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의 가을 - 한계령,중청,소청,희운각,신선대,천불동계곡,설악동

[56이세진]

침봉의 제국 공룡능선. 맨 오른쪽이 그 수장인 1,275m봉

* 자신의 능력에 대하여 철두철미하게 아는 것이야말로 등반행위에서 가장 어려운 최초의

  과제이다.

* 동반자의 선택은 등반의 선택만큼이나 중요하다.

* 위험과 어려움은 완전히 상이한 개념이다. 후자가 건전하고 남성적인데 비해, 전자는 어리

  석고 병적인 것이며 배척받아 마땅하다.

―― 가스통 레뷔파(Gaston Rebuffat, 1921~1985)

▶ 산행일시 : 2020년 10월 24일(토), 맑음, 바람 세게 붐

▶ 산행시간 : 8시간 15분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19.7㎞

▶ 갈     때 : 동서울터미널에서 설악산 가는 06 : 25 출발 우등버스 타고 한계령에 감

▶ 올     때 : 설악산 소공원 버스주차장에서 시내버스 타고 속초 시외버스터미널로 와서

               우등버스 타고 동서울터미널로 옴

▶ 구간별 시간

06 : 25 - 동서울터미널 출발

09 : 18 - 한계령, 산행시작

09 : 55 - 1,306.3m봉

10 : 28 - 한계령삼거리(1,353m), ┳자 갈림길

11 : 20 - 1,454.9m봉

11 : 36 - 1,460.7m봉

12 : 13 - 끝청(1,609.6m), 휴식

12 : 52 - 중청(1,664.5m)

13 : 10 - 소청(1,581.0m)

13 : 45 - 희운각대피소

14 : 15 - 신선대(1,233.1m)

14 : 47 - 무너미고개

15 : 27 - 양폭대피소

16 : 08 - 귀면암

16 : 41 - 비선대

17 : 33 - 설악산 소공원탐방지원센터, 산행종료, 17 : 55 속초 향발

18 : 51 - 속초 시외버스터미널, 19 : 10 동서울 향발

21 : 44 - 동서울터미널

1. 한계령에서 바라본 흘림골 등선대 주변

2. 가리봉, 점점 멀어지는 가리봉을 보는 것이 오늘 산행의 포인트다. 

3. 점봉산

4. 서북주릉의 한계령삼거리 부근

5. 귀때기청봉 남쪽 지능선의 감투바위(1,178m)

▶ 한계령삼거리(1,353m), 끝청(1,609.6m)

한계령 가는 06시 59분발 버스표를 예매했으나 이미 매진된 앞의 버스에 혹시 빈 좌석이 생

길지도 몰라 일찍 터미널에 나갔다. 06시 25분발 버스가 출발하기를 기다렸다. 운이 좋았다.

한 자리가 비었다고 얼른 타시라 한다. 동행인이 없어 다행이기도 하다. 이 한 자리를 포기할

뻔했으니 말이다. 06시 25분발 버스는 설악산을 가는 특별버스다. 

28인승 우등버스를 배차했다. 승객은 등산객 일색이다. 마치 안내산악회 대절버스와 같다.

노선버스가 들르기 마련인 인제와 원통을 들르지 않고 곧장 설악산으로 간다. 지나가는 길인

장수대에서는 한 사람이 내리고 한계령에서 다수가 내린다. 남은 몇 사람은 흘림골과 오색에

서 내릴 것이다. 막바지 단풍철이라 도로가 막힐 것을 염려했는데 한계령까지 평소의 예정시

간인 2시간 10분보다 43분이 더 걸렸다. 선방한 셈이다. 

한계령. 차문을 열고 나가자 세찬 바람이 기다렸다는 듯이 얼굴을 냅다 휘갈긴다. 얼얼하다.

그 기세에 고개 푹 수그리고 설악루 108계단을 오른다. 내가 맨 앞장서서 간다. 다른 등산객

들은 예상하지 못한 찬바람의 횡행에 복장을 추스르느라 부산하다. 돌계단에 이어 데크계단

오르고 암릉 암봉 밑을 돌아 다시 돌계단을 오른다.

돌계단 오르막이 전보다 더 가팔라진 것 같다. 지난여름 장마와 폭우로 얼마 남지 않은 토사

마저 쓸려나갔다. 내 거친 숨에 낙엽이 흩날리고 그렇게 땅에 코 박고 오르다 힘들면 가다 멈

추고 뒤돌아 설악의 경치를 살핀다. 흘림골 등선대 주변은 도열한 실루엣의 침봉들이 기치창

검마냥 날카롭다. 가리봉은 울근불근한 산줄기가 굳센 근육으로 보여 그에 내 발걸음이 힘을

받는다. 저 가리봉의 점점 멀어지는 모습이 오늘 산행의 포인트이다. 

1,306.3m봉. 한계령에서 서북주릉의 한계령삼거리까지 2.3km의 절반쯤 되는 거리다. 빼어

난 경점이다. 남설악의 맹주인 점봉산이 단연 우뚝하다. 그 주위로 산 첩첩 옹위하고 있는 모

습은 장관이다. 멀리는 방태산, 계방산, 오대산까지 그러하다. 1,306.3m봉의 가파른 슬랩을

내렸다가 안부의 오른쪽 협곡에 머리 내밀고 깊은 석고당골을 내려다본다. 아찔하다. 협곡으

로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이어 긴 데크계단 오름길은 계단마다 뒤돌아보면 농담의 원근이 가경이다. 등로 벗어난 인적

이 보이면 경점이리라 꼬박 들른다. 예전에는 옹달샘이 있던 마른 계곡을 무지개다리로 건너

고 한 피치 가파른 데크계단을 올랐다가 산허리 길게 돌면 서북주릉의 ┳자 갈림길인 한계령

삼거리다. 많은 등산객들이 쉬고 있다. 이제 이들과 또 앞서가는 이들을 더해 중청에 이르기

까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가다 서다를 반복할 것이다. 

감탄사 연발하는 등산객들의 무리 속에 나도 발돋움하여 공룡능선과 용아장성릉을 들여다본

다. 현란하다. 그리고 잰걸음 하여 너덜 길을 간다. 너덜이 여러 발길로 닳고 닳아 여간 미끄

럽지 않다. 암봉을 암릉 닮은 너덜 길로 길게 돌아 넘은 안부는 전망하기 썩 좋아 방금 지나

온 길을 요연히 내려다볼 수 있다. 능선에 서면 바람이 거세다. 오가는 등산객들은 두툼한 옷

가지로 중무장하였다. 

6. 서북주릉의 끝청 가기 전 1,474.3m봉

7. 앞 왼쪽은 1,306.3m봉, 능선 중간이 한계령

8. 가리봉, 앞쪽의 암봉은 감투바위

9. 점봉산, 그 뒤 멀리 오른쪽은 방태산 연릉

10. 중간의 암봉 너머가 한계령

11. 공룡능선, 그 앞은 용아장성릉

12. 가리봉, 앞은 1,306.3m봉

13. 도로 고갯마루가 한계령

차디찬 북풍이 몰아친다. 바람을 맞는 왼쪽 얼굴은 내 얼굴이 아니다. 가을은 가버렸고 겨울

이다. 1,454.9m봉. 일단의 등산객들이 등로 막고 사진 찍느라 야단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전

후좌우가 훤히 트이는 경점이다. 한 차례 길게 내렸다가 암릉 암봉의 사면을 돌아간다. 바윗

길 오르내린다. △1,460.7m봉. 오른쪽 잘난 소로는 독주골로 내리는 길이다.   

    노랗게 물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몸으로 두 길을 다 가 볼 수가 없어

    아쉬운 마음으로 그곳에 서서

    한쪽 길이 덤불 속으로 감아 돌아간 끝까지 

    오랫동안 그렇게 바라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 1874~1963)의 「가지 않

은 길」의 서두이다. 나 또한 프로스트처럼 독주골로 가는 길이 잡목 속으로 감아 돌아간 끝

까지 한참을 바라보다 간다. 

    疊峯遮客眼                 첩첩 봉우리가 나그네의 눈을 막고

    一徑入溪源                 깊은 골짜기 향해 한 줄기 길이 나 있네

    (……)

    十年南北去                 십 년 세월 남북으로 떠다녔건만

    歧路正銷魂                 갈림길에만 서면 애가 타는구나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 1435~1493)의 「갈림길에 서면(椵峴)」의 일부다. 프로스

트가 매월당의 이 한시를 보았음직하다. 나도 숱한 세월 산에서 산으로 떠다녔지만 갈림길에

만 서면 마치 ‘뷔리당의 당나귀’처럼 애가 타고 망설여진다. 

△1,460.7m봉 넘고 숲속 길을 잠시 평탄하게 가다 끝청 품에 든다. 갈지자 어지럽게 그리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오는 사람들과 자주 마주친다. 서로 길 양보하느라 머뭇거리기 일쑤다.

관목 사이로 머리 내밀어 천지가 열리고 이윽고 바람 끝이 매서운 끝청이다. 우선 사방의 첩

첩 산 일람하고 바람 막은 바위벽에 기대 휴식한다. 산행을 시작한 지 배낭 벗은 첫 휴식이

다. 줄곧 바람에 떠밀리고 등산객들에 떠밀려 왔다. 

14. 가리봉, 앞 능선 왼쪽은 한계령으로 간다.

15. 쌍폭골 주변

16. 백운동계곡 주변

17. 멀리 가운데는 계방산

18. 가리봉

19. 멀리 왼쪽은 오대산 연릉

20. 용아장성릉

21. 가리봉, 오른쪽은 귀때기청봉, 멀리 가운데는 사명산

▶ 중청(1,664.5m),  소청(1,581.0m),  신선대(1,233.1m)

중청 가는 길은 많은 등산객들로 지체다. 등로 벗어나면 지날 수 없는 암릉이거나 뚫은 수 없
는 잡목 숲이다. 그저 느긋이 나뭇가지 사이로 대청봉의 넓고 푸짐한 품을 감상할 일이다. 대

청봉을 더 잘 보기 위해서 중청을 올라 갈 수 있는 철조망 가까이 오른다. 대청봉은 들르지

않는다. 거기서 볼 수 있는 경치는 끝청과 중청에서 다 보았다. 

중청을 데크로드로 돌아 주릉에 오르고 바람에 맞선다. 새로운 경치가 펼쳐진다. 동해가 돌

을 던져 물수제비 뜰 듯 가깝다. 화채봉(華彩峰)은 ‘거기서 바라보는 공룡능선과 천불동계곡

등의 무수한 침봉들이 아름다운 꽃이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날 화채봉에서 목도했다. 천불이

회합하는 천불동계곡, 신선대 만물상, 침봉의 제국 공룡능선, 마늘을 까서 상 위에 나란히 진

열한 듯한 울산바위 ……. 아무리 바라보아도 물리지 않는다. 

중청에서 소청 가는 길이 갑자기 썰렁하다. 많은 등산객들은 중청에서 대청봉으로 간다. 소

청 가는 걸음걸음 눈이 닿는 데마다 가경이다. 거기에 맞바람이 제동하니 ‘만고강산 유람할

제’ 팔자걸음이다. 소청. ┳자 갈림길이다. 왼쪽의 봉정암, 백담사로 가는 길은 서울 가기가

막막하다. 머뭇거리지 않고 오른쪽의 희운각 가는 길로 든다. 

소청에서 희운각까지 이정표 거리 1.2km를 고도 520m로 내린다. 사인 값으로 계산한 경사

도는 약 25도다. 대단히 가파른 내리막이다. 너덜 같은 돌길이거나 데크계단이다. 무릎 연골

과 대퇴부 고관절이 삐거덕거린다. 이런 데는 눈 쌓인 겨울에 가기 좋다. 1급 슬로프로 몇 번

코너링하면 희운각이었다. 내리막이 주춤할 때마다 고개 들면 소청 올 때 보던 파노라마의

경치를 줌인 하니 그리 심심하지는 않다. 

마른 계곡을 무지개다리로 건너고 희운각대피소다. 곧바로 무너미고개를 향한다. 양다리가

후들거리게 내렸던 터라 0.2km 오르막이 적잖이 힘들다. 무너미고개 ┣자 갈림길. 공룡능선

가는 길은 트였다. 공룡능선을 갈까 말까 망설인다. 안내판에 진입 제한시간이 13 : 00이다.

45분이 지났다. 절충한다. 그 관문인 신선대까지만 갔다가 뒤돌아오자고. 

침봉의 제국인 공룡능선의 수장 1,275m봉과 천화대 릿지의 절정인 범봉을 보러간다. 비로소

오롯이 혼자 가는 길이다. 내 발걸음을 거세게 막아서는 바람을 뚫고 김영랑의 「무너진 성

터」를 가듯 한다. 

    무너진 성터에 바람이 세나니 

    가을은 쓸쓸한 맛뿐이구려

    희끗희끗 산국화 나부끼면서

    가을을 애닯다 속삭이느뇨

22. 대청봉

23. 가운데가 화채봉에서 내려오는 능선의 칠성봉

24-1. 울산바위

24-2. 화채봉

25. 가리봉

26. 범봉, 그 앞은 공룡능선

27. 신선대 만물상

28. 공룡능선

29. 범봉

30. 귀때기청봉, 중간은 용아장성릉

산자락 길게 돌아내려 계곡을 지나고 곧추선 오르막이다. 슬랩은 핸드레일을 붙들고도 팔심

이 부치게 가파르다. 다시 산자락 잠깐 돌았다가 돌계단을 오른다. 삼삼오오 떼 지어 내려오

는 등산객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마등령 쪽으로 가는 사람이 있던가요? 하고 물었다. 아무도

없더라고 한다. 한결 마음이 놓인다. 가는 사람을 만났다고 했으면 내 그를 뒤쫓아 가고 싶은

마음을 억제하기 어려웠으리라. 

새롭게 핸드레일을 설치한 슬랩을 마저 오르면 신선대다. 여태와 다른 세계인 별유천지비인

간(別有天地非人間)을 엿본다. 오늘은 신선대가 폭풍의 언덕이기도 하다. 바람과 바람소리

가 요란하다. 사진촬영 금지구역인 듯 바람에 몸을 가누기조차 힘드니 카메라 초점을 맞추는

데 아주 애먹는다. 그렇다고 바위벽에 기대면 전경이 가린다. 하는 수 없어 막 연사한다. 

저 경치를 그대로 두고 뒤돌아서는 것 또한 용기다. 한달음에 무너미고개다. 천불동계곡을

간다. 거기에는 가을이 몰려 있겠지. 천불동계곡은 지나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 오색에서

대청봉을 넘어온 사람들이다. 가파른 돌길을 한 차례 길게 내리면 계류와 만나고 평탄한 길

이 이어진다. 줄달음한다. 길을 막는 공포의 아줌마부대는 없다. 어디서나 추월이 가능하도

록 길이 넓다. 

가을은 갔다. 그 흔적인 낙엽이 낙화처럼 곱다. 다만 생강나무 노란 잎만 가을의 끝자락을 힘

겹게 붙들고 있다. 가늘어진 계류 물소리가 차갑게 들린다. 성긴 수렴 사이지만 도열한 침봉

들을 사열한다. 천당폭과 양폭, 오련폭은 지난여름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뒤흔들었던 폭

우를 잘 견디어냈다. 귀면암, 장군봉, 비선대도 무사하다. 모두 해끔한 얼굴들이다. 

비록 왕휘지(王徽之, 338~386)가 자주 다니던 산음길(山陰道)이 아니지만 ‘산천의 경치가

절로 어우러져 구경하느라 겨를이 없다(山川自相映發 使人應接不暇)’는 천불동계곡 잔도다.

비선대를 지나고 눈을 일순간도 가만두지 않던 아이맥스 영화는 끝났다. 소공원 3.0km. 새롭

게 단장했다. 길을 넓히고 고운 마사토를 깔았다. 해거름의 고즈넉한 숲길이다. 

소공원 주변의 가게는 불을 밝혔다. 주차장은 한산하다. 오전에는 차량이 밀려들어 설악C지

구에서부터는 옴쭉달싹 못했다고 한다. 속초시내 가는 버스를 탄다. 동서울 가는 버스는 시

외버스터미널에 있다. 시외버스터미널은 고속버스터미널을 지나 20분 정도 더 간다. 동서울

가는 버스 사정을 알아보기 전에 음식점부터 들렀어야 했는데 잘못했다. 오늘 산행을 겨우

김밥 한 줄과 크림빵 두 개로 때웠던 터라 허기져 어질어질하다. 이번에도 쫄쫄 굶고 버스를

탄다. 

31. 천당폭

32. 칠형제봉 릿지

33. 천불동계곡 주변

34. 왼쪽이 귀면암

35. 천불동계곡

36. 오른쪽이 비선대 위의 장군봉

37. 천불동계곡

38. 왼쪽이 장군봉, 오른쪽은 적벽

39. 비선대에서 뒤돌아본 천불동계곡 주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