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쌀관세화와 관련하여 관세율을 513%로 결정하고 WTO통보하고 협상에 나선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전농등의 농민단체는 강력반발하고 새누리당과 정부의 당정협의화 자리에 계란과 고추가루를 투척하고, 이번주 서울에서 대규모 농민대회를 연다고 합니다.
정부의 513%는 희망사항일뿐 현실이 될지는 가봐야 알것입니다.
이제까지의 수입개방과 관련한 정부의 행태로 보아서는 굴욕적인 협상을 벌일것이 뻔한 일입니다. 굴욕적이며 비참한 결과를 예측하는 것은 어찌보면 아주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과거 이명박정권 당시 미국에서 광우병이 발생했지만 농장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쫓겨왔던 이땅의 관료들의 모습이 이를 잘증명해 줍니다.
또다시 농민과 국민은 속을 것이고 병신? 취급만 받게 될 것은 분명합니다.
정부가 담배값을 인상하는데도 미국정부에 통보해 승인해 얻어야 한다고 합니다.
96년도에 미국정부와 체결한 담배와 관련한 굴욕적인 협상의 결과라고 합니다. 우리가 미국의 식민지라 여기든 여기지않든 우리나라는 결론적으로 완전한 미국의 식민지임에 틀림없습니다. 식민지가 아니라고 한둥 담배값하나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는 정부의 모습이 위안이 될수는 없다고 봅니다.
제가 기억하기에 우리나라에서 농업경기가 제일좋았던 시절은 아마도 90년도 초반기가 아니었나 쉽습니다. 물론 당시의 농민들도 나름의 고충이 많았을 것입니다. 당시에는 국가경제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소값, 쌀값등 농산물값도 지금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현재의 소값이 당시 소값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으며 쌀값은 한참 바닥입니다. 그만큼 농민들의 삶은 피폐화되었고 농촌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농민들은 94년 김영삼정부가 쌀개방을 추진하려하자 말그대로 강력한 대응을 하였습니다. 항쟁수준의 농민학생시위가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농민들은 강력?은 커녕 한쪽에서는 관세화를 수용하고 한쪽은 관세화를 반대하는 반쪽의 모습에다 농민들의 투쟁도 제가 보기에 지리멸렬한 수준입니다.
몇일전 영암을 비롯한 전남의 일부 시군에서 수확전의 나락을 로터리치는 농민시위가 진행되었습니다. 지방뉴스에만 쌀짝 소식이 전해질 정도였습니다. 농민들의 반응이 이러한 것은 위기의식이 부족하기보다는 막을수 없다는 자포자기 의식이 내면에 짙게 깔린 결과라 봅니다. 집단적 단체행동을 통해 얻을수 있는게 없으니 살아갈 대안은 각자 알아서 모색하자는 것이죠.
한국농정의 표준모델? 일본은 몇일전 뉴스에서 보니 농업이 너무 심각하게 파괴되자 지방정부에서 엄청난 지원금을 주면 농촌으로 돌아올 것을 홍보하고 있더군.
시마네현의 경우 일정기간 동안 매월 250만원의 월급을 지급한다고 합니다. 지역의 동문(학교동창회)들이 지원금을 모아 지원에 동참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신들의 고향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우려에서 이지요. 앞으로 얼마남지 않은 한국농촌의 미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농정당국자들이 보기에 아직은 파괴시켜서 없애야 할것들이, 또는 촌놈들에게 빼앗아 갈것이 많다고 판단하는가? 봅니다.
농촌에 무슨일만 터지면 일본으로 달려가던 공무원들이 이문제 있어서는 배워오기를 꺼려하는 것이 한편에 참 우습기도 합니다.
필리핀의 식량정책이 소위말하는 증산정책으로 선회하고 식량생산을 장려해 버려진 땅들에 다시 벼를 심는다고 합니다.
몇해전 식량파동으로 크게 한방을 먹고 나서입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은 필리핀보다 자주권이 없음이 확실해 보입니다.
필리핀보다 훨씬 미개한 미국의 식민지? 인정해야할 우리의 현실입니다.
9월 한달 비가 오지 않고 큰일교차에 따가운 햇살이 연일 나오면서 제가 사는 우적동에서도 벼가 아주 잘 여물어 가고 있습니다.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손바닥만한 논다랑치들에서 누런 황금빛이 돌고 그모습이 보기에 너무도 평온하며 여유로워 보입니다.
해남 나주등의 대표적인 호남의 쌀주산지 들녁에서 도열병이라는 전염병이 심하게 발생해 수확자체가 어렵다고 어제 뉴스에 나오더군요. 수확하는 콤바인 비용이 안나오니 차라리 갈아엎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쌀값을 떠나서 그농민들의 깊은 시름이 생생하게 느껴져 옵니다. 이가을이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로 남는군요.
2014년 시골에서 쌀농사는 가장 쉬운 농사가 되었습니다.
파종에서 수확에 이르는 전과정이 완벽한 기계화에 도달해가면서 쌀농사는 이제 일도 아닙니다. 그래서 한사람이 수만평씩 농사짓는 대농들이 많습니다. 그런다고 해서 그사람들이 무슨 때난 돈을 버는 것은 아닌것 같습니다.
촌사람들은 조수익을 갖고 진짜수익인냥 자랑치는 습성이 있습니다.
쌀농사 2만평을 농사지으면 일억정도 조수익을 내는데 쌀농사지어 1억했다고 자랑질을 합니다. 그러면 멋모르는 도시사람들은 촌놈들이 떼돈을 버는가하고 속게 됩니다. 실제로는 조수익 일억에 비용 8천만원을 제하고 부채의 원금이자 1천만원 이상 갚고 남는것이 입안에 풀칠하기도 힘든 판인데 말입니다.
그래서 일억버는 부자?들이 농한기면 노가다판으로 나갑니다.
어릴적 나락농사하면 제일 기억이 남는 것은 모내기하던 날의 못밥입니다.
일년중 가장 맛있는 걸게 차린 밥상은 모내기날 먹는 못밥입니다. 그날이면 학교가 끝나기를 무섭게 논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시골로 돌아왔던 90년도 후반기만 해도 무안사람들은 마늘,양파를 심은 밭에 이모작으로 나락농사를 지었습니다.
예전에는 이것은 산두쌀이라 불렀지요.
물이 없는 밭에서 자라는 쌀은 찰기가 많이 떨어지고 미질이 좋지 않습니다. 이것이 이후에 무안쌀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드는 결과물이 되기도 합니다.
당시 농민들이 밭에 나락을 심었던 것은 그만큼 쌀값이 좋았기에 그리했던 것입니다. 2004년 쌀값은 정점에 이르는데 2004년까지 농민들은 밭에 나락을 심었습니다. 이후 콩농사를 전환하게 됩니다. 지금은 너나 나나 할것없이 콩농사를 짓지만 말입니다.
이제 한국에서 쌀은 더이상 민족의 생명줄이 아닙니다. 그저 천덕꾸러기가 된 셈입니다.
가정에서는 밥을 해먹지 않고 식당에서 대부분 사먹습니다. 밥을 해먹지 않으니 쌀이 그다지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또는 미질이 좋은 쌀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다 일부 촌놈들의 걱정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쌀의 내용에 상관없이 밥을해서 파는 식당주가 밥을 싸게 잘하는것?이 중요합니다.
요새 대학가 축제에서는 학생들이 운영하는 주점에서 여학생들이 핫팬츠에 가슴골을 드러낸 옷을 입고 일명'오빠'들을 호객행위 한다고 합니다.
과거 대동제라 하여 대학가의 멋과 낭만의 상징이었던 축제가 이제는 색주가?로 변질되어 2014년의 청년학생들의 더러고 굴욕적인 청년상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최악의 막장으로 치닫습니다.
가끔씩 아직도 막장이 끝나기에 부족한가하고 고개를 갸웃둥 해봅니다. 여전히 아직도 치닫을 막장은 많은것 같아 서글프기 그지 없습니다. 차라리 정신줄을 놓고 막장에 편승하는게 낳을지?
우리 자식들에게 무어라 본을 보이며 살아야 하는것인지? 암담합니다.
첫댓글 마지막 남은 생명의 동아줄을 넘기는군요
우적동골짜기 논들입니다
자동차 뜯어 먹고 살겠지요.
자동차를 살리기 위해서 농.축민들이 양보를 했다면 양심있는 넘들이라면 지원금을 알아서 내놔야 하거늘 그저 지들 배불리면 장땡이라는 사업주나 정부나 기업가정신도 없고 국민을 함께 아우르는 군의 마음도 없으니 오로지 한번 권력을 잡아 법부터 바꾸어서 다 해쳐먹겟다는 수작이나 하는 인간들 친일 매국청산 해야죠
뻔뻔함을 넘어 인간말종들이 가지말아야할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했구나 이제는 걸러내는데 힘을 보태야지요
초야로 돌아가서 조용히 살아라고 그게 친일매국의 조상을 가진자들이 취할행위이고 그들또한 자숙하고 살아가도록 질타를 멈추지 말아야지요
친미친일매국노들을 심판할날이 오면 자비와 관용은 절대 안됩니다. 자비관용은 사람에게 쓰는것이고 금수들에게는 금수에 맞는 조처를 해주어야 합니다.
앞으로 중국과 자유 무역 협정 되면 우리농민은 지금도 더 비참 해 집니다 지금 현재도 중국산 쌀 사용 하는 식당 있읍니다
추석때 햅쌀 10kg을 38,000원에 구입하면서
시기가 일러 그런가보다 했는데
그저께도 가격이 비슷하더군요
요즘 산지 햅쌀가격이 얼마인지
무척 궁금하던 참입니다...
산지 쌀값은 20kg기준 46000원입니다. 앞으로 더 떨어질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