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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리새파 사람들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께로 몰려왔다.
2. 그들은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부정한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을 보았다.
3. -바리새파 사람과 모든 유대 사람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켜, 규례대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4. 또 시장에서 돌아오면, 정결하게 하지 않고서는 먹지 않았다. 그 밖에도 그들이 전해받아 지키는 규례가 많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대를 씻는 일이다.-
5.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이 전하여 준 관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사야가 너희 같은 위선자들을 두고 적절히 예언하였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은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7. 그들은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
8.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관습을 지키고 있다."(막7:1-8)
1. Some Pharisees and teachers of the Law who had come from Jerusalem gathered around Jesus. 2. They noticed that some of his disciples were eating their food with hands that were ritually unclean—that is, they had not washed them in the way the Pharisees said people should.
(3. For the Pharisees, as well as the rest of the Jews, follow the teaching they received from their ancestors: they do not eat unless they wash their hands in the proper way; 4. nor do they eat anything that comes from the market unless they wash it first.[a]And they follow many other rules which they have received, such as the proper way to wash cups, pots, copper bowls, and beds.[b])
5. So the Pharisee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asked Jesus, “Why is it that your disciples do not follow the teaching handed down by our ancestors, but instead eat with ritually unclean hands?”
6. Jesus answered them, “How right Isaiah was when he prophesied about you! You are hypocrites, just as he wrote:
‘These people, says God, honor me with their words,
but their heart is really far away from me.
7. It is no use for them to worship me,
because they teach human rules
as though they were my laws!’
8. “You put aside God's command and obey human teachings.”
1. 바리새파 사람들과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예수께로 몰려왔다.
1. Some Pharisees and teachers of the Law who had come from Jerusalem gathered around Jesus.
이스라엘의 역사는 험했는데 당시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권력자들은 로마에 빌붙어서 권력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일본 강점기 시절 윤덕영이나 이완용을 아시지요?
그런 매국노들이 권력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희망이 없어 보이는 세상에 예수께서 오신 것입니다.
백성들은 이 한 사람 예수께 나라의 구원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편 권력가들은 예수님에게 민감하게 반응했습니다.
백성들의 눈치를 보면서.......
예루살렘에서 이 한 사람 예수께 대표를 파송한 것입니다.
예수라는 나약한 한 실존과 부정한 절대 권력의 대립!
이곳에서 여러분들은 어느 편의 승리를 기대할 수 있습니까?
또 어느 편이 되겠습니까?
토인비는 역사를 his story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He란 예수님을 한 사람을 이르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이 거대한 세상 역사를 한 사람의 이야기라고 한 것입니다.
이 한 사람의 승리라는 것입니다.
당치도 않는 소리라고 여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로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2,000년 전에 나약한 한 실존이 승리를 거두셨는데 한 분 예수님의 이야기가 곧 세상의 역사입니다.
그 예수께서 더 엄청난 말씀을 하셨는데
11.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내가 하는 그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12.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다.(요14:11,12)
주님은 여러분이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아버지께 돌아가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앙이란 나에 대한 엄청난 발견입니다.
기독교는 완전히 다른 인간관을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JMS 신천지 통일교 하나님의 교회 이들의 중심에 교주 한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그렇습니다.
북에서는 김일성 남에서는 이승만으로 시작된 독재자들.......
그 한 사람들로 인해서 남과 북에 엄청난 비극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들의 엄청난 악영향!
얼마 전에도 전두환이 군대를 몰고 가서 한 도시를 학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독재자를 두고 여호수아라고 한 한 사람의 종교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이 한 사람이 끼친 교회에 대한 악영향!
제가 악인 한 사람씩을 짚고 넘어가는 것은 선한 사람 한 사람의 영향력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성경은 주님 한 사람을 통한 구원의 역사를 이릅니다.
또 주님을 믿는 한 사람이 얼마나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지 말씀합니다.
교회가 교인 배가의 양을 말하지만 그것이 아닙니다.
질적 문제입니다.
양적인 힘을 과시하려는 것은 세상이고 교회는 질적인 한 사람을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제대로 믿는 그 한 사람이 세상을 살릴 것입니다.
1.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들아, 예루살렘의 모든 거리를 두루 돌아다니며, 둘러보고 찾아보아라. 예루살렘의 모든 광장을 샅샅이 뒤져 보아라. 너희가 그 곳에서, 바르게 일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라도 찾는다면, 내가 이 도성을 용서하겠다."(렘5:1)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성령을 통해서 제대로 된 바로 이 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살리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구약에서도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방 나라의 절대자를 만났을 때입니다.
그는 공포심에 아내 사라를 동생이라고 소개하고 다녔습니다.
1. 아브라함은 마므레에서 네겝 지역으로 옮겨 가서, 가데스와 술 사이에서 살았다. 아브라함은 그랄에 잠시 머문 적이 있는데,
2. 거기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사람들에게 자기 누이라 소개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서, 사라를 데려갔다.(창20:1,2)
성경은 그의 아들까지 세 번에 걸쳐서 똑같은 주제를 반복해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절대왕의 손에서 보호해 주셨던 것입니다.
세 번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욕조에 사람을 고문 익사시키고 책상을 탁 치니 억하면서 생명이 날아갔다는 권력!
나약한 한 실존의 그들과의 대립은 참으로 지긋지긋합니다.
거기에서 한 실존이 승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권력자들 앞에서 어떤 방식으로 그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셨는가?
주님은 이 권력자들과 쟁론하셨습니다.
얼마 전 뉴스 시간에 MBC 기자를 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 분도 기사를 많이 썼을 터인데 그 사람을 눈여겨 본 적도 없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 기사들이 말을 들어도 도통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 없는데 쏙쏙 알맹이만 피해 가는 말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MBC 기자가 쓰레빠를 신고 대통령실을 향해 흥분하며 했던 말들은 귀에 쏙쏙 들어왔습니다.
그 기자가 몰상식했다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어쩌고 메너 저쩌고 메너 그 포장지를 다 걷어버리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쓰던 말투로 말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제가 지금도 설교문을 쓰면서 그것을 항시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목사 메너를 갖춘다는 포장지를 씌워서 법꾸라지 모양으로 핵심적인 하나님의 법을 요리조리 피해 다니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유대 회당에서는 MBC 기자가 말하는 그런 식의 토론 훈련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본문에서 보시지만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보내온 엘리트들과 논쟁하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조찬 기도회에서 예의 바른 빈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의 바르게 독재자를 여호수아 같다고 하면 되겠습니까?
아무 데나 머리만 보면 안수하는 독재자의 절친이 되면 되겠습니까?
목사 메너를 지키며.......
이런 논쟁이 실은 사람 죽이는 전쟁을 없애고 구원을 견인할 것입니다.
목사는 성경처럼 코이네 그맄을 사용해야 합니다.
교회 하면 목사가 가운 걸치고 강대상에서 하는 설교만 생각합니다.
주님은 쟁론하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기 위해서 설교와 또한 쟁론을 사용해야 합니다.
저는 설교를 할 때마다 설교란 대단히 위험한 의사 전달 방식이라는 것을 절감합니다.
설교란 대단히 일방적인 의사 전달 방식입니다.
그래서 때로 설교하다가도 제 한계로 인해서 주님의 뜻이 아닌 제 뜻이 필터링 없이 교인들에게 그대로 전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때문에 섬뜩섬뜩함을 느끼고는 합니다.
설교라도 성경의 뜻이 아닌 목사의 뜻이 전해 졌을 때 목사는 교인들로부터 공격당해야 합니다.
즉 쟁론해야 합니다.
쟁론하지 못 하는 목사는 강대상에 서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JMS 신천지나 하나님의 성회나 전광훈이나 통일교나.......
말도 안 되는 제 주장이 설교의 형태로 설치게 되니 이 모양이 된 것입니다.
목사가 전하는 설교까지 성경 말씀 앞에서 공격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그들과 쟁론하신 것입니다.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는 중요한 방식일 뿐입니다.
목사의 말이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에 속아서는 안됩니다.
목사 무오설은 없습니다.
바르트는 세상은 하나님의 나라와 유비의 관계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 유비의 관계가 없는 나라를 목사가 유비의 관계를 전제하면서 이성적 언어를 통해 전달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들은 사실 불가능한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일을 두고서 성경은 성령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제대로 된 전달을 위해 설교와 또 논쟁이 요구되는 것입니다.
논쟁을 피하는 목사는 시장에서 장사를 하든지 망치 들고 집을 짓고 다니든지 딴 직장을 찾아야 합니다.
이 시대에도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전해지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이 종말의 때에 바로 그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3. 백성들이 오면서 이르기를 "자, 가자. 우리 모두 주의 산으로 올라가자. 야곱의 하나님이 계신 성전으로 어서 올라가자. 주께서 우리에게 주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니, 주께서 가르치시는 길을 따르자"할 것이다. 율법이 시온에서 나오며, 주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온다.
4. 주께서 민족들 사이의 분쟁을 판결하시고, 뭇 백성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실 것이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와 나라가 칼을 들고 서로를 치지 않을 것이며, 다시는 군사 훈련도 하지 않을 것이다.
5. 오너라, 야곱 족속아! 주의 빛 가운데서 걸어가자!(사2:3-5)
제대로 된 주의 말씀이 전해지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끝날 것입니다.
남과 북이 전쟁 없이 통일될 것입니다.
상대를 일축하며 일방적인 설교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상대를 토론의 대상으로 인정하고 쟁론하라는 것입니다.
당시에 예수님과 쟁론했던 바리새인 율법학자들을 무슨 파렴치하고 유치한 집단으로 간단히 매도하는 사람을 보면 헛웃음이 나옵니다.
그들은 여러분들에 의해 가볍게 여김을 받을 그런 대상이 아닙니다.
당시 로마의 옥에 갇힌 한 랍비가 있었습니다.
그는 죄수에게 주어지는 소량의 물을 손을 씻는 정결례 의식에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죄수에게 주는 물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막상 마실 물이 사라지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영적인 문제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것이 당장에 물을 마셔서 육체적인 생명을 연장하는 일보다 중요했다는 고백입니다.
이 랍비를 어떻게 파렴치한 잡범으로 본다는 말입니까!
저는 목사지만 그 랍비를 넘어서는 그런 경건이 제게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주님도 그들의 의를 인정하셨습니다.
2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운 행실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의 의로운 행실보다 낫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5:20)
주님도 바로 이 바리새인들의 의를 일정 정도 인정하셨고 그런 그들과 하나님의 나라를 두고 진지한 쟁론을 하셨던 것입니다.
2. 그들은 예수의 제자들 가운데 몇 사람이 부정한 손으로, 곧 씻지 않은 손으로 빵을 먹는 것을 보았다.
2. They noticed that some of his disciples were eating their food with hands that were ritually unclean—that is, they had not washed them in the way the Pharisees said people should.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향해서 일어나라고 하시자 그 죽었던 사람이 무덤에서 걸어 나왔습니다.
한 사람의 도시락을 들더니 5,000명의 장정을 앉혀두고 그 자리에서 다 먹이신 것입니다.
그들이 유대 사회에 주는 영향력은 엄청났습니다.
몇 만의 사람이 이 한 사람을 따라다녔습니다.
이 분의 말씀 한 마디에 이들이 거대한 정치 세력으로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국가 권력이나 종교 지도자들은 소명감을 가지고 이 사람들을 검증할 필요를 느꼈을 것입니다.
실은 이 사람의 기세를 완전히 꺾어둘 필요가 절대적이었습니다.
그를 따르던 백성들을 혼란에 빠뜨릴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 종교적인 것입니다.
제자들 중에 몇 사람이 손을 씻지 않은 채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여섯 명은 정결례를 지키는데 베드로랑 나머지 여섯 사람은 대충 음식을 집어 먹은 것입니다.
주님은 그 일을 대충 넘기시는 것입니다.
그들은 옳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리새인들이 왜 이렇게 흥분하고 있는지 그 종교적 배경을 설명해 줍니다.
이런 면에서 성경은 참으로 친절합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렇게 전통에 대해 설명하는 것입니다.
왜?
성경과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있을 때 여러분에게 구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신지가 목사님 교회 주인이 누구예요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지 네가 주인이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목사님이 주인이시죠 목사님 했습니다.
그런 일을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교회 주인인 나에게 도대체 최저 생계비의 반의반도 안 주면서 어떻게 살라고 하느냐고 불평을 정말로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미자립 교회로만 저를 보내셨습니다.
그렇게 목회하다가 이제 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이 교회의 주인이었습니다.
목사는 교인을 구원으로 이끌도록 부르신 여러분들의 종입니다.
성경조차 이렇게 친절하게 여러분의 하나님의 나라 이해를 위해 봉사하고 있습니다.
3. -바리새파 사람과 모든 유대 사람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켜, 규례대로 손을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3. For the Pharisees, as well as the rest of the Jews, follow the teaching they received from their ancestors: they do not eat unless they wash their hands in the proper way;
4. 또 시장에서 돌아오면, 정결하게 하지 않고서는 먹지 않았다. 그 밖에도 그들이 전해받아 지키는 규례가 많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이나 침대를 씻는 일이다.-
4. nor do they eat anything that comes from the market unless they wash it first.[a]And they follow many other rules which they have received, such as the proper way to wash cups, pots, copper bowls, and beds.[b])
성경은 먼저 그들을 통제하는 법에는 모세의 법과 장로들의 전통이 있다고 이 둘을 구분하십니다.
본래 모세는 이런 말씀들을 하셨습니다.
11. 고름을 흘리는 남자가 그 손을 물로 씻지 않고 어느 누구를 만졌으면, 그에게 닿은 사람은 그 옷을 빨고 물로 목욕을 하여야 한다. 그래도 그는 저녁때까지 부정하다.(레15:11)
그런데 사람들이 이 모세의 말씀을 참조하면서 손 씻는 전통들을 발명해 낸 것입니다.
그것을 두고서 성경은 지금 장로들의 전통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의 말씀에 비해 비중을 낮추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태초에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먼저 요구하신 것입니다.
16.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2:16,17)
나중에 그 말씀을 들은 아담이 그랬는지 이브가 그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더 강력한 전통을 만들어서 지킨 것입니다.
그들이 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2.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
3. 그러나 하나님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창3:2,3)
만지지도 말라는 말을 발명해 낸 것입니다.
뱀은 인간의 범죄의 가능성을 그 뻥튀기 기질에서 본 것입니다.
그 장로들의 전통을 하나님의 법으로 동일시하면서 그들은 그것을 통해 자신의 의를 쌓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지키면서 자신들의 우월성을 과시했고 타인들을 배척했습니다.
그들이 죽지도 않고 살아서 국익을 위해서 바이든이 날리면 이라고 MBC에 기사를 써야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바이든을 바이든이라고 말하는 것을 매국노 짓이라고 흥분한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하는 일이 마녀사냥입니다.
그들이 제 마음에 안 드는 사람들을 골라서 마녀로 만들고 애국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전통을 넘어서 모세까지 재해석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모세까지 그런 식으로 이용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5.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모세는 너희의 완악한 마음 때문에, 이 계명을 써서 너희에게 준 것이다.
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7. '그러므로 남자는 부모를 떠나서, 자기 아내와 합하여
8. 둘이 한 몸이 된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막10:5-9)
딴 여자에게 마음이 있으니까 모세를 들먹이면서 제 아내를 마녀로 둔갑시키고는 하는 것입니다.
모세의 법 모세의 법 하고 다니니 그들이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다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이름을 부르면서 더러운 제 욕심을 잔인하게 정당화 한 것입니다.
그것이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제가 개척할 때였습니다.
개척 멤버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왜 교회를 개척하려고 하십니까?
저는 당시에 그 말에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 은퇴의 나이에 임박해서 그 집사님의 말에 깊이 동의합니다.
저는 교회를 세워서 제 생계의 대책으로 삼으려 했던 것입니다.
교회 개척이라는 말로 포장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면 손 씻는 일을 중동 지역의 모래 먼지를 생각하면서 위생상의 예절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위생상의 문제라면 저 사람 좀 더럽구나 하는 정도였을 것입니다.
지금 이 바리새인과 율법 학자들은 이 제자들이 불경한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떤 그릇은 깨버리고
시장을 다녀오면 물에 잠겨 목욕했고
그리고 그들이 손을 씻는 것은 우리의 손 씻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그것이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기 때문에 팔꿈치까지 닦았습니다.
손을 씻는 것도 주먹을 쥐고 문지르고 그 방식이 따로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방식을 무시했으니 예수님을 문제시 한 것입니다.
물론 이런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의 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잘 알고 있었고 예수님을 맞상대하는 것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뒤에 그를 지지하는 백성들이 있고.......
그래서 그들이 주님께 모욕적인 발언을 한 것이 아닙니다.
이 사건을 그들에게 설명해달라는 예수님께 요청한 것입니다.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이것 좀 설명해 주세요.
5.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이 전하여 준 관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5. So the Pharisee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asked Jesus, “Why is it that your disciples do not follow the teaching handed down by our ancestors, but instead eat with ritually unclean hands?”
우리가 모르는 곳을 갈 때는 먼저 네비게이션을 켭니다.
그 이유는 확실합니다.
목적지를 가는데 네비게이션의 지시를 따라서 교정받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목적지에 제대로 갈 수 있습니다.
네비게이션의 교정을 무시하고 갔다가는 엉뚱한 곳에 가기 마련입니다.
우리의 목표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가자면 죽음을 거쳐 지나가야합니다.
그러니 그 나라에 가 본 사람은 아무도 없고 따라서 그 길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 나라를 알려주는 네비게이션은 성경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바리새인들이 관습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5.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이 전하여 준 관습을 따르지 않고,
5. Why is it that your disciples do not follow the teaching handed down by our ancestors?
그들은 신성한 일이라면서 선지자들을 추모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지켜오던 관습이었습니다.
그 일을 실천하므로 당연히 자신들은 의를 쌓고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 일을 통해서 그들의 의를 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그 관습을 지키는 일이 스스로 선지자를 죽인 이의 후손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47. 너희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너희는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꾸민다.
48. 그렇게 하여 너희는 너희 조상들의 증인이 되며, 그들이 저지른 소행에 동조하는 것이다.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였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꾸미고 있기 때문이다.(눅11:47,48)
생각 없이 관습을 따라던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 행위의 동기를 역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 관습을 교정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때에 배운 뉴턴의 운동 법칙들이 기억나실 것입니다.
그것은 관습이 아닌 관성의 법칙입니다.
제 1 법칙은 물체의 질량 중심은 외부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일정한 속도로 움직인다입니다.
쉽게 말하면 가만 놔두면 움직이던 대로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F=ma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에 변화를 주려면 즉 방향이라도 바꾸려면 이것을 역행하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말해서 무엇이든지 방향을 바꾸려 하면 그것이 순순히 수용하는 법이 없이 저항한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주님께 말씀드린 것입니다.
5. 그래서 바리새파 사람들과 율법 학자들이 예수께 물었다. "왜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이 전하여 준 관습을 따르지 않고,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
5. So the Pharisee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asked Jesus, “Why is it that your disciples do not follow the teaching handed down by our ancestors, but instead eat with ritually unclean hands?”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이 공격적이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의 요구대로 친절하게 설명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사야가 너희 같은 위선자들을 두고 적절히 예언하였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이 백성은 입술로는 나를 공경해도,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6. Jesus answered them, “How right Isaiah was when he prophesied about you! You are hypocrites, just as he wrote:
‘These people, says God, honor me with their words,
but their heart is really far away from me.
주님은 가장 먼저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 같은 위선자들을 참을 수 없다.
야, 이 위선자들아!”
위선이란 얼굴에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의 역할을 하는 일을 두고 말합니다.
집안에서 상을 당했어도 무대 위에서는 각본대로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속에는 정말로 슬픈데 그는 사람을 웃겨야 합니다.
그들의 내면에서는 세속의 것을 원하면서 거룩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주님의 지적하신 내용을 보자면 그들의 종교 행위가 마음과는 동떨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마음에 없는 소리를 종교적으로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두 손 들고 찬양하지만 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기복적 기대로 그 일을 한다든지
목사 장로 채면 때문에 그 일을 한다든지
친구 따라서 그 일을 한다든지
카타르씨스를 한다든지
그래서 성경은 마음을 다해서 진실 되게 이런 표현을 자주 하는 것입니다.
종교 행위와 마음의 불일치 그것에 주님은 대노하셨고 그것을 외식이라고 부르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몰아냈는데 그것은 진심이 없는 종교 기술이었습니다.
주여주여 부르는 그 열심도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은 남을 속일 뿐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입술의 공경함에 스스로 속고 있었던 것입니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마7:22,23)
지금 주님은 너희가 나를 부르지 않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보다 곱절로 많이 불렀다는 것입니다.
곱빼기 큰 소리를 외쳤습니다.
다만 마음에 없는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사탄교를 만들어서 노골적으로 하나님을 적대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정결례를 철통같이 지켰습니다.
그 법보다 더 높은 기준으로 자신을 통제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은 아니었습니다.
겉과 속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성경 공부는 속과 겉을 일치시키는 일입니다.
성경 공부는 껍데기를 종교 교육하는 일이 아닙니다.
한 시간 앉혀두고 주기도문 외우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깊은 곳을 찔러서 변화시키는 일입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양날칼보다도 날카로워서,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 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놓기까지 하며,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향을 가려 냅니다.
13.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고, 모든 것이 그의 눈 앞에 벌거숭이로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앞에 모든 것을 드러내 놓아야 합니다.(히4:12,13)
그 속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일입니다.
관절과 골수를 찔러대는 일입니다.
다시 이르지만 그 근본 정신이 중요합니다.
그 열심 있는 껍데기 종교 행위에 속은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들의 십일조는 십일조의 정신을 피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23.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아, 위선자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다! 너희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정의와 자비와 신의와 같은 율법의 더 중요한 요소들은 버렸다. 그런 것들도 반드시 했어야 하지만, 이것들도 소홀히 하지 말았어야 했다.
24. 눈먼 인도자들아! 너희는 하루살이는 걸러내면서, 낙타는 삼키는구나!(마23:23,24)
7. 그들은 사람의 훈계를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예배한다.'
7. It is no use for them to worship me, because they teach human rules as though they were my laws!’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예배를 폐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드럼치고 소리치고 뜨겁게 드려졌는데 그것이 헛예배였다는 것입니다.
헛된 예배가 있다는 사실을 주의해야 합니다.
예배란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닙니다.
헛된 예배란 자신의 부정의를 정당화하는 악한 방식입니다.
그런 헛된 예배를 드리는 것을 그 예배가 많을수록 자신이 의인인 된 줄로 착각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원인이 있었습니다.
세상의 법을 마치 하나님의 법처럼 가르치기 때문입니다.(because they teach human rules as though they were my laws.)
이단에 빠진 사람들이 하나 같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 늙은이가 메시야인 줄 알았다가 그가 죽으니 이제 제 마누라가 어머니 메시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여자가 강대상에서 내려오더니 사정없이 뺨을 후려치는 것입니다.
정신 나간 이 여자의 짓이 하나님의 징계인 줄 알았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뜻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것에 잘 속는 것은 그것이 교리화 되었기 때문입니다.
몇 장 몇 절에 속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사람의 훈계입니다.
실은 마귀의 훈계입니다.
그들은 손을 씻음으로 자신의 의를 쌓고 있었습니다.
2. 나는 증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데 열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열성은 올바른 지식에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3.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힘을 쓰면서, 하나님의 의에는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4.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사람을 의롭게 해주시려고 율법에 끝마침이 되셨습니다.(롬10:2-4)
중요한 것은 종교의 형식을 남기고 종교의 내용을 대체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헛 예배 즉 종교 형식 때문에 속아 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바리새인과 율법 학자들은 하나님께 경건한 자들로 비추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이 위선자라고 고발하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지킨 바리새인과 그것을 지키지 못한 세리가 있었습니다.
이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가 날리면이 바이든이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정말로 바이든을 바이든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11. 바리새파 사람은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는, 토색하는 자나 불의한 자나 간음하는 자 같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며, 또는, 이 세리와도 같지 않습니다.
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내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13. 그런데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1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의롭다는 인정을 받고서, 자기 집으로 내려간 사람은 저 바리새파 사람이 아니라, 이 세리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눅18:11-14)
하지만 세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지켰던 것입니다.
법을 실천하지 못했던 자신의 부족이 실은 세리의 내면을 변화시킨 것입니다.
겸손하게 만든 것입니다.
종교 행위를 주목하면 안 됩니다.
그것이 대놓고 잔인한 행동을 하게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런 헛된 예배를 부추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살짝 종교의 내용을 대체(exchange)하는 것입니다.
그 수작을 부리는 것입니다.
22. 사람들은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어리석어서,
23.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을 사람이나 새나 네 발 달린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동물의 형상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롬1:22,23)
23. and exchanged the glory of the immortal God for images made to look like a mortal human being and birds and animals and reptiles.(NIV)
물질적 기복주의는 바로 네 발 달린 짐승이나 동물의 형상을 이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이지 세상 보장이 아닙니다.
8.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관습을 지키고 있다."
8. “You put aside God's command and obey human teachings.”
껍데기는 그대로 있고 내용물이 바뀌고 말았습니다.
계명 대신에 제 관습을 지키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주문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단히 안일한 생각을 합니다.
성전에서 드려지면 모조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통해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56. 예수께서, 마을이든 성읍이든 농촌이든, 어디에 들어가시든지, 사람들이 병자들을 장터거리에 데려다 놓고,예수께 그 옷술만에라도 손을 대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병이 나았다.(막6:56)
성전에서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시장터에 세워진 것입니다.
종교에 안주해서 거기에서 거짓 안식을 일삼은 인간에 대해서 주께서 그 성전을 폐하신 것입니다.
장바닥에서 하나님 나라가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장터에 누워있던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옷깃만 스쳐도 나음을 입었습니다.
관습을 지킴으로 써가 아닙니다.
주님은 구원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8. 여러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9. 구원이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은, 아무도 그것을 자랑할 수 없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엡2:8,9)
이 일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진리입니다.
제사장도 같은 죄인입니다.
3. 아론이 거룩한 곳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에는 다음과 같이 하여야 한다. 소 떼 가운데서 수송아지 한 마리를 골라서 속죄제물로, 숫양 한 마리를 번제물로 바쳐야 한다.
4. 그는 모시로 만든 거룩한 속옷을 입고, 그 안에는 맨살에다 모시로 만든 홑옷을 입어야 한다. 모시로 만든 띠를 띠고 모시로 만든 관을 써야 한다. 이것들이 모여서 거룩한 옷 한 벌이 된다. 그는 먼저 물로 몸을 씻고 나서, 그 다음에 이 옷들을 입어야 한다.
5. 그런 다음에야, 그는 이스라엘 자손의 회중이 속죄 제물로 바치는 숫염소 두 마리와 번제물로 바치는 숫양 한 마리를 받을 수 있다.
6. 아론은 자신을 속하는 속죄제물로 수소를 바쳐, 자기와 자기 집안의 죄를 속하여야 한다.(레16:3-6)
아론도 제의를 집행하기 위해 먼저 자신이 이 제사를 집행하는 자로 부적격자임을 선언하고 제의를 집행했던 것입니다.
백성을 위해 속죄 제물을 드리는 자는 먼저 자신부터 속죄해야 했습니다.
자신부터 죄인이라는 시인을 해야 했습니다.
제사장 역시 거저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입고 그 집례가 가능했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죄인이 집례하는 예배에 참여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