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 (삼상 3:1-21)
1.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야카르) 이상(하쪼)이 흔히 보이지(파라츠) 않았더라
야카르는 상품의 가격이 비싸다 라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상품과 같이 되었다는 의미다. 파라츠는 깨뜨리다, 돌파하다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말씀이 뚫고 들어오는 것이다. 하쪼는 계시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시의 상황은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통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을 나타낸다. 그 이유는 제사장들이 하나님과의 교통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2-3.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육체적으로 대제사장 엘리의 나이가 98세였으므로 눈이 어두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영적으로 암흑상태라는 말이다. 그러나 아직 등불이 끄지지 않은 상태이므로 엘리의 영적 암흑상태와 사무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가 나타날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영적인 암흑시대의 이스라엘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엘리는 자기의 처소에 누웠지만, 사무엘은 하나님의 전에 누웠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다는 말은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모습이다.
4-7.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 엘리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는지라 그가 가서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 아들아 내가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누우라 하니라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야다)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하나님의 계시가 엘리에게는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그가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이해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엘리는 사무엘에게 누우라는 말만 되풀이 한다. 엘리의 영적 암흑 상태를 나타낸다. 그러나 사무엘도 역시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계속 엘리 대제사장이 부르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야다는 알다라는 말이지만, 부부가 하나되는 그런 의미의 알다이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신인 합일이 되는 것이다.
8-9.여호와께서 세 번째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로 가서 이르되 당신이 나를 부르셨기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엘리가 여호와께서 이 아이를 부르신 줄을 깨닫고 엘리가 사무엘에게 이르되 가서 누웠다가 그가 너를 부르시거든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 하니 이에 사무엘이 가서 자기 처소에 누우니라
엘리가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을 말해준다. 누우라는 말은 잠을 자라는 말이지만, 가서 누우라는 말은 여호와의 음성을 듣기를 준비하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세번이나 부르시는데, 깨닫지 못한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암흑이 지속됨을 알게한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베드로를 찾아가 세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뚫고 들어오지 못할지라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이 신도들에게 뚫고 들어오지 못할지라도 계속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 말씀은 바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 활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뚫고 들어오는 자는 다름 아닌 참 제사장인 것이다. 오늘날 성도 역시 왕 같은 제사장이다. 십자가의 죽음과 현재적 부활과 연합된 자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돌파된 자인 것이다.
10.여호와께서 임하여(보) 서서(야차브) 전과 같이 사무엘아 사무엘아 부르시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니
보는 임하여 라는 말이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한다. 하나님 나라는 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늘의 생명(부활)이 임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성도에게 이루어지지 않은 자는 하나님 나라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 나라(천국)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믿지만, 그리스도의 재림이 성도에게 이루어짐을 믿지 않는다면, 역시 하나님 나라가 임하지 않은 것이다.
야차브는 서다 라는 의미다. 하나님께서 낮추어서 찾아오시는 것이다. 출애굽기 34장 5절에서는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에 강림하사 그와 함께 거기 서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실새』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낮추어서 육신의 모습으로 인간들에게 찾아오시는 모습이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두번이나 이름을 부르시는 것은 강조를 나타낸다. 당시의 상황이 급박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창세기 22장 11절에서도『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11.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다바르)을 행하리니(아사)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중에 행하신 일은 출애굽 사건이었으며,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출애굽은 세상에 대한 탈출이며, 가나안으로 입성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일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귀가 열려있는 자들은 울림을 받을 것이다. 이 말은 구원과 심판의 의미를 담고 있다. 영적으로 죽은 자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이다. 엘리 집안에 대해서는 멸망이 되지만, 사무엘에게는 구원이 임하는 것이다.
열왕기하 21장 12절에서『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다에 재앙을 내리리니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라』
12.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말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그 날에 그에게 다 이루리라
엘리 대제사장 당시 전쟁에서 법궤를 빼앗기고, 두 아들은 전쟁 중에 죽게되며, 이 소식을 들은 엘리는 뒤로 넘어져서 두개골이 깨어져서 죽고, 엘리의 며느리는 해산하다가 죽게 되는 비극이 찾아온다.
13.내가 그의 집을 영원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은 그가 아는 죄악 때문이니 이는 그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칼랄) 금하지(카하) 아니하였음이니라
칼랄은 엘리의 아들들이 하나님을 저주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엘리가 이를 막지 않았다는 말이다. 하나님을 향한 도적질과 간음은 바로 하나님을 저주하는 일인 것이다. 성전의 것을 도적질하고, 성전에서 다른 불을 하는 일은 영적 간음에 해당하는 것이다. 카하는 눈이 어두워진다는 의미이다. 영적으로 눈이 어두워졌으므로, 엘리의 아들들이 잘못을 저질러도, 잘못인지 깨닫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14.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로나 예물로나 영원히 속죄함을 받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셨더라
제물은 피흘림이 있는 희생제사를 의미하고, 예물은 피흘림이 없는 곡식제사를 의미하는데, 이런 제사로는 속죄함을 얻지 못한다는 말이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을 믿는 자들은 모든 죄를 용서받는데, 계속 앞으로 발생할 죄를 회개하고 예수의 피로 용서를 받아야 한다고 믿는 자들은 희생제사의 의미를 모른채 믿는 자들이므로 속죄함이 없는 것이다. 이를 두고 성령 훼방죄라 한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믿지 않으므로 성령훼방죄인 것이다.
15.사무엘이 아침까지 누웠다가 여호와의 집의 문을 열었으나 그 이상(마라흐)을 엘리에게 알게 하기를 두려워하더니
아침까지 누운 것은 밤을 지세운 것이다. 이상(환상)은 엘리 가문에 대한 멸망에 대한 것인데, 사무엘은 차마 그의 스승에게 말을 하기 두려웠던 것이다. 여호와의 집을 열었다는 말은 이제 사무엘의 시대가 시작된 것을 알려준다.
16-17.엘리가 사무엘을 불러 이르되 내 아들 사무엘아 하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그가 이르되 네게 무엇을 말씀하셨느냐 청하노니 내게 숨기지 말라 네게 말씀하신 모든 것을 하나라도 숨기면 하나님이 네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
엘리와 사무엘의 상황이 역전되는 모양이다. 사실대로 말을 하면, 엘리의 집안이 망하는 것을 나타내고, 알리지 않으면, 사무엘이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 상황이 심판의 내용을 확정하는 것이다.
18.사무엘이 그것을 그에게 자세히 말하고 조금도 숨기지 아니하니 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하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은 전하기 어렵지만 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무엘이 심판의 말씀을 엘리에게 전하니, 엘리가『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설마 자신이 하나님이 지명하신 대제사장인데, 그렇게까지 심판하시겠는가 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열심히 교회를 위해서 일을 하는데, 자신은 심판받는다고 생각하는 교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율법주의, 인본주의, 영지주의에 벗어나지 못한 교인들은 성령훼방죄를 짓고 있으므로 용서받지 못하는 것이다.
19-20.사무엘이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나비)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사무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한 말씀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사무엘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함께 거하는 것은 바로 오늘날 임마누엘 신앙이 된다. 임마누엘 신앙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는 신앙이다. 2천년 전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가 바로 나의 죽음이라는 것과 그리스도의 부활이 곧 나의 부활이라는 것을 믿을 때 임마누엘이 되는 것이다.
단은 이스라엘의 북쪽지방이고, 브엘세바는 이스라엘의 남쪽에 있는 성읍으로서, 이스라엘 전체를 대변하는 표현이다. 나비는 선지자, 예언자이다. 하나님께서 예언자에게 임재하셔서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 말씀은 심판과 구원에 대한 내용이다. 심판은 엘리 집안에 대한 심판이고, 구원은 이스라엘에 대한 구원이 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심판은 거짓 교회에 대한 심판이 될 수 있으며, 구원은 십자가와 부활에 연합되는 자에 대한 구원이 되는 것이다.
21.여호와께서 실로에서 다시 나타나시되(갈라)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다바르)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
갈라는 덮개를 벗겨내다, 드러내다 라는 표현이다. 율법의 덮개로 부터 이제 복음의 말씀으로 여호와께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성경 속에 계시된 말씀(호 로고스)이 곧 하나님이신 것이다. 눈으로 환상을 보고, 하나님을 이상 중에 만났다는 표현보다, 말씀(다바르:호 로고스)중에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깨달을 때 비로서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것이다. 말씀이 뚫고 들어와서 하나님의 임재가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하시고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