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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 관룡사, 구룡산 2013. 이 재 익 / <소답자한> 제61호에서
-창녕 관룡사 뒷산인 구룡산 晩秋 등산기 (표지 사진) * 청천일칠산우회, 2013.11.24. 등산사진을 일칠산우회 카페에 올리며 정리함.
서러움 말고, 성스러움 석장승 한쌍의 안내를 받고 구룡九龍이 비천했다*는 ‘귀뚜라미 경경경 운다’고* 읊었지만 언덕 반석盤石에 앉은 용선대龍船臺* 여래如來 ------------- * 구룡 ; 창녕 관룡사, 관룡산, 구룡산은 원효대사가 수도중에 ▣ 옛 비화가야 창녕 창녕은 가야시대 <非火伽倻>였고, 진흥왕 때 신라에 편입됐다. 그즈음에는 <비사벌>이라고도 불렸다. 7세의 어린 나이에 즉위한 진흥왕은 왕 16년에 비사벌에 완산주를 두었다. 왕이 29세 때 진흥왕 22년 561년에 창녕에 진흥왕순수비(국경을 사찰하고 국경을 확인한 비)를 세웠다. 통일신라가 행정구역을 9주5소경으로 확대 개편할 때 창녕은 火王郡이 되었다. 昌寧이라는 명칭은 고려 태조 때부터 사용했다.
고려말 권세를 누리다 파멸한 신돈이 창녕의 옥천리 옥천사 여종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신돈이 역적으로 몰리자 옥천사는 허물어지고 지금은 그 터만 남았다. 조선 인조 때도 인조반정으로 물러난 광해군을 다시 받들려는 반역이 있었는데, 창녕의 성지도가 관련이 되어 지도역변至道逆變이라 불린다.
▣ 관룡사 입구 석장승 한쌍 김판용 시인 <11월, 아득히 먼> 의 한 구절처럼 "햇빛이 적금된 통장 그 붉고 노란 단풍잎" 이 마지막 불같이 붉은 색깔을 토해내고 있는 11월 하순 날씨도 포근한 만추에 관룡사와 구룡산을 찾았다.
절 입구에 먼저 석장승 한 쌍이 반긴다. 도로를 따라 가면 이 볼거리를 쉬 놓친다. 좁은 지름길 에 있다. 장승은 민간신앙과 불교의 결합이다. 세우는 의미는 다양하다. 1) 사찰 토지 경계를 나타내거나 2) 세워진 지역 안으로 들어가면 사냥이나 어로를 금지한다는 금표禁標, 호법護法의 의미. 3) 잡귀를 방지하는 수호신 4) 풍수지리상 허한 곳이 있는데, 그 허한 곳을 보완해 준다는 의미가 비보裨補이다. 비보裨補를 목적으로 세운 절은 비보사찰이라고 한다. 장승도 비보를 목적으로 세우기도 한다. 모양은 우뚝해서 대개 성기 숭배와도 무관하지 않다.
1. 관룡사 입구 장승 한쌍, 좌 남자, 우 여자 장승 2. ▣ 관룡사와 원효대사 화왕산과 구룡산을 배경으로 전개된 창녕 화왕산 관룡사는 1500여 년 전, 신라 진평왕 때 583년 증법국사가 초창하였다 한다. 관룡사의 절 명칭은 원효대사와 관련이 있다. 관룡사는 신라 8대 사찰중의 하나, 원효대사가 제자 승려 1천명을 데리고 화엄경을 설한 도량이다. 원효대사가 100일 기도 중에 화왕산 정상 월영3지에서 9마리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았다고 관룡사觀龍寺라고 이름을 지었다. 관룡사 뒷산을 관룡산(좌)과 9룡산(우)으로 나누어 부른다.
3. <관룡사와 구룡산> 원효元曉대사(617~686)는 당나라 유학 가는 길에 하룻밤 묵어간 토굴이 허물어진 무덤 속이었고, 잠결에 무심코 마신 물이 다음날 아침에 보니,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이었으므로, 거기에서 깨달은 바가 있어서 입당구법을 포기했다. '세상에 깨끗하고 더러운 것, 좋고 나쁜 것, 선하고 악한 것 등의 구별은 모두 마음속에 있구나!' 원효대사의 파계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주겠는가? 내가 하늘을 괼 나무를 깎겠다.” 라고 읊고, 과부 요석 공주(무열왕 둘째 딸)를 만나서 대학자 설총을 낳았다. 원효는 법성종을 창시하여 신라 불교 중 교종 5교 형성에 기여했다. 일체 만유는 같은 법성을 가졌고 모두 성불할 수 있다는 개념을 강조한 것이다. 원효는 또 '정토淨土사상'을 가르쳤다. 자력 성불이 어려운 이는 지성으로 극락세계의 교주 ‘아미타불’의 명호를 계속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는 종지인데, 불교의 대중화에 기여하였다. 무엇 보다 요즘같은 이념갈등으로 혼탁한 세상에 원효의 <화쟁사상>을 생각할 때이다. 화쟁사상和諍思想은 모든 종파는 동등한 가치가 있으므로 서로 견제할 것이 아니라 '一心' 입장에서 통합하고자 한 것이다. 서로 달라 보이는 학설도 결국은 다를 것이 없는 하나이다. 화쟁사상은 대립과 모순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통합하는데 기여하였다. 화쟁사상은 곧 다른 표현으로 원융圓融사상이다. 서로 융합으로 평화를 누린다는 원융회통圓融會通을 표현한다.
원효가 무애가無碍歌를 지었다고 하나 가사가 전하지 않는 것이 애썩하다. 무애’란 ≪화엄경≫의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 一切無碍人一道出生死”라는 대목에서 유래한 말이다. 평상심이라는 개념을 구현한 것이다. 평상심平常心은 하나, 不二, 요지부동의 마음, 삼매三昧 등으로 표현된다. 이 세상에는 본래부터 아무런 경계가 없다. 나 너의 구분도 임시방편이다. 커다란 하나 속의 부분임을 아는 마음이 곧 무애의 마음이다.
▣ 용선대 좌불상 관룡사 하면 가장 볼만한 것이 이 절에서 서쪽 계단길로 500m쯤 위쪽에 있는 용선대이다. 관룡사 용선대는 통일신라시대 석가여래 좌불상이다. 국보급인데 국보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다. 용선대 부처는 한 가지 소원은 들어 준다고 한다.
불교에서 법당은 본래 중생들을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반야용선般若龍船' 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 때문에 법당 기둥에 용머리 조각을 하고 법당 소맷돌에도 용머리를 새기고, 때로는 벽에 직접 반야용선을 그리기도 한다.(통도사의 경우)
거대한 바위가 멀리서 보면 영락없이 커다란 배 모양이란다. 그 위에 부처님 한분을 모심으로써 거대한 바위를 般若龍船으로 만들었다. 불상높이 약 3m, 불신은 1.8m, 해 뜨는 동쪽을 바라본다. 불상과 같은 방향인 동쪽을 바라보면 왼쪽에 웅장한 산이 구룡산이다. 이 땅 전체를 불국토로 여기고 형상화했다.
용선대 팔각대좌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서 722년에서 731년 사이에 조성됐음이 밝혀졌다. 고해의 바다로부터 중생을 구제해 정토로 이끌고 가는 부처님 모습은 해 뜨는 아침에 보아야 장관이라 한다. 4. 2013년엔 원래대로의 조각상 색상 5. 2019년 다시가서 뵈니 그 사이 여래의 몸통이 많이 깨끗해졌다. 보수 작업을 한 모양이다. 6.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조좌불상 ▣ 절경, 그대에게 보내 줄 수없네 구룡산은 여기저기 치솟은 바위군이 장관이다. 산세가 수려하고, 산이 험할수록 역설적이게도 평화로움을 준다. 힘차게 솟은 바위를 보면 세속의 일들이 참 사소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먹이보고 내리꽂는 독수리와 분분 낙화가 연상되기도 한다. 저 섬세한 바위 자태는 마고할미의 손재주임에 틀림없다. 절벽길에 안전 줄을 쳐 놓긴 했지만 바라보는 것도 다소 용기가 필요하다. 화사한 봄에 저 절벽에 진달래가 피어야 제격일터이다. 바위들은 아직 미완성. 무수한 세월 속에 완성을 향해 나아간다. 바위의 완성은 결국 냇가의 모래알? 쓸쓸한 산등성이 어깨 너머로 솔바람 불어오면 바위도 살포시 잠들기도 하겠지. 꽃보다 경치! 이 산경이, 어느 찻집 벽에 결린다면, 아직 오지 않는 님을 기다리며 먼저 마시는 찻잔이 식어가는 것도 잊겠구나. 햇살 한줌도 비쳐들겠지. 아름다운 산 경치에 대한 옛 은자의 시구 하나.
산중에 무엇이 있는가/ 산마루에 떠도는 구름 다만 스스로 즐길 뿐/ 그대에게 보내줄 수 없네.
7. 구룡산은 병풍 바위 등 암석 절벽이 많고 산행코스가 험하다, 재미가 있으나 조심해야 할 구간이 많다. 8. 가을산 열매가 탐스럽다. 산새들은 뭣들하느냐?
9. 11월 하순 단풍은 거의 졌다. 10. 구룡산 병풍 바위 11. 저 얹힌 바위는 어느해 풍우에 떨어질 것이다. 자연도 무상인데 하물며 인생무상이야? 산도 그리움을 탈 때는 아지랑이, 안개를 피워 제 모습부터 가린다. 경치가 좋은 곳에서는 용기도 함께 솟아나는 법. 마음 흔들릴 때는 더없는 친구가 된다. 팔짱을 끼면 세상의 관조자가 되기도 한다. 연인은 손을 잡아야 더 아름답지만, 산은 바라만 봐도 아름답고, 너그러운 저 품속에서 포근함과 정다움은 넘쳐나고, 침묵은 결단을 가르쳐 준다. 구룡산에 오르자 산이 내게 달라붙는 느낌이다. 아름다움이 머무는 산길은 생각이 머무는 시간들이다. 머문 시간들 뒤에는 꽃송이가 발자국을 채우리. 안간 힘으로 버티어 온 세월은 아니었을지라도 앞으로는 버텨 남아야 하리. 저 바위처럼. 그렇게 생각하니 험한 바위 위에 섰으나, 가장 편안한 자세가 된다. 미련 없이, 머물지 않는 마음들은 오늘 하루 세월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창조하는 것이다. 천천히 한 모퉁이씩 돌아가면 행복을 기대하는 인생만큼이나 설렌다. 산마루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니 올망졸망한 낮은 산봉우리들의 다정한 속삭임들이 들린다. 단풍들은 이제 떠나야지~ 마음먹은 듯 이미 칙칙하고 우중충해졌다. 푸르름 속에 하얗게 돋보이는 바위들은 '나를 사랑해 주세요!' 한다. 여기 산정에 서는 사람은 아직 눈뜨지 못한 한 사랑도 배워 가겠지. 어떤 바위 모습이 무우 자르듯 쩍 짜갠 것같은데, 반토막은 보이지 않는데, 아마도 산신이 무우로 알고 국끓여 먹었나보다.
12. 아슬아슬한 절벽위에 사람이. 13. 벼랑끝 소나무는 정취가 그만이다. 무서움을 모르는 절벽의 용감한 소나무들! 벼랑과 소나무는 궁합이 잘 맞다. 한번 인연을 맺으면 떨어질 수 없는데 서로 자리를 내주는 것을 보면 부나비 불사랑하듯 맹목적이다. 산열매는 검붉은 채 떠나가는 가을의 꼬리를 붙들고 있다. 가을 산새들은 배가 부른가봐. 큰 바위가 건너편 산봉우리 아기자기한 바위군락을 감상하듯 우뚝한 모습은 제 얼굴을 거울로 들여다 보는 듯하다. 두 팔을 벌리고 억압된 감정을 함성으로 날려 버리며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는 폼은 정갈한 산과 정답게 소통하는 모습이다. 사람들이 서는 위치와 자세에 따라 하늘에 서고 바위에 기대는 모습은 사바와 극락만큼이나 대비가 된다.
허수아비의 우스꽝스러움이 빈들의 허허로움을 채우듯 산에서 만나는 미소는 갈증도 잊게 한다. 대자연 속에서 한 웃음을 누가 뭐라 하겠는가? 둥근 입가엔 천진함이 묻어난다. 감정의 기복은 산 아래로 보내고, 나 자신과 화해라도 하고픈 시간. 가을을 전송하는 치유의 시간, 해탈의 시간이다.
14. 가장 멋진 구간이다. 가까이 있는 바위에 기대서서 찰영을 많이 하는 자연포토존.. ▣ 화왕산성 멀리 화왕산의 일부가 연한 주황색으로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이광옥의 딸 예향이가 병을 얻어 여기에서 치유차 휴양할 때, 龍池에서 기도하다가 용자와 사귀어 생남했다. 그 아이 겨드랑이에 '曺' 자가 있어서 그 아이의 성으로 삼고 이름을 繼龍이라 했다. 曺繼龍은 진평왕의 사위가 되었다한다. 화왕산은 창녕 조씨 시조 전설이 깃든 신성한 곳이다.
756.6m의 화왕산은 샘이 9개, 못이 3개 있는 성터이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가등청정 (가토 기요마사) 왜군의 공격을 방어했던 곳이다. 몇 년 전에 그 멋진 산에서 안타까운 참사가 있었다. 화왕산 억새 태우는 불놀이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덮친 불을 피하지 못하고 변을 당하였다. 그것은 산의 재앙이 아니고 사람들이 관리를 잘못한 인재였다. 산과는 흥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 만만한 인생 없듯이 만만한 산도 없다. 산에 오르는 부지런함은 여명黎明의 기대를 충족한다.
▣ 산에게 언제나 빚을 진다. 밧줄을 잡고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처럼 흔들리며 묘기 한줌, 엄살 한줌으로 오르내리는 난코스는 산이 등산객에게 베푸는 일종의 사랑이다. 신발로 낙엽 끌고 하산하면 나는 어느새 겨울의 전령이 된다. 오늘도 산에게 갚지도 못할 빚 하나를 지고 내려간다. 올라갈 때 스친 관룡사를 하산하여 찬찬히 살펴봤다.
부처님은 나를 기다리지도 않고 '다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믿는 표정이다. 마당의 수조에 철철 넘치는 맑은 물 한 모금 안 마시고는 관룡사 갔다 왔다고 말하지 말라! 한참 언덕에 있는 용선대 석조 좌불상을 보지 않고는 신라의 예술 미적 감각을 보고 왔다고 말하지 말라. 절입구의 석장승 한 쌍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지나쳤다면, 풍수 비보와 장승문화를 느꼈다고 말하지 말라. 터가 넓지않아 정원이 화려하지는 못하지만 주어진 여건 속에서 절집 정원이 잘 다듬어져 있어서 볼만하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국화꽃이 빈약하다. 절에서 멋진 국화를 잘 보려면 11월 전후 안동 봉정사를 가보라. 국화를 많이 재배하여 절집이 온통 국화 속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소나무 한그루가 대웅전 옆에 잘 다듬어져 있다. 절간의 좋은 자리에 앉아서 스님들의 손길과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길든 소나무가 아닌가.
15. 이 맑은 감로수 한잔 않고 가면 관룡사 갔다왔다고 말하지 말라. / 2013. 금산 ▣ 관룡사, 소박하나 위엄있는 절 낙엽이 흩날리니 산 속에 겨울은 빨리 오리라. 옛글 <허당록>에, "시냇물 소리는 한밤중이요/ 산빛은 해질녘이라." 시냇물 소리는 한밤중의 것이 그윽해서 들을 만하고, 산빛은 해질녘이 되어야 볼 만하다는 뜻이다. 산사는 아무도 찾지 않는 한겨울 눈이 소복할 때도 그대로 멋과 운치를 지닌다. 응진전은 작은 전각이다. 부처님 제자 16나한을 모신 절집. 나한전이라고도 한다.
옛스승이 "도를 배우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가난해야 한다. 가진 것이 많으면 반드시 그 뜻을 잃는다." 고 했다. 절이나 산에 오면 맑은 기운을 느낀다. 이 맑은 기운이 나를 새롭게 한다. 약사전 앞에는 참 소박한 탑이 있다. 임진왜란 시에 방화로 소실되고 약사전만 남았다. 약사여래는 질병극복 기도처. 약사전 석조여래좌상은 신라 중대 불상이다. 16. 약사전 이 석조여래좌상은 풍만하다.
17. 관룡사 약사전
18. 2013.11. 24. 구룡산. 학정
19. 2013.11. 24. 구룡산. 청천일칠산우회 20. 산위에서 바라본 관룡사 전경 (2013. 11.24.) 21. 2019. 02.17. 22. 화왕산 일부가 연한 주황색으로 보인다. 화왕산은 창녕 曺씨 시조 전설이 깃든 신성한 곳이다. 부처님은 자신의 설법도 '강을 건너게 해준 뗏목에 비교하라. 강을 건넜으면 뗏목은 잊어라'고 하셨다. 부처님 가르침에도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다. 종교의 가르침이란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그와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말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그 상황이나 사정이 바뀌면 그 가르침은 쓸모가 없을 수도 있다. 법(진리)도 버려야 할터인데 하물며 법아닌 것이랴. 절에 와서는 '나한테 소용이 잘 닿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는 '버림의 정진' 도 하고 가야한다.
수행자나 세속인은 한평생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 바쳐야 한다. 일상적인 타성과 게으름도 녹에 비유가 된다. 쇠에서 생긴 녹이 쇠 자체를 못 쓰게 만들 듯이 허물은 자신이 만들고 그 허물이 자신을 못 쓰게 망가뜨린다. 자신에 대한 투철한 각성과 분발을 통해 녹은 제거된다.
친구들과 함께 가면 단체 사진은 필 수! 잠시 잔 없는 잔을 드는 흥겨운 축배다. 돌아오는 길에 진영 갈비집에서 석식으로 진짜 축배를 들었다. 친구가 좋다 축배가 좋다. 필자의 시 <축매> 를 소개하며 오늘 산행 雜想을 접는다. 축 배 祝杯 이 재 익
뒷동산 솔바람보다 주고받는 옆친구가 더 시원하고 청둥오리 기는 갈대밭보다 내 앞 술잔이 반갑다.
눈물은 바람 때문에, 웃음은 그대 때문에, 눈빛은 나 때문이다. 왜 사냐면 하늘 가리키고, 거기 어디냐면, 내 온 곳 내 갈 곳이라고.
산춘란 맑고 향기롭게 도요새 무리로 날아 아, 서럽고 바람찬 날들, 우렁찬 건배사로 다 날려 버리자!
어제는 희망의 볕, 오늘은 축복의 비, 내일은 상추쌈 같은 평화가 있다. 만남이여, 축배祝杯를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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