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三國志) (110) 조조가 말하는 영웅의 조건
술이 여러 순배 돌아 취기가 도도하게 올라왔을 무렵에 난데없는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으며, 저 멀리 산기슭에서 시커먼 구름이 하늘로 뻗쳐 오른다.
그러자 하인들이 구름을 보고,
"아! 용(龍)이 하늘로 올라갑니다! "
하고 떠들어댔다.
조조는 유비와 함께 난간으로 나와 하늘로 뻗는 구름기둥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유비에게 묻는다.
"현덕, 당신은 용이 있다고 생각하나?"
"옛날부터 용이 있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지만 제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습니다."
"음... 용이란 동물이 있고 없는 것은 나도 모르지만, 천지간에 풍운조화를 일으키는 것이 용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말하는 <영웅>이라는 사람도 용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은데, 현덕은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사리에 합당한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현덕은 오랫동안 천하를 두루 돌아다녔으니 당세의 영웅들을 알 수 있을 것인데, 천하의 제후들 중에서 누가 영웅인지 한번 말씀해 보시오."
"나 같은 사람이 어찌 영웅을 알아 볼 수가 있겠습니까?"
"아니지, 너무 겸손한 말씀이군. 과히 마다말고 말해 보시오."
유비는 마지못해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한다.
"그럼 말해 보지요. 회남(淮南)의 원술(袁術)은 황제를 자처하다가 실패로 끝났지만 한 지역을 제패했으니 영웅이라 할 만 하지요."
"그는 패군지장이오! 무능한 인물이오. 그 자는 얼마가지 않아 나에게 잡히고 말거요."
"그럼 하북(河北)의 원소(袁紹)는 어떨까요? 그는 사세삼공(四世三公)인데다가, 넓은 영토를 가지고 휘하에 수많은 모사와 용장(勇將)을 거느리고 있으니 가히 영웅이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오! 원소는 겉으로는 위엄이 있어 보이나, 원래 담이 작고 결단력이 없어서 큰일을 도모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오. 그런 위인을 어찌 영웅이라 할 수 있겠소?"
"그러면 강하팔준(江夏八俊)의 유경승(劉景昇)은 어떻습니까?"
"유표(劉表)는 허명무실(虛明無實)한 사람이니 영웅이라 볼 수 없소."
"그러면 혈기방강(血氣方剛)한 강동(江東)의 손책(孫策)은 어찌 보십니까?"
"손책은 저희 아버지의 이름을 빌렸으니 진정한 영웅이라 못할 것이오."
"그러면 익주 유계옥(益州 劉季玉)은 어떻습니까?"
"유장(劉璋)은 황실의 종친이라고 하나, 집을 지키는 개에 불과한 사람이라 영웅은 못 되오."
"그러면 장수(張繡), 장로(張魯), 한수(韓遂) 같은 장수는 어떨까요?"
유비의 말에 조조는 소리를 크게 내어 웃는다.
"우하하하, 그런 무리들이야 조무라기 들이니 가히 거론할 바도 못 되오."
"이제는 이들 외에 누가 영웅인지 아무리 생각하여도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조조가 웃으며 말한다.
"내가 말하는 영웅이란 가슴에 큰 뜻을 품고, 지략이 있으며, 위로는 우주(宇宙)의 이치를 꿰뚫어 보고 아래로는 천지의 조화를 다스려야 하오."
"좋은 말씀 입니다. 그러면 승상께서 보시는 당대의 영웅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 천하의 영웅은 ...."
조조는 여기까지 말하고, 손을 들어 유비를 가리키면서,
"지금 천하의 영웅은 현덕 당신과 나, 이렇게 두 사람만이 있을 뿐이오."
하고 빙그레 웃어 보인다. 순간, 유비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과한 말씀입니다. 이 유비가 어찌 승상과 비교되겠습니까?"
그러자 조조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현덕, 내가 사람을 보는 안목이 없다고 생각하시오. 응? 내가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지."
"말씀하십시오."
"우리가 처음 제대로 만난 것이 원소의 동맹군 시절이었소.
그때 서량의 용장 화웅이 도전해 왔을 때, 잇달아 동맹군 장수 셋이 연달아 죽자 동맹군 제후들이 당황 했었소.
그때 당신 아우 관우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단기필마로 화웅을 베어버리고, 그의 머리를 제후들 앞에 던져버렸을 때, 제후들은 모두 놀랐지만 당신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소.
두번째, 내가 오만 철기를 이끌고 서주성을 공격할 때, 서주 자사 도겸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각지 제후들은 관망만 하고, 나 조조와 대적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당신은 오천도 안 되는 군마를 이끌고 와서, 나 한테는 상대가 안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 도겸을 도우러 온거요.
왜? 인의(仁義)때문에!... 바로 인의를 위해 생사를 돌보지 않고 달려온거지.
세번째, 원술이 황제를 칭해, 칙명으로 토벌할 때, 내가 제후들에게 원군을 청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소.
내가 전선에 도착했을 때, 당신이 또 기다리고 있었지.
내가 조서라곤 내리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왔지. 왜 일까?...
당신은 한실의 후예이고, 한실의 역적을 증오했으니까! "
"그건 맞습니다."
"현덕, 인(仁)이란 무엇인가? 나는 그저 그런 줄만 알았소. 있나보다 한 거지...하지만 깨닳았지. 인의가 당신에게 있다면 세상에 인심을 얻을 뿐만 아니라, 살인 무기도 될 수 있다는 걸!...."
조조는 잠시 말을 끊고 유비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을 계속한다.
"당신 무기가 쌍고검 아니오? 내가 볼 때, 하나는 인의 검, 하나는 의의 검, 이 두 자루의 검이 있는데 어찌 당신이 영웅이 아니겠소?"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마침, 그때 천둥이 요란스럽게 울리며 비가 억수로 퍼붓는다.
유비는 천둥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에 들고있던 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유비는 허리를 굽혀 떨어진 저를 주으며,
"하, 부끄럽습니다. 갑자기 천둥소리에 놀라 젓가락까지 놓쳤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 모양을 보고 조조가 웃는다.
"천하의 영웅이 천둥 소리에 놀란단 말인가?"
"성인도 신뢰풍렬(迅雷風烈)은 필변(必變)이라 했으니, 천둥이 어찌 놀랍지 않겠습니까?"
"......"
조조는 그 소리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이 없었다.
천둥을 무서워 할 정도라면 유비도 결코 대단한 인물은 아니라고, 속으로 은근히 비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연?유비가 정말로 천둥이 무서워 저를 떨어뜨렸던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유비는 지금 호랑이 굴에 붙들려 왔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조조가 난데없이 영웅을 논한 것도 유비의 내심을 털어 보려는 술책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유비는 자기가 영웅이 못 된다는 인상을 조조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보인 것이었다.
말하자면 조조보다도 훨씬 깊은 사려를 가지고 조조를 대했던 것이다.
유비가 말없이 생각에 잠긴 조조에게,
"제가 한가지 승상께 궁금한 점이 있는데 물어도 될까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조는 몸을 곳추 세우며,
"말해보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유비는 담담한 표정으로,
"제 생각이 틀림없다면, 승상께서는 수 차례에 걸쳐 저를 죽이려 했는데, 왜 아직까지 살려두는 겁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조조가,
"좋은 질문이오. 아주 제대로 물어봤소. 내가 솔직히 말해주겠소.
첫째, 아까워서 .... 예로부터 영웅은 영웅을 알아 본다 했소.
둘째, 영웅이긴 하나, 재주를 펼칠 힘이 없으니 힘 없는 영웅은 나 조조에게 해를 끼칠 수가 없지, 그러니 당신은 나의 손님으로 매실주나 함께 즐기면 되는거요!"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조조의 이같은 대답을 담담한 표정으로 듣던 유비가 먼저 술잔을 들어 조조를 향해 말했다.
"고맙습니다."
"으 하하하하!"
조조도 웃으면서 술잔을 들어 올려,
"자, 듭시다."
하고 유비와 눈을 마주친 후, 잔을 비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