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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保寧) 땅을 왜 “만세(萬歲) 보령(保寧)”이라고 했을까? [제2편]
2023년 03월 21일
호서(湖西) 최고(最高)의 명승지(名勝地) : 영보정(永保亭)
○ 영보정(永保亭) :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의 역사해설(歷史解說)에 따르면 :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 정상부에 소재한 정자(亭子)이다. ➊ 1504년(연산군 10) 수사 이량(李良)이 처음 세웠으며, ➋ 만력 갑술년(1574, 선조7)에 이흔(李昕)이 보수 ➌ 그 후 여러 차례 보수와 중건이 이어졌다. ➍ 1878년(고종 15)에 화재로 전소되었다. ➎ 2015년 11월에 충청수영성 복원계획에 따라 복원(復元), 완성(完成)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설명(說明)에 따르면 : “영보정(永保亭)”이라는 호서(湖西) 제일(第一)의 명승지(名勝地)에 있었다는 정자(亭子)는, 본래(本來)의 것과는 전혀 다른 “AD 2015년”에 만들어진 21세기(世紀) 작품(作品)을 우리가 지금 보는 것이다.
「선조(先祖)들의 기록(記錄)과는 무관(無關)하게 이름만 같은, 본래(本來)의 것과는 전혀 다른 정자(亭子)가 세워져 있다.」라고 말한다면 잘못된 것일까? 왜냐하면 『옛 기록(記錄)에는 ‘층층(層層)’으로 만들어져 있었다』고 했기 때문이다. 복원(復元)이란 본디 그대로를 회복(回復)시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니, 복원(復元)했다면 층층(層層)으로 만들어졌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영보정(永保亭)”에 대한 옛 기록(記錄)을 보면서, 오늘날의 땅 즉(卽) 지세(地勢), 자연환경(自然環境), 기후(氣候), 토산물(土産物) 등과 함께 비교(比較)해보자. 문제(問題)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충청도(忠淸道) 땅 전체(全體)가 그 땅이, 그 땅이 아니다.”라는 것에 있다.
➤ 한 ‘예(例)’로 :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충청도(忠淸道) 토산(土産)’ 중에서 특이(特異)한 것은 : “자단향(紫檀香)ㆍ백단향(白檀香), 안식향(安息香)” 등인데, 이것들은 모두 “반도(半島) 땅에 자생(自生)하지 않는 식물(植物)들로, ‘중국(中國), 해남도(海南島) 및 남아세아(南亞世亞) 땅에서 자생(自生)’하는 식물(植物) 등에서 얻어지는 귀한 ‘향(香)’이기 때문이다.
➤ ‘보령(保寧) 영보정(永保亭)’은, “층층(層層)”이 아닌 “단층(單層)” 건물(建物)로 복원(復元)되어 있어 옛 기록(記錄)과는 전혀 다른 건물(建物)이 서 있다. 즉(卽),
‘이춘영(李春英)’의 시(詩)에 : 《樓 臺 層 構 鬱 穹 崇 : 층층이 지은 누대 우뚝 하늘에 닿았고, 高 揭 朱 欄 對 碧 峯 : 높이 걸린 붉은 난간 푸른 산 마주했네. 千 尺 獨 臨 三 面 水 : 천 길 높이에서 홀로 삼면 바다 임하네》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즉(卽) “층(層)”이란 뜻은 “층층”을 말한다. 2층(層) 이상(以上)으로 지은 건물(建物)을 말하는 것으로, “여러 층으로 겹쳐서 만들어진 정자(亭子)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단층(單層) 건물과 층층(層層) 건물은 그 모습이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
(1) 정약용(丁若鏞) 왈(曰) : 《영보정(永保亭)의 경치(京峙)는, 조선(朝鮮) 제일(第一)이다.》라고 하였는데,
다산시문집 14권 / 기(記) 영보정 연유기(永保亭宴游記) : 《世之論湖石亭樓之勝者。必以永保亭爲冠冕。: 세상에서 호우(湖右)의 누정의 뛰어난 경치를 논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영보정(永保亭)을 으뜸으로 꼽는다.》
동명집 제9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68수 : 보령의 수령으로 가는 민하를 전송하다〔送閔保寧賀〕: 《永保一亭最奇絶, 朱甍俯映馮夷窟 : 영보정의 모습 가장 기이하고 뛰어나니, 높이 솟은 기와지붕 풍이 굴에 비치리라. 중략(中略)》
충청수영계록(忠淸水營啓錄) 고종(高宗) / 고종(高宗) 5년(1868) / 12월 초1일 : 《공해를 수보한 내역〔公廨修補秩〕영보정(永保亭) 2칸, 능허각(凌虛閣) 4칸, 황학루(黃鶴樓) 6칸》
옥오재집 제3권 / 시(詩) 영보정〔永保亭〕: 《明湖千頃接滄溟, 上有朱欄百尺亭 : 널따란 맑은 호수 바다에 닿았고, 그 위에 붉은 난간 백 척 높이 정자 있네》하였다.
지봉집 제13권 / 홍양록 홍양은 홍주의 별칭이다. 무신년(1608, 선조41) 1월부터 기유년(1609, 광해군1) 4월까지이다.〔洪陽錄 洪陽洪州別名起戊申正月止己酉四月〕영보정〔永保亭〕: 《危亭俯壓海門空 : 높이 솟은 정자가 빈 해문을 굽어보니》 하였고,
輿地圖書 上 / 忠淸道 保寧 形勝 : 《縣東靑蘿洞水營永保亭 : 현(縣) 동(東)쪽에 청라동(靑羅洞)이, 수영(水營)에 영보정(永保亭)이 있다. 》하였다,
『수영(水營)에는 호서(湖西) 제일(第一)의 영보정(永保亭)이 있고, 동(東)쪽에 청라동(靑蘿洞)이 있다.』하였으니 뭔가 청라동(靑蘿洞)에 있었다는 것인데, 그게 뭔가? ‘오서산(烏棲山)과 성주산(聖住山)’ 사이의 ‘만세영화지지(萬歲榮華之地)’였다는 뜻일까? ‘청라(靑蘿)’라는 말 그대로 ‘푸른 담쟁이’로 둘러싸여 있는, 산골 중의 산골 땅, 사시사철 푸르름만을 자랑했던, 쳐다보면 하늘(天)만 바라보이는 그런 땅이 유명(有名)했다는 것일까?
高麗史節要 제5권 / 문종 인효대왕 2(文宗仁孝大王二) 정사 31년(1077) [송 희녕 10년ㆍ요 태강 3년] : 《고만(高巒)은 고만도(高巒島)를 말한다.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 의하면 : 고만도(高巒島) 현(縣) 서(西)쪽 바다 안 22리 지점에 있다.》고 하였다.
➨ 여기서 핵심(核心)은, ‘충청도(忠淸道)와 보령(保寧) 땅(地)’이 “호서(湖西)=호우(湖右)=호중(湖中)의 땅이었다.”는 것에 있다. 『‘호서(湖西)=호우(湖右)’란 호수(湖水)의 서(西)쪽 땅을 말하는 것이고, 호중(湖中)이란 ‘호서(湖西)=호우(湖右)’와 같은 말이다.』
그렇다면 조선왕조(朝鮮王朝)의 남(南)쪽 땅 어디에, 어느 구석에 “서(西)쪽, 동(東)쪽, 북(北)쪽, 남(南)쪽의 땅을 가를 수 있는 거대(巨大)한, 상징적(象徵的)인 호수(湖水)가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즉 ‘호서(湖西)=호우(湖右)’·호좌(湖左)·호북(湖北)·호남(湖南)이 바로 그것이다.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 논자(論者)들에 의한 견강부회【牽强附會 : 이치(理致)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 붙여 자기주장(自己主張)의 조건(條件)에 맞도록 함】의 대표적(代表的) 사례(事例)다.
(2) 일설(一說)에는 :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의 명(明) 장수(將帥) 장량상(張良相) : 악양루(岳陽樓)보다 훌륭하다고 했으며, 가상(賈祥)은 말하기를, 악양루(岳陽樓), 황학루(黃鶴樓)보다도 더 낫다》고 하였다.
➨ 악양루(岳陽樓) [이미지출처 : 중국 위키백과]
➨ 황학루(黃鶴樓)[이미지출처 : 중국위키백과]
➤ 위의 ‘이미지’에서 : 『영보정(永保亭)‥악양루(岳陽樓)‥황학루(黃鶴樓)』 을 비교(比較)해보자! 단층(單層)의 단조로운 건물(建物)과 층층(層層)의 저 높은 건물(建物)과 어떻게 비교대상(比較對象)이 되겠는가?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명(明) 장수(將帥)들이 남긴 시(詩)가 “신안현지”에 남아있다고 하면서 “신안현은 옛 보령의 이름”이라고 사족(蛇足)을 달아 놓았다. 『헌데 “보령(保寧)” 땅을 “신안”이라고 했다는 옛 기록(記錄)을 찾을 수 없다』 는 것이다.
지리지(地理志)에서는 언급(言及)조차 없는 이름들이다. 즉 여지도(輿地圖)의 서(書)【輿地圖書 上 / 忠淸道 保寧 郡名 / 新村, 新邑, 杻城, 新安, 新城】에서 말한다는 보령군(保寧郡)의 이름이라는 “新村, 新邑, 杻城, 新安, 新城”등 중에서 “杻城, 新安, 新城” 등에 대해서는, 지리지(地理志)에서조차 언급(言及)되어있지 않다. [제1편]에서 설명(說明)하였다.
또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서는 ‘홍주관내(洪州官內) 뉴성(杻城)’이라고만 하였지, 그것이 “보령현(保寧縣)의 이름이다”라고 하지 않았다. 도대체 ‘보령(保寧)’이라는 땅의 이름과 “新村, 新邑, 杻城, 新安, 新城, 沙村” 등과 무슨 관련(關聯)이 있는가?
이 모두는 ‘지명이동(地名移動) 과정(過程)’에서 촌극(寸劇)이 벌어진 것이다. 지명(地名)은 확실(確實)한 “연유(緣由), 유래(由來)”가 있는 것이다. ‘제1편’ 글 (7)에서 설명(說明)하였다.
(3) 계곡선생집 제15권 / 행장(行狀) 5수(首) / 추충분의평난 충근정량갈성효절협책호성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겸 영경연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사 세자사 오성부원군 이공 행장(推忠奮義平難忠勤貞亮竭誠效節協策扈聖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兼領經筵弘文館藝文館春秋館觀象監事世子師鰲城府院君李公行狀) :《世子在洪州。欲移駐保寧之水營。使公往審之。公還詭對以爲不可駐。或疑之。公曰。永保亭勝槩冠湖中。恐少主居之。啓異日侈蕩心。識者服其遠識。: 세자가 홍주(洪州)에 있을 적에 보령(保寧)의 수영(水營)으로 옮겨 머물려고 하면서 공으로 하여금 가서 살펴보게 하였는데, 공이 다녀와서는 머물 수 없는 곳이라고 속임수로 대답하였다. 이에 더러 의심을 하자, 공이 말하기를, “영보정(永保亭)은 그 경치가 호중(湖中)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곳이다. 따라서 소주(少主)께서 이곳에 머무르시면 뒷날 방탕하는 마음을 갖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였는데, 이 말을 듣고 식자들이 그 원대한 식견에 탄복하였다.》고 하였는데,
‘호중(湖中)은 곧 호서(湖西)’를 가리킨다고 하는데, 호중(湖中) 땅에 “보령(保寧)”이 있다는 것인데, 여기서 “호중(湖中), 호서(湖西)”라는 말은, 호수(湖水)의 서(西)쪽을 가리키는 말로, “호우(湖右)”와도 같은 말이다.
반도(半島) 땅에, 충청도(忠淸道) 땅에, 이렇게 땅을 나눌 수 있는 상징적(象徵的)인 큰 호수(湖水)는 존재(存在)하지 않는다. 한 마디로 “없다” 즉(卽) 『조선왕조(朝鮮王朝)가 반도(半島) 땅에 없었다는 뜻과 같게 된다.』
(4) 동국여지지 3권 / 충청도(忠淸道) 우도(右道) 홍주진(洪州鎭) / 보령현(保寧縣)
➊ 《형승(形勝) : 바다[海] : 현 서남쪽이 모두 바다이다.【海。縣西南皆海】》라고 하였는데,
보령(保寧) 땅의 지세(地勢)는 “서북(西北), 서(西), 서남(西南)쪽 모두 바다에 임한다.” 북(北)쪽은 홍주(洪州), 동(東)쪽은 청양(靑陽), 남(南)쪽은 서천(舒川)에 임하기 때문에, “서(西)쪽과 남(南)쪽 또는 서남(西南)쪽이 바다(海)라는 기록(記錄)은, 오늘날의 반도(半島) 보령(保寧) 땅이 아니다.” 이러한 지리적(地理的) 위치(位置)나 방위(方位)는 속일 수 없다.
➋ 고려(高麗) 최해(崔瀣)가 일찍이 이 고을로 유배되어 살았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朅來孤嶼上, 旅食度晨昏 : 외로운 작은 섬에 오고 가면서, 나그네살이로 아침저녁을 보낸다 婦矮行如鼈, 民窮貌似猿 : 키 작은 아낙네들 걸음걸이 흡사 자라 같고, 곤궁한 백성들은 얼굴이 원숭이 비슷하네 俗雖乖習尙, 禮或識卑尊 : 풍속은 비록 육지와 다르지만, 예절만은 더러 존비를 분별하네 日落醒煙合, 秋深瘴氣溫 : 해 지자 비린 연기 모여 자욱하고, 가을 깊었는데도 장기(瘴氣)는 후끈하다. 중략(中略)》이라고 하였다.
즉(卽) 이곳 ‘보령(保寧)’ 땅은, 『“아열대성(亞熱帶性) 기후대(氣候帶)”를 가지고 있는 땅이다』라는 이야기다. 반도(半島) 땅은 그 어디에서도 ‘장기(瘴氣)’를 논(論)할 수 있는 지세(地勢)나 기후대(氣候帶)를 가진 땅이 없다.
‘장기(瘴氣)는 장독(瘴毒)’을 말하는 것으로, 대륙(大陸)의 장강(長江) 유역(流域) 및 그 이남(以南) 지방의 아열대성(亞熱帶性) 기후(氣候)를 가진 땅에서 발병(發病)하는 대표적(代表的)인 풍토병(風土病)이다. 이걸 한반도(韓半島)로 옮겨 놓으면, ‘멍청이[聐]중의 멍청이[聐]가 되는 것이다.’
〈瘴氣 [維基百科,自由的百科全書] : 瘴氣,亦稱瘴毒、瘴癘,中文中瘴氣為中醫名詞,疾病地理學之概念,是指中國南方山林間濕熱環境下因某種原因(如動植物腐敗等)而產生的一種能致病的有毒氣體。由瘴氣引起的疾病被稱為瘴氣病或瘴病。瘴病是多種疾病(流行病或部分熱帶病)的總稱〉
➌ 또 보령(保寧)의 토산(土産)에 ‘안식향(安息香)’이 있다. 【土産 : 安息香】
안식향(安息香) : 때죽나뭇과에 속하며 그 수지(樹脂)는 훈향료(薰香料)ㆍ방부제(防腐劑)ㆍ소독용 등으로 쓰인다.
안식향(安息香) : 때죽나무과(科)에 속하는 낙엽교목(落葉喬木)이다. 이 나무에서 나는 진액(津液) 말린 것을 말하는데 약재(藥材)나 향료(香料)로 쓴다.
안식향(安息香) : 안식향나무의 줄기에서 흘러내린 수지(樹脂). 맵고 쓴맛에 성질은 평하여 한방에서 진정제로 쓰임.
안식향나무[출처(出處) : 두산백과] : 쌍떡잎식물 감나무목 때죽나무과의 상록교목[Styrax benzoin] : ‘말레이시아’가 원산지이며, 높이는 25m에 달하고, 나무껍질은 검은빛이 강한 갈색이다. 중략(中略), 나무껍질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유액이 굳은 것을 안식향이라고 하는데, 이것으로 벤조산(안식향산)을 만든다. 안식향의 채취는 같은 나무에서 8∼12년 동안 계속할 수 있다. 수마트라안식향(S. smatrana)에서 채취한 안식향(安息香)은 질이 좋지 않으나, 통킨안식향(S. tonkinensis)에서 채취한 안식향(安息香)은 안식향나무에서 채취한 것과 거의 같다. 벤조산은 향기가 있어 치약·비누·화장품·담배·식품 등의 향료로 이용된다.
➨ 반도(半島) 땅에서 ‘안식향(安息香)’이 난다? 더불어 “보령(保寧)” 땅에 “안식향(安息香)”이 산출(産出)되었다고 한다면 지금 『이 지역(地域)의 유명(有名) 토산물(土産物)로 주민들의 소득증대(所得增大)와 ‘보령(保寧)’하면 안식향(安息香)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을 것이다.』 ‘보령(保寧) 땅에서 안식향(安息香)이 난다’는 이야기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을 뿐이다.
➍ 객관(客館) 조에 : 본조 이춘영(李春英)의 시에 : 《樓臺層構鬱穹崇, 高揭朱欄對碧峯 : 층층(層層)이 지은 누대 우뚝 하늘에 닿았고, 높이 걸린 붉은 난간 푸른 산 마주했네 千尺獨臨三面水 : 천 길 높이에서 홀로 삼면 바다 임하니, 중략(中略)》하였으니,
‘층층(層層)’이란 말은, ‘여러 층(層)’으로 만들어진 정자(亭子)였다는 말인데, 무엇을 근거(根據)로 복원(復元)하였기에 1층(層)의 손바닥만 한 정자(亭子)로 만들어버렸을까? 의문(疑問)이자, 참 답답한 이야기다.
(5) 新增東國輿地勝覽 제20권 / 충청도(忠淸道) 보령현(保寧縣)
➤ 형승(形勝) : 《땅이 협소하고 접해(鰈海) 가에 있다 : 壤 地 褊 小, 濱 於 鰈 海(정대(鄭帶)의 기문)》라고 하였는데,
【국역본(國譯本)을 보면 “서해(西海)”라고 하였다. 이런 것들이 큰 문제(問題)다. 우리 스스로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事實)이다. 속국(屬國)으로, 제후국(諸侯國)의 천천세(千千歲) 국가(國家)로 만들어 버린다. 더 큰 문제(問題)는 이런 것들이 무엇을 의미(意味)하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누굴 탓할 수 있겠는가?】
‘편소(褊小)’란 말은 : ‘좁고 작음’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보령(保寧)’ 땅을 산천(山川) 지세(地勢)가 뛰어나 호서(湖西) 제일(第一)의 명승지(名勝地)라고 한다면, 얼마나 웃기는 이야기가 되어버리는가! 또,
‘접해(鰈海)’라는 말은, ‘가자미(比目魚)가 나는 동해(東海)’를 칭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가자미(比目魚)는, ‘반도(半島) 근해(近海), 열도(列島), 남중국해(南中國海)’ 등지에 분포(分布)한다고 하였다. 왜 꼭 반도(半島)인가? 언젠가 “접해(鰈海)”에 대한 논의(論意)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記憶)하는데…동방(東方)이 반도(半島)를 칭(稱)한다?
➤➤➤ 즉(卽) 『제학(鯷壑)‥제해(鯷海)‥제명(鯷溟)‥접해(鰈海)‥접역(鰈域)』등의 말은, “이아(爾雅)”에서 나오는 말로〔東方有比目魚焉. 不比不行. 其名謂之鰈〕라는 것으로부터 유래(由來)하는 것인데, 그렇다면 『동방(東方)』이 한반도(韓半島) 땅일까?
➊ 제학(鯷壑) : ‘제해(鯷海) 즉 제잠(鯷岑)의 바다’라는 말로, ‘동해(東海) 즉 발해(渤海)’를 가리킨다고 한다. ‘제잠(鯷岑)은 동방(東方)의 별칭’이다. ‘제명(鯷溟) 혹은 접해(鰈海)’라고도 한다.
➋ 제잠(鯷岑) :『한서(漢書)에 회계해외(會稽海外)에 동제학(東鯷壑)이란 땅이 있는데, 이십여 나라로 나누어졌다.』고 하였는데, “회계(會稽)의 해외(海外)에 반도(半島) 땅은 없다.”
‘반도(半島) 땅 제주도(濟州島)’로부터 수천(數千) 리 남(南)쪽 바다에 “東海”라는 바다 이름이 옛 지도(地圖)에 선명(鮮明)하게 표기(表記)되어 있다. 이게 어떻게 “반도(半島) 땅”일까? 『일설(一說)에는 대만(臺灣) 또는 왜(倭)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맞는 말이다.
회계(會稽) 해외(海外)에는 바로 “타이완과 오키나와”가 있다. 이곳이 “반도(半島) 땅”인가? 머저리들, 멍청이들!
➨ ‘대한민국(大韓民國) 사가(史家)’들 스스로 ‘제후(諸侯)의 나라였다’고 평가절하(平價切下)시키며, 선대(先代)를 폄하(貶下)하는 어리석은 짓을 벌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로 국민(國民)들은 중국(中國) 아이들이 대한민국(大韓民國)을 가리켜 ‘중국(中國)의 제후국(諸侯國)이니 속국(屬國)이었다’고 하면, 열을 받고, ‘짱개’니 뭐니 하면서 비속어(卑俗語)를 남발(濫發)한다. 이는 우리 자신(自身)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다. 누굴 탓하나?
➌ 첩해(鰈海) : “우리나라 바다에 첩어(鰈魚)가 난다하여, 우리나라를 첩해(鰈海)니 첩역(鰈域)이니 한다.” 고 하였으니, “이 모두는 우리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➍ 접해(鰈海) : 《이아(爾雅)에, “동방(東方)에는 비목어(比目魚)가 있다.”》하였으므로 동해(東海)를 접해(鰈海)라 칭한다고 하였다. 이아(爾雅)는, 기원전(紀元前: BC)에 기록(記錄)되고 만들어진 고서(古書)로, 전국(戰國)시대와 진한(秦漢) 대의 주석서(注釋書)이다.
『비목어(比目魚) 즉 넙치』는, 두 눈이 한쪽에 붙어 있어, 짝을 짓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不比不行]는 고사(古事)에서 유래(由來)하여, 형체(形體)와 그림자처럼 떨어질 수 없는 친구나 부부(夫婦) 관계를 뜻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고 전한다.
➨ 접해(鰈海)는, “가자미[比目魚]가 나는 바다”라는 뜻으로, 동해(東海) 즉 동방(東方)을 가리킨다. ‘이아(爾雅) 석지(釋地)’에 “동방(東方)에 가자미가 있는데 짝하지 않으면 가지 않는다. 그 이름을 접(蝶)이라고 한다. [東方有比目魚焉. 不比不行. 其名謂之鰈]”라는 말이 나온다.
➨ 〈비목어(比目魚) 즉 가자미는, “황해(黃海), 동해(東海), 남중국해(南中國海), 열도(列島) 등지에 분포(分布)한다.”〉고 하니, 『“접해(鰈海)”란 대륙(大陸)의 ‘황해(黃海)와 동해(東海)’와 남중국해(南中國海)를 지칭(指稱)하는 것이다』라는 정도(程度)는 알고 있어야 한다.
‘동방(東方)’이란 바로 ‘대륙(大陸)의 땅’을 말한다. 이걸 자꾸 “반도(半島)”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서방(西方) 땅에 중국(中國)이 있냐? 그럼 구라파(歐羅巴)는 북(北)쪽에 있냐? 이런 웃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곳이 대한민국(大韓民國)이다.
➤ 토산(土産) : 《안식향(安息香)》: 위의 (4)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설명과 똑같다.
➤ 궁실(宮室) 《객관(客館) 정대(鄭帶)의 〈동헌기(東軒記)〉중략(中略), 다음 해에 비로소 객관과 동서름(東西廩)ㆍ제민당(濟民堂)ㆍ공아(公衙)ㆍ현사(縣司)ㆍ어풍정(馭風亭)ㆍ병기고(兵器庫)ㆍ영어(囹圄 옥(獄)) 등을 지어 이루니, 모두 1백 40여 칸에 달하였다.” 하였다.》
그렇다면 이러한 140여 칸이나 되는 “객관(客官)·동서름(東西廩)·제민당(濟民堂)·공아(公衙)·현사(縣司)·어풍정(馭風亭)·병기고(兵器庫)·영어(囹圄 : 獄) 등의 이런 흔적(痕迹)은 있냐? 있다면 왜 복원(復元)하지 않는 건가? 겨우 생뚱맞게 영보정(永保亭) 하나 그것도 층층(層層)이 아닌 단층(單層)으로 만들어 놓고 복원(復元)이란 말이 과연(果然) 어울리는 걸까?
➤ 누정(樓亭) : 《택국(澤國)에서도 봄을 만나더니 날이 조금은 개는구나. 날마다 누각에 의지하곤 내려갈 줄 모르니, 괴상한 음성 때로 백구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하였다.》
“택국(澤國)” 곧 “물 많은 나라 즉(卽) 소택(沼澤)이나 늪이 많은 나라”라는 뜻으로, 강(江)과 호수(湖水), 택(澤), 소(沼)등이 많은 땅을 묘사(描寫)하는 말이다. 반도(半島) 땅의 충청도(忠淸道) 땅은 “물 많은 곳”이 될 수 없는 자연환경(自然環境)을 가졌다. 바닷가야 어느 곳이든 물 많은 곳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물 많은 곳이란 “강(江)과 호수(湖水), 택(澤), 소(沼)”등이 널려 있는 땅을 말하는 것으로, “반도(半島) 땅은 자격미달(資格未達)이다.”
송(宋)나라 육유(陸游)의 병중간중미성당극명소훈직(病中簡仲彌性唐克明蘇訓直)에 “마음은 택국(澤國)에서 봄에 돌아가는 기러기 같고 몸은 운당에서 아침에 지나가는 중 같아라. : 心如澤國春歸雁, 身似雲堂旦過僧”하였다. 택국(澤國)이란 호수(湖水)나 강(江)이 많은 고장을 일컫는 말이다.
(6) 蓮軒雜稿卷之一 / 雜著 / 永保亭記 : 《是亭也據層崖之上。斷岸千尺。俯瞰長江。洪波萬頃。峯巒周遭。翠屛低列。西望海門。水天相接。島嶼微茫.》에 의하면 : “영보정(永保亭)은 깎아 세운 듯한 벼랑가에 높이 세워져 있었다”고 하였다. 【연헌잡고(蓮軒雜稿) 이의무(李宜茂) [1449년(세종 31) ∼ 1507년(중종 2)] : 1504년 : 가을, 무오사화 이후 國事가 날로 그릇됨을 보고 外職을 구하여 洪州牧使가 되다. 이때 백성을 安業시키기 위해 징수를 더디게 하여 下獄되고 笞刑을 받다.〈永保亭記〉를 짓다. [출처(出處) : 고전번역DB]】
영보정(永保亭)을 직접(直接) 본 분의 이야기다. 〈즉(卽) “깎아 세운 듯한 벼랑가에 높이 세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보령(保寧)에 있는 영보정(永保亭)은, 이름만 같을 뿐, 역사서(歷史書)에 기록(記錄)된 영보정(永保亭)이 될 수 없다는 것은 팩트(Fact)다.』
(7) 잠곡유고 제2권 / 시(詩) ○ 칠언 절구(七言絶句) 111수 / 영보정(永保亭) : 《朝來白鳥喜相呼, 春雨濛濛水滿湖 : 아침 되자 흰 물새들 반갑다고 우짖는데, 촉촉하니 봄비 내려 호수에 물 가득 찼네. 중략(中略)》하였으니,
이곳은 호수(湖水) 가에 세워진 정자(亭子)였다는 뜻이다.
(8) 낙전당집 제7권 / 기(記) / 영보정 중수기〔永保亭重修記〕: 《호서(湖西)의 바다 가까이에 있는 군현을 내포(內浦)라고 하는데, 내포 일대는 산세가 펑퍼짐하여 완만하게 떨어지지만, 오서산(烏栖山)만은 특출나게 내달려서 그 기세가 마치 목마른 용(龍)이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듯하다. 산세가 멈추는 곳에서 고개를 우뚝 쳐들어 천 장 푸른 절벽을 이루다가 물 가운데로 갑자기 들어가서 절로 성(城)과 해자를 이루는데 주변이 몇 리나 된다. 그 천연의 험지를 이용해 성곽을 둘러세우고 화려한 누대를 지은 곳이 수군절도사의 영(營)이다. : 湖西之近海郡縣,謂之內浦。內浦一帶,山勢澶漫,委爲裔落,而獨烏棲山奇拔馳驟,勢若渴龍赴海,於其所止,昻然擧頭,千尋蒼壁,突入水中,自成城塹,周遭數里。因其天險,縈以粉堞,刱爲麗譙者,水軍節度使之營也。》라고 하였다.
(9) 동주집 별집 제1권 / 시(詩) / 영보정 5수〔永保亭 五首〕: 《縹緲御風湖上樓 : 아스라이 바람 탄 호숫가 누대 地窮石斷老龍湫 : 땅 끝나고 바위 깎아지른 늙은 용의 못가에 있네》
역시(亦是) “깎아 세운 듯한 벼랑가에 높이 세워져 있었다”는 이야기다.
(10) 옥오재집 제3권 / 시(詩) / 영보정〔永保亭〕: 《明湖千頃接滄溟 : 널따란 맑은 호수 바다에 닿았고》
(11) 제호집 제9권 / 시화(詩話) [이춘영(李春英)과 임전(任錪)] : 체소의 시 〈등영보정(登永保亭)〉에 이르기를[體素登永保亭詩曰] : 《月從今夜十分滿 : 달은 오늘밤에 가득 채워지고 湖納晩潮千頃寬 : 호수는 만조에 천경이나 넓네》하였다.
○ 많은 조선(朝鮮)의 관리(官吏), 유학자(儒學者)들이 “보령(保寧) 땅의 영보정(永保亭)”에 대한 시(詩)를 남기고 있어, 과거(過去)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 스스로 ‘조선사(朝鮮史)=한국사(韓國史)’를 왜곡(歪曲), 조작(造作)하고, 규모(規模)를 축소(縮小)시키며, 스스로 천천세(千千歲)의 나라로 만들아 가고 있다는 것인데, 이 시간(時間)도 쉬지 않고 진행(進行)되고 있다. 이게 무서운 거다.
➤ ‘호서(湖西)=호우(湖右)=호중(湖中)’ 등으로 또는 ‘호좌(湖左), 호북(湖北), 호남(湖南)’이란 말이 탄생(誕生)될 수밖에 없는… ‘택국(澤國)이나 남국(南國)’ 등의 별칭(別稱)으로 불릴 수 있는… ‘장기(瘴氣)=장독(瘴毒)’이라는 풍토병(風土病)이 발생(發生)할 수밖에 없는 땅은, 모두가 자연환경적(自然環境的) 요소(要素)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러한 땅은, “대륙(大陸)의 동정호(洞庭湖) 주변(周邊)과 장강유역(長江流域)과 그 이남(以南) 지방(地方)”이다. 이건 누구도 부인(否認)할 수 없는 엄연(儼然)한 사실이다.
➤ 특히 ‘동정호(洞庭湖)’라는 거대(巨大)한 담수호(淡水湖)로 말미암아 그 호수(湖水)를 중심(中心)으로 동서남북(東西南北)의 땅에 “호(湖)” 자(字)를 붙여 지명(地名)으로, 별호(別號)로 만든 것이 “호서(湖西)니, 호우(湖右)니, 호좌(湖左)니, 호북(湖北)이니, 호남(湖南)이니, 호중(湖中)” 등이며,
더불어 장강(長江) 유역(流域)을 기준(基準), 강좌(江左)니, 강우(江右)니, 강서(江西)니, 강남(江南)이니, 강북(江北)이니 하는 지방(地方)의 별호(別號)가 탄생(誕生)될 수 있었고,
회수(淮水)나 하(河) 역시(亦是) 이와 똑같다.
‘반도(半島)’ 땅에서 무엇이 이를 만들었다고 보이나? 없는 호수(湖水), 없는 장강(長江), 없는 하(河)를 가지고 상상(想像)으로 지명(地名)이나 별호(別號)를 만든 것인가? 사대사상(事大思想)이나 사대주의(事大主義)에 환장해서?
화(華), 하(夏), 한족(漢族)에 대한 열등의식(劣等意識) 때문에 … …없는 것을 상상(想像)하며 만들어냈다? 이러한 이야기는 바로 내 아버지, 내 할아버지를 가리켜 ‘호래자식’이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바로 역사(歷史) 조작(造作), 왜곡(歪曲)에서 태어난 괴물(怪物)들이다. 즉(卽) 여러 가지 것들을 “반도(半島)”라는 한정(限定)된 땅 안(內)에 넣다 보니 지형지세(地形地勢)나 기후(氣候), 토산물(土産物) 등은 따로따로 놀고, 수만리(數萬里)가 둘레(周) 만리(萬里)가 되는 희한(稀罕)한 이야기들이 전설(傳說)처럼 떠도는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동방(東方)이라면 반도(半島) 땅이요, 해동(海東)하면 발해(渤海)의 동(東)쪽 땅이요, 동국(東國) 하면 반도(半島) 나라(國)요, 접해(鰈海) 하면 반도(半島) 우리나라를 지칭(指稱)한다”하는 말들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이건 모두 우리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고, 지금(只今), 이 시간(時間)에도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다.
이건 모두가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 논자(論者)들의 논리(論理)에서 나온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 ‘동방(東方)과 서방(西方)’은, 또 ‘아세아주(亞細亞洲)와 구라파주(歐羅巴洲)’를 나누는 곳은 ‘우랄산맥[Ural 山脈]’이다. ‘동방(東方)과 서방(西方)’을 나누는 곳 역시(亦是) 같다.
발해(渤海)는 어디에 있는 바다를 말하는가? 고전(古典)에서는 흑해(黑海)와 지중해(地中海)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동방(東方)과 서방(西方)을 나누는 기준(基準)이나 발해(渤海)를 기준(基準) 해 그 동(東)쪽을 해동(海東)이라고 한 것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한 땅이다. 무엇이 다른가?
‘동국(東國)과 서국(西國)’ 또한 그 이치(理致)가 위의 설명(說明)과 똑같다. 또한 ‘접해(鰈海)’란 ‘오늘날의 대륙의 동해(東海)와 남중국해(南中國海) 등지’를 말하는 것이다.
어떻게 “동(東)”자(字)만 나오면 모두가 우리나라를 지칭(指稱)하는 것이고, 제(帝) 자(字)만 나오면 중국(中國) 황제(皇帝)요, 경사(京師)만 나오면 중국(中國) 서울인가? 고전(古典) 어디에서도 이런 기록(記錄)은 없다.
존재(存在)한다는 것은, 후대(後代) 사가(史家)들이 만들어 놓은 소위 주석(注釋)에서만 설명(說明)하고 있을 뿐이다. ‘후대(後代)의 사가(史家)’들이란 19세기(世紀) 말부터 20세기(世紀)에 출현(出現)한 민족주의적(民族主義的) 실증사학(實證史學)을 빙자(憑藉)한 제국주의(帝國主義) 사학자(史學者)들을 말하는 것이다,
○ “보령(保寧) 땅과 영보정(永保亭)”에 대한 글은 오직 한 예(例)에 불과(不過)할 뿐이다. 좀 더 많은 연구를 거치고 나서 근거(根據), 논거(論據), 고증(考證)을 거친 것들을 사용(使用)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態度)가 아닐까?
추측(推測)한다거나, 가정(假定)한다거나, 유추(類推)한다거나 하는 것들은 말 그대로 대충 짐작(斟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대충 짐작(斟酌)하는 것과 엄연(儼然)한 사실(事實)을 기초(基礎)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差異)가 있는 것이다. 시민들 스스로 자발적(自發的)으로 선대(先代) 조상(祖上)님들의 훌륭한 업적(業績)에 대한 자부심(自負心)을 가질 때, 그 지방의 발전(發展) 역시(亦是) 기대(企待)되는 것이 아닐까!
〈지방자치단체(地方自治團體)의 시민(市民)들께서 “만세(萬歲) 보령(保寧)”이란 타이틀은 무엇에 근거(根據)하며, 도대체 그 의미(意味)가 뭔가?〉 하는 질문(質問)에 고증(考證)조차 되어 있지 않은 교지(敎旨)를 근거(根據)로 했다는 궁색(窮色)한 동문서답(東問西答)식 답(答)을 해서야 되겠는가!
누구에게나 설명(說明)될 수 있는, 이해(理解)될 수 있는, 자부심(自負心)을 가질 수 있는, 이런 향토사학(鄕土史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제1, 2편 / 끝]
2023년 03월 21일 [글쓴이 :문무(文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