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이 노래는 어느새 5.18을 대표하는 노래가 되었다. 윤상원, 박기순 열사의 영혼 결혼식을 위한 노래였던 임을 위한 행진곡은 행복과 웃음만 가득해야 할 결혼식과는 어울리지 않는 듯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장엄하고 웅장하게 울려퍼지는 반주와 구슬픈 가사는 당시 독재정권에 대항하고 민주주의를 꿈꾸다 세상을 떠난 두 명의 강인한 의지를 대변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현대에 와서까지 많은 논란을 자아내고 있다는 사실은 얼핏 알고 있었다. 웹사이트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임을 위한 행진곡 부르지 마라’라는 문장이 나올 정도이니 말이다.(책의 제목이기도 하다.) 심지어 그 검색어를 통해 여러 웹사이트에 접속해보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는 것은 북한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며 임을 위한 행진곡의 ‘임’은 ‘김일성을 의미한다’는 등의 근거없는 주장이 줄줄이 즐비해 있다. 이렇게 많은 논란 속의 주인공, 임을 위한 행진곡은 5.18사건과 많은 관련이 있다.
5.18과 임을 위한 행진곡의 연관성을 바라보기 전에, 우린 5.18이라는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까? 한국 현대사와 민주주의 도서에 근거하면 우리는 그 사건을 복합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단지 광주에서 일어났던 우리나라의 민주시위라는 사실적 관점 뿐 아니라, 세계적인 관점, 국가적 관점, 지역적 관점 등 다양한 시각을 하나로 합친 복합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봤던 적이 있었던가? 당당하진 않지만, 나는 없다. 현재 광주 민주화 운동을 다루는 각종 영화, 드라마, 만화 모두 당시에 있었던 비극적 현실과 잔혹한 폭력만을 극대화 하여 작품을 만들어 관객들에게 있어서 감정적으로 우선시 해 다가갔던 경향이 두드러지게 보이고, 객관적으로 당시의 문제상황을 제기하거나 비판하는 작품은 찾기 힘들었다. (이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작품의 경향이 조금 더 다양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물론 문화 매체의 특성상 폭력성이나 감정적인 표현을 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로 인해 역사에 많은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들의 시각이 단순화되고 당시 상황에 대해 부정확한 정보(픽션 등으로 인한)를 제공하게 되기도 했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5.18사건이 계속해서 논란이 되고 문제 제기가 되는 이유를 물으면 대부분 ‘사람을 그렇게 때리다니, 잔인하잖아.’ 나 ‘많은 사람이 다쳤으니까.’ 그리고 ‘독재잖아’등의 정확한 이유나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 모호한 대답만이 돌아온다. 물론 당시의 잔혹성과 독재 정치가 주된 이유이긴 하지만 이러한 답변의 문제점은 당시 시위가 일어난 배경적 이유에 근거를 두기 보다는 그저 ‘폭력성’에 초점을 두었다는 것이다.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 매체의 이러한 한계로 역사를 바라보는 대중들의 시각이 단순화되고, 역사적 사건들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기 어려워졌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적 사건들을 계속해서 전과는 다른 시각으로도 바라봐야 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렇다면 현재의 우리는 이 임을 위한 행진곡 이라는 노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5월 운동은 문화 운동이라고도 불린다. 그 이유는 노래, 그림과 같은 문화적 매체들이 시위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꽤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사실 문화 매체는 많은 시위 현장에 존재했다. 3.1 운동이 일어난 후 수용소에 갇힌 우리나라 독립 투사들이 독립을 염원하는 곡조를 지어 부르기도 했고, 그나마 최근에 있었던 촛불 시위에서도 사람들이 마음을 모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문화 매체에는 생각보다 많은 힘이 있다. 계속되는 시위로 인한 지친 몸과 마음, 국가권력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흔들리는 결심을 그 자리의 사람들과 노래를 부름으로써 다시 한 번 다잡을 수 있고, 함께 시위를 진행하는 사람들과의 소속감과 공동체의식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건으로 인한 시위가 이루어질 때 이화여자 대학교 학생들이 경찰과 1m가 겨우 될 듯한 거리에서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던 영상이 가장 인상깊었다.) 이처럼 대 혼돈의 시위현장 속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많은 사람들이 당시 넘치는 열정과 사랑, 희생정신으로 인간의 존엄성의 보장을 위한 민주주의 증진에 목숨을 바친 두 열사를 추모하며 그들의 노력과 마음을 전해받고, 분노와 원성을 키웠다. 비록 역사에 당시 5.18민주화운동은 실패했다 기록되었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듣은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그렇지 않다. 당시 인간의 존엄성과 국민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일어났던 시위의 마음가짐은 웅장한 노래의 선율을 타고 현재의 우리에게까지 전해졌고 이 마음을 더욱 견고히 다진 우리 시민들은 다시 불합리를 알아챘을 때 모두 촛불을 들고 일어났고, 끝내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그 누가 광주 민주화 운동이 실패라며 비웃을 수 있겠는가? 그분들의 희생과 염원은 마침내 촛불시위의 기적을 빚어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의미는 당시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뿐 아니라, 현대에까지 당시의 분노와 염원을 전달한다는 데에도 존재한다.
독서 후기는 위의 내용으로 끝이지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덧붙인다. 요즈음 뉴스에 전두환 전 대통령과 광주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수리한 전두환 동상이 15일만에 또다시 머리가 깨진 채 발견되었다던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판과 관련된 내용이라던가 하는 등의 소식을 굉장히 자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도 몇 일 전 오랜만에 TV를 시청하다가 접하게 되었는데 현재에 와 논쟁의 쟁점에 선 ‘헬기 사격’에 대한 내용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굽히지 않고 헬기 사격에 대해 부인하지만 증인 마저 등장하는 바람에 재판에서 굉장히 불리한 상황에 놓였다. 물론 끝까지 지켜보아야 결론을 알 수 있겠으나 이미 대부분의 증거가 당시의 헬기 사격을 증언하고 있어 결과가 어느 정도 유추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이 계속해서 헬기 사격을 부인하는 이유는 헬기 사격을 했음이 증명될 시 계속해서 주장하던 자위권 발동의 논리가 근거로써 사라져버리기 때문이라는 변호사의 발언이 있었다. 과연 이것이 사실이라면 과연 전두환이 과거 자신의 만행을 반성하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