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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전쟁( 일본어: 日露戦争 니치로센소[*], 러시아어: Русско-японская война 루스코야폰스카야 보이나[*], 영어: Russo-Japanese War, 문화어: 러일 전쟁)은 1904년 2월 8일에 발발하여 1905년 가을까지 계속된 전쟁으로 러시아 제국과 일본 제국이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쟁취하려는 무력 충돌이었다. 러일 전쟁의 주요 무대는 만주 남부, 특히 요동 반도와 한반도 근해였다.
윤치호 영문 일기3(한국사료총서 번역서3) > 1896년(조선 개국 505년, 고종 33년, 병신년) > 11월 > 7일 《토요일》 맑으나 쌀쌀함.
7일 《토요일》 맑으나 쌀쌀함.
주석면과 민경식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페테르부르크에서 전해들은 소식에 따르면 조선특사는 약 20일 전 목적지에 안전하게 도착했다고 한다.
조선정부는 러시아의 차관을 얻고자 함경도를 담보로 제공했다는 소문이 한때 있었다. 나는 그와 같은 일이 민영환이 페테르부르크에 있을 동안 실제로 이루어졌는지 매우 우려스럽다. 민영환과 그 일당이 문을 잠그고 재무대신을 만나러 가기 전에 준비했던 비밀서류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 더 많은 것이 주어지겠지. 아주 조용하고 조금씩 조선이 북쪽의 거인 수중으로 떨어져 가는 것이 놀랍다.
국역 梅泉野錄 > 『梅泉野錄』 제4권 > 光武 9년 乙巳(1905년) ② > 37. 平壤 含毬門 毁撤
37. 平壤 含毬門 毁撤
일본인들이 平壤의 含毬門을 毁撤하였다.
갑오경장 이후 10년 사이에 평양은 조금 안정되었는데 러일 전쟁이 시작되면서부터 그곳을 요충지로 생각하여 무참히 짓밟았으므로 그곳 관리와 주민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관사와 城堞도 훼손된 채로 있어 보이는 곳마다 쓸쓸하기 그지없었으며 옛날 경관이라곤 다시 찾아볼 수 없었다.
국역 梅泉野錄 > 『梅泉野錄』 제4권 > 光武 8년 甲辰(1904년) ① > 9. 平南隊의 러시아군 격퇴와 러시아군의 행태
9. 平南隊의 러시아군 격퇴와 러시아군의 행태
平南隊의 병사들이 박천에서 러시아병과 대치하여 35명을 살해하였다.
이때 압록강 서쪽 지방에 있던 러시아군은 여러 부대를 교대로 보내어 일본군을 유인하고, 또 奇兵을 보내어 두만강 이남쪽을 건너왔다. 그들은 淸匪을 쫓아내기 위한 선봉부대로 西北의 여러 군에 침입해 들어온 곳인데 감히 그들의 예봉을 꺾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평남을 순찰하던 哨軍이 박천 평야에서 그들과 마주쳐 그들을 회피할 길이 없으므로 사력을 다하여 싸웠다. 이때 피난하던 남녀들은 고함을 지르며 그들을 후원하여 러시아병들은 패주하고 말았다. 관군은 하나도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 일병들은 그곳 전투지역을 와서 보고 으쓱거리며 “한국인도 적을 살해한다”고 하면서 그 승전병에게 후한 犒饋를 하고 갔다.
러시아 서북부에 코사크란 지역이 있다. 그 나라 사람들은 매우 용맹스럽고 사나워 유럽사람들이 두려워하였다. 이때 우리 나라 사람들 사이에는 “코사크의 병사들은 꼬리가 붙어 있어 아직 미개한 인종으로 사람을 먹고산다”고 잘못 알려져 있었다. 그들은 우리 국경을 침범하여 무차별로 유린하면서 남쪽 지방을 내려오고 있었다.
이때 어떤 安州 사람은 암말을 묶어 놓고 발굽을 파고 있다가 러시아의 유격대를 만나 말을 풀어 주지도 못하고 도주하였다.
러시아 병사들은 그 암말을 보고 서로 둘러서서 淫行을 하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이 코사크의 유격대라고 하였다. 그들의 성품은 매우 음란하여 부인들을 만나면 노소를 가리지 않고 즉시 범하였다. 그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의 정사를 가져 숫양과 같이 정력이 강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나간 곳은 부인들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또 그들은 의심이 많아 약탈을 할 때도 너댓 명의 사람들만 모여 있어도 침범을 하지 못하였으며, 무슨 음식을 먹을 때는 소나 말처럼 生食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말을 잘 타 휘파람을 한 번 불고 달리면 순식간에 10여 리를 달렸으며, 얼굴은 비록 사납게 생겼지만 사람을 만나면 해치지 않고 도리어 고분고분한 기색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보면 이를 가는 사람들은 오직 일본 사람뿐이었다. 이때 일본인들은 황해도에 많이 있었다. 당시 군량 및 병기를 운반하는 것 이외에는 통행을 금지하고 있었으므로 다른 선박들을 우리 나라 선박처럼 가장하여 서북부를 출입하면서 러시아를 정찰했다.
러시아 병사들도 그 사실을 알고 정탐자를 엄하게 수색하여, 머리를 깎은 사람만 보면 살해하였으므로 사망한 스님들이 수백 명이나 되었다. 이때 기후가 매우 차가워 사람들은 따뜻한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러시아 병사들은 사람만 만나면 즉시 칼로 모자를 베어 단발 여부를 확인하였다
5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5(한국사료총서 번역서5) > 1904년(조선 개국 513년, 광무 8년, 갑진년) > 5월 > 4일
4일
새벽 두세 시쯤 비. 벌써 장마철로 접어듦.
가난한 백성들에게 힘겨운 시기다. 가난한 조선의 백성들은 부패한 전제군주와 충고하는 일본인 사이에 끼여 전쟁과 기근 없이도 이미 충분히 최악의 상태에 놓여있다! 조선인은 전제군주에게 맹목적이고 비굴하게 굴복한 벌을 가혹하게 받고 있는 것이다.
이 잘못된 정부, 이 끔찍하게 파괴적인 전쟁, 이 기근은 한 가지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다. 즉 조선 전역의, 특히 조선 남부지역의 가난한 백성들은 소중한 논밭과 산과 집을 일본인에게 헐값에 팔아넘길 것이다.
전 세계 위대한 열강의 무리에 뛰어든 일본이 ‘국가 사이의 전쟁’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한편으로는 독립 국가로서 조선의 목숨은 실낱같이 유지되고 있다. 또 조선의 북부지방과 서부지방은 전쟁과 기근 때문에 완전히 파괴되었고, 조선의 남부지방은 탄압받는 백성들 때문에 사실상 황폐해졌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왕실은 밤이면 밤마다 점쟁이들에게 점괘를 물어보느라 정신없고, 국가의 대신들은 서로 “물어뜯느라” 바쁘다. 이를테면 궁내부대신은 이하영이 민씨 일가를 외부의 직위에서 해고했다는 이유로 황제에게 가서 이하영을 ‘물어뜯고’ 있다. 친일파인 박의병은 이하영이 홍순욱을 성진감리로 임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하영을 ‘물어뜯고’ 있다. 이렇게 물어뜯으면 상대방도 다시 물어뜯고, 한 사람, 또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로서로를 물어뜯게 된다. 이렇게 유치한 불화와 음모, 뒤에서 헐뜯기와 뒤를 물어뜯기 등을 통해 왕실과 정부가 끊임없이 전쟁과 전쟁 소문에 휩싸여 있는 동안 일본인들은 점점, 그리고 서서히, 조선의 생명줄을 강하게 압박해오고 있다.
5집 국역 윤치호 영문 일기5(한국사료총서 번역서5) > 1904년(조선 개국 513년, 광무 8년, 갑진년) > 5월 > 27일 간밤에 비.
27일 간밤에 비.
간헐적으로 열이 올라 고생한 뒤 계속 쇠약한 상태다. 내 병의 원인들은 대략 이렇다.
1. P. Kicows註 032의 끝없는 부패. 현영운 박의병 등 일본의 특별한 제자인 부도덕한 악당들이 정부를 운영하고 있다. 민병석 이용태 권중석 박용화 등은 나라를 말아먹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짓은 다 하고 있다.
2. 북부지방과 서부지방에서 어디든 가는 곳마다 잔학 행위를 저지르는 러시아인들. 러시아인들의 저주받은 흔적은 불탄 마을, 살해된 여성과 아이들, 파괴된 들판으로 나타난다. 불과 피는 러시아인이 좋아하는 전쟁 수단이다. 일본인에게 패한 야만인은 절망적인 조선인에게 자신들의 무력한 분노를 발산하고 있다.
3. 일본인은 부산 철도 운행을 통해 남부지방에서 마치 오래 전에 미국에서 백인이 인디언을 다루듯이, 그리고 아직도 아프리카에서 백인이 흑인들을 다루듯이 조선인을 다루고 있다. 일본인은 명목상으로는 구매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조선인의 논밭 임야 가옥을 강탈한다. 만약 자신들의 뜻대로 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저항하면 마치 개처럼 조선인을 차고 때리고 죽이기까지 한다. 조선인에게는 보호해 달라고 호소할 곳이 전혀 없다. 일본인은 자신들이 조선의 안위를 위해 싸우고 있다고 공언하지만, 조선인을 자신들의 노예로 만들겠다는 잘 알려진 의도와 정책을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다.
4. 이런 모든 일이 일어나고 있는 동안 황제는 궁궐을 짓느라 분주하다. 무당과 점쟁이들이 있는 방 두 칸에서 시간을 보내는 황제, 난방을 한 곁방 밖으로 나와 한낮의 햇빛을 보거나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싶어 하지도 않고 그렇게 할 시간도 없는 황제, 권력이 일상이고, 부패가 즐거움이고, 음모가 인생인 황제. 이 황제는 이 저주받은 나라의 저주받은 백성들로부터 갈취한 몇 백 만원의 돈을 불타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빼앗길 쓸모없는 궁궐을 짓는 데 낭비하고 있다.
5. 대신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멍청이들이다. 아니,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황제와 일본인이 명령하는 일 따위만 하는 멍청이들이다. 그 일이 아무리 조선에 상처를 입힌다고 해도 말이다.
6. 일본인은 부패하고 어리석은 황제를 통해 조선에서 모든 이익의 원천을 획득할 때까지 어떤 일도 개혁적인 방식으로는 하지 않겠다고 결정한 것 같다. 일본인이 언제쯤이면 자신들이 양도라는 형태로 거두어들일 것이 더 이상 없다고 만족하면서 체면상 세상이목도 있으니까 개혁 운운하는 허풍을 떨게 될까? 그런데 거머리가 만족감을 느낄 수나 있을까?
국역 梅泉野錄 > 『梅泉野錄』 제4권 > 光武 9년 乙巳(1905년) ① > 24. 일본의 여순전투 승리를 축하하는 국서 내용
24. 일본의 여순전투 승리를 축하하는 국서 내용
義陽君李載覺을 대사로 임명하자 그는 일본으로 들어가서 일본인의 旅順勝捷을 축하하였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겨울 날씨가 따뜻하였다. 이것은 수십 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므로 日兵들은 遼東에서 싸울 때 추위 때문에 고통을 느끼지는 않았다. 그러나 奉天지방 전투에서 러시아인들은 운하를 믿고 설비를 하나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물이 꽁꽁 얼어붙으므로 일병들은 비호처럼 건너가 불의에 진격하자 러시아는 크게 패하고 말았다. 이때 모든 사람들은 하늘이 러시아를 망하게 했다고 하였다. 이재각은 떠날 때 다음과 같은 국서를 가져갔다.
“朕이 생각할 때 이번에 貴國이 병력을 출동하여 武力을 떨친 것은 오직 우리 東洋을 維持하기 위한 것이므로 이것은 옛날에도 드문 快擧라고 하겠습니다. 그 出兵은 명분이 있기 때문에 義旗가 지향하는 곳마다 破竹之勢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遼陽을 점령하는 것과 旅順을 陷落하는 기세가 아직도 늠름한데 奉天地域을 승리하고부터 軍聲을 더욱 떨치어 곧 陛下의 戚信이 멀리 떨치고 그 功利가 널리 미치었으니 짐이 동맹국의 君主로서 어찌 축하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皇族인 義陽君李載覺을 대사로 임명하여 親書를 가지고 가서 축하를 드리고, 또 土儀 數品으로 짐의 友誼를 표하는 바이오니 기꺼이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국역 梅泉野錄 > 『梅泉野錄』 제6권 > 隆熙 2년 戊申(1908년) ④ > 22. 一進會員의 露日戰 참여
22. 一進會員의 露日戰 참여
露日戰爭 때 일진회는 그 전쟁에 참여하여 사망자가 수천 명을 헤아렸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대한민국은 중국대륙 ㆍ아메리카에 걸친 나라였다고 해요
한반도는 소도지역이라 왕 ㆍ귀족들의 무덤을 묻힌곳
1900년도 부터
아메리카 ㆍ중국대륙에서 이주했다고 해요
다
가짜 역사라는데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