “춘천의 역사문화 유적”(1997), 강원문화재 연구소 “춘천지역 지석묘군 발굴조사 보고서”(2004), 춘천문화원 “춘천의 문화유적”(1998), 삼국사기, 유재춘 “춘천 맥국의 역사적 연구(2005)”, 김용백, “춘천맥국 연구(2010)”, 최복규 “춘천지역의 유적과 맥국”, “춘천 맥국의 재조명”(2005) 김택균 “춘천 맥국설에 관한 연구”(1985) 문헌자료를 통해본 춘천 맥국“(2005) 김창석 ”춘천 맥국설에 대한 일고“ 한종섭 ”맥국왕도 유적조사에 대하여(2005)
첫댓글 새로 발견한 지석묘와 그 인근지역에 대한 자세한 연구가 필요하겠네요.
맥국에 대한 논쟁은 평행선을 계속하고 있는데 어찌됐건 하나로 의견을 모으는 노력이 있어야 겠습니다.
내년 과제로 남겨 둬야 할 것 같군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제가 아직 부족한 것이 많아 공부를 한참 더해야겠어요.
잘 보고 갑니다^^
이글은 역문연 자료실에 올려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