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앓이 꽃
김 영 이
수필은 가슴앓이 꽃이다. 흔히 붓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고도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 얼개도 없이 막연하게 그냥 써지는 것은 아니다. 수필은 엄연히 문학의 한 갈래로서, 그 형식이 자유롭다고는 하지만 전체적인 글의 짜임이 치밀해야 하고 선택된 글감들은 주제를 살릴 수 있도록 조화롭게 짜져야 한다. 문맥이 잘 통하고 글의 흐름이 자연스러워야 쓴 사람과 읽는 사람과의 교감이 잘 이루어지는 만큼 수필을 절대로 쉽게 여기고 만만하게 대할 것은 아니라고 본다.
작가마다 나름대로의 글을 쓰는 독특한 방법이 있겠고 작가는 주제와 소재 선정에 특별히 고심하게 되며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공부해야 함은 당연하다고 하겠다.
나의 글쓰기 습작은 중·고등학교 적 문예반 활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할 때 수필문학 강의는 황순원 선생님께 받았다. 우리 문학사에서 문학과 삶 모두 정갈하고 고매한 분으로 손꼽히고 그 분의 문학이 정금 같이 흠 없는 순수문학으로 빛남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런 분의 수필문학 강의 중에서 가장 잊혀 지지 않는 말씀은 플로베르(Flewbert, 1821~1880)의 ‘일물일어설(一物一語說)'에 관한 것이다. 모든 사물에는 그것만이 지니는 독특함이 있는데 한 사물을 표현함에 있어서는 그것에 가장 알맞은 단어 하나를 골라 써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습작기엔 문학성이 없는 흥미위주의 글은 읽지 말라고 하신 말씀도 기억난다.
그러다 보니 글을 쓴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인식이 내 뇌리에 자리하였다. 때로는 좋은 생각이 떠올라 생각나는 대로 글을 써놓고 보면 맘에 들지 않기 일쑤였다. 또 잘 쓰려고 해본들 잘 되지 않으니 겁부터 나서 아예 글을 쓸 엄두를 못 내기도 하였다. 생각으로만 담고 있다가 보면 누군가 벌써 내 생각을 훔치기라도 한 듯 내 생각보다 앞서 좋은 글을 써서 내놓은 것을 대하곤 할 때마다 낭패감에 젖기도 했다.
등단을 하고 글을 쓰면서 주간지 연재 글이나 흥미본위의 글을 읽지 말라고 말씀하신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훌륭한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습작기에 좋은 문학작품을 많이 읽고 정확한 표현을 위해서 부단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일 거라고 여겨진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타고난 글재주가 남다르게 뛰어난 것도 아니고 많은 습작을 하지도 않았으면서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는 욕심만 가지고 덤벼보기도 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단번에 좋은 글이 되어 나오는 것은 아닌지라 내 자신이 쓴 글을 대하노라면 부끄러워져서 글쓰기를 이 핑계 저 핑계로 미루기 일쑤였다. 주눅 든 사람처럼 얼마간 문학 울타리 밖에서 서성이기만 하노라 오랫동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1986년 한국수필 겨울호에 초회추천을 받고 나서도 선뜻 글쓰기에 전념하지 못하고 1995년 3, 4월 호에 완료추천을 받기까지 더딘 행보를 했다. 등단할 때 심사위원 선생님께서 응모 원고의 잘잘못을 꼼꼼히 지적해 주시는 것을 보고, 수필 한 편 쓰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실감하였다.
등단을 하고서도 좋은 글을 쓰지 못해 오랫동안 머뭇거리고 갈등하다가 요즘은 생각이 좀 바뀌었다. 타고난 글재주가 특별하게 있는 것도 아닐 바에는 글은 꾸준히 써야 필력도 생기는 것이니 초보 자세로 부끄러움조차 무릅쓰고 많이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좋은 생각만 가지고 아무리 궁리를 해 본들 일단 글로 쓰지 않고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게 아니던가.
수필은 삶의 한가운데서 건져 올리는 것으로, 누군가에게 읽혀지게 되는 것이기에 독자와의 진솔한 교감이 있어야 한다. 작가만의 고고한 듯한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글 쓰는 이의 삶과 생각과 마음이 잘 여과되어 글 속에 진솔하고 자연스레 녹아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읽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감동을 줄 수 있는 좋은 수필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의 글쓰기는 내 삶 속에 하나의 텃밭을 일구고 가꾸어 나가는 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집 곁에 작은 텃밭 하나 일구어 씨 뿌리고 물도 주고 풀도 뽑으며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노라면 잔잔한 재미와 기쁨을 맛보게 될 것이다. 땀 흘린 대가만큼 거둬들이며 자연을 배우게 되니 작은 것에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 텃밭에 자라는 식물들에 물도 주고 사랑 주며 나만의 계절을 엮는 그런 심경으로 수필을 대한다.
나의 수필 작법은 이렇다라고 내세울 만한 특별한 게 있는 것이 아니지만 수필 한 편을 쓰며 내가 고심하게 되는 것과 수필 쓰는 과정을 나름대로 간단히 정리해 보는 것이다.
머릿속에 무언가 써보고 싶은 게 떠오르면 아무래도 여러 날 그 생각에 매달리게 된다. 생각에 매달리는 동안 떠오른 단어들이나 착상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간단히 메모를 해 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써야겠다고 맘먹고 컴퓨터 앞에 앉게 되면 머릿속에 간직된 잔상이나 간단히 메모해 두었던 것을 바탕으로 해서 대개는 제목을 먼저 정한다. 체험을 여과시키고 깊은 사고를 통해 얻은 내용의 핵심정리라 할 수 있는 제목을 정하게 된다. 제목을 정할 때 주제를 잘 살릴 수 있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그러는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구성이 짜여지게 되며 전체적인 글의 윤곽이 잡히는 셈이다.
그 다음에는 서두를 어떻게 쓸까 많이 고심한다. 서두 문장을 쓰고 나면 생각을 가다듬어 죽 써 내려가게 된다. 끝 문장 마무리할 때도 고심을 하게 됨은 말할 것도 없다.
내 수필의 글감은 삶의 체험과 자연과의 만남에서 얻어지는 게 많다. 내가 어려서 시골서 자랐기 때문인지 우리의 고유한 정서가 담긴 소재라든가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것과 자연물을 글의 소재로 많이 삼게 된다. 사람과의 만남은 더없이 소중한 체험이기에 글감으로 이어지게도 된다. 여행을 통하여 더 넓은 세계와 만나게 되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자연과 사람과 여행에서의 만남은 내 삶과 글에서 신선한 촉매제가 된다.
한 편의 수필을 완성하고 난 후 대개는 인쇄를 해 가지고 읽어본다. 그냥 컴퓨터상에서 읽을 때 보이지 않던 수정할 점도 잘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며칠 덮어 두었다가 다시 읽어보면 퇴고할 게 더 잘 잡힌다. 전체적인 글의 흐름과 문장이 바르게 되었는지를 먼저 본다. 맞춤법에 어긋나는 것은 없는지, 표현상의 문제점은 없는지, 띄어쓰기는 제대로 되었는지 등등을 관심가지고 읽어보며 퇴고하게 된다.
글을 다 써놓고 읽어보면 대개는 흡족하게 느끼기보다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지만 눈 딱 감고 다음에 잘 써야지 하는 부끄러운 맘 깔고 가슴앓이로 피운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한 편의 수필을 내놓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