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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서산 불교집안에서 태어남.
무당과 불교가 범벅인 집안에서 자람.
태어날때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음
비싼 비누를 만들어 파는 사업을 시작.
38살에 암에 걸렸다. 그때까니 저는 믿지 않았다. 언니는 예수님을 믿으라고 하였다.
예수님 믿으면 병도 낫고 바람난 남편도 돌아오고 날린 돈도 다시 돌아온다고 장로님이 설득하였다.
아침 조찬에 목사님께 만났다.
목사님은 한 시간만 만나자고 하였다.
꿈 속에서 동생이 승복을 입고 수서교회 가는 길을 딱 막고 서 있었다.
그런데 하얀 머리의 전도사님이 계셨다.
그런데 목사님이 그에게 맞는 말을 하여 황소눈물을 3 주일째 흘렸다.
전도사님은 계속해서 데리려 오셨다. 그래서 하나님이 계시다면 보여달라고 작정기도하였다.
언니는 몰래 교회다닌 사람이지만 저는 다니게 되면 터놓고 다니는 사람이다.
기도를 한 3개월 쯤 하는 데 제목을 적어놓고 기도하는 것을 보면 관세음보살하고 있어서 정신을 차리고 다시 기도하였다.
그런데 아름다운 무지개같이 아름다운 갓을 보았다. 그런데 권사님에게 밤 12시에 기도한다고 하니 귀신이 온다고 그 시간에 기도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런데 전도사님은 계속 데릴러 오셨다.
3개월 쭘 되었을 때 밤에 기도할 때 이때 이사야 말씀을 주셨다. <두려워 말라>. 이를 통해 자신이 완전히 바뀌었다.
그리고 대리점과 공장을 없애고 회사를 싹 바꾸었다. 자기 회사에 12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었다.
그러자 한 달만에 8명이 안나왔다.
언니와 함께 하나님께 영어 중국어 일본어 방언 달라고 기도하자 하나님은 언니에게 영어 중국어 방어를 주셨다.
아버지로부터 물주가 사고났다고 전화가 왔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사람들을 고쳐주셨다. 그후 IMF가 터졌다.
이제는 건강하여 전도하게 해달라고 기도제목이 바귀었다.
하나님 방법대로 비지네스 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금 데려간다고 하는 것을 생각하고 투쟁.
그래서 매년 여러사람을 전도하고 목사님을 한분과 사모님 한분만 두자 일치되었다.
하나님 만나고 제일 좋은 것이 불안함이 없음.
만물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우리를 천국에 보내실 수 있음.
손인춘(1959년생) 비례대표 초선국회의원
육군중사출신(군생활 7년)
퇴역후 100억원대의 기업을 경영 ( 인성내츄렬사장).
2014년: 새누리당제3사무부총장.
새누리당원내부대표.
13회 유재건 장로--> 7 회에 유재건 장로 간증이 있음.
저는 시골 20-30명되는 교회에서 고1 때 전도사님이 철야기도회를 갖고 기도를 배우고 있었다.
그때 하나님이 지난 죄를 파로라마처럼 보여 주셨지만 죄인줄도 몰랐다. 그 다음날 새벽 예수님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어 몸이 하늘에 둥둥 뜨는 기분이었다. 기분이 좋아서 할아버지 예수님 믿으라고 하엿다.
그 조그마한 시골교회에서 성경공부를 시작하였다. 성경이 참으로 재미있어서 일 주일 만에 성경을 전부 읽었다. 고 3초에 아버지께 신학교 보내달라고 하였지만 혼나기만 하였다 최근에 아버지는 예수님을 믿으셨다. 전도사님께 상의드렸다니 4년제 대학부터 다니라고 말씀하셨다.
시골 교회에 저녁에 어느 목사님 설교집을 일고 그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은 재미있게 들었다.
그리고 의과대학에 간다고 아버지한테 말씀드리고 가난하지만 부산대 의과대학을 다녔다. 의과대학시절에 신앙을 제대로 배우고 민족과 세계관을 배우고 전도방법을 읽혔다. 방학은 CCC에서 전도등에 시간을 드렸다.
그리고 외과할려고 했는데 친구가 자기에게 외과를 양보해 달라고 하여 그 친구의 신앙을 위해 양보하였다. 그러자 신앙의 은사들께서 도와 주셔서 외과를 할 수 있었다.
저희는 수술하고 기도하고 성경말씀을 읽혔다. 몇 번을 일히면 말씀이 잘 이해 안된다고 하면 설명해 준다.
선교기지 병원의 목절 설정- 복음 전파를 계속한다. 우리가 소속된 지역을 건강한 지역이 되도록, 그리고 복음을 세계에 전한다. 이 세가지를 행하는 것을 목적으로 정하였다.
전 세계에서 의료선교사를 보내달라는 요청이 빗발쳤다. 그래서 저희는 인턴 레지턴트들이 외국에 다기간 가서 점수를 받는다. 그리고 은퇴하고 돌아온 선교사들의 의료를 돕고 있다. 그리고 선교지에서 전도한 의료인을 보내면 신앙과 의려훈련을 주어 파송하고 있다. 이것은 옛날 의선선교사들의 빚을 갚는 것이다.
그리고 의료엔지니어를 동해 의료기구들을 고쳐주고 있다. 그리고 지구에 재난이 있을 때를 대비해 긴급재난 구호 의료팀을 조직해 돕고 있다. 아프카니스탄의 고위분을 위해 기도해 주었다. 우리 말로 기도해 주었는데 그 분은 자기나라 말로 알아들었다. 그 분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그 분은 예수님은 주님이라고 하였다.
몸이 연약하여 충북에서 청주에도 진학 못 하고 작은 키로 열등의식이 강하였다.
625가 일어나 미군 통역관으로 일하여서 그곳에서 영어공부를 열심히하였다.
통역관하느라고 학교룰 제대로 못다녔지만 고등학교 졸업장 엉터리로 받아 사가지고 사대 물리과로 들어갔다.
대학을 거의 만다니며 책파는 일을 하다가 야간대학을 다녔다.
그리고 믿는 아내와 결혼하여 점차로 기독교인이 되었다. 결혼해서도 불교서적에 심취하기도 하였다.
40이 되어 연세대 석사과정에 들어갔다.
그리고 40이 넘어 신앙을 갖어 불신자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고 전도편지를 작성하였다.
허리를 다쳐서 누워있었는데 아내의 말을 듣고 잠언을 읽었다. 동양사상을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잠언을 잘 이해했다.
그 다음은 전도서를 읽었다. 그 다음은 시편을 읽었는데 150편까지 좋아서 죽 읽었다. 그리고 암송하였다.
그리고 요한복음을 읽었다.
출판사에서 근무하고 이었던 그는 규장을 통해 복음을 전한다;.
전도는 믿지않은 사람을 믿는 사람이 사랑과 섬김으로써 교회에 나와 예수님을 믿어 구원를 얻고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말씀을 깊이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토라 (구약)를 암송하고 있다. 우리는 온전한 성경을 갖고 있다.
이 말씀을 무시할때 교회는 노화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젊은 세재는 인터넷의 나쁜 글 들에 노출되어 있다.
[C채널] 정근모 장로 2부 간증 - 회복 214회
2015년 02월 23일(월)
원자물리학자. 전과기처 장관, 명지대 호서대학교 총장. 집짓기운동가
현재 사랑의 집짓기 운동 전개하며, 한국과 여러나라에 사랑의 집을 지어주고 있다. 지미 카터와 같이 집을 지어주는 일을 하였는데 지미
카터는 21세기 하나님이 한국을 세계복음화에 쓰실것이라고 하였다. 또 예수전도단의 로렌 커닝행 목사도 같은 말을 하였다 .
2007년 11월 11일 정근모 장로 간증집회 영상 입니다. ( 하나님이 한국을 세계의 제사장 나라로 쓰실 비죤을 이야기) 전 명지대학교 총장, 호서대학 총장, 전 과학기술부 장관.
사랑의 집짓기 운동은 목조 집을 지어 주고 한달에 20만원씨 15년-20년 상환하도록 하여 자기 집이 된다.
핵공학자로서 저는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하다 82년에 중생을 체험했다. 그러자 세상이 완전히 변하였다.
1999년이 안식년이 되어 아는 것이 없어서 6개월 스위스에서 연구하고 6개월은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과자 지인에게 연락하였다. 더글라스라는 그분은 미국조찬기도 대표였다. 그분은 미국 조찬기도회에 초청해 주었다. 신학교 가지말고 성경을 일고 얻은바를 서로 나누자고 하였다. 하루는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하였다. 미국 큰 회사들이 회장님들이 모여있는 분들의 모임이었다. 거기서 한 20분 요한공부공부할 계획을 이야기 하였는데 부인들이 감동을 받아 우시고 이것이 동기가 되어 한달에 한번씩 모여 기도모임을 갖게되었다. 그 분들은 와싱톤의 빈민촌에 그들을 섬기는 일을 시작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연약했던 아들이 병원에 2달간 입원해 있었다. 아들은 천사가 온 거을 보고 기뻐하며 자기가 주님께로 가도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라고 하였다. 호서대학교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대 아들이 위독하다고 하여 미국에 갑자기 가자 그 아이는 웃으며 천국으로 갔다. 이 아들은그동안 아픈 몸을 갖고 다른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격려하였었다.
1947년 전남 강진 생. 강진농고 졸업하고 고향의 농협에서 오래 근무. 13-16대 국회의원, 참여정부 초대 농림부 장관을 지냈다. 그리고 18대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서 당선되어 18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시골에서 교회를 개척하던 장로님의 4남1녀의 장남으로 태어남. 모태신앙으로 태어난 것을 감사함. 집은 그 가난한 지역애서 우리 가정이 가장 가난하였다.
가정이 가난해서 아버지는 고등학교 못보내겠다고 하고 어머니는 어찌하던지 고등학교 보내야한다고 싸우셨다. 그래서 우체국에 가서 우체국장에게 일을 하게 해 달라고 하였다. 우체국장은 어린 놈이라 거절하였지만 스탬프를 찍는 것을 보고 스탬프 찍는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말해 우체국에서 사환으로 일을 하게 되어 우체국 청소를 하고 여러가지 일을 하여 학비벌기 위해 1년동안 열심히 일하였다. 그런데 또래 여자 아이들이 버스에서 내려서 자기를 보는 것이 가장 싫었다.
어머니는 그를 격려해주고 기도하여 주셨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기도로 오늘의 저가 되었다. 1년동안 일한 돈으로 고교에 입학하였다. 이때 온 천하가 제게 속한 것 같았다. 당시 김영준 집사와 함께 자취하며 고교를 다녔다.
교회와 가난한 사람들 위해 통행금지 해제위해 국회의장에게 편지보내는 운동을 하자 국가에선 그를 체포해 가서 고문하고 배후를 대라고 하였다. 감옥에서 성경을 읽기위해 달라고 하였지만 거절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아내가 넣어준 성경을 받고 하나님께 정말 감사하였다. 그리고 의를 위해 고난받는 것을 감사하였다. 그러자 모든 교회에서 들고 일어나 통행금지해제 운동과 김영진 집사 석방운동을 벌여 아무 조건없이 그를 석방시켜 주었다. 이 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에 호감을 갖오 교회에 나오기 시작되었다. 그리고 전국의 통행금지가 해제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교회 교단의 최연소 장로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강진군 기독교 연합의 총무로 선출되었다. 그리고 모든 기독교 교단에서 한 마음으로 그를 지원하여 국회의원에 후보지원하도록 하여 국회의원에 출마하게 되었다.
저와 경쟁후보는 노태후 후보의 지원을 받는 정계의 강자였다. 그 분의 연설후는 우뢰같은 박수가 나오는데 저의 경우는 미먁한 박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저는 새벽마다 아내와 교회에 가서 눈물의 기도를 하였다.
저는 교회에 가서 저는 국회의원될 욕심이 없었는데 목사님들이 하라고 해서 나왔는데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하겠습니다 기도하였다.
개표시 처음엔 밀렸지만 밤 1시 쯤부터 김영진 밑에 불이 반짝 반짝 했다하고 2시쯤ㅇ내 파란불이 내내 켜저 큰 표차로 당선되었다.. 그 다음날 약자의 승리의 퍼레이드가 있었고 국회의원 선서식때 하나님앞에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국회의원이 되어 각나라에 나라단위밖에 없는 기독교 의원 연맹을 <세계 기독교 국회의원 연맹>으로 처음으로 조직하여 그 첫 모임을 한국에서 가졌다. 그리고 비참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기 위해 아프리카 80여명 목사님들을 초청하여 친선 사역을 하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 라오스, 미얀마 등의 기독교의 자유가 없는 아시아 나라 선교 위해 힘쓰고 있다.
그리고 참여정부의 농림부 장관에 임명받았다. 북한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북한에 식량을 보냈다.
그리고 이제까지 많은 돈을 들여 한 새만금 사업 중단이 되었다. 그래서 교회에 가서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네가 가서 잘못되었다고 말해라> 하는 음성을 깨달았다. 그래서 우체국 사원이었다 자신을 높은 자리에 보내주신 것을 기억하고 회개하고 장관직 사표를 쓰고 기도원에 들어가 기도하였다. 그러자 새만금 사업에 대한 논란이 있고 재판부도 바뀌었다. 정부에선 장관사표를 반료하였으나 거절하였다. 그러나 장관 직장근무가 습관에 되어 새벽에 습관대로 출근하려고 하였는데 뒤에서 아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금 생각하고 좌절하였으다 다시금 생각하고 이일을 하나님께 크게 감사하였다.
그 후 대법원에서 새만금 사업 중단은 잘못된 것이라는 판결이 내렸다.
이 새만금의 1억 2천만평의 새땅은 한국에 큰 축복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주님이 도와주셔서 할 수 있었던 사업들이었다.
새만금 사업: 401 평방킬로미터 (토지 283 , 담수호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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