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anne Hébuterne
쟌느 에퓨테른느(Jeanne Hebuterne; April 6, 1898 - January 26, 1920)초상
모딜리아니와 쟌느
36세의 젊은 나이로 요절한 화가,,,모딜리아니
에곤쉴레와 카라밧지오에서 처럼 젊은 천재화가의 옆에는 이상에 대한 처철한 몸부림이
항상 무절제와 자폐로 나타나는 것 같다 .
보티첼리의 영향을 받아 "목이 길어 슬픈" 여인상을 주로 그렸던 모딜리아니는 한때 여류 시인과 용광로 같은 뜨거운 사랑을 했고, 그녀를 모델로 한 인물화에 깊이 빠졌다.
마침내 그는 평생의 모델이 된 아내 쟌느를 만나면서 얼굴이 긴 여인이라는 불후의 캐릭터를 완성한다. '모딜리아니'는 그녀를 대상으로 여러 점의 작품을 남겼다.
왜곡된 얼굴 형태의 우수에 찬 표정 속에는 '모딜리아니'에 대한 순애보 적인 사랑이 녹아 있다.
파리의 몽마르뜨나 몽파르나스지역에 모여 활동하던 `에콜 드 파리(Ecole de paris) 가 자주가던 로톤드(카페 이름)에 한 아름답고 청순한 여인이 그림공부를 위해 몽파르나스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당시 19세의 쟌느는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고 밤색머리를 둥글게 아 올려 다녔기 때문에 ' 느와 드 코코 ' (야자열매라는 뜻) 라는 별명을 가진 그녀는 모딜리아니를 만나 불같은 사랑을 태운다..
잔느 에뷔테른느는 엄격한 카톨릭 가정에서 태어나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유태인인 모딜리아니와 결혼한다
그해 4월에 콜라로시 아카데미 재학 중인 잔느 에뷔테른은 모딜리아니의 생의 반려가 되며 앞으로 삼 년간 로톤드의 맞은 편 그랑 쇼미 엘거리에 셋방을 얻어 같이 살게 된다.
안정된 시기가 찾은 모딜리아니의 독자적인 표현 양식은 급속도로 만개하게 된다.
잔느는 생활의 반려자일뿐만 아니라 그의 예술의 숨결 같은 존재였다.
이듬해 잔느는 딸을 낳는다. 모디는 딸의 이름을 사랑하는 아내의 이름을 따서 잔느라고 지었다.
(이 딸 잔느가 후일 성장하여 미술사가가 되어 모딜리아니 연구의 기초가 될 수 있는 자료들을 모아 만든 평전 『모딜리아니:인간과 신화』의 저자이다.) 이 시기가 모딜리아니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때였다.
쟌느는 화가에게 영혼을 다 쏟아부었고 모딜리아니는 이를 고스란히 화폭에 재생했다. 1919년 무렵 모딜리아니는 파리에서 화가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잔느는 둘째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좋아진 상황과 한 아이의 아버지라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모디는 작품에 대한 열정과 끝없는 음주벽을 놓지 못했다. 임신한 잔느의 모습은 왠지 처연하다. 그 눈동자 없는 눈은 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담아 슬프게 바라보고 있는 듯 하다.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줄게요…"
1920년 1월 24일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딜리아니가 숨을 거둔 그 날밤, 혼인신고도 하지 않은 그녀는 임신을 하고 있었다.
이때 이 두 사람 사이의 이야기를 말하는 많은 전설같은 이야기들이 남아 있는데,
일설에는 모딜리아니가 자신의 아내인 잔느에게 "천국에서도 나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했다는 말도 있고, 잔느가 "천국에서도 당신의 아내가 되어 주겠다"고 말했다는 설도 있지만 확인되지 않은 것들이다.
다만 가톨릭 교육을 받고 자란 임신 9개월의 여자가 남편을 따라 투신자살한 사건은 일대 사건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들 부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이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영혼까지 화폭에 다 쏟아버린 모델의 육신은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낀 그녀는 화가의 사후 하루도 지나지 않아 6층 아파트 창문에서 뛰어 내린다. 뱃속에는 9개월된 아이를 안고서...
Ja Vais Seul Sur Ia Route / Anna Ger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