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장은 낡은 군복을 입고 담배를 문 채로 그냥 대충 타면 된다고 했다 두려운 게 없으면 함부로 대한다 망해가는 유원지는 이제 될 대로 되라고 배를 하늘 끝까지 밀어 올렸다 모터 소리와 함께 턱이 산에 걸렸다 쏠린 피가 뒤통수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원래는 저기 저쪽 해 좀 보라고 여유 있는 척 좋아한다고 외치려 했는데 으어어억 하는 사이 귀가 펄럭거리고 너는 미역 같은 머리칼을 얼굴에 감은 채 하늘 위에 뻣뻣하게 걸려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공포가 되었다 나는 침을 흘리며 쇠 봉을 잡고 울부짖었고 너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보면서 무슨 대다라니경 같은 걸 외고 있었다 삐걱대는 뱃머리 양쪽에서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부르지 않았다 내가 다가갈 때 너는 민들레처럼 머리칼을 펼치며 날아가 버리고 네가 다가올 땐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즐겼다 뒷목을 핥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교회 십자가가 네 귀에 걸려 찢어지고 있었다 내리막길이 빨갛게 물들어 일렁거렸다 네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더는 바다가 두렵지 않다고 이 배는 오래됐고 안이 다 삭아버려서 더 타다가는 우리 정말 하늘로 간다고 날아가는 기러기의 등을 보면서 실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너를 보면서 눈 밑에서 해가 타는 것을 느꼈다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았다
고명재 시인의 2020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비틀스의 '옐로 서브머린'이라는 노래가 떠올랐습니다. '위 올 리브 인 어 옐로 서브머린' We all live in a yellow submarine.'이란 노랜데요. 아주 신이 납니다. 그런데 이 시는 옐로 서브머린이 담고 있는 뜻과는 반대의 뜻을 전하는 것 같습니다.
선장은 낡은 군복을 입고 담배를 문 채로 그냥 대충 타면 된다고 했다 두려운 게 없으면 함부로 대한다 망해가는 유원지는 이제 될 대로 되라고 배를 하늘 끝까지 밀어 올렸다
유원지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바이킹 모자를 쓰고 칼을 찬 아르바이트생이겠죠. 그냥 그렇게 이해하면 너무 쉽지 않나요. 자세히 뜯어볼까요? 선장은 낡은 군복을 입고 담배를 물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한때 군인들의 세계였죠. 시인은 중첩의 의미를 읽으라고 뒤에다가 '두려운 게 없으면 함부로 대한다'라는 말을 넣어두었습니다. 당시에 그들은 정말 두려운 게 없는 사람들이었죠. 그렇다면 '배'는 '국민'일까요? 그냥 바이킹들이 타던 '해적선'일까요? 아니면 정말 아무 뜻이 없는 유원지의 '바이킹'일까요?
모터 소리와 함께 턱이 산에 걸렸다 쏠린 피가 뒤통수로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원래는 저기 저쪽 해 좀 보라고 여유 있는 척 좋아한다고 외치려 했는데 으어어억 하는 사이 귀가 펄럭거리고 너는 미역 같은 머리칼을 얼굴에 감은 채 하늘 위에 뻣뻣하게 걸려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공포가 되었다
모터 소리는 사실 묘사입니다. 우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밀려 올라갑니다. 뒤통수에 피가 쏠리는데요. 원래는 여유로운 척, '나 기꺼이 탈 수 있어, 잘 타!' 하고 싶었는데, 억! 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선장을 잘 못 만난 탓일까요? 아니면 배가 오래되어서 그럴까요? 폼 잡던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당신은 저쪽 끝에서 나는 이쪽 끝에서 서로에게 공포가 되었군요. '서로에게 공포'라는 말은 '좌'와 '우'를 나타내는 표현현일까요? 극단으로 치닫는 두 단체가 있죠. 그 두 단체로 인해 사람들은 또 극단으로 나누어집니다. 너무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우리는 한배에 타고 있는데 말이죠.
나는 침을 흘리며 쇠 봉을 잡고 울부짖었고 너는 초점 없는 눈으로 하늘을 보면서 무슨 대다라니경 같은 걸 외고 있었다 삐걱대는 뱃머리 양쪽에서 우리는 한 번도 서로를 부르지 않았다 내가 다가갈 때 너는 민들레처럼 머리칼을 펼치며 날아가 버리고 네가 다가올 땐 등 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즐겼다 뒷목을 핥는 손길에 눈을 감았다
이쪽에서 울부짖어도 저쪽에서는 본체만체입니다. 한 번도 서로에게 애틋한 눈길조차 보내지 않습니다. 당신은 민들레 홀씨 되어 바람 부는 대로 날아가 버리고, 나는 오히려 바람을 즐깁니다. 눈을 감고 모르는 체합니다. '뒷목을 핥는 손길' 같은 표현은 멋지죠.
교회 십자가가 네 귀에 걸려 찢어지고 있었다 내리막길이 빨갛게 물들어 일렁거렸다
종교도 서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아예 찢어지고 있다고 하는군요. '빨갛게 물들어' 일렁이네요. 우리는 언제나 되어야 저 '빨간이'(완곡한 표현입니다)에서 벗어날까요? 온갖 사건들이 모두 그 프레임으로 짜입니다. 마녀사냥과 같은 거죠. 시인이 정말 이런 걸 생각하고 적었을까요? 그를 만나고 싶어요. 왜냐고요, 생각이 같으니까요. 이쪽도 저쪽도 아닌 한배에 타고 있으니까요.
네가 나를 똑바로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더는 바다가 두렵지 않다고 이 배는 오래됐고 안이 다 삭아버려서 더 타다가는 우리 정말 하늘로 간다고 날아가는 기러기의 등을 보면서 실눈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너를 보면서 눈 밑에서 해가 타는 것을 느꼈다
이제 눈이 마주치는군요. 그렇습니다. 함께하면 두려운 게 없죠. 오래됐고 삭아진 배라 하더라도 일렬로 서로 도와가며 날아가는 기러기처럼 당겨주고 밀어준다면 우리는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붉은 해가 우리를 기다립니다.
벌어지는 입을 틀어막았다
그래도 말이죠, 이렇게 애원을 해도 이쪽과 저쪽 양 끝은 정말 답이 없습니다. 아니 할 말을 잃게 만들 때가 많죠. 그럴 때 아예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제발 말 좀 들어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오래된 유원지의 바이킹을 보고 이런 상상을 하다니, 역시 시인들은 창의적이며 발견을 좋아하는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노벨상이 세상에 없던 걸 발견하는 사람한테 준다고 합니다. 시인은 그저 '바이킹'을 보고 극단의 양 끝을 발견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저의 상상일 뿐입니다. 글을 읽으시는 분들, 새로운 발견은 저 우주에 있는 인간이 살 만한 행성을 찾는 일이 아닙니다. 주변에 흔히 보이는 것들에서 '진리'를 찾아야죠. 그런데 그게 쉬우면 저도 이러고 있을까요? 좋은 시 한편 벌써 나왔을 텐데 말이죠. 혹시 아나요? 매일 이렇게 감상을 적다 보면 저도 모르게 시나브로 '시'라는 글자에 푹 빠질지도요. 가만 보니 '시'라는 글자가 사람 인(人)이 벽(ㅣ)에 기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건 제 특허니까 가져가셔서 쓰시지 마세요. 나중에 누가 발표하시면 저의 것이라고 우길 겁니다. 두서가 없으니 말이 길어졌습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이 시를 읽은 제 딸아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바이킹은 '식어버린 사랑'이다. 두 사람은 이제 관심도 없다. 이젠 정말 헤어져야 할 때다. 각자가 처한 현실에 따라 시는 전혀 다르게 읽히는 모양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감상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