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05일 출간
ISBN 9791192096032(1192096037)
쪽수 192쪽
크기 150 * 210 * 10 mm
■ 책 소개(영상 바로보기)
이문길 시인의 산문집 『날은 저물고』에는 인생의 석양 앞에 선 노시인의 가슴속에 쌓인 ‘다 못 할 이야기’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노년의 적막한 일상과 홀로 소요하며 돌아본 삶의 여러 풍경을 담담하게 적은 시인의 글을 한 편 한 편 읽고 나면 뭐라 다 말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속으로 차오른다. 『날은 저물고』의 모든 글은 시인 특유의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가슴을 뒤흔드는 시처럼, 한 편의 산문시처럼, 소박한 문장과 여백의 행간마다, 유한한 우리 인생살이의 참모습과 의미, 삶의 본질에 관한 질문과 대답, 달관과 긍정을 한 폭의 그림처럼 담고 있다.
■ 저자 소개
이문길
1939년생. 서라벌예대 문창과 수료. 서사시집 『복개천』, 시집 『허생(許生)의 살구나무』 『내 잠이 아무리 깊기로 서니』 『하늘과 허수아비』 『꿈도 꾸지마라』 『오목눈이 고향』 『눈물선』 『떠리미』 『헛간』 등 다수. 대구문학상 수상
■ 목차
1
날은 저물고 / 등긁개 / 장날 / 우주 / 생명 / 봄 / 오늘의 운세 / 소쩍새 / 동숙의 노래 / 꿈 / 메구 / 영덕대게 / 등산 / 산에는 / 애국가 / 북극곰
2
손 / 하늘 /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 걱정 / 사람 / 축지법 / 욱일기 / 노벨문학상 / 젖 / 뱀과 알 / 아내의 화장 / 고래 / 문수보살 / 나의 명시 「어」 / 바람 불면 / 운문사
3
남한산성 / 비밀 / 누나 / 체리나무 / 별 / 여자와 술 / 누가 / 아름다운 여자 / 엉겅퀴 / 술 / 경비원 / 하트 / 아내의 장례 / 아버지의 감나무 / 토요일 / 까치
4
팔공산 골프장 / 아리랑과 찬송가 / 홍도 여행 / 맹꽁이 / 웃고 있는 아내 / 무당 / 절추잎 / 갓바위 / 사리 / 막내딸 / 탈북과 월북 / 머리 아파 죽을 뻔했다 / 시인 / 세종대왕 / 화장실 / 누고
■ 출판사 서평
날이 저물고 밤하늘에 있는 별을 볼 때마다 나는 별이 그냥 별만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땅 위에 오래 살며 떠나지 않고 아직 살고 있는 것같이 하늘의 별도 하늘을 떠나지 않고 기다리며 한자리에 오래도록 있는 사유가 있는 것 같다.
내가 지금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을 다 만나보지 못하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다 사랑하지 못하고 내 생애를 끝마치려고 하는 것처럼 별들도 그런 사정이 있어 함부로 자리를 뜨지 않고 자꾸만 자꾸만 깜박이고 있는 것 같다.
한밤중에 별과 별 사이의 공간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디선가 흘러가는 시냇물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파란 붓꽃 피는 초원에 풀벌레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한이 서려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몇 날을 두고 이야기하고 몇백 년을 두고 이야기해도 다 못 할 이야기가 있는 듯하다.
말할수록 말 못 할 이야기가 많아지는 참으로 말해서는 안 되는 말 못 할 이야기 말이다. (「날은 저물고」 전문 )
10년 넘게 파킨슨병으로 투병하던 아내와 사별 이후 홀로 남은 쓸쓸함을 담은 시인의 글은 눈물겹다. 유정물 무정물을 막론하고 시인이 지금 바라보는 대상에는 시인이 느낀 슬픔과 외로움이 함께한다. 마음속에 남아있는 어릴 적 이야기나 살아온 날의 이야기에는 '산다는 것'에 대한 시인의 남다른 서정과 연민의 감정이 담겨 있어 깊은 울림으로 공감하게 된다. ‘*나도 사람같이 사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사람」)라면서도 슬쩍 웃음을 담아 들려주는 노년의 일상에서는 노시인의 호젓한 생활과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로룬 마음가짐이 느껴져서 그 넉넉함에 감탄하게 된다.
…나는 요사이 꿈을 자주 꾼다. 저승 가는 꿈이다. 아내 간 곳을 찾아야 하는데 못 찾는 꿈을 꾸고 나면 남아 사는 것이 슬프다. 어저께 아내가 있다고 가 본 산에는 아내가 없었다. 사람들은 왔다가 쓸쓸히 돌아갔다. 나중 내가 아내 곁에 묻히면 아내와 만날 수 있을까. 없을 것 같다. 아아 산은 알고 있을까. 내가 왔다 간 것을 알고 있을까. 산은 말이 없다. (「꿈」 중에서)
…검둥이는 사람 때문에 조상의 울음소리를 잊어버렸지만 나는 누구 때문에 울음을 잊어버렸는지 알 수가 없다. 봄밤 검둥이 허공 보고 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나도 검둥이처럼 울고 싶어진다. 검둥이 울고 내 울고 검둥이 울고 내 울고 검둥이 울고 내 울고 세상 만물 살아있는 것 모두 다 함께 울고 또 울고. (「봄」 중에서)
…나는 옛날 목사님의 설교에서 축지법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기차 속에서 기도하고 있던 사람이 기차 사고가 나서 사람들이 죽는 아우성 속에서 정신이 들어서 보니 그냥 기도하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참으로 감동했다. 어찌 축지법을 쓰지 않고 그 위험을 뛰어넘을 수 있었으랴. …내 나이 팔십을 넘었으니 뒤돌아보면 내가 축지법을 쓴 것 같다. 나는 나 죽을 때 축지법을 쓰려 한다. 축지법을 써 저 무한 우주를 건너가려 한다. 어쩌면 우주 생성 소멸도 눈 깜짝할 사이가 아니겠는가. (「축지법」 중에서)
최근의 시집 『헛간』(북랜드. 2021)과 마찬가지로 책 제목과 시인의 이름뿐인 아무런 장식이 없는 깨끗한 표지의 산문집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깊은 감동과 사색으로 다가오는, 노시인의 특별하고 귀한 산문집, 『날은 저물고』이다.
…기다려야겠다. 단풍을 보려면 기다려야 되는데 자꾸 눈이 어두워지고 귀도 어두워진다. 쓰고 있는 수필을 끝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오늘 하루 볼 것 다 보았는데 아무것도 본 것이 없는 것 같다. 집 문 앞에 서서 기다리다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여다본다. 아무도 없다. 시계는 혼자 가고 부는 바람에 창문만 덜컹거린다. 누가 가다가 서면 보이는 것이라고 했던가. 서 있으니 아무것도 안 보인다. 가야겠다. 가는 것들과 함께 같이 가야겠다. (「누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