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랑길은 ‘남쪽(南)의 쪽빛(藍) 바다와 함께 걷는 길’이라는 뜻이 있다.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해남 땅끝마을까지 1,470km의 걷기 여행길이다
와온해변에서 별량면 학산리 화포항까지 이어지는 61코스를 걸었다.
순천만습지에서 겨울 진객인 흑두루미 수천 마리의 화려한 군무를 보았다.
남파랑길 61코스는 순천만 와온해변에서 별량화포까지 13.7km의 길이다.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철새 보호 기간이라 61-1코스로 우회하여 2km가량 더 걸었다.
와온해변
전주에서 아침 8시에 출발하여 약2시간 만에 와온해변에 도착했다.
마을앞 갯벌에는 대나무로 인공섬을 만들어 새해 인사말을 달아놓았다.
아마도 정월대보름에 불태울 달집을 미리 만들어놓은 것이 아닐까?
남쪽으로 내려오니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바닷바람은 매서웠다.
이렇게 바닷물이 꽁꽁 얼어붙은 모습은 처음 보았다.
전형적인 작은 어촌마을인 와온마을은 꼬막 생산지로 유명하다.
마을 뒤에 병풍처럼 펼쳐진 산이 마을 이름 ‘와온’의 유래가 된 산이다.
산의 형상이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엎드릴 와(臥), 따뜻한 온(溫)을 붙였다.
산의 정상 이름도 소의 코를 닮았다고 해서 ‘소코봉’이다.
순천시 전역은 2018년 7월 25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순천만은 2006년 우리나라 연안습지 중에서는 최초로 람사르협약에 등록된 습지다.
생물다양성과 경관적 가치가 뛰어난 마을 앞에서 인증샷을 담았다.
솔섬
와온해변 앞에는 ‘솔섬’이라고 하는 아주 작은 섬이 있다.
‘사기도’라고도 불리는 솔섬은 철모를 엎어놓은 것 같은 형상이다.
하지만 동네 개구쟁이 아이들은 ‘똥섬’이라고도 부른다.
새들이 그 섬에서 똥을 싸기 때문이다.
와온공원
노을 명소로 유명한 와온해변 옆에 위치해 있는 작은 공원이다.
산책로가 깔끔하게 조성되어 있고, 운동기구와 쉬어갈 수 있는 정자도 있다.
여자만에 떠 있는 장도를 비롯한 고흥반도의 산줄기들도 시야에 들어온다.
마을 앞 갯벌에 말뚝처럼 나무 기둥들이 빼곡하게 박혀있다.
이곳 말로 ‘말’ 혹은 ‘발’이라고 부른다.
말과 말 사이에 그물을 걸어서 그 그물로 칠게를 잡는다.
칠게잡이는 설이 지나고 이른 봄이 되면 시작해서 금어기 직전인 6월까지 이어진다.
갈대밭 사이로 난 길을 걸어가다가 멋진 작품을 만났다.
짐작컨데 작업하던 중장비 기사가 돌덩이 몇 개를 쌓아놓은 것 같다.
때로는 이름난 작품보다 이렇게 투박한 조형물에 정이 더 가기도 한다.
바닷물이 흐르면서 S자형 물길을 만들었다.
순천만을 감싸고 있는 산봉우리들과 함께 아름다운 풍경화가 됐다.
이토록 멋진 작품을 만들어낸 자연의 힘은 위대하다.
구동마을
철새보호지역이라 용산전망대로 가지 못하고 구동마을로 우회했다.
마을을 지키는 당산나무 밑에는 거북 형상을 닮은 바위가 있다고 한다.
한자어로 '龜洞'이라 표기했는데 1914년에 일제에 의해서 '九洞'으로 바뀌었다 한다.
농주마을 弄珠
앞산을 용머리라 생각하고, 파랑바구를 용의 여의주로 여겼다고 한다.
‘용이 여의주를 희롱 한다’는 뜻으로 '농주(弄珠)'라 개명하였다.
마을 사람들은 지금도 농주리보다는 '파람바구'라고 친숙하게 말한다.
순천만습지 출렁다리
출렁다리 입구에는 철문이 있는데 관리하는 이가 일일이 문을 열어 준다.
애초 정 코스를 걸었다면 순천만 용산전망대를 거쳐 출렁다리를 건너왔을 것이다.
이곳에서 용산전망대를 갈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냥 통과하였다.
갈대 군락지
나무 데크길을 따라 갈대군락지로 들어간다.
갈대밭은 순천만 바닷가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억새는 호수처럼 잔잔하다가 바람이 불 때면 파도처럼 출렁인다.
말리면 말린 만큼 편하고
비우면 비운 만큼 선명해지는
홀가분한 존재의 가벼움
성성한 백발이 더욱 빛나는
저 꼿꼿한 노후(老後)여!
갈대는 갈대가 배경일 뿐
배후가 없다, 다만
끼리끼리 시린 몸을 기댄 채
집단으로 항거하다 따로따로 흩어질
반골(反骨)의 동지(同志)가 있을 뿐
갈대는 갈 데도 없다...............................................................임영조의 詩 <갈대는 배후가 없다> 부분
다리가 불편하신 회장님께서 끝까지 완주하셨다.
내일 다리 시술을 하기 위해 서울로 가시는데...건투를 빕니다.
날씨가 쌀쌀하여 점심 식사할 장소가 마땅치 않다.
군데군데 모여 앉아서 늦은 점식식사를 하였다.
사도요한의 보온병에서 나온 뜨끈뜨끈한 정종이 온몸을 달구었다.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신경림의 詩 <갈대> 전문
멀구슬나무
원래 아열대지역에서 아름드리로 자라는 큰 나무다.
우리나라는 추위를 버틸 수 있는 한계 지역이다.
남부 해안에서부터 제주도로 이어지는 섬 지방에 흔히 심는다.
열매는 처음에는 파란색이나 가을에 들어서면 노랗게 익는다
흑두루미
순천만의 겨울 진객, 흑두루미 수천 마리가 모여 있다.
순천만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시베리아에서 70여일 동안, 7500km를 날아왔다.
흑두루미의 몸 길이는 약 100cm로 몸은 암회색을 띤다.
머리는 흰색이고, 머리 꼭대기에 붉은색 반점이 있다.
한국 전통문화에서 고고한 기품과 선비적 기상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흑두루미
흑두루미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천연기념물 제228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순천만에서 10월 중순부터 다음 해 3월까지 월동하며 매년 8천여 마리 이상이 관찰되고 있다.
전 세계에 남아 있는 1만 6,000여 마리 중 절반이 순천만에서 겨울나기를 하는 거다.
인안방조제
흑두루미, 가창오리떼와 작별하고 인안방조제 위로 올라섰다.
이 길은 운치가 있어 '연인의 길'로 불리기도 한다.
둑길 안쪽의 널따란 평야는 ‘인안들’로 불리우고 있다.
인안습지
안정적인 철새의 서식 환경을 위해 습지를 조성하였다.
수십 개의 전봇대를 뽑고 울타리를 설치하였다.
순천시의 이런 노력으로 인해 흑두루미 최고의 월동지가 되었다.
남파랑길 이정표가 산뜻하다.
숲길 구간에는 나무에 리본을 달아 길을 안내한다.
장산마을 입구에서 기묘한 바위가 우리를 반겨준다.
바위의 모양은 돌고래 같기도 하고, 악어 같기도 하다.
장산(長山)마을
인안방조제를 지나 만나는 장산마을은 ‘짱뚱어마을’로 불린다.
마을 앞에 짱뚱어를 상징화한 조형물까지 세워놓았다.
주민들은 직접 잡은 짱뚱어로 탕을 만들어 판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철이 아니라 매서운 바람만 쌩쌩 불고 있었다.
짱뚱어
짱뚱어는 미세한 진흙으로 이루어진 갯벌에서 서식한다.
벌교갯벌이나 순천만갯벌이 포함된 여자만이 대표적인 서식지이다.
썰물 때에는 살금살금 기어다니면서 먹이를 먹고, 밀물 때에는 굴을 파고 숨어 있다.
장산 마을의 ‘장산(長山)’은 우리말로 ‘긴 산등성이’라는 뜻이다.
옛 어른들은 이를 쉽게 발음할 수 있는 ‘진등’이라고 불렀다.
주민들이 ‘장산영농조합법인’이라는 이름으로 짱뚱어탕을 만들어 판다.
남파랑길을 걷는 도중에 재미있는 글귀들을 만날 수 있다.
이것들은 조금은 단조로운 길에서 소소한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길을 안내하는 흑두루미의 날개짓이 우아하다.
우명마을
우명마을은 옛날에 ‘옴막구미’라 불렸다.
움푹 들어간 곳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소(牛)가 우는 형국이라 하여 ‘우명(牛鳴)’이라 불렸다고 전한다.
집들이 비탈에 자리잡고 있어 축대를 어마어마하게 높이 쌓았다.
화포항으로 가는 길은 갯벌 위에 세운 다리로 안내한다.
다리의 모양은 마치 짱뚱어의 몸짓처럼 비뚤어져 있다.
화포해변
화포해변은 순천 별량면 학산리에 위치한 해변이다.
간조 때 깨끗한 개펄에서 잡히는 세 발 낙지가 유명하다.
드라이브나 차박을 즐기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화포마을
화포마을은 여자만을 바라보며 둥지를 틀고 있다.
산에 기대고 바다를 마당 삼은 마을이 포근하고 평화롭다.
이곳에서 남파랑길 61코스가 끝나고, 62코스가 새로 시작된다.
마침주를 마시다
후미를 기다리다가 해변에 있는 주막으로 들어갔다.
어묵 꼬치 안주로 막걸리 두 병을 마셨다.
막걸리의 기운으로 비몽사몽간에 전주로 돌아와서 하산주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