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 3. 23. ~ | 보유자 인정: 2001년 9월 6일
아, 그 모시의 쪽빛을 무어라 표현했으면 좋을까. 한바다였고 깊고 깊은 가을 하늘이었다..그것은 차라리 큰 슬픔이었다. 나는 정신을 잃고 보고 또 보곤 했다... 그 빛깔, 그 감촉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까. 나는 한 마디밖에 모른다. 꿈결!
- 시인 김지하
자연의 색을 옷감에 담아내는 염색
염색장이란 천연염료로 옷감에 물들이는 장인을 말한다. 조선시대 궁중에서는 염색을 담당하는 전문적인 장인을 두고 있을 정도로 염색은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분야였다. 상고시대 우리나라 염직의 기록으로는 [후한서] 권85 [동이열전]에 화려한 무늬 비단과 자수 놓은 의복을 만들고 금은으로 장식한다는 뜻으로 색깔실을 사용한다는 기록이 있어 염색 기술이 상고시대부터 벌써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 왕은 비단관에 녹의를 입고 금화가 붙은 혁대를 하였으며 대신은 청라관(靑羅冠)이나 비단 장식을 쓰는데 양 옆에 새 깃털을 꽂고 금은으로 장식하였다고 나와 있다. 청라관은 쪽물로 물들인 비단관이고, 왕이 녹의를 입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쪽의 생엽염이나 쪽과 치자나 괴화의 복합염으로 초록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신당서] 동이전 백제조에서는 “왕복은 자색 명주포(袍: 도포)에 청색고(靑色袴: 바지)를 착용하고 여기에 소피대(素皮帶: 염색 안한 가죽혁대)를 매었다.”라고 하였듯이 자색, 청색으로 염색했고, 왕을 비롯한 대신들의 복색은 붉은색 계통이며 이 당시 많이 사용한 색은 자색, 적색, 청색, 황색, 조색, 비색 등이다.
백제시대의 특징은 일반 서민에게 자의(紫衣)와 비색 착용을 금함으로써 치자와 피치자의 구별을 하는 금색법을 남겼다는 점이다. 통일신라 이전의 신라의 공복에 사용되었던 염색은 자, 비, 청, 황, 록, 자, 비, 흑, 적, 청 등으로 직을 표시하는 품계에 따른 색을 사용하였다. 당시 색에 대한 관념이 상당히 발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식물성 염료가 많이 개발되었고 중앙 부서에 도염서(都染署)가 있어 직조된 천에 기량을 다하여 염색 가공을 하였다. 사영 공장과 관령 공장에서 염직물을 생산하였는데 특히 염색을 관장하기 위해 직염국(織染局)에 도염서(都染署)와 상의국(尙衣局)에 장복서(掌服署) 등의 제도가 있어 전문장인인 염료공과 염색공을 두어 염색을 담당케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경북대전 복식금제제도, 경공장에 청염장(靑染匠), 황단장(黃丹匠) 등 염색장이 분업화되어 염색을 색별로 관장하였다. 태종은 국초에 백색을 금지하고, 경천사상으로 인해 쪽염을 많이 했으며 왕복은 자색을 띤 홍색으로 하였고 궁중의 염색 색깔은 오방색, 오간색 등으로 다양한 염색기술을 보였다.
천연염료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문헌에 나타난 염재로 사용한 식물의 종류는 50여종이나 매염제와 염색법에 의해 100여가지의 색채를 낼 수 있음을 기록에서 찾을 수 있다. 천연 염색은 근대화 이후 화학염색의 도입으로 전통의 맥이 끊겼다가 일부 장인들의 노력으로 그 맥을 되살리고 있다.
하늘을 머금은 색, 쪽빛
우리나라 전통 색채 개념은 음양오행적 색채관에 근거를 둔 것으로 다섯 가지의 오정색과 다섯 가지의 간색을 기본색으로 하여 오행(五行)의 원리에 따라 인식하고 사용하였다.이러한 오정색 가운데 청색은 쪽염으로 물들여진 색이다. 쪽염재로 염색을 하여 나타내었던 푸른색 계열의 색명으로는 청색·아청색·갈매색·벽색(碧色)·검푸른색·반물색·심청색(深靑色)·녹색·유록색(柳綠色)·두록색(豆綠色) 등이 있었다. 이중 오색에 포함되는 청색은 오행법상 본위(本位)로 동방을 나타내는 색이라 하여 흰옷을 즐겨 입던 당시 토서민(土庶民)에게 흰옷 대신 항상 권장되었던 색이었다.
궁중에서는 성종 이전까지 왕세자의 복식이 녹색이었고 백관(百官)의 복색이 아청색, 또한 대비 중전의 치마가 남(藍)스란 또는 남(藍)대란이었으며, 청색은 일반에게도 허용되었던 색인 만큼 조관에서 선비 그리고 평민에 이르기까지 널리 사용되었으며, 웃옷으로 입혀졌던 도포의 길복에 청색을 사용하기도 했다. 복식에 사용된 푸른색의 염료로는 남(藍:쪽), 닭의장풀이 가장 널리 사용되었고 그밖에 닥나무의 잎, 수장나무의 열매 등이 쓰이기도 하였다. 특히 쪽은 천연 염료 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으로 견뢰도가 우수하다.
남(藍)빛을 의미하는 쪽의 주성분은 인디고(Indigo : C16H10O2N2)이다. 쪽의 특성은 수분과 열을 가하여 발효시키면 가수분해하여 인독실(Indoxyl)이 생성되며 이 색소물이 공기와 접촉하여 산화시켜 불용성의 염료가 되는 원리이다. 어원으로 보아 인도로부터 수입되었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으며 후에 인디고(Indigo)라고 하여 청색 염료를 지칭하게 되었다. 쪽은 여뀌과 및 마디풀과에 속하는 요람(蓼藍)류의 쪽풀로 1년초 염료 식물이며, 인류 역사상 식물 염료로는 가장 먼저 사용되었다. 품종은 세계적으로 300여 종이나 되지만 우리나라에서 재배하고 있는 품종은 대부분 여뀌과 식물이다. 줄기는 마디가 있고 뿌리 근처에 털이 나와 있으며 키는 60~70cm 가량으로 장타원형 잎이다. 7~8월에 꽃대가 올라올 시점인 이삭형의 꽃이 필 무렵 잎에서 남빛 색소를 분리 추출하여 자연 염료로 널리 이용한다.
쪽염색의 특성은 그 색이 다른 색과는 다르게 자연에서 바로 재현할 수 없다는 데에 있다. 그런 이유로 천연염색 중 쪽염색은 염색과정이 어렵고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여느 천연염료와 달리 자연에서 바로 색을 얻을 수 없기에 녹색풀에서 온갖 쪽빛들을 깨워내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개 가루와 잿물의 매염재로 형성되는 자연 염료로 산화와 환원이라는 화학적 변화를 거치면서 살아 있는 미생물의 발효 작용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고도의 숙련된 경험과 매우 복잡한 공정 과정을 거쳐야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쪽 염료는 예부터 고가에 거래되던 귀한 염색 재료이다. 쪽색을 얻기까지는 노랑→회색→보라→연두→녹색→초록→청록색→파랑→남색으로 변화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쪽 이파리에서 추출한 자연염료로 물들인 쪽빛 옷을 입으면 아토피와 각종 알레르기 증상이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한때 우리나라에서 맥이 끊겼던 쪽 염색의 전통을 살려낸 정관채 선생의 작품은 연한 옥빛부터 짙푸른 현색(玄色)까지 신비한 쪽물의 세계를 오롯이 담고 있다.
우리 땅에서 사라져가는 쪽을 되살린 정관채 선생
중요무형문화재 제115호 염색장 기능보유자인 정관채 선생은 전남 나주시 다시면에서 2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인 샛골마을은 동네가 모두 정씨 친척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증조부로부터 선생까지 4대째 대를 이어 쪽 염색 일을 가업으로 계승하고 있다. 나주샛골지역은 그 주변의 지리적 상황과 천혜의 조건이 완벽히 구비된 쪽재배지이다. 광주를 비롯해 담양, 장성, 화순군 등 영산강을 이루는 물줄기와 바닷물이 합류했던 나주는 여름 장마철이면 홍수의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지역이다. 그런 연유로 홍수대체 식물로 재배되었던 것이 바로 이 쪽이다. 쪽재배지로 한창 성황했던 1900년대 초경에는 영산포 선착장에 전국은 물론 일본, 멀리 중국에까지 쪽 염료를 구입하러 오는 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고 한다. 광복 전까지만 해도 혼수품으로 쪽물로 들인 아청이불을 꼭 해 가지고 가야 할 만큼 인기가 좋아 논이나 밭작물 대신 쪽 풀을 심는 농가가 늘어나 이를 국가에서 금지했을 만큼 성황이었다고 한다.
쪽물 염색으로 유명했던 전남 영산강변의 나주에서 태어난 선생은 대학시절 쪽 농사와 염색을 배웠고, 교직에 몸담으면서도 평생 ‘쪽물장이’ 농사꾼으로 살아왔다. 목포대 미대 1학년이던 1978년 염색을 가르치던 박복규 교수(현 성신여대 재직)에게서 쪽씨를 건네 받은 인연으로 쪽염색 장인의 길을 걷게 된다. 그 쪽씨는 박복규 교수가 민속문화 복원에 앞장섰던 예용해 선생께 얻은 것이었다고 한다. 예용해 선생은 어렵게 구한 쪽씨를 박교수에게 건네며 우리 땅에서 사라진 쪽을 되살릴 곳은 나주밖에 없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박교수가 쪽씨를 키울 학생을 찾다가 마침 나주 다시면 출신인 정관채 선생을 발견하고 쪽 농사를 맡겼던 것이다.
귀한 쪽씨를 받았지만 대학을 졸업할 무렵에야 재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젊은 시절 쪽 농사를 짓고 쪽물을 들이며 살아온 어머니와 할머니의 경험이 밑거름이 됐다. 1984년 정관채 선생은 쪽빛으로 곱게 물들인 무명천을 들고 박복규 교수와 함께 예용해 선생을 만나러 서울로 올라왔다. 그때 예용해 선생은 쪽빛 무명베를 보며 ‘와, 쪽빛이 이런 색이로구나!’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친환경이나 유기농, 생태란 말이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던 시절, 선생은 해마다 쪽 농사를 짓고 쪽물을 들였다.
선생은 가업으로 물려받은 쪽 장인으로 계속 일하면서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초빙교수와 나주시 영산포중학교 미술 교사로 재직 중이다. 대학 졸업 후부터 지금까지 선생은 중·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일하고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쪽 농사와 염색까지 하기가 쉽진 않지만 그나마 방학이 있어 일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의 봉사활동과 수업이 끝나고 나면 바로 쪽공방으로 돌아와 주말이나 방학 때면 늘상 공방에서 염색 장인의 생활로 돌아와 있다. 선생이 현재 공방으로 사용하고 있는 곳은 출생지이자 조상 대대로 이어온 집이기도 하다. 2001년 어느 더운 날 쪽을 베다가 왼손 무명지 윗마디가 잘려나가는 사고를 당한 적이 있다. 잘린 부분을 가지고 곧장 병원으로 달려가 미세접합수술을 받은 덕에 가까스로 손가락을 붙일 수 있었는데, 수술이 끝나고 보니 멀쩡한 손톱이 뽑혀 있었다고 한다. 의사가 쪽물이 든 손톱을 보고 썩은 것으로 착각하여 마취한 김에 손톱까지 뽑았다고 한다. 쪽 염료를 만드는 과정이 한여름 삼복더위에 몰려 있어 집중력이 떨어졌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선생의 공방이기도 한 천연염색전수관 앞과 인근에는 쪽밭이 위치해 있다. 가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삼복더위에 냄새 나고 힘든 노동을 하는 선생을 보고 사람들은 ‘사서 고생한다’며 혀를 찼다고 한다. 부인의 원래 직업은 은행원이었다. 교사와 은행원이라는 안정되고 고상한 직업을 가진 젊은 부부가 쪽물에 매달리자 주변에서는 모두 말렸지만 선생의 어머니만은 지지하고 도와주었다. 선생의 어머니는 염색에 필요한 잿물을 만들기 위해 콩대를 태운 재를 거두다가 세상을 떴다고 한다. 선생은 주변의 염려와 따가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전통을 계승해 온 결과 2001년 당시 공예분야 최연소(당시 42세)로 중요무형문화재 염색장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선생은 현대의 PH나 온도계 없이 즉석에서 침전쪽(쪽 앙금)과정, 발효과정, 스스로 만든 황토 가마에서 구워서 만들고 있는 양질의 석회 만들기와 쪽물염색의 기능 등 쪽 염색 전 과정의 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전통색을 구현하기 위해 찾았던 유물인 철릭과 신발, 쪽 책표지, 저고리, 쪽이불 등의 수집과 더불어 쪽물염색의 기량이 하나도 빠짐없이 나타내 보이는 우수한 장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선생은 부인과 함께 쪽염색의 가업을 이어나가고 있으며 아들 역시 쪽 염색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천연염색 공개강좌, 서울대학교 등 각 대학 특강과 천연염색 전시회 및 시연회 등 작품활동과 천연염색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알리며, 후진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주요 작품
쪽염색원단 30×1830cm
7·8월에 채취한 쪽잎과 굴껍질을 태워 만든 석회 가루를 섞어 삭히면 침전물이 생기는데 이를 잿물과 섞어 아랫목에서 한 달여 묵히면 염액이 완성된다. 여기에 천을 담가 염색을 하는데 천을 염액에 넣을 때는 녹색이지만 천을 물 밖으로 꺼내면 산화되면서 고운 쪽빛으로 변한다.
한국 전통쪽 염색 40×1800cm
한국 전통 기법으로 비단에 염색한 작품
제작과정
나주지역의 쪽염색 작업과정을 살펴보면 팔월 초순경 쪽이 60~70cm 정도 자랐을 때 쪽을 베어 항아리에 넣고 삭히다. 이틀 후 쪽대를 걷어내고 쪽물에 굴껍질을 구워서 만든 석회를 넣으면 색소 앙금이 가라앉으면서 침전 쪽이 생긴다. 이때 항아리의 윗물을 버리고 바닥에 침전된 쪽 앙금을 퍼내 고체 상태가 되도록 물기를 완전히 제거한 뒤 쪽 앙금에 잿물을 넣어 7~10일 동안 발효시키면 색소와 석회가 분리되면서 거품이 생긴다. 이 과정을 ‘꽃물 만들기’라고 하며, 이때 비로소 염료 물감으로 사용할 수 있다. 천을 담가 염색염색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말리기를 반복한다. 반복적으로 염색하여 짙은 색을 얻는다. 처음 꽃물에 염색하면 연녹색이었다가 공기 중에 펴면 녹색·파랑으로 변하며, 가장 진하게 염색하려면 20회까지 반복하지만 보통은 8회 정도로 물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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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쪽풀을 독에 담는다 4) 쪽물(꽃물) 만들기. 쪽물이 발효가 되면 물발이 선다 5) 쪽물 들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