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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 차 -
1. 마태의 기원
2. 마태의 구조
3. 마태의 신학
1. 마태복음의 기원
마태복음서 기원의 질문에 관한 적절한 해결을 찾아내기 위하여,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일련의 질문에 답해야만 한다: 누가 기록하였으며 기록자는 누구인가? 구성의 때는 언제인가? 다른 전승복음과 복음서와의 관계는 무엇인가? 그러한 각 질문들에 만족한 답변은, 잘 연구되어 질 때 마태복음서 기원의 신비에 가장 그럴듯한 해답을 내어 줄 것이다.
1.1. 파피아스 Logion
방법론적 입장에서 시작되는 전통적인 관점은 사도 마태의 히브리나 아람계의 기록이다. 이러한 전통은 Phrygia에 Hierapolis의 감독 Papias의 증거에서 유래되었다. Papias의 마태에 관한 진술의 기록은 단지 Eusebius에 남아있다. 이것을 읽어보면 "마태는 히브리말로 계시들을 수집하였고 그리고 그것들을 최선을 다하여 해석하였다." 처음 분석에 관해서는 Papias의 전승에서 나타나는데 사도 마태의 복음서 기록은 히브리어나 아람계로 되었고, 그의 연구로 다양한 해석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이것은 분명히 작은 변화가운데 초대교회안에 이해되었다는 것이다.
Irenaeus는 이러한 분석을 증거하였는데, 첫번째 복음서는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교회기초를 세울 즈음이라는 것이다. Eusebius는 Pantaenus에 관한 성인전 확증으로, 전한바에 의하면 유대계 마태복음이 발견되었는데, 아마도 Martholomew을 통하여 인도(또는 아라비아)에서 가져왔을 것이다. 기원 주장의 이러한 전승은 유대인의 신앙인을 위하여 첫 복음서가 쓰여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러한 전승의 과정에서, Eusebius는 그자신의 형편에 의하여 팔레스틴으로부터 마태의 이탈은 첫복음서의 이유이다. 더 나아가서 예루살렘의 Cyril, Epiphanius와 Jerome에 기초하여 마태의 기원의 전승 이해를 지지한다.
최근, 이 전승은 몇가지 해석을 가져다준다. 첫째, 어떤 학파는 주장하기를 사도 마태가 아람어 복음을 기록하였는데 후에 그리스도을 알지못하는 이들을 통하여 헬라어로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이 헬라복음서는 대체로 아람계 복음과 같은 주장을 하였다.
둘째, 다른 주장으로 마태 자신이 예수의 말씀 수집을 원아람어로 구성되었다는 것과 그리고 이것은 후에 번역되었고 그리고 아마도 주후 70년경 마가학파의 전승에 의하여 주장되었다.
세째, 어떤 학자들은 초대기독교 증거의 이러한 해석에 도전하였다. 요컨데 그러한 학자들은 원아람 복음은 증거로부터 불완전한 결론이라며 다투었고 이 말다툼은 마태는 실재부분을 기록하지 않았고 그것은 언어적 증거로 암시되며 그 복음은 헬라말로 독자적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해석을 우리가 파피아스에서 다시 보는데, 초대 교회전승의 많은 자료에서 명백하다.
첫째, 유세비우스 이전 언급에서 마가와 같은이는 "주의 계시말씀의 편집"에 관련하여 빛을 보였는데, 'oracles'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점에서 마태계열과 같이 언급하여 사용하였고, 이것은 대부분 아마도 "마태가 수집한 oracles"은 복음서 전체가 "logia"로 귀착하게되었다는 것인데, 번역물에 두번째 해석은 가망이 없는 논의이다.
둘째, 대부분의 학자들은 추측하기를 "히브리 말로" 복음서의 기록이 히브리나 아람어로 쓰여졌다 할지라도, 최근학문은 사실상 이러한 해석을 뒤집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1) 마태에게서 복음서 번역의 거짓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2) 헬라표현 hebraidi dialekto를 주의깊에 연구하여보면 이것은 아시아의 주요치 않은 정황으로, "히브리 언어"의 의미는 아니나 "히브리 수사학적 문체"이다; (3) 그 정황은 파피아스에서 볼 수 있는데 마태문체와 마가문체을 비교하여 보았고 그리고' (4) "해석"(hermeneusen)에 파피아스의 진술은 대개 아마도 다른 어떠한 해석보다 오히려 마태의 문체의 해석과 전달에 귀착된다. 앞의 마태, 파피아스에 관한 이런 진술은 유세비우스에 의한 것으로, 마가는 베드로의 해석자였다. 이것은 대체로 베드로 말이 마가의 번역과는 같지 않으나 베드로의 말의 해석과 구성은 복음서의 양식이 되었다. un orderly contends composed 구성된 then concern
끝으로 , 대부분 최근 학문은 파피아스 logion에 관하여 말하기를 전승의 번역물로는 부족하기에, 현대의 방식하에서 이해하는 것이다: 마가의 정돈되지 않은것과 비교하여 chreia-문체 복음서, 파피아스의 주장, 마태의 유대적 구성, 정돈된 문체 복음서이다. 그후 원어에는 파피아스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것은 처음 해석이 일치하지 않음은 의미한다. 우리는 모든 가능성으로 십중팔구 마태복음이 원래 헬라와 유대문체로 구성되었음을 안다. 그러나 첫 복음서는 사도를 통하여 구성되었는가?
1.2. 저자는 사도인가?
첫 복음서가 사도에 의하여 기록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명단(Zahn, Lagrnge, Schlatter, Tasker, Albright and Mann, Maier, Gundry, Carson)이 있고 몇몇 학자들은 첫 복음서가 사도 마태에 의하여 쓰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첫째로, 만일 처음복음서의 자료로 마가가 사용되었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은 대부분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사도 마태는 비 사도 자료로부터 빌려오는 것을 필요로 하게된다. 이러한 관찰은 대부분을 관통하는 하나의 진술을 나타내는데 마태는 마가을 사용하였고, 사도적 저서들의 대부분은 마가에 의해 쓰여진 것을 필사하였다는 것이다(마9:9-13; 막2:13-17). 그러나 이것은 어려움인 것처럼 보이는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자료비평적 주장에 의지하였고 이것은 설득에 끝이 아니었다. 만일 어떤 단순한 인정 즉 베드로가 마가 배후에 있고, 그 다음에 마태가 마가를 사용함은 사도적 위엄을 인정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둘째로, 저자가 아람어나 히브리어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헬라어로 기록되었다는 주장으로 그러므로 저자가 사도 마태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중요한 특색을 갖는다: 확실히 이것은 현재 우리의 복음서가 대부분이 원본이 아닌 아람이나 히브리복음이다. 실제로, 이것은 종종 헬라 표현에 기원과 대치하게 되고 이것은 70인역에 의지한다. 그러나 헬라어 기원의 뽀족한 증거로는 이방인 저자의 증명은 아니다. 마태는 조세원으로 여러 언어에 매우 다능하였다. 그 증거는 언어 전면에 조금 입증되었다.
셋째로, 여러 학자들은 그 형태를 지적하는데 그것은 이방인저자에 대한 제안이다. 이것들은 특징을 내포하는데: (1) 첫째복음서의 보편성(2:1-12; 4:14-16; 12:21; 28:19)으로 유대민족의 연결로 정죄 할 때이다(20:1-16; 21:28-32, 43; 27:25); (2) 18:34의 괴롭히는 것은 유대관습이 아니다. (3) 이른바 21:5-7의 잘못된 히브리 댓구의 이해이다. 그리고 (4) 여러 다른 비유대인의 특징이다. 이러한 학자들은 자료의 요점이 유대인저자와 나아가서 이방인 저자로부터 빗나갔다. 그러한 각 증거 조각에 대한 자세한 수행이 없는데 이것은 보편주의도 아니고 비신앙 유대주의에 대적하는 확실한 태도도 아닌 것으로 비유대인 저자성의 흔적을 말하는 것이다. 첫 번째 복음서는 구약예언이나 바울의 서신 자료의 이데올로기가 발견되지 않는데 이것은 분명한 유대의 기원이다.
마지막으로 첫번째 복음서의 저자성 연대 적합성에 대한 대적자의 제안이다. 만일 마태가 마가를 사용하였고, 마가복음이 60년대 후반 68-70년에 쓰여졌다면(예루살렘은 70년이전에 파괴) 첫 복음서는 주후 70년 이후에 쓰여졌을 것이다. 마가복음은 회람과 권위를 얻기에 충분한 시간을 통하여 제작과정에 참작되었으며 대부분의 학자들은 마태복음이 10년 후에 기록되었다고 평가하였다. 만일 마가복음이 60년대 중반에 기록되었다고 인정한다면, 마태복음이 가능한 이른 시기는 75-80년 사이로, 75-85년 사이에는 넓게 보유되었다(Monnard, Grundmann, Davis and Allison). 마태는 그것보다 늦게 저술하였는가? 가능성은 높다. 초기 기독교인들의 흔적으로 마태가 70년 전에 죽었음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리고 전승적으로 원저자성을 주후 85년과 같은 늦은 시기를 포함하지 않는다. less one
다음은 처음복음서가 사도 마태에 의하여 쓰여졌음을 주장하는 과정의 입장이다. 이러한 결론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첫 복음서의 뿌리깊은 저자성에 관한 몇가지 주의할 것이 있다. (1) 최근 기록자가 사도라는 가능성이 마태에게서 파괴되는듯하다. 게다가(2) 이것은 마가복음을 사용한듯 하고 그리고 (3) 이것은 분명히 헬라기원을 주저케 하였으며 게다가 (4) 유대관습존중으로 만들어진 몇몇 문제들은 저자성에 관한 확고한 결론을 드러내는데 머뭇거리게 하였다. (5) 만일 마태가 마가를 사용하였다면 이것은 매우 특별한 것은 마태복음은 마가복음사본을 통한 변종으로 기록되었다(마9:9-13과 막2:13-17)는 것이다. 끝으로(6) 이것은 본문비평을 필요성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첫복음서의 원사본이 마태 저자임을 배제하지는 않는다. 이것에 의미는 정경이나 원본의 해석이 저자성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사적 문제 즉 계시에 관하여 밝혀내지만 그러나 그 빛을 밝혀내는 데에는 아직도 한계가 있다.
2. 마태복음의 구조
지난 20년간 마태학파 학자들은 중요한 토론의 중심에 있었는데 마태복음서의 구조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토론의 요약은 독자들에게 첫 복음서의 온전함을 일견에 얻도록 허락한다. 마태복음의 이해를 위한 네가지 주요 모델을 제안하였다. 다음은 그러한 모델을 개관하고 있는데, 이것은 현존하는 종합적인 제시이다.
2.1. 지리학적 - 전기적
오래 되였고 간단한 모델은 지리학적 - 전기적 모델이다. 이것은 예수의 삶의 외형을 제시하였고 예수의 갈릴리와 예루살렘에서의 사역이 마태복음서에 구성되었음을 제시하고 있다. 마태복음에 관한 해석(1912)을 W.C. Allen은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다.
1. 메시야의 탄생과 유년시절(1:1-2:23)
2. 사역을 위한 예배(3:1-4:11)
3. 갈릴리 회중사역(4:12-15:20)
4. 갈릴리 인근에서의 사역(15:21-18:35)
5.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19:1-20:34)
6. 메시야 삶의 마지막날(21:1-28-20)
마태에 관한 전망은 여러 특징으로 지배되는데" (1) 그 관점은 19세기와 20세기 초기것으로 예수 삶의 관점이다; (2) 예수의 삶은 매우 우월하였는데 그것은 마태로 부터 누가의 특징을 발견하게되고, 그리고 마태는 모든 여행움직임대하여 진지하지 않게 대처하지는 않았다(마19:1-20:34); (3) 지난 2세기동안 복음서의 연구과정에서 복음주의의 다양한 기여는 더욱 주목을 받았고, 그리고 이러한 마태의 견지는 부족함을 끝마치게 하였다. 그 결과로, 오래된 해석들의 사용은 이러한 본질을 약술하게 하였고, 오늘날에 이르게 하였다. 다소, 이것은 인정되었는데 그것은 19세기 복음서 연구의 선입견을 반영하는 접근이다: 어떻게 예수의 삶을 구성 할 것인가?
2.2. 5부분 강화
마태학파 학문은 B.W.Bacon이 5가지 제목 모델(1918과 1930)을 제안할 때 변화하였다. Bacon은 완전히 새로운 윤곽을 소개하였는데, 마태의 근거에 분명한 이야기체와 강화사이의 교체이다. 게다가, Bacon은 주장하기를 마태는 기독론을 드러내는 경향의 다섯가지 중요한 강화를 사용하였다: 예수는 새로운 모세로 새로운 율법을 교회에 준다. Bacon는 제안은 다음과 같다.
서론(1:1-2:23)
1. 1권: 제자신분에 관하여(3:1-7:29)
2. 2권: 사도신분에 관하여(8:1-11:1)
3. 3권: 계시의 숨김에 관하여(11:2-13:53)
4. 4권: 교회관리에 관하여(13:54-19:1a)
5. 5권: 심판에 관하여(19:1b-26:2)
결론(26:3-28:20)
격하고통과 부활이야기로(26:2-28:20)부터 떨어진 결국의 결론으로, Bacon은 마태고유의 구조 사고연구의 적중으로 인한 마태학파연구의 큰 증진을 만들어냈다. 따라서, 우리는 Bacon에게 신세를 졌는데 우리는 마태의 주요 구조을 구성하는 강화에 주목한다(7:28; 11:1; 13:53; 19:1; 26:1). 우리는 또한 Bacon를 신뢰하는데 마태의 구조적 방식에서 만족한 열쇠를 평범한 관찰로부터 마태 안에 이야기와 강화사이에 분명한 교체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마태의 다섯 강화 배후에 오경모형의 Bacon의 제안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게다가 그가 만든 관점은 변형되었다.
2.3. 중심적 / 집중적
문학적 분석의 경향을 예상한다면, C. H. Lohr은 마태복음서가 중심적으로 편집되었다고 제안하였다. 그것은 각 초기 복음서의 장이 마지막 장과 관계가 되었고 중심으로부터 역순으로 뒤집어 편집되었다는 것이다.
1. 이야기: 탄생과 시작(1-4)A
2. 설교; 축복, 천국의 시작(5-7)B
3. 이야기: 권위와 초대(8-9)C
4. 설교: 선교(1)D
5. 이야기: 이세대를 거절(11-12)E
6. 설교: 천국의 비유(13)F
7. 이야기: 제자를 인정(14-17)E'
8. 설교: 공동체 강화(18)D'
9. 이야기: 권위와 초대(19-22)C'
10. 설교: 고뇌, 하나님나라의 임재(23-25)B'
11. 이야기: 죽음과 부활(26-28)A'
Lohr의 이론은 몇가지 중요한 특징을 갖는다. 그 외에도 마태의 이야기와 강화사이의 구조적 변형을 인정하며, 마태의 다양한 장과 다양한 주제 사이의 연결을 관찰할 것을 제의하는데 그것은 마태 개발이다. Lohr은 본문자체의 연대적 고유 특징의 주의에 따른 넓은 비평을 불충분하게 접근하였고 게다가 다양한 장 연결은 공상이다. 어떤 예는 충분하다: 이것은 말하면 그것은 1-4장으로 탄생과 시작 그리고 26-28장의 죽음과 재탄생 장의 구조를 말할수 있는데 그러나 이것은 마태의 중요한 장들로서 신학적 그리고 문학적 만족을 나타내지 못한다. 문학적 예술가는 이러한 추상관념 수준에서 연결을 발견하겠지만 그러나 그러한 연결은 주석과 상세의 정도로는 실패이다.
2.4. 전기적 그리고 신학적
네번째 제안은 전기적 그리고 신학적 모델로, 가장 강화되고 동의하는 모델이다. 이 모델은 N. B. Stonehouse에 의하여 기원 발전되었고 E. Krentz에 의해 개선되었는데, J. D. Kingsbury와 D. R. Bauer에 의해 완성되었다. 본질적으로 이 모델은 마태복음을 본질적으로 전기적 관점에서 극적으로 인정되었으나 이것은 신학의 진행순서전체에 공헌하는 것 처럼 보였다. 마태는 수취인 도안을 통하여 이 구조의 실마리를 남겼다: 즉 4:17과 16:21에서 마태는 "이때부터 예수께서....시작하시더라"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데 그것은 새로운 분할의 시초 징조이다. 이것은 분명하고 유용한 복음서의 세부분 분할을 제안한다.
1. 메시야 예수의 인격(1:1-4:16)
2. 메시야 예수의 선언(4:17-16:20)
3. 메시야 예수의 고통, 죽음 그리고 부활(16:21-28:20)
분명한 기존의 접근방식과는 달랐다: 교차이야기들과 강화들의 장치는 4:17과 16:21의 반복으로 구조적인 우선권을 부여한다. 학자들은 주장하기를 (1) 26:16절에 제목 형식의 사용을 부가하였고 게다가 (2) 마16:21에서 막8:31의 본질적인 사용제시로 Kingsbury는 마4:17과 16:21의 구조적인 확정에 매우 노력하였다. 사실 이것은 16:21을 통하여 예수의 실제 삶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음을 말할수 있는데, 이것은 마태의 구조적 구상에 매우 중요한 전환점이다. Kingbury는 예수삶에 관한 마가의 설명에 있어 구조상 형식의 수준을 높였는데 그것을 마태는 그의 복음에 삽입하였다. 어느 복음서든 그러한 계획된 역할을 수행한다.
2.5. 마태복음의 구조 결정을 위한 고찰
마태복음의 구조이해를 위해서는 몇몇 특징 위에서 바라보는 알맞은 제안을 가미해야만 한다. 첫째, 공관복음서의 genre(장르)를 결정해야 하고, 특히 마태복음의 genre를 결정해야 한다. P. L. Shuler는 마태복음을 중시하여 이 문제를 최근 연구하였는데 결론 내리길 마태는 본질상 찬사 또는 찬미, 전기이다.
둘째, 저자의 분명한 신학적 경향으로 구조 요구가 평가된다. 편집비평과 문학비평은 복음서기자의 공헌과 문학적 기술에 가장 흥미있는 공관복음의 본래의 지식의 확장이다. 구조접근의 관계는 복음서 인식으로, 전기적 구조는 저자의 신학적 그리고 문학적 구상을 통하여 유도된다.
세째, 마태복음 장의 구상 시기는 마태가 물려받은 전통과 자료을 통하여 결정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가와 대조하여 마4-13장의 부분에서 새로운 중요한 혁신을 보는데 마14에서 우리는 매우 작은 변화를 마가의 구조로 부터 볼 수 있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인상은 교회전승은 마가와 그 전승에 익숙하다는 것이며 복음서 기자의 구상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마태의 펜은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다.
네째, 마태의 장들 시기는 주제뿐만 아니라 연대순과 역사적 연속 또한 조정 받았다. 그러므로 마태는 주제의 배열은 흥미로운데, 재정리와 재배치 전승은 다른 장소인 마가나 누가에서 발견된다. 마태의 강화을 보고 그리고 그 자료들을 비교하면 마태나 누가에서 같은 자료들을 볼 수 있는데 마태의 배열은 종종 차이를 보이고 그리고 마태는 주제의 모범을 보인다. 그 예로, 누가 자료에서 사명의 두 차이 상황(눅9:1-6; 10:1-12)과 마태의 사명기록(마9:36-11:1)의 관계이다. 이것은 분명히 마태의 주제자료 주변에 "사명교훈"보다 오히려 연대순에 엄밀한 주목이다.
다섯째, 구조적 제안을 위한 완성을 위해서는 마태의 편집적 개조와 배열을 특별히 주시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마태의 "붉은서신"판 독본으로 이것은 마태복음 저자의 관찰에 있어 검정서신은 매우 중요한 특별한 대처를 준다. 아무튼 마태는 좁게 혹은 넓은 단위의 편집하였는데, 마태를 향한 세부적인 독특한 수고를 아끼지 않은 연구는 마태복음의의 전체구조결정에 중요하다.
2.6. 제시된 구조
Bacon과 Lohr는 마태복음의 가장중요한 문학적·편집적 특징은 이야기와 강화 사이에 교체임을 알았다. 게다가, 다섯 강화는 마태 배경에 관한 전환에 있어 눈에 띄는 것이다. 그러한 두 특징은 마태 그의 자료정돈에 있어 중요하다. 아래 윤곽은 그러한 두 구조적 특색하에 본질적으로 전기적이거나 연대적인 줄거리의 조직이다.
서언(1:1-2:23)
도입(3:1-4:11)
1. 메시야의 갈릴리사역에 맞서는 이스라엘(4:12-11:1)
1.1 이야기: 도입(4:12-22)
요약(4:23-25)
1.2 강화: 의을 외치는 메시야(5:1-7:29)
1.3 이야기: 메시야의 사역(8:1-9:34)
요약(9:35; 4:23-25)
1.4 강화: 메시야의 사역을 넓히다(9:36-11:1)
2. 메시야를 향한 응답: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의 거절과 응답(11:2-20:34)
2.1 이야기: 메시야는 유대인 지도자로부터 거절을 당하셨으나 제자들로부터 인정받음(11:2012:50)
2.2 강화: 하나님통치왕국에 관한 메시야의 가르침(13:54-17:27)
2.3 이야기: 메시야는 유대인 지도자로부터 거절을 당하셨으나 제자들로부터 인정받음: 격렬한 거절(13:54-17:27)
2.4 강화: 공동체 삶에 관하여 가르치시는 메시야(18:1-19:1)
2.5 이야기: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관하여 가르치시는 메시아(19:2-20:34)
3. 거절과 옹호가운데 하늘의 하나님통치를 선포하는 메시야: 메이야이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직면(21:1-28:20)
3.1 이야기: 예루살렘 내 이스라엘사람들과 직면한 메시야(21:1-22:46)
3.2 강화: 불신하는 이스라엘의 심판을 예언하는 메시야(23:1-26:2)
3.3 이야기: 메시야를 거절하는 예루살렘 그러나 하나님의 부활을 통하여 입증(26:3-28:20)
이러한 윤곽은 마태의 주요 점들의 주제들 안내에 이용되었다: 메시야이신 예수, 하나님의 통치, 대결 등. 부가로 다음과 같은 것을 알 수 있다.
첫째, 마태는 본질적으로 두 도입부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서언(1:1-2:23)과 예수공사역의(3:1-4:11) 도입이다. 그러한 두 도입부에는 본질적으로 두 전승이 있는데: 서언은 마태의 특별한 자료로부터 도입되었고 두번째 도입은 세례(침례) 요한에 관한 전승과 예수의 시험에 관한 Q자료와 마가 서론의 융합이다. 그러므로 두 도입부에 관한 문제는 본질적으로 자료적 과제로: 마태는 두 다른 길에서 그의 복음서의 시작에 있어 처분권을 가지고 있었고 그는 두 자료를 다 사용하였다.
둘째, 마4:23과 9:35은 사실상 동일한 어구이고 양식으로 그들 주변 사이에 자료로 포함된다. 사실 4:23은 5:1-9:34의 윤곽이다: 예수는 4:23에 묘사되기를 가르치고 전도(5:1-7:29)하며 질병을 고치셨다(8:1-9:34). 이것은 4:23과 9:35에 제시되는데 마태를 통하여 예수님이 오셔서 무엇을 하실지(4:23) 5:1-9:34 그리고 발산하는 것이 무엇인지(9:35) 문학적 기재로 독자들에게 알리려 하였다. 이러한 시작과 마침 장의 기재는 소위 "포괄"(inclusio) 문학적 양식이다. 게다가, 처음 중요한 장의 본질적 일치, 4:21-11:1은 마지막 4:23과 9:35 모든 병들과 연약한 이들의 치유의 행하는 제자들의 묘사는 그 다음에 사용되었다. 게다가, 8:1-9:34의 치유와 마귀축출의 예수사역은 10:8에 제자에게 지시되었다. 여기서 주의가 요구되는데, 마태의 그러한 사역지시(10:8)은 마가(6:7)나 누가(9:12)와 다르게 많이 완성되어 있으며 그리고 마태의 지시는 예수께서 이미 지시하신 것을 분명한 반복하고 있다.
세째, 그러한 내용은 마4:12-11:1에 관찰되는데 그의 제자들은 같은 바램으로 예수의 지시에 순서대로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견해차이에 놓였을 때, 4:12-11:1에서 마태는 현재 예수의 그의 사역에 충만하였으며 그것에의 하여 독자들이 권능을 부여받아 그들이 어떻게 응
답 할 것인지 결정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4:12-11:1장 이하는 처음으로 주변에 다양한 응답으로 예수를 옹호(11:2-20:34)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다.
네째, 11:2-20:34에는 두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주변의 예수을 향한 두 응답으로 조직되었다: 주변의 지도자를 통한 거절과 제자들을 통한 수용이다. 그러한 부분은 11:2-12:50 그리고 13:54-17:27로, 깊은 수용은 제자들을 통하여 그리고 지도자들을 통한 예수의 거절로 이후 부분에서 계시된다. 그러한 두 부분은 세 강화로 떨어져있다(13:1-53). 이것은 "비유에 관한 강화"라고 불리우는데 양식보다 오히려 내용에 많은 주의를 주었다. 13장은 예수께서 "하나님나라"을 자연을 통하여 비유로 가르치시는데 관련되다. 여기서 우리는 "왕국"을 본다. (1) 여러 응답의 결과(13:1-9, 18:23), (2) 은밀히 그리고 비폭력적(13:24-30, 31-32, 33, 36-43), (3) 과감한 헌신을 위한 부름(13:44-35), (4) 하나님의 최후 심판에 근거한 윤리적인 부름(13:47-50). 제자들의 예수의 관한 특별한 경험(13:10-17)과 예수의 비유적 가르침이 실행되어짐(13:34-35)으로 인하여 그 가르침을 지지하게 되었다. 예수의 비유적 가르침으로 인하여 하나님나라에 관하여 이해하게되었고 필경자들은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13:51-
52)
다섯째, 기독교인 공동체는 예수의 마지막 주 21:1-28:20을 어떻게 읽어야할지 여러 설명을 필요로 한다. 우선, 마태신학에 비추어보면, 독자들에게 마음에 인내를 요구하는데 그것은 이 부분에서 역사의 편리를 위하여 또는 교회력의 예배적 필요를 위한 예수의 최후는 시연(rehearsal)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부분은 예수의 고통과 변호의 표현으로 세계를 위한 구원을 동반하여 온다. 마태계열의 견해에서는 그러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는 다른 사건보다 더 극적인 사건으로 나타내는데 세례요한의 예수 도래사건의 구성이 그러하다(3:2). 게다가, 21:1-25:46에는 본질적으로 일치한다: (1) 예수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며 자신이 메시야임을 표현하였다(21:1-22). (2) 예수는 예루살렘에 논쟁에서 권력자들에게 자신의 지혜와 하나님의 부름 받았음을 입증하였다(21:23-22:46). 그리고 (3) 그는 하나님이 정하신 메시야를 거절하는 이들에게는 심판이 온다는 것을 종족에게 경고하였다(23:1-25:46).
예정되어있는 종말론의 끝날은 매우 관심이 있는데 근래 복음주의에서는 23:1-30은 24:1-25:46로 부터 종종 분리된다. 이것은 분리되어 사용되는지는 것을 주로 해석적인 오류에서 온다. 이것은 즉 23:1-39에서 24:1-36 끌어내는 것을 중요한 인지로; 예수의 예루살렘의 멸망의 대한 예언은 지도자들을 자극하였고 메시야을 거절하게 하였다. 예수는 유대교의 멸망을 예언하지 않았으나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언하였고, 그것으로 인하여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주의 사회의 집중화에 첫번째 대적자로 보였다. 이후 문맥상 주후 예루살렘은 파괴되었음을 24:1-36에 기록하였고 주후 70년이 역사의 끝날에 대한 마지막 시련은 아니었다. 대신에, 24:29과 24:34의 해석은 어떠한 방법으로든 곤란한 것이나 처음 언급된 예루살렘은 주후 70에 파괴되어졌다.
3. 마태복음의 신학
논의를 통하여 우리는 마태의 전체적인 조직적 신학을 위한 충분한 자료를 함축하지 못하고 있다. 다소, 우리는 마태의 복음서에서 예수의 삶의 기록을 발견하고 마태의 그러한 방법을 통하여 모양지어진것을 갖게되었는데 저자를 통하여 우리는 중요성과 모형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그러한 모형과 주제로 마태신학의 윤곽을 묘사하게 된다. 마태는 분명히 우리가 추측할 수 있는 것 보다 큰 것을 다루고 믿었고 그러한 주제들은 우리가 성경적 신학을 의해하는데 공헌하였다.
오늘날 학자들은 마태의 신학은 마가와 누가, 요한으로 부터 독특한 것으로 연구하는데, 예수의 복음서기자와 가르침사이의 신학의 민감한 중요한 차이를 갖는다. "예수의 가르침"이라는 표현에 반하여 네복음서와 다른 곳에서 예수의 가르치시는 것을 발견하게되는데, 마태의 신학을 연구하여 분석하여보면 특별한 공헌과 전승형태는 주목할만한 특별한 복음서이다. 마태신학을 보는 학자들의 복음서기자의 신앙은 처음복음서와 그들의 문화와 종교상황에서 그의 믿음의 고찰이 깊게 관계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첫복음서에는 네 중요한 주제가 있다: (1) 기독론으로 복음서기자가 믿는 예수는 누구인가하는 것인데 마태신학의 중심이다. (2) 하나님의 나라로 그가 믿는 하나님에 관하여 종종 드러난다. (3) 구속사로 개념적이며 해석적인 잣대를 통하여 마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읽고 해석한다. (4) 제자로 주안에 왕국의 빛 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기대이다.
3.1. 기독론
마태의 기독론에는 세가지 중요한 접근법이 있다.
첫째, 많은 학자들이 마태의 기독론을 세우기 위하여 마태가 생각하는 예수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러한 접근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에 중심성을 갖는다. 이것은 흔적범주를 통한 분명한 조직적 수단의 유리한 접근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인간의 견지에서 인격을 계시하는 것에 소홀할 수 있다.
둘째, 다른 학자들(Hill, Verseput, France, Suggs)은 하나님의 아들이 중심주제임을 주장하면서 마태의 기독론은 포괄적인 성취명령과 마태신학의 엄밀한 묘사를 정돈하여 추가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세째, 마태의 전통적인 해석의 본질적인 유지인데, B. M. Nolan는 마태는 예수의 존재를 "메시야적 왕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탁월한 범주와 "royal 기독론"으로 발전시켰다고 주장하였다.
처음과 두번째 접근은 예수묘사와 주제의 관점에서 강조되었는데 이것은 분명하게 복음서에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각 사례의 강조는 축소적이고 주제나 다른 사상들을 주장하게 되었다. 마태의 기독론에 있어서 통합의 확대, 주제와 역할의 사용, 더 많은 이해력과 정확성이 제시되었다.
마태의 기독론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은데, 예수는 하나님의 메시야로 구약의 약속을 이행이며, 그의 공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 계시와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고난과 부활, 그리고 그 결과로 하나님의 백성이 군림한다는 것이다.
3.1.1. 메시야
첫 복음서 내에 주제가 발생한시기의 수로부터 떨어져, 마태 예수는 뛰어났는데 "메시야"가 그것이다. 메시야 용어의 사용은 함축된 고백으로 구약에 약속된 예수의 복귀와 구원을 관통한다. 마태는 메시야 용어가 본래부터 선재하였다(2:4, 22:41-46). 그러나 처음 메시야를 사용한 것은 구약으로 그의 인격과 사역을 소개하였다(1:1-2:23, 5:17-48). 그러므로, 마태의 모형론 석의에 의하면 예수는 새로운 모세이며, 그는 새로운 출애굽을 가져오고, 그리고 그는 새 이스라엘의 본질(1:18-2:23; 3:3)이다. 게다가, 그는 율법과 예언의 실행(3:15; 5:17-48; 12:17-21; 13:35; 21:5, 16, 42; 22:44; 23:39; 26:31; 27:9, 35, 46), 고난과 야훼의 경배거절의 시작이다(3:17; 8:17; 10:35; 12:17-21; 13:14-15; 21:5, 42; 23:39; 26:31, 38; 27:9, 35, 46).
메시야와 같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복음서내에 여러 중요한 연결로 묘사된다. 실제로, J. D. Kingsbury는 다수의 글을 통하여 주장하기를 마태는 "하나님의 아들"을 예수를 위한 용어 중 가장 신학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간주하였다. 3:17에 회중적으로 "이는 나의 아들"이라고 하나님께서 알렸고; 4:3, 6에는 사단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을 걸었고; 11:27에는 예수께서 아버지의 아들로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가진 중재자로 나타나고; 14:33에는 배안에 사람이, 저편으로 건너는 경이로운 모사,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 16:16 베드로는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였고; 17:5에 하나님은 둘러싼안에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알려주었고; 24:36에 예수는 하나님이 뜻의 지식을 가진 특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파루시아의 날은 하나님의 아들인 자신도 모른다하였고; 26:36에서 높은 직분자의 설명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함께 메시야란 술어를 사용하였고; 27:40, 43에는 지나는 사람들이 말하길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수치스러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유혹한다. 그리고 27:54에서 이방인 백부장이 예수에게 고백하는데, 첫 복음서안에 인간 인식의 최고조의 취할 수 있는 고백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선행된 조사에 비추어보면, 이것은 놀라운 것으로 많은 학자들은 주장하기를 "하나님의 아들"은 마태에 가장 중요한 주제라는 것이다. 이것은 십자가의 중대성이나 주제와 같이 중심적 역할이 있음은 의심할 여지없으며, 주제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더 중요한 것은 결과로, 처음복음서는 그가 말한 것, 행하는 것 그리고 소명에 비추어 예수에 관하여 주장하고 있다.
이렇게 더 포괄적이고 정확한 그림으로 더 기능적으로 우리에게 접근을 준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은 실제로 매우 중요한 것으로, 하나님의 경배와 같이 예수의 개념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설명은 두 보기의 사례를 남겼다(3:17-4:11; 16:16 그리고 16:21).
메시야 예수는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고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운명되어졌다. 메시야는 이스라엘의 왕이다(2:2; 2:15; 27:11, 29, 37, 42). 예수는 메시야로 이스라엘의 왕이며 그는 유일무이한 왕이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대신할 수 없는 아들이고 그리고 그는 그의 고난을 통하여 통치하기 때문이다(27:11, 29, 37, 42).
3.1.2. 교사 그리고 설교자
마태에 의하면 메시야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계시한다". 메시야 예수는 가르치고 하나님의 뜻을 그의 공사역에서 계시하나 그러나 그의 가르침과 설교는 주로 무시당하거나 거절당하였다. 그럼에도 마태계학자들애 애호하는 술어가 있는데, 교사와 설교자로서 마태의 예수 이해는 중요한 범주이다. 명확한 교사로서의 예수의 인격과 사역의 자연적인 이해는 충분하지 않은데, 마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부분의 주시로 그를 이해하였다. 그러므로 마태의 구조는 다섯 부분의 주요 강화로 강조되었고, 독자로 하여금 예수를 위대한 교사요 특별한 선생이요 금언의 계시자로 이끌어 내었다(5-7; 13; 18). 학문의 경향으로는 예수를 "선생"으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이러한 중요한 범주를 우회하였다. 분명히, 마태는 비제자들이 예수를 선생과 같이 묘사하는것(8:19; 9:11; 12:28; 17:24; 19:16; 22:16, 24, 36) 으로 나타났으며 예수의 제자들은 그를 "교사"로 불렀다(10:24, 25; 23:8; 26:18). 한편, 예수는 자신을 선생으로 묘사(10:24, 25; 23:8; 26:18)하였고 그는 사역하였으며 마태에 의하면 예수는 순회하면서 새로운 세대에게 하나님의 뜻을 계시하였다(3:15; 5:17-48; 11:27; 13:10-17; 23:8). 교사로서 예수는 견딜 것이다(10:24-25).
예수의 메시야적 직무는 하나님의 나라 복음의 설교(4:17, 23; 9:35)로, 메시지는 회개를 요구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이다(4:17). 관심있는것은 예수의 복음설교에 이스라엘의 거절과 세례요한이다. 예수의 가르침과 설교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절되는 가운데 예수의 헌신은 마태로 부터 움직이게하는 동기가 되었다(11:1-12:50).
3.1.3. 왕국통치의 서임자
마태 기독론의 다른 중요한 특징은 메시야 예수의 "하나님 나라의 선포"로, 세 시기나 현상으로 나타나는데; 그이 공사역, 고난 그리고 부활이다. 그러한 각 시기는 마태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순간으로 왕국의 선포로 연합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내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의 세 시기"나 "현상"을 선택이 있어야한다. 첫복음서 내에서 절대적 비평인정은 예수께서 처음 하나님 나라의 서임자로 불리운다.
그의 공적사역에서 예수는 왕국을 선포하였으나 그 왕국은 경이로운 예수의 전능한 증거 행위로부터 특별히 현존한다(11:2-6; 12:28). 다윗의 자손과 같이, 예수는 치료자(9:32-34; 12:24)이다. 마태는 또한 예수의 전능한 사역과 봉사 그리고 그의 희생을 통한 화해을 접하였고 그것은 매우 중요하게 관찰하였다(8:16-17; 12:15-21; 27:51-53). 예수의 공사역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의 선포 시작의 위임관점에서 "새로운 시기의 윤리"나 다른 "왕국윤리들"을 가르쳤고 설교하심으로 계시하시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가르침(5:17-20)은 특히 왕국의 관점에서 시작된다.
예수의 고난은 하나님 나라의 서임의 두번째 국면의 성취이다. 복음서의 주는 예수 고난의 이야기가 평범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태신학의 구조를 이해함에 있어서 구체화하는것은 중요하다. 실제로 마태의 하나님의 왕국선포에 어떠한 동의가 선취되었는데, 이것은 그 자신의 고난, 예수의 거절과 죽음의 이야기에 대한 선취는 사리에 맞는 기대로 왕국선포는 중요한 국면이 되었다.
우리는 마태에게서 뚜렷하게 예수의 죽음과 거절의 네부분 예언안에 예수 이야기기에서 중요한 고난을 보게된다(16:21; 17:22-23; 20:18-19; 26:2). 위에서 언급한바와 같이 예수의 전능한 기적들은 예수의 고난사역에 기초한 왕국 이전의 실제이다(8:16-17). 마태를 향하여, 예수는 죄를 사하고(9:6) 사람의 아들로써 자신이 속죄 제물이 되었다(20:28). 후자에 일어난 사건은 예수의 죽음사이에 분명한 암시로, 죄를 씻고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로 연결되는 없어서는 안되는 사건이다. 그리고 최후만찬에서 마태는 다시 유사하게 관계된다: 예수의 피, 속죄, 하나님나라 예언의 성취(26:29).
고난을 묘사할 때 복음서 기자는 유명한 침묵은 soteriological 중요성에 대한 영향이다. 마태에게서 우리는 몇가지 암시을 발견하는데, 다름 일들 사이에서, 예수는 고난과 거절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서임자가 됨을 알게된다.
첫째, 예수의 죽음과의 연결를 통하여 거룩한 부활이 있고, 이것은 zechariah14:4-5(LXX)에 분명히 암시되었고, 예수의 죽음은 죽음의 묶음을 깨뜨리고 총체적인 부활을 선취하였음을 마태에게 가리켰다.
둘째, 이방인 백부장의 고백(27:54)은 이방인 구원의 보편적 신호가되었는데 그것은 역사의 끝에 생겨난다. 그리고 마태는 예수의 죽음, 성인의 부활 그리고 이방인 백부장의 신앙고백 "때에 ...그들이 지진과 되일을 보고....."를 통하여 강화하였다.
끝으로 26:64의 주제는 28:16-20의 부분적 실제에서 다른 보기에서 제시하는 예수의 고난과 거절은 하나님 나라를 선취하는 예수를 묘사한다. 그러므로 마태의 그의 전승에 가공은 새로운 것으로 그가 본 예수의 죽음은 중요한 것으로 하나님 나라 선취의 강조를 나타낸다.
그의 부활은 예수를 증거하고 이것은 하나님나라의 선취를 강조한다. 마태의 부활이야기(27:62-28:20)는 역사안에 새로운 사건의 선취를 가리킨다. 28:2-4의 언어 묘사는 지진과 천사의 강하와 유대 종말적 고찰내에 본문에 근거하여 언어분리로부터 어둡게 도용한 공포로 보고한다. Allison은 표현하기를 "마28:2-4에 부활아침의 사건을 자세히 열거하고 있는데 그것은 지난시간의 사건이다"
마태의 종말론적 소개는 위대한 위임 시기에 특별히 명백하게 시작되었다(28:16-20). 거기서 우리는 예수의 부활의 결과로 역사의 새로운 전환이 매우 분명하게 계시되는 것을 관찰한다.
첫째, 예수 부활로 아버지는 예수의 개인적인 권위를 주었고 마귀의 권위는 약화되었으며 예수의 부활 후 권위는 충만하게 되었다. 기독론적으로 예수는 팔레스틴의 폭이좁고 한정된 권위에서 우주적 최상의 권위로 나아갔다.
둘째, 마가와 누가와 같이, 마태의 복음서에서 예수는 질서있게 반대국면을 입증하여 나갔다. 그러므로 이야기 선포의 본질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특별한 메시지임을 입증하였다. 이와같이 예수의 부활은 유일한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이 대적자들로 부터 승리하는 것이다.
세째, 마태의 중점 강조는 보편성으로 세상끝까지 제자 삼으라는 명령성취에 도달이다(28:19). 모든 종족의 사람들, 모든 사회와 성별은 예수에 포함되는것이다. 이전에 금지는 새로운 지시를 따르게 된다(28:19).: 이전에 예외(8:5-13; 15:21-28)는 새로운 촛점 금지에서 새로운 중심이 되는것이다. 그리고 계속적으로 구시대의 것을 새시대에 하나님의 계획으로부터 이스라엘백성은 지우지 못하였다. 반대로, 종족이라는 용어를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포함하지 않았다. 마태의 복음적 유대인중 민감한 상기자들을 마태는 무덤안내의 이야기에서 관찰하였는데 천사의 출현과 여자들의 예수와의 만남이 그것이다. 이러한 자료가 말해주는것은 유대인과 유대인에 관련한 설교증거는 분명히 변명의 경향이 있다. 이전 금지를 무효 하는 마태는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고 예수는 새시대에 오르시면서 족속들에게 계시하기를 복음의 새로운 직무를 선언하였다.
끝으로, 이것은 과장된 말이 아니고 위대한 위임을 받은 예수의 제자들에 관하여 의심없는 하나님의 새백성 구성을 마음에 그린다. 이러한 하나님의 새백성을 마태는 "교회"라 한다(16:18; 18:17). 사명의 받은 새백성은 예수의 부활의 결과를 새롭게 생겨났다. 그러므로 마태의 마지막 장면에는 메시야인 하나님, 모든 권위, 그리고 세계를 제자화하는 사명을 통하여 새로운 예수를 입증한다.
왕국의 선취로 세 강조의 위에 예수의 사역의 별개의 국면은 그 왕국의 선취에 각각 공헌한다. 대체적으로,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 예수로부터 선취되는데; 특별히 그의 고난과 가장 절정의 그의 부활을 통하여 되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무엇인가?
3.2. 하나님의 나라
일반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모든 사람들 위에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왕 되시고, 그리고 회개와 믿음으로 주안에서 하나님의 통치하는 현재로 말한다. 하나님의 주권인 의와 기쁨, 게다가 영광 안에 미래의 성취가 있는 사람의 아들들의 파루시아로 표현한다. 피하기 어려운 끝에는 판결이 있는데 하나님나라는 메시야이신 예수로 부터 오는데 메시야이신 예수는 정확한 응답이 없는 대적자를 심판하게된다.
마태에 의한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6:33; 11:12; 12:28; 13:24-30, 36-43; 16:19; 23:13)와 미래(4:17; 5:19; 8:12; 16:28; 25:1-13; 26:29)이다. 예수와 복음기록자의 가르침은 "종말 선취"안에서 광대한 수의 말은 왕국의 현존과 미래이다. 이 글들은 예수자신의 본질을 소개에 있어 이해하고 지속하는데 공헌하였는데 그러나 잠재적이거나 미래적이고 그리고 충격은 현재에 관한 접근이다. 이것이 모두 현실화되는 시기에있어 해석자들의 견해는 일치하지 않는다. 다음과 같이 왕국의 선취에 있어 세가지를 강조하는 견해를 본다(공사역, 고난과 부활, 게다가 누가는 성령).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미래 마지막에 성취된다고 가정한다.
왕국의 현재에 관점은 (1) 하나님의 강함과 권위의 입증(10:7-8; 12:28; 16:28); (2) 우주적 권위와 인간들의 연합 거부(11:12; 13:24-30; 232:13); (3) 신뢰성 요구, 의로운 행동(4:17; 5:20; 6:33; 7:21; 13:44-45; 18:3, 23; 19:12, 23-24; 21:31, 43; 22:1-14; 23:13; 24:14) (4) 현실적 유대는 같지 않거나 한계를 포함하고 있으나 미래는 보편적이 됨(5:3, 10; 8:11-12; 13:31
-32; 19:14; 21:31, 43; 22:1-14; 23:13; 24:14); 그리고 (5) 심판의 경고에 응답하지 않는것의 충당(16:19; 21:43).
하나님의 나라의 미래 관점은 (1) 사람의 아들은 파루시아에서 완성을 가져올것이다(13:24-30, 36-43, 47-50; 16:28; 25:1-13); (2)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될것이다(8:12; 18:3; 19:23-24; 20:1-16; 22:1-14; 25:1-13); 그리고 (3) 그의 백성들의 하나님의 마지막 허가를 통하여 특성을 나타낸다(5:19; 18:12; 11:11; 13:43; 18:1, 3, 4; 20:1-16; 25:31-46; 26:29). 마태의 신학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무심코 강조되었는데, 소수의 학자들은 마태의 왕국 관점에서 특유의 미묘한 차이에 관하여 토론하였다.
3.3. 구원사
학자들은 구속사를 과거, 현재와 미래 하나님의 사역은 죄로부터 사람들을 보증하고 그들을 부르심으로 그의 소유로 삼으셨다고 표현한다. 다른 의미에서, 구속사는 역사안에서 구원을 베푸시는 목적 발전의 위탁이다. 이것은 후에 인간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행위의 역사로 표현되었다. 복음연구에서 구속사는 두번째 의미와 비슷하게 사용되었다: 이것은 어떻게 각 복음기자들이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이해하였는지 알게 한다.
3.3.1. 구속사에 대한 마태의 관점이해를 위한 제안
마태의 구속사관점에 대한 토론의 역사는 최초로 H. Conzelmann의 중요한 연구에 의하여 틀을 잡았는데, 누가의 신학(1960)으로 누가의 구속사 개념을 탐구하였다. Conzelmann은 누가의 구속사를 세시대로 분리하여 결말지었다; (1) 이스라엘; (2) 예수, "역사의 중심"; 그리고 (3) 교회. Conzelmann의 누가연구는 마태계열 학자들에게 적용되었는데 마태는 두 시대(이스라엘과 교외/예수)나 세시대(이스라엘, 예수, 교회)로 보았다. 마태의 구속사에 있어서 네가지 주요한 접근방법이 있다. R. Walker는 주장하기를 마태의 구속사의 계획은 사명에서 소개되었다고 하였다. 세가지 중요한 시대의 구분은: (1) 메시야의 선역사; (2) 세례요한을 통한 이스라엘의 소명; 그리고 (3) 주후70년시작된 이방인 선교. 본질적으로 Walker는 세계선교 기간안에 구속의 역사로 보았다. A. J. Levine은 또한 마태의 선교모형을 관찰하였는데, 그녀는 마태가 어떻게 이스라엘의 미래를 보았는지 급격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Levine은 마태의 구속사안에 두 중심을 보았는데, 하나는 시간적인것이고 다른하나는 사회적이다. 시간적중심은 두 시대로 움직이는데 이스라엘에서 보편적인 움직임이고, 사회적인 중심은 하나님의 새백성안에 독특한 사회의 한계요소의 융합을 나타내는 것이다. Walker와 같지않게 Levine은 큰위임의 시작을 주후 70년으로 보지 않았다.
둘째, 교회에 관한 소개로 W. G. Thompson에 의하여 명쾌하게 표현되었다. 마태의 교회의 현상태를 강조하였는데, Thompson의 24:4-14절을 세부적으로 분석하여 세 시대로 구분하였는데; (1)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2) 예수의 이스라엘을 향한 제의와 이스라엘의 저항; 그리고 (3) 교회의 이방인을 향한 제의와 이방인의 반대이다. Thompson은 마태는 세번째의 에 장래로 결말을 맺는다.
세째, J. D. Kingsbury는 마태의 구속사 소개에서 기독론을 상세히 설명하였는데, 마태의 신학에 통합의 다양한 동기의 증명은 중요하다. Kingbury는 다 시기로 보았다' (1) 이스라엘의 시대 그리고 (2) 메시야 예수의 시대이다. 나중의 시대는 세 하부 시기가 있다; (a) 예수를 향한 요한, (b) 부활선포시대 그리고 (c) 끝날에 역사의 성취이다. Kingbury는 마태의 이스라엘과 교회의 비분별의 관점을 "제자들의 명료"그리고 교회에 대한 관련관계시간의 부재에 근거하였다. 그럼에도 kingbury의 분석은 마태의 관점에 대하여 신선한 빛을 주었는데, 그의 역사와 미래의 마태의 묘사에 있어 중요한 사건의 간과는, 그의 윤곽에 변경을 위한 것이다.
네째, 대참사 예언 소개는 J. P. Meier에 의하여 마태 자료안에서 자세히 소개되었다. Meier은 유대참사의 견지로부터 마태는 접근하였는데 즉 역사의 진행변화는 하나님의 주요 사역으로 보았다. Meier는 세 시대로 부았다: (1) 이스라엘, (2)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까지, 그리고 (3) 이방선교을 포함한 완성이다.
3.3.2. 새로운 종합
위에서 보는 변형과 합성은 여러가지 서두를 재편집하는 필요성을 만들게 해주었다고 본다.
첫째, 마태의 구속사구분에 두시대 및 세시대 과제는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복음서기자의 실수이다.
둘째, Kingbury는 분명한 변론에 의하여 마태의 역사의 관점을 그의 독특한 기독론과 합성하였는데 왜냐하면 후자가 마태의 신학의 가장 중요한 관점이기 때문이다.
세째, 정경의 기초의 관점은 신학적인 조직관계나 해석에 있어 의심할 여지없는 영향들을 어떻게 마태 구속사의 관점에서 알아내는가 하는 것이다. 예로, 복음적 언약 사이에서 마태의 구분에 연결성을 주는 경향이 있고 그리고 비연결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다.
끝으로, 본문의 주의 깊은 고찰을 통하여 구속사 용어, 본문을 끌어내야만 한다.
다음의 마태의 구속사 개념은 자료와 학문적 위치 위에 융합되어 윤곽이 제시된다. 마태의 구분에는 기본적인 6시대구분이 있다; (1) 예언된 계시와 약속의 시대, (2) 세례요한과 함께 변화의 시대, (3) 하나님의 나라의 메시야 선취의 시대, (4) 이스라엘판결의 시대, (5) 모든민족의 시대, 그리고 (6) 성취의 시대
(1) 예언된 계시와 약속의 시대
(2) 세례요한과 함께 변화의 시대
(3) 하나님의 나라의 메시야 선취의 시대
(4) 이스라엘판결의 시대
(5) 모든민족의 시대
(6) 성취의 시대
3.4. 제자
출애굽이나 신명기의 제외되었고 기독교성경의 다른책에도 없는 것으로 처음복음서는 윤리같은것에 매우 헌신적이었다. 마태관점에서 제자의 기본은 예수의 가르침에 근본적인 순종으로 요약하면 의(5:17-20)와 사랑(22:37-40)이다.
3.4.4. 수신자
예수의 제자는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들의 수령자이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는 하나님의 선물과 마지막 약속을 받음으로 축복이 더하게 된다. 현재 예수의 제자는 물질적 공급(6:33; 19:29), 영혼의 안식(11:29), 그리고 예수의 계속적인 대면(28:20)을 약속 받는다. 미래 제자는 하나님의 인정(6:1; 10:40-42; 16:27; 20:1-16), 영원한 삶(19:29), 하나님 그리고 아들과 함께 식탁교제(26:27-29)을 약속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