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종 저녁
하종오
상수리 숲 솔숲이 산 그림자를 따라 옮겨다니다가
산그림자를 거두어서 그윽하게 산정에 오른다
찔레나무들은 희디흰 꽃을 뿜어대며 마을로 가서
홀로 밥 끓여 먹는 홀어미집 울타리 되어 둘러서고
자드락길들이 무너지면서 비탈밭으로 몰래 들어간다
그걸 보고 물에 잠긴 논 한 배미 두 배미 울렁거린다
이윽고 산을 넘어 오는 어스름에 곤충들이 자취를 지우고
종일 일한 괭이 호미가 흙을 털고 스르르 넘어진다
이 저물녁, 독주 마시고도 허언하지 않고 귀가하는
한 사내도 있고 가출하는 한 사내도 있고...
개구리들이 이 세상 순한 소리를 단번에 낸다
손진은 시인
망종 저녁:"찔레 나무들은 희디흰 꽃을 붐어대며 마을로 가서
홀로 밥 끓여 먹는 홀어미집 울타리 되어 둘러서고" 모든 구절이 6월 6일 망종 무렵의 시골정서를 참 푸근하고도 편안하게도 그려내고 있네요. 하종오는 현 대구대의 전신인 한사대에 다닐 때부터 시를 썼는데, 정말 농촌정서를 잘 다루었죠. 지금은 다문화인들의 일상을 개성있게 다루는 중요한 시인입니다. "물에 잠긴 논 한 배미 두 배미 "도, "종일 일한 괭이 호미가 흙을 털고 스르르 넘어"지는 모습이 그립습니다. 가까운 곳에 가서 "이 세상 순한 소리를 단번에" 낸다는 개구리소리라도 맘껏 들어보고 싶은 계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