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이영광
봄 햇살이, 목련나무 아래
늙고 병든 가구들을 꺼내놓는다
비매품으로
의지와
소파와
침대는
다리가 부러지고 뼈가 어긋나
삐그덕 거린다.
갇혀서 오래 매 맞은 사람처럼
꼼짝없이 전쟁을 치러온
이 제대병들을 다시 고쳐 전장에,
들여보내지
말았으면 좋겠다
의자에게도 의자가
소파에게도 소파가
침대에게도 침대가
필요하다
아니다, 이들을
햇볕에 그냥 혼자 버려두어
스스로 쉬게 하라
생전 처음 짐 내려놓고
목련꽃 가슴팍에 받아 달고
의자는 의자에 앉아서
소파는 소파에 기대어
침대는 침대에 누워서
<시 읽기> 휴식/이영광
늙고 병든 가구에 닿은 시의 눈길이 따뜻하다. 풀섶에 자잘하게 핀 꽃들을 아끼듯 가구들에 말을 건네는 목소리는 살갑다. 소외라는 말이 생기기 전부터 소외되었을 이력들이 펴지지 않아서일까. 남들 일할 때 나도 일하고 남들이 쉴 때 나도 쉬는 노동 현실이 멀어서일까 .목련나무 아래에 적힌 삶이 절실하다.
시의 관심은 “다리가 부러지고 뼈가 어긋나/삐그덕거린다”라는 가구의 불편함에 있다. 의자로 소파로 침대로 한평생을 타인의 휴식 자리가 되었던 가구들은, “갇혀서 오래 매 맞는 사람처럼/꼼짝없이 전쟁을 치러”오느라 몸이 성한 곳이 없다.
늙고 병든 가구들이 ‘비매품’으로 자리보전하는 모습은 제 몸을 다치면서까지 노동에 시달려야 했던 인간의 노동 현실로 시적 의미를 넓힌다. 가구들을 두고 “이 제대병들을 다시 고쳐 전장에,/들여보내지 말”라는, “이들을/햇볕에 그냥 혼자 버려두어/스스로 쉬게 하”라는 화자의 목소리는 되게 물린 이빨 자국처럼 아프다.
누구든 일터라는 전장戰場에서 “꼼짝없이 전쟁을 치”를 수밖에 없고, 누구도 산업 전선이란 말을 피해살 수 없는 것이라면―노동에 자본의 불온한 숫자를 들이대지 말라는 외침은 공허해진다. 일에 파묻히는 오늘이 재래식으로 고달프다. 그러나 시의 눈길은 맑다. 사람들 주머니에 속이나 파먹는 자본 이론을 저만치 밀어두고 생계에 지친 이들을 늙고 병든 가구처럼 보살피고 싶다.
―이병초, 『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 형설출판사, 2021.
첫댓글 의자와 소파와 침대가 영원한 안식에 든 것일까요? 그들을 떠나보내는 사용자 혹은 주인의 마음은 어떨까요? 얼마전 집 정리를 하면서 가구를 마당에 내다 놓으며 '잘가'라고 인사했습니다.
아마 이영광 시인은
의자 소파, 침대를 자본주의 시대의 인간으로 보지 않았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