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댕이 속
이태억
“남자가 밴댕이 속보다 더 좁아터져서…” 아내의 불만이 터지고야 말았다. 아침 미사를 마치고 기분 좋게 돌아왔다. 찌는 듯이 더운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9월이 되었으나 여름과 다름없고, 추석이 다음 주다. 이런 더위는 70을 살아보았는데 처음이다.
문수산 자연휴양림으로 처가 가족 모임을 왔다. 휴양림의 ‘배롱나무 집’ 앞 주차장은 그늘이 없는 곳이라 차를 세워두기에는 적합지 않다. 과일 등을 차 트렁크에 넣어두었으니 서늘한 곳에 두자고 의기투합 되었다. 마침 산비탈 옆 도로변에 그늘이 짙은 공터가 있다. 주위를 둘러보고 가장 오래 그늘이 지는 곳을 골라 차를 세워두고 ‘배롱나무 집’으로 갔다.
처남, 처형, 처제, 동서 등 8명이 벌초를 겸한 가족 모임을 해마다 한 번, 추석 前週에 휴양림에서 2박 3일을 보낸다. 젊었을 때는 처가 집 거나한 술판이 재미였었다. 희한하게 장인어른과 3형제 4남매 사위들이 술에 강하다. 특별히 나는 장인어른의 술 시험을 거쳐서 셋째 딸을 아내로 얻게 되었다. 누구 하나 술 마다하는 자가 없었으니 그 분위기는 물어 무엇하리오. 더구나 처가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였으니 장인 장모의 사랑을 톡톡히 받았다. 그러나 이젠 형제들 모두 나이가 70이 넘었다. 큰처남은 무릎 수술을 받고 걷기도 힘들어하시지 않나, 형제자매 줄줄이 모두 두, 셋의 병을 친구로 삼아 지내고 있다. 어제 사 온 소주 맥주 막걸리 등 술이 그대로 냉장고에 썩고 있다.
둘째 날 아침, 김천 형님께서 그래도 그냥 있을 수 있냐며 맥주 한 잔을 슬쩍 따르신다. 내가 키를 잡았다. 소주댓병을 두세 병 마셔도 취하지 않으시는 큰처남에게 은근히 무알콜 맥주 한잔을 권했다. ‘이게 술 이가’ 하시더니 결국 소주를 껴안으신다. 슬슬 발동이 걸렸다. 술을 더 사와야 하느니 하다 해가 뉘엿뉘엿해졌다.
먹은 술도 있고 하루 종일 부엌에서 지어 나른 국이며 전이며 고기로 배가 불러 소화 시키자며 산으로 운동하러 갔다. 맨발 걷기도 하며 오솔길을 돌다 왔다. 글라라(아내)와 사이좋게 거닐다 주차한 곳까지 왔다. “저녁 때가 되었으니 ‘배롱나무 집’ 앞에다 차를 옮겨요” 한다.
“내일 아침, 짐 실을 때 옮기자고” 했다. 자동차 키를 방에 두고 왔으니 갔다가 다시 나오기가 귀찮았다. 술도 어지간히 되었고… 사실 운동하러 올라갈 때도 글라라가 차를 옮기자고 했었다. 그러나 차를 번거롭게 옮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내일 아침 ‘짐 실을 때 옮기면 귀찮게 두 번 움직일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옮깁시다” 한 것이다. 그랬더니 “그럼, 내가 옮길께”며 키를 달란다.
‘배롱나무 집’ 현관 창틀에는 방충망이 설치되어있다. 뻑뻑하게 잘 열리지 않았었다. 그런데 방충망을 살짝이라 생각하며 옆으로 밀쳤는데… 이놈이 ‘쌕-’ 하더니 ‘꽝’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난다. ‘어이쿠’ 내가 놀랐다. 나도 모르게 속에서 뜨끔한 불안한 감정이 올라왔다.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글라라의 쇳소리가 들렸다. “저 봐, 그게 싫다고 신경질을 부리고 있어.” “키 줘. 내가 옮겨” 안에 있던 형제들이 무슨 일인가 의아해한다. 갑자기 분위기가 ‘쐐-’해졌다.
무슨 변명이나 긴소리가 사태를 더 복잡하게 만들 것이다. 그냥 조용히 지나가기를 바랄 밖에 없다. 없는 일인 듯 조용히 그렇게 저녁이 지나갔다.
둘만이다. 떠들썩하니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집으로 떠났다. 이제부터다. 조용히 어제 일을 해결해야 한다. 결국 서운했던 지난날들이 되새김 되었고, “나한테 잘 하려고 하지 말랬지! 해달라고 하는 것만 하라고!” “어제도 차를 옮기는 게 뭐가 그리 힘들었어. 하기 싫으면 키를 주면 되었잖아, 왜 식구들 있는데 신경질을 부리냐고! 분위기가 뭐가 되었냐고” 말할 틈이 없다.
‘그놈의 방충망이 내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렇게 열렸다.’ 이제 변명해봤자 소용이 없지만,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 그때 ‘방충망이 갑자기 그렇게 열렸다’라고 말했어야지” 등등 등.
‘나는 내가 싫다. 이렇게 주눅이 든 모습으로 살기 싫다.’, ‘변명도 한 두 번이지 구차하다.’ ‘남자답게 화끈하게 시원하게 살고 싶다.’ 그러면서도 나는 참는다. 왜냐면 여자로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또 여자들은 그동안 얼마나 고달프게 살아왔는지를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퇴직 후 제2의 삶을 살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또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너무도 당연하게 알았던 여자의 삶을 글라라와 하루 종일 같이 붙어 살아보니 알겠다. 얼마나 고달픈지를, 해도 해도 표가 나지 않는 것이 집안일 임을, 밥 먹고 돌아서면 밥때이고 그러니 삼식이가 얼마나 미움을 받아야 하는지를 알게 됐다. 그리고 아무도 여자의 삶을 엄마의 삶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나는 무조건 글라라를 사랑하기로 했다.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의 가장 큰 이상인 줄 안다. 가장 먼저 자신을 사랑하라고 했다. 가까이 있는 아내와 자식을,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배웠다. 또한 알지 못하는 곳에 있는 어두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웃도 사랑하여야 하는 것이 인간이 해야 할 일임을 안다. 곧 나에게 주어진 이상적인 삶은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며 사는 것’이다.
그러나 매일 허송하며 의미 없이 보내는 시간을 본다면 ‘나 자신을 사랑한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작은 일을 배려해 주는 것도 귀찮아하는 나를 생각해 보면 ‘배우자, 아내를 사랑한다’라고도 말 못 하겠다. 이러니 ‘세상 만물을 사랑해야 한다’라는 나의 이상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이상과 너무 동떨어진 지금 현실의 나이다.
남은 삶이 길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이상이 현실과 다르다 하여 나의 삶이 잘못 산 삶이 아니며, 삶을 ‘이상대로 살아야 한다.’라는 책임과 의무를 따라야만 하고, 지워진 것도 아니다.
하루하루를 ‘나답게, 나의 의지로 사는 것’이 ‘나를 사랑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내 말이 맞다, 내가 옳다는 자만심을 버리고, 남이 나에게 해주기를 바라고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시는 거지 근성을 없애고, 다른 사람의 충고에 감사함을 진심으로 표현하고,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양심을 간직하겠다. 무엇보다 불쑥불쑥 솟구치는 불뚝 성질을 버리겠다.
‘사랑으로 가득 찬 삶을 살겠다.’를 되새기며 오늘 하루를 살아가겠다.
첫댓글 가화만사성 이란 말이 살다 보면 진리입니다. 부부가 다툴 때는 남자가 지는 것이 좋습니다. 가정에 더욱 성실하며 멋진 글을 많이 쓰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