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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v 29, 2013. John 16:14. The supremacy of Jesus Christ. 그리스도는 최고의 존재
14. He shall glorify me: for he shall receive of mine, and shall shew it unto you.
14. 그분께서 나를 영화롭게 하시리니 이는 그분께서 내게서 받아 그것을 너희에게 보이실 것이기 때문이라.
(요한복음 16:14)
(3491) (오늘날의 거룩함 운동은 신약 성경의 강인한 사실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외형적으로 거룩한 분위기, 기도, 헌신이 있을 따름으로, 초자연적이거나 기적적인 면이 없으며 주님의 어린 양 보혈로 성결케 된 것이 아닙니다.) The holiness movements of today have none of the rugged reality of the New Testament about them. There is nothing about them that needs the death of Jesus Christ. All that is required is a pious atmosphere, prayer, and devotion. This type of experience is not supernatural nor miraculous. It did not cost the sufferings of God, nor is it stained with “the blood of the Lamb” (Revelation 12:11).
(3492) (그러한 거룩함 운동은 전지전능한 주님이 일하신 것이라는 경이로움이나 놀라움이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신약은 모두 주님의 일이 쓰여 있고 다른 것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It is not marked or sealed by the Holy Spirit as being genuine, and it has no visual sign that causes people to exclaim with awe and wonder, “That is the work of God Almighty!” Yet the New Testament is about the work of God and nothing else.
(3493) (신약에서 나타난 예시들은 예수님에 대한 개인적이고 열정적인 경험들입니다. 오늘날 주님이 단지 대표적인 종교적인 인물로서 그려지고 있지만, 주님은 그것을 무한히 넘어선 구원이시고 하나님의 기쁜 소식 그 자체입니다.) The New Testament example of the Christian experience is that of a personal, passionate devotion to the Person of Jesus Christ. Every other kind of so-called Christian experience is detached from the Person of Jesus. There is no regeneration—no being born again into the kingdom in which Christ lives and reigns supreme. There is only the idea that He is our pattern. In the New Testament Jesus Christ is the Savior long before He is the pattern. Today He is being portrayed as the figurehead of a religion—a mere example. He is that, but He is infinitely more. He is salvation itself; He is the gospel of God!
(3494) (내가 신약 성경에 드러난 진리를 믿으면,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을 선물로 고, 성령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내가 깨닫게 하신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외적으로 이루어 놓으신 것을 성령은 내 안에서 그대로 다 이루신다.) Jesus said, “... when He, the Spirit of truth, has come ...He will glorify Me...”(John 16:13-14). When I commit myself to the revealed truth of the New Testament, I receive from God the gift of the Holy spirit, who then begins interpreting to me what Jesus did. The Spirit of God does in me internally all that Jesus Christ did for me externally.
(3495-오늘의 idiom) (시간은 날아간다) time flies = tune goes by so quickly we don’t even notice it has gone.
♣ 세상의 심오한 일만 하나님의 섭리이고 가벼운 일은 그렇지 않다는 영적인 자만심을 버려야 합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갓난아이로 오셨습니다. Beware of allowing yourself to think that the shallow aspects of life are not ordained by God; they are ordained by Him equally as much as the profound.
♣ 우리는 일상의 생활로 인해 우리의 깊은 생활이 보호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깊은 생활은 하나님 외에는 나타내지 마십시오. 우리는 역겨울 정도로 우리의 명성과 외향에 신경을 쓰는 나머지 일상의 일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 인 것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We are safeguarded by the shallow things of life. We have to live the surface, commonsense life in a commonsense way. Then when God gives us the deeper things, they are obviously separated from the shallow concerns. Never show the depth of your life to anyone but God. We are so nauseatingly serious, so desperately interested in our own characters and reputation, we refuse to behave like Christians in the shallow concerns of life.
♣ We don’t know when God will call us home, but we do know this: Each day is an opportunity to leave a testimony worthy of our faith.
하나님이 언제 우리를 본향으로 부르실지 모르지만,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매일 하루하루가 우리의 믿음생활에 합당한 간증을 남길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 “Feeling gratitude and not expressing it is like wrapping a present and not giving it.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마치 선물을 포장해놓고 주지 않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 Yielding to Christ in all of our desires and decisions regardless of the outcome is what sets us apart
in a world full of people consumed by their own interests. When we live blameless lives “without fault”—courageously reflecting the integrity,
love, and grace of Jesus—we clearly “shine as lights in the world” (Phil. 2:15).
So, if you want to light up your world in a compelling way, just do what’s right!
결과에 상관없이 우리의 모든 바라는 것들과 결정하는 것들에서 그리스도께 순복하는 행동은 자신들의 이익에 몰두해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우리를 구별해줍니다. 우리가 당당하게 예수님의 완전하심과 사랑과 은혜를 나타내며 책망 받을 것이 없는 “흠 없는” 삶을 살 때, 분명 우리는 “세상에서 빛들로 나타날” 것입니다(빌 2:15).
그러므로 설득력 있게 세상을 밝히고 싶다면 그냥 옳은 일을 하십시오!
♣ Each day we add to our legacy—good or bad.
매일 좋든 나쁘든 우리의 남긴
유산은 계속 쌓여간다.
♣ Sing praise to God who reigns above,
The God of all creation,
The God of power, the God of love,
The God of our salvation.
모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구원이 되신 하나님
위에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 Blessed is the man who fears the Lord, who delights greatly in His commandments. —Psalm 112:1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112:1
♣ In 2010, my brothers and I celebrated our dad’s 90th birthday. We hosted an open house with great food and fellowship. In the living room, family and friends took up banjo, guitar, mandolin, fiddle, upright bass, and Irish drum to play and sing all afternoon. A big cake was prepared with this written on it in frosting: “Praise the Lord! Blessed is the man who fears the Lord—Psalm 112:1. Happy 90th birthday, Hal.”
2010년에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의 90회 생신을 맞이하여 정성들여 음식을 장만하고 친교를 곁들이는 오픈하우스 파티를 열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이 오후 내내 거실에서 벤조, 기타, 만돌린, 바이올린, 더블베이스, 드럼 등을 연주하고 노래하며 보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112편 1절, 축 90회 생신, 할렐루야”라고 쓰인 커다란 케이크도 준비했습니다.
♣ When I later examined Psalm 112, I was impressed with how it seemed to describe my dad—who had walked with God for more than 50 years and is now at home with Him. Dad had his own share of heartaches and faults, but his steadfast faith resulted in much blessing.
나중에 시편 112편을 자세히 살펴보았을 때, 이 시편이 50년 이상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해오셨고 지금은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계시는 아버지를 잘 표현해주고 있음을 보고 감동받았습니다. 아버지도 번민이나 과실이 있었지만, 굳은 믿음 덕분에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 This psalm tells us that blessings will fall on the man who has a reverential fear of God and who delights in His commands. In response to this growing integrity and faith, God will extend blessing not only to the believer but also to his children (v.2). 이 시편은 주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경외하고 계명을 즐거워하는 자에게는 축복이 쏟아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성장해가는 고결함과 믿음에 반응하여 주님은 그 믿는 자 뿐만 아니라 그의 자녀들에게도 축복을 내려주실 것입니다(2절).
♣ This psalm challenges us to reflect an inner reverence for God and to make continual decisions to delight in following His commands. If we do that, then as we look back on our years—no matter how many or how few—we will know that God has helped us live a life of honor.
이 시편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마음속으로 경배하고 줄곧 주님의 계명을 즐거이 따르기를 결심하도록 도전을 줍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우리는 짧든 길든 살아온 세월을 뒤돌아볼 때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광스런 삶을 살게 해주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 When we walk with the Lord in the light of His Word,
What a glory He sheds on our way!
While we do His good will, He abides with us still,
And with all who will trust and obey.
우리가 주님의 말씀의 빛 안에서 주님과 함께 걸을
때 얼마나 큰 영광을 우리 앞길에 비춰주시는지!
주님의 선한 뜻을 행할 때 주님은 언제나 함께
하시며 믿고 순종하는 모든 자들과도 함께 하시네
♣ Keep praising God from whom all blessings flow.
모든 축복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항상 찬양하라.
♣ If you honor God in your heart,
He will be honored by your life. 진심으로 주님을 영광스럽게 한다면,
주님은 당신의 삶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 (세상의 심오한 일만 하나님의 섭리이고 가벼운 일은 그렇지 않다는 영적인 자만심을 버려야 합니다. 주님은 이 세상에 오실 때 갓난아이로 오셨습니다.) Beware of allowing yourself to think that the shallow aspects of life are not ordained by God; they are ordained by Him equally as much as the profound. We sometimes refuse to be shallow, not out of our deep devotion to God but because we wish to impress other people with the fact that we are not shallow. This is a sure sign of spiritual pride. We must be careful, for this is how contempt for others is produced in our lives. And it causes us to be a walking rebuke to other people because they are more shallow than we are. Beware of posing as a profound person—God became a baby.
♣ (예수님도 이 세상에 오셔서 먹고 입고 마시고 하셨습니다. 큰 대양도 해변이 있듯이, 일상의 일들이 죄 된 것은 아니며 일상의 평범한 일들이 당신이 진중하지 못하다는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To be shallow is not a sign of being sinful, nor is shallowness an indication that there is no depth to your life at all—the ocean has a shore. Even the shallow things of life, such as eating and drinking, walking and talking, are ordained by God. These are all things our Lord did. He did them as the Son of God, and He said, “A disciple is not above his teacher ...” (Matthew 10:24).
♣ (우리는 일상의 생활로 인해 우리의 깊은 생활이 보호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깊은 생활은 하나님 외에는 나타내지 마십시오. 우리는 역겨울 정도로 우리의 명성과 외향에 신경을 쓰는 나머지 일상의 일에서 진정한 그리스도인 인 것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We are safeguarded by the shallow things of life. We have to live the surface, commonsense life in a commonsense way. Then when God gives us the deeper things, they are obviously separated from the shallow concerns. Never show the depth of your life to anyone but God. We are so nauseatingly serious, so desperately interested in our own characters and reputation, we refuse to behave like Christians in the shallow concerns of life.
♣ (당신으로부터 가장 먼저 비판을 받아야 할, 크게 위선적인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Make a determination to take no one seriously except God. You may find that the first person you must be the most critical with, as being the greatest fraud you have ever known, is yourself.
♣ (오늘의 idiom) (꼬인 상황에 놓이게 하다) tie oneself/someone in (into) knots = to be—or cause someone to be—confused and bewildered.
⎈ The Lord, the Lord God, merciful
and gracious. —Exodus 34:6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로운
하나님이로라 —출애굽기 34:6
⎈ Sadly, some Christians are content with spiritual baby food. They are happy to go over and over the simple truths of the Scriptures and don’t move beyond the basics of the gospel (Heb. 6:1-2). By not sinking their teeth into deeper truths and more difficult Bible passages, they lack biblical understanding and convictions to make right choices (5:13). They may have been Christians for many years, but their spiritual abilities remain underdeveloped. They remain babies.
슬프게도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이유식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단순한 사실들을 되풀이하는 것에 만족해 할 뿐 초보적인 단계를 넘어가지 않으려 합니다(히 6:1-2). 더 깊은 진리와 더 어려운 성경구절들을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한 이해와 확신이 부족합니다(5:13). 어쩌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된지 여러 해가 지났겠지만 그들의 영적인 능력은 개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 We don’t know when God will call us home, but we do know this: Each day is an opportunity to leave a testimony worthy of our faith.
하나님이 언제 우리를 본향으로 부르실지 모르지만,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매일 하루하루가 우리의 믿음생활에 합당한 간증을 남길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 When our son was young, he sometimes needed to be reminded that avoiding eye contact, looking down at his feet, and mumbling some unintelligible words was not an acceptable “thank you.” And after many years of marriage, my husband and I are still learning that it’s important for us to continually express our gratitude to each other. When one of us feels appreciative, we try to verbalize it—even if we’ve said it many times before about the same thing. William Arthur Ward said, “Feeling gratitude and not expressing it is like wrapping a present and not giving it.”
우리 아들이 어렸을 적에, 눈을 맞추는 것을 피하거나, 발을 내려다본다든지, 분명하지 않게 중얼거리는 것은 좋은 “감사”의 표현이 아니라는 것을 가끔 상기시켜 주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오래 되었지만, 계속해서 서로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아직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고마운 생각이 들 때에는, 비록 전에도 같은 일로 여러 번 고맙다고 했을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말로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윌리엄 아더 워드는 “고마움을 느끼면서도 그것을 표현하지 않는 것은 마치 선물을 포장해놓고 주지 않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 Each day we add to our legacy—good or bad.
매일 좋든 나쁘든 우리의 남긴
유산은 계속 쌓여간다.
⎈ Sing praise to God who reigns above,
The God of all creation,
The God of power, the God of love,
The God of our salvation.
모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구원이 되신 하나님
위에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 They are abundantly satisfied with the fullness of Your house, and You give them drink from the river of Your pleasures. —Psalm 36:8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로운
하나님이로라 —출애굽기 34:6
⎈ Recently I walked into a hotel lobby that featured the largest arrangement of fresh flowers I have ever seen. It was bursting with color, perfectly arranged, and its fragrance was amazing. It stopped me in my tracks, and I lingered for a moment to admire its beauty.
최근에 나는 어느 호텔 로비에서 여태껏 내가 본 것 중 가장 큰 생화 꽃꽂이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완벽하게 배열된 그 꽃들은 화려한 색깔을 뽐내며 놀라운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한동안 서서 그 아름다움에 감탄하였습니다.
⎈ It made me think that there is something about abundance that captures our hearts. Think of the inviting beauty of a bowl overflowing with colorful fruit, or a countertop covered with three or four pies ready for enjoyment after a bountiful Thanksgiving meal.
그것은 나에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풍성함에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다양한 색깔의 과일을 수북이 담은 그릇의 매혹적인 아름다움이나, 풍성한 추수감사절 식사 후 디저트로 즐길 파이가 담긴 서너 개의 접시가 놓여있는 주방 조리대를 생각해보십시오.
⎈ The joy of abundance reminds me of the generosity of God. He makes our cup overflow (Ps. 23:5); He “is able to do exceedingly abundantly above all that we ask or think” (Eph. 3:20); His grace is sufficient for any difficulty that life brings our way (2 Cor. 12:9); and it is He who kills the fatted calf and calls for the best robe when the prodigal returns (see Luke 15:20-24). 풍성함이 주는 기쁨은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생각나게 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잔이 넘치게 하시고(시편 23:5),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에베소서 3:20)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만나는 어떤 어려움에도 주님의 은혜가 충분히 임하며(고린도후서 12:9), 탕자가 돌아왔을 때 살찐 송아지를 잡고 제일 좋은 옷을 가져오라고 하신 분도 바로 하나님이십니다(누가복음 15:20-24 참조).
⎈ No wonder the psalmist rejoices: “How precious is your lovingkindness, O God! Therefore the children of men put their trust under the shadow of Your wings. They are abundantly satisfied with the fullness of Your house” (Ps. 36:7-8). Our God is abundantly good. Let’s overflow with praise for His many blessings.
그러므로 시편기자가 이렇게 기뻐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인생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 피하나이다 저희가 주의 집의 살찐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시편 36:7-8). 우리 하나님은 풍성하도록 선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많은 축복을 생각하고 찬양이 넘쳐흐르게 하십시오.
⎈ Lord, thank You for the reminder that far from being stingy You bless us with good things in abundance. Thank You for Your presence and
the comfort of the promises in Your Word.
주님, 주님은 조금도 인색함이 없이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풍성하게 축복해주신다는 것을
일깨워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임재와 말씀
안에 있는 언약의 위로에 감사를 드립니다.
⎈ Keep praising God from whom all blessings flow.
모든 축복을 내리시는 하나님을 항상 찬양하라.
Let God’s Word fill your memory,
rule your heart, and guide your life.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 속에 가득 차고,
가슴을 지배하며, 삶을 인도하게 하라
⎈ Why are you fearful? —Matthew 8:26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마태복음 8:26
⎈ Falling asleep was a challenging event during my childhood. No sooner had my parents turned out the lights than the crumpled clothes I had thrown on the chair would take on the form of a fiery dragon and the thoughts of something living under my bed put me into a panic that made sleep impossible. 어렸을 때 나는 잠들기가 어려웠습니다. 부모님이 전등을 끄자마자 의자 위에 벗어던진 옷들이 불타는 용 같은 형체를 취하고, 침대 밑에 살아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생각에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 I’ve come to realize that the immobilizing power of fear is not just a childhood experience. Fear keeps us from forgiving, taking a stand at the office, giving our resources to God’s kingdom, or saying no when all our friends are saying yes. Left to ourselves, we are up against a lot of fiery dragons in our lives.
그런데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는 두려움은 어린 시절에만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은 용서를 제대로 하지 못하게 만들고, 직장에서 당당하게 나의 주장을 펴지 못하게 하며, 하나님께 우리의 가진것을 드리지 못하게 하고, 모든 사람들이 ‘예’ 라고 할 때, ‘아니요’라고 말할 수 없게 만듭니다. 우리는 홀로 남겨진 채 수많은 용들을 대하며 살아갑니다.
⎈ In the story of the disciples in the storm-tossed boat, I’m struck by the fact that the only one who was not afraid was Jesus. He was not afraid of the storm, nor was He afraid of a crazy man in a graveyard or of the legion of demons that possessed him (Matt. 8:23-34).
풍랑 속에 요동치는 배안에 있던 제자들의 이야기에서, 두려워하지 않았던 분은 오직 예수님뿐이었다는 사실에 나는 매료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풍랑을 두려워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무덤가에 있던 미친 사람이나 그에게 들렸던 귀신들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8:23-34).
⎈ In the face of fear, we need to hear Jesus ask, “Why are you fearful?” (v.26) and be reminded that He will never leave us nor forsake us (Heb. 13:5-6). There is nothing that He can’t overcome and therefore nothing for Him to fear. So, next time you’re haunted by your fears, remember that you can rely on Jesus, our fearless Champion!
두려움에 직면했을 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26절)라고 물으신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히브리서 13:5-6). 예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기에 두려워하실 것도 없으십니다. 그래서 다음에 당신이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된다면, 두려움을 모르시는 승리자이신 예수님을 의지하십시오!
⎈ Lord, thank You for the reminder that You will never leave us nor forsake us. When I am afraid,
I know that I can rely on Your presence and
power to calm my heart and overcome my fears.
주님, 우리를 결코 떠나지도 버리지도 않으심을
상기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두려울 때
주님의 임재와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제 마음을
진정시키고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음을 압니다.
⎈ In times of fear, call out to Jesus,
our fearless Champion.
두려울 때면, 두려움 없는 승리자
예수님을 큰 소리로 부르라.
⎈ 방귀 하면 생각나는 동물이 스컹크인데, 스컹크의 경우에는 배출하는 가스 자체에 냄새를 함유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다만 이 동물은 자신을 보호할 목적으로 항문 선에서 특수한 악취를 지닌 액체를 방출한다. 이 액체는 적의 얼굴을 향해 발사되는데, 3∼4미터까지 발사된다고 한다.
'방귀를 뀌다'의 영어 표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방귀를 뀌다: fart, break wind, cut the cheese
[예문 1] Who farted? 누가 방귀 뀌었어?
[예문 2] When I sneezed in class one day, I accidentally cut the cheese. 하루는 교실에서 재채기하다가 방귀를 뀌어 버렸어.
[예문 3] At a wedding, one of the guests broke wind very loudly. 결혼식에서 하객 중 한 명이 우렁찬 방귀를 뀌어 버렸어.
* 참고로 방귀 소리는 farting noise, 그 악명 높은 소리 없는 방귀는 noiseless fart라고 한다.
⎈ "~까지"라는 동일한 한국어 의미를 가지고 있는 시점 전치사 by와 until의 차이점을 구분해보자. 1. By + <시점>의 그 <시점>은 어떤 행동의 <기준>이다.You should complete the report by 7.→당신은 보고서를 7시까지 완료해야 합니다.→7시는 보고서를 완료해야 하는 <넘을 수 없는 기준>이다.I know we must finish this project by tomorrow.→우리가 내일 까지 프로젝트를 완료해야 하는 것을 안다.→내일은 프로젝트를 끝내야 하는 <넘을 수 없는 기준>이다.- 함께 잘 다니는 어휘들 - 조동사 : must, should, have to일반동사 : finish, complete, submit2.Until + <시점>의 그 <시점>은 어떤 상태의 <전환점>이다.We postponed the event until next Friday.→우리는 다음주 금요일까지 그 이벤트를 연기했다.→다음주 금요일은 이벤트가 다시 시작되는 <전환점>이다.He continued working up until his death.→그는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을 지속했다.→그의 죽음은 일하는 것이 끝나는 <전환점>이다.- 함께 잘 다니는 어휘들 –stay, postpone, last, valid
⎈ (인생에서 얻기 어려운 가장 어려운 배움 중에 하나는 다른 사람의 삶에 끼어들지 않도록 자신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을 방해하는 미숙한 섭리자가 되는 것에 대한 위험을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One of the hardest lessons to learn comes from our stubborn refusal to refrain from interfering in other people’s lives. It takes a long time to realize the danger of being an amateur providence, that is, interfering with God’s plan for others. You see someone suffering and say, “He will not suffer, and I will make sure that he doesn’t” You put your hand right in front of God’s permissive will to stop it, and then God say, “What is that to you?” Is there stagnation in your spiritual life? Don’t allow it to continue, but get into God’s presence and find out the reason for it.
⎈ (당신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하여야 하나님의 분별과 지혜가 당신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가 지속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는데 사용됩니다.) You will probably find it is because you have been interfering in the life of another—proposing things you had no right to propose, or advising when you had no right to advise. When you do have to give advice to another person, God will advise through you with the direct understanding of His Spirit. Your part is to maintain the right relationship with God so that His discernment can come through you continually for the purpose of blessing someone else.
⎈ (하나님의 자녀의 성숙한 삶은 무의식 수준에서 생깁니다.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에 의해 인도되고 있다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정도가 되어야 성숙한 자녀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Most of us live only within the level of consciousness—consciously serving and consciously devoted to God. This shows immaturity and the fact that we’re not yet living the real Christian life. Maturity is produced in the life of a child of God on the unconscious level, until we become so totally surrendered to God that we are not even aware of being used by Him.
⎈ (주님의 자녀란 의식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기가 하나님의 성도인 것을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이미 성도가 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When we are consciously aware of being used as broken bread and poured-out wine, we have yet another level to reach—a level where all awareness of ourselves and of what God is doing through us is completely eliminated. A saint is never consciously saint—a saint is consciously dependent on God.
⎈ (오늘의 idiom) (두뇌 집단) think tank = a center or an institution devoted to research and problem solving
ᦁ Sadly, some Christians are content with spiritual baby food. They are happy to go over and over the simple truths of the Scriptures and don’t move beyond the basics of the gospel (Heb. 6:1-2). By not sinking their teeth into deeper truths and more difficult Bible passages, they lack biblical understanding and convictions to make right choices (5:13). They may have been Christians for many years, but their spiritual abilities remain underdeveloped. They remain babies.
슬프게도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이유식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단순한 사실들을 되풀이하는 것에 만족해 할 뿐 초보적인 단계를 넘어가지 않으려 합니다(히 6:1-2). 더 깊은 진리와 더 어려운 성경구절들을 진지하게 연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한 이해와 확신이 부족합니다(5:13). 어쩌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이 된지 여러 해가 지났겠지만 그들의 영적인 능력은 개발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그들은 유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ᦁ We don’t know when God will call us home, but we do know this: Each day is an opportunity to leave a testimony worthy of our faith.
하나님이 언제 우리를 본향으로 부르실지 모르지만,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매일 하루하루가 우리의 믿음생활에 합당한 간증을 남길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ᦁ Oh, may all who come behind us find us faithful in God;
May the fire of our devotion to God light their way;
May the footprints that we leave in God lead them to believe,
And the lives we live in God inspire them to obey.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우리의 신실함을 보게 하소서
우리 헌신의 불꽃이 그들의 길을 비추며
우리가 남긴 발자국이 그들을 믿음의 길로 인도하며
우리가 살아온 삶이 그들을 감동시켜 순종케 하소서
ᦁ Each day we add to our legacy—good or bad.
매일 좋든 나쁘든 우리의 남긴
유산은 계속 쌓여간다.
ᦁ The Lord, the Lord God, merciful
and gracious. —Exodus 34:6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로운
하나님이로라 —출애굽기 34:6
ᦁ The prayers of young children show us what they think of God. Here are two I read recently: “Dear God, what does it mean that You are a ‘jealous’ God? I thought You had everything.” “I didn’t think orange went with purple until I saw the sunset You made on Tuesday. That was cool.”
어린아이들의 기도 문구를 보면 그들이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최근에 읽은 두 개의 기도문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는데 무슨 뜻이에요? 하나님은 모든것을 다 갖고 계시잖아요?” “지난 화요일에 하나님이 만드신 저녁노을을 보기까지는 보랏빛과 주황빛이 함께 어울릴 수 있다고는 생각조차 못했어요.
정말 멋있었어요.”
ᦁ These children are right to think of God as the owner and creator of everything, the One who can paint beautiful sunsets. But how does God describe Himself?
이 아이들이 하나님을 만물의 소유자요, 아름다운 석양에 색을 입히시는 창조자로 생각하는 것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자신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을까요?
ᦁ Moses needed an answer to that question when he was about to lead the Israelites into the wilderness. He wanted to be assured of God’s presence and leading, so he asked Him to reveal Himself (Ex. 33:13,18). In response, God came down in a cloud and said: “The Lord, the Lord God, merciful and gracious, longsuffering, and abounding in goodness and truth, . . . by no means clearing the guilty” (34:5-7). He is good; He is just. 모세는 이스라엘백성을 광야로 이끌고 나가려할 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와 인도하심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드러내주시기를 요청했습니다(출애굽기 33:13,18). 이에 하나님은 구름 속에서 내려오셔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결단코 면죄하지 않고”(34:5-7). 하나님은 선하시고 또한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ᦁ We too can know this God and be assured of His presence. He has revealed Himself in His creation and in His Word. As we ask Him to make Himself known to us, we’ll learn that He is even more than the owner and creator of everything!
우리 또한 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그의 임재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세계와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알려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은 만물의 소유자와 창조자 이상의 훨씬 위대하신 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ᦁ Sing praise to God who reigns above,
The God of all creation,
The God of power, the God of love,
The God of our salvation.
모든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우리의 구원이 되신 하나님
위에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라
ᦁ In a world of superlatives, God is the greatest.
최고의 것들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이 가장 위대하시다.
ᦁ Let God’s Word fill your memory,
rule your heart, and guide your life. 하나님의 말씀이 기억 속에 가득 차고,
가슴을 지배하며, 삶을 인도하게 하라.
ᦁ 일반적인 동굴을 cave라고 하는데, 길이와 규모가 작은 소규모 동굴은 grotto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grotto는 자연적 또는 인위적으로 만든 동굴을 모두 의미한다.
[예문 1] Archaeologists unveiled the underground grotto. 고고학자들이 그 작은 동굴을 발견해 냈다.
[예문 2] A complex maze of tunnels with crypts, grottoes and galleries connects the underground churches. 지하실들, 작은 동굴들, 좁고 긴 복도들로 이루어진 복잡한 미로가 지하 교회들을 연결해 줍니다.
성역이나 성스러운 장소는 sanctuary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성역은 신과 관련된 성스러운 장소이므로, 인간이 만든 법도 무기력하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중세에서는 법률의 힘을 피해 성역을 은신처로 삼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take[seek] sanctuary라고 하면 ‘성역으로 피신하다’는 의미가 된다. sanctuary가 동물과 관련된 문장에서 나온다면 ‘동물 보호 구역’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예문 1] The illegal immigrants found sanctuary in a local church. 불법 이민자들은 한 지역 교회에서 은신처를 찾았다.
[예문 2] The country’s only swan sanctuary is finally able to function properly. 그 나라의 유일한 백조 보호 구역이 마침내 정상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되었다.
ᦁ '쥐가 나다'의 영어 표현은 cramp, 혹은 미국식 영어로는 ‘charley horse’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Ouch! My foot is cramping. (아야! 발에 쥐가 났어.)” 또는 “I got a charley horse in my leg. (다리에 쥐에 났어요.)”와 같이 사용합니다. ‘charley horse’라는 표현은 미국에서만 자주 사용되며, 정확한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야구 용어에서 비롯된 숙어라고 합니다. 근육이 뭉쳐서 쥐가 나는 것 이외에도, 뼈관절을 삐끗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는 sprain을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The piano player has sprained his wrist. (피아노 연주자는 손목을 삐었다.)” 또는 “I sprained the ankle. (나는 발목을 삐었다.)”과 같이 사용합니다.
ᦁ A: Break out the navigation app. We’re lost.
B: I’m one step ahead of you. I’ve got it here.
A: Give me some kind of landmark to watch for.
B:눈 빠지게 찾아봐, for a big bridge.
ᦁ A: 내비게이션 앱을 좀 켜봐. 우리 길을 잃었어.
B: 내가 너보다 한 발 빠르지. 여기 벌써 켰다구.
A: 랜드마크가 같은 게 있는 지 좀 알아봐줘.
B: Keep your eyes peeled. 큰 다리가 있는 지.
[Additional expressions]
*Break out the navigation app. – Start up the navigation application / Open up your nav app.
*We’re lost. – I don’t know where we are. / We’ve lost our way. / We need directions.
*I’m one step ahead of you. – I’ve already done it. / I’ve already thought of that. / I’m on it already.*I’ve got it here. – Here we go. / This is it. / I’m looking at it.
*Give me some kind of landmark to– Tell me something to look for / Let me know some kind of sign
*watch for – look for / wait for / use as a guide / expect
*Keep your eyes peeled for a big bridge. – Keep looking for a big bridge / Search for a large bridge
It is more blessed to give than
to receive. —Acts 20:35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사도행전 20:35
It made no sense for a widow to donate her last few coins to a corrupt institution in Jerusalem, where scribes who were dependent on those gifts “devour[ed] widows’ houses” (Mark 12:40). But in that woman’s act, Jesus saw a moving display of the proper attitude toward money (vv.41-44).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마가복음 12:40) 그 같은 헌물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타락한 서기관들이 득실대는 예루살렘에서, 어느 과부가 그들에게 마지막 남은 동전 몇 개를 헌금했다는 것이 전혀 납득이 가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과부의 행동에서 돈에 관한 올바른 태도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모습을 보셨습니다(41-44절).
Gordon Cosby, while serving as pastor of the Church of the Saviour in Washington, DC, tells of a widow whose income was barely adequate to feed and clothe her six children. Yet every week she faithfully placed $4 in the offering plate. A deacon suggested that Cosby go to her and assure her that she could use the money instead for her family’s benefit.
고든 코스비는 그가 워싱턴에 소재한 구세주교회의 목사로 시무하고 있을 당시, 여섯 명의 자녀를 간신히 입히고 먹일만한 수입 밖에 없었던 어느 과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녀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매주 4불씩 변함없이 헌금을 했습니다. 한 집사가 코스비에게 그녀를 찾아가 헌금을 하는 대신 그 돈을 가족을 위해 쓰도록 조언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 Cosby followed the deacon’s advice—to his regret. “You are trying to take away the last thing that gives me dignity and meaning,” she said. She had learned a key to giving: It can benefit the giver more than the receiver. Yes, those in poverty need financial help. But the need to give may be as important as the need to receive.
코스비는 그 집사의 권고를 따랐다가 후회하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나를 품위 있게 하고 의미를 주는, 내게 남은 단 하나의 일마저 빼앗아가려고 하는군요.”라고 그녀가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 이 복이 있다는, 베풂의 핵심을 알고 있었습니다. 물론 궁핍한 사람들에게 재정적인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주는 것이 받는 것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 The act of giving reminds us that we live by the grace of God—like the birds and the flowers. Those creations don’t worry about their future; neither should we. Giving offers us a way to express our confidence that God will care for us just as He cares for the sparrow and lily (Matt. 6:25-34).
우리는 베풀면서 마치 새나 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을 되새기게 됩니다. 새나 꽃 같은 피조물들은 그들의 앞날에 대해 걱정하지 않습니다. 우리 또한 걱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베풂은 하나님이 참새나 백합꽃을 돌보시듯이 우리도 돌보아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표현하는 한 방법입니다(마태복음 6:25-34).
♣ Whatever, Lord, we lend to Thee,
Repaid a thousand-fold will be;
Then gladly will we give to Thee,
Who givest all—who givest all.
우리가 주께 무엇을 드리든
천배로 되갚아 주실 것이네
그러기에 모든 것을 주시는 주님께
우리는 기쁨으로 드릴 것이네
♣ We disarm the power of money
by giving it away.
우리는 돈을 베풂으로써
돈을 무력하게 만든다.
ᦁ (우리가 거듭나고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가 기도하지 못하는 부분까지도 성령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We realize that we are energized by the Holy Spirit for prayer; and we know what it is to pray in accordance with the Spirit; but we don’t often realize that the Holy Spirit Himself prays prayers in us which we cannot utter ourselves. When we are born again of God and are indwelt by the Spirit of God, He expresses for us the unutterable.
ᦁ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속의 의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성령의 기도를 알기 위해 찾아오십니다.) “He,” the Holy Spirit in you, “makes intercession for the saints according to the will of God”(8:27). And God searches your heart, not to know what your conscious prayers are, but to find out what the prayer of the Holy Spirit is.
ᦁ (하나님께서는 우리 몸을 성령이 중보 기도하기 위한 성전으로 삼으십니다.) The Spirit of God uses the nature of the believer as a temple in which to offer His prayers of intercession. “... your body is the temple of the Holy Spirit ...”(1 Corinthians 6:19). When Jesus Christ cleansed the temple,“... He would not allow anyone to carry wares through the temple”(Mark 11:16). The Spirit of God will not allow you to use your body for your own convenience. Jesus ruthlessly cast out everyone who bought and sold in the temple, and said, “My house shall be called a house of prayer ... But you have made it a ‘den of thieves’”(Mark 11:17).
ᦁ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의식 부분을 담당하시지만 우리는 의식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고 주님의 성전이 되도록 지켜야 합니다.) Have we come to realized that our “body is the temple of the Holy Spirit”? If so, we must be careful to keep it undefiled for Him. We have to remember that our conscious life, even though only a small part of our total person, is to be regarded by us as a “temple of the Holy Spirit.” He will be responsible for the unconscious part which we don’t know, but we must pay careful attention to and guard the conscious part for which we are responsible.
ᦁ (오늘의 idiom) (너의 날개를 펴고 날아라) test/try/spread one’s (own) wings = to be independent, become free by starting to use our own abilities and no longer depending on someone else.
ჶ Do you know anyone looking for water? Someone who is spiritually thirsty? Introduce that person to Jesus, the Living Water. It’s the greatest discovery of all time.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물을 찾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영적으로 갈급한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에게 생수이신 예수님을 소개하십시오. 그에게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것입니다.
ჶ Holy and beloved, put on tender mercies, kindness, humility, meekness, long-suffering.
—Colossians 3:12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골로새서 3:12
ჶ One day my wife called me at work and said, “Something’s going on next door. Lots of cars are there.” Because of my neighbor’s occupation, I feared the worst, and soon those fears were realized. Our neighbor, policeman Trevor Slot, had just been killed in the line of duty, trying to stop the escape of two bank robbers. Our community was stunned. 어느 날, 아내가 직장으로 전화해서 말했습니다. “옆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봐요. 차들이 잔뜩 모여있어요.” 옆집 사람의 직업을 알고 있던 터라 뭔가 불길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 예감이 들어맞았습니다. 경찰관인 트레버 슬럿이 두 명의 은행 강도가 도주하는 것을 저지하다가 조금 전에 순직했다는 것입니다. 온 동네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ჶ Trevor had no time to prepare for his death. Yet he was ready. His faith in Christ was secure, and his reputation as a remarkable man was intact. At his funeral, attended by hundreds of fellow officers, his colleague Detective Brandyn Heugel said, “He was a dedicated police officer, but first and foremost he was a loving husband to Kim and a doting father to Kaitlyn and Abbie.” Indeed the theme of Trevor’s tributes all centered on his great personality and his love and care for his family.
트레버는 죽음에 대비할 시간은 없었지만 준비는 되어 있었습니다. 주님에 대한 그의 믿음은 견고했고, 그의 훌륭한 사람 됨됨이는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수백 명의 동료 경찰관들이 참석한 그의 장례식에서 형사 브랜딘 휴겔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트레비는 헌신적인 경관이지만 무엇보다 아내 킴을 지극히 사랑하는 남편이었고, 동시에 자녀인 케이틀린과 애비를 아끼고 사랑하는 아빠였습니다.” 트레비에게 바친 조문들은 모두 그의 훌륭한 성품과 가족에 대한 그의 지극한 사랑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ჶ Trevor’s life exemplified the words of Colossians 3:12-13, “Put on tender mercies, kindness, humility, meekness, longsuffering, bearing with one another, and forgiving one another.” Those traits leave an inspiring legacy.
트레버의 삶은 골로새서 3:12-13의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라”고 하신 말씀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러한 성품은 감동적인 유산을 뒤에 남깁니다.
ჶ We don’t know when God will call us home, but we do know this: Each day is an opportunity to leave a testimony worthy of our faith.
하나님이 언제 우리를 본향으로 부르실지 모르지만, 우리가 확실히 아는 것은, 매일 하루하루가 우리의 믿음생활에 합당한 간증을 남길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ჶ Oh, may all who come behind us find us faithful;
May the fire of our devotion light their way;
May the footprints that we leave lead them to believe,
And the lives we live inspire them to obey.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우리의 신실함을 보게 하소서
우리 헌신의 불꽃이 그들의 길을 비추며
우리가 남긴 발자국이 그들을 믿음의 길로 인도하며
우리가 살아온 삶이 그들을 감동시켜 순종케 하소서
ჶ Each day we add to our legacy—good or bad.
매일 좋든 나쁘든 우리의 남긴
유산은 계속 쌓여간다.
ჶ gain과 earn은 모두 우리말로는 '~벌다, 얻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차이가 있는데, 'earn'은 노력을 통해 뭔가를 얻는다는 어감이 있지만 gain은 ‘별 노력 없이 얻다’는 어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급여나 학위처럼 노동의 대가로 얻는 경우에는 'earn a wage,' 'earn MBA'와 같이 'earn'을 사용하는 것이 맞으며, 늘어나는 몸무게는 'gain weight'과 같이 'gain'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reputation'이나 'benefits' 같은 경우는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고,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일 수도 있으므로 문맥에 따라 'earn'과 'gain'을 혼용할 수도 있습니다. 질문한 “He is excited about the thought that he can _______ a wage and support his family like he used to before he had lost a job.” 문장에서는 '임금'을 얻는 것이므로 'earn'이 맞습니다.
ჶ What does the Lord your God require of
you, but . . . to walk in all His ways
and to love Him. —Deut. 10: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그 모든 도를 행하며
그를 사랑하며 —신명기 10:12
ჶ A heart is not judged by how much you love, but by how much you are loved by others.” I saw this quotation, attributed to the Wizard of Oz, on a wall plaque in a gift shop. “당신의 마음은 당신이 얼마나 사랑을 주는지에 의해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남으로부터 얼마나 사랑 받는가에 의해서 평가된다.” 나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인용된 이 구절을 선물가게에 있는 벽걸이에서 보았습니다.
ჶ The Wizard of Oz may be a good story, but it’s not a reliable source of spiritual information. God said something quite different. According to Him, the greatest commandment is to love—to love Him first and then others (Mark 12:29-31). Scripture says nothing about expecting to be loved in return. In fact, Jesus stated the opposite in His most famous sermon: “Blessed are you when they revile and persecute you, and say all kinds of evil against you falsely for My sake. Rejoice and be exceedingly glad, for great is your reward in heaven” (Matt. 5:11-12).
‘오즈의 마법사’는 좋은 이야기일지는 모르지만, 신앙적으로는 믿을만한 자료가 못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주 다르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의하면, 가장 큰 계명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 다음에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마가복음 12:29-31). 성경은 사랑한 후에 그 대가로 사랑을 받는 것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은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전혀 다르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마태복음 5:11-12).
ჶ When it comes to love, the important thing we need to know is this: All love starts with God
(1 John 4:19). As Moses told the Israelites, God delighted in them to love them (Deut. 10:15), and because of that they were to love others, even strangers (v.19). God’s intent is that the people who receive His love will become the conduit of His love to others.
사랑에 대해서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은, ‘모든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요한1서 4:19)는 것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그들을 기뻐하시고 사랑 하셨습니다(신명기 10:15). 그래서 그들도 서로 사랑하고, 나그네들 까지도 사랑해야 했습니다(19절). 하나님의 의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ჶ Apart from God—who Himself is love—none of us could truly love or be loved (1 John 4:7-8).
그분 자신이 사랑이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사랑할 수도 없고 사랑 받을 수도 없습니다(요한1서 4:7-8).
ჶ “Love seeketh not her own,” and so
He did not stay as God above,
But chose a manger and a cross
To show that He was Love.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기에
주님은 하늘 보좌 위에 계시지 아니하고
구유와 십자가를 선택하여
자신이 사랑이심을 보여주셨네
ჶ He who does not love does not know God,
for God is love. —1 John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1서 4:8
ჶ 먼저, ‘위하여’라는 건배에 대한 표현이다. 건배의 유래는 고대 그리스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당시 그리스인은 포도주를 마셨는데, 상대를 해치려는 목적으로 독을 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술을 권한 사람은 상대방이 안심할 수 있도록 먼저 한 모금 마신 뒤 잔을 높이 들고 건배를 외쳤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영어 표현은 “Cheers!”와 “Bottoms up!”이 있다. 후자의 경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원 샷’과 같은 의미인데, ‘바닥을 보일 정도로 마시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어떤 자리에서는 이 표현들 대신, “Toasts!”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toast는 원래 구운 식빵을 의미하는데, 17세기 유럽에서 술과 함께 구운 토스트를 먹는 풍습에서 유래했다. drink[propose] a toast to라고 하면 ‘~를 위해 건배하다’라는 의미가 된다.
[예문 1] James and I drank a toast to Ms. Kate. 제임스와 나는 케이트 양을 위해 건배했어요.
[예문 2] I propose a toast to Mr. Brown. 브라운 씨를 위해 건배를 제안합니다.
사람마다 술에 대한 반응이 다르지만, 술을 잘 못 마시는 경우에는 한 잔만 마셔도 취기가 금세 올라온다. 이런 경우에는 begin to feel high를 사용할 수 있다. 여기서 high는 ‘술이나 약물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예문] One more drink? - No, thank you. I’m already beginning to feel high. 한 잔 더? ? 아니요, 그만 할래요. 벌써 취기가 올라와요.
많이 취했다는 표현은 is drunk, feel pretty high를 사용한다.
[예문 1] He is drunk! 그가 취했어요.
[예문 2] I’m feeling pretty high from the soju. 소주 때문에 많이 취했어요.
ჶ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사적인 삶이란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사적인 생활을 밖으로 드러내셔서 세상을 향한 고속도로요 주님을 향한 고속도로로 만드셨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주님과 동일시되는 바른 관계를 갖지 않으면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There is no such thing as a private life, or a place to hide in this world, for a man or woman who is intimately aware of and shares in the sufferings of Jesus Christ. God divides the private life of His saints and makes it a highway for the world on one hand and for Himself on the other. No human being can stand that unless he is identified with Jesus Christ.
ჶ (당신이 주님과 관계를 맺게 되면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주님의 일이 생겨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거치는 돌이 될 뿐입니다.) We are not sanctified for ourselves. We are called into intimacy with the gospel and things happen that appear to have nothing to do with us. But God is getting us into fellowship with Himself. Let Him have His way. If you refuse, you will be of no value to God in His redemptive work in the world, but will be a hindrance and a stumbling block.
ჶ (주님은 먼저 우리가 확고한 현실과 진리에 자리 잡도록 하십니다. 왜 우리가 찢어지는 마음의 고통을 받지 않아서는 안 됩니까? 그것이 바로 주님과 절친한 관계를 맺게 하는 관문입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실 때 경험하게 되는 아픔의 첫 손에 바로 혼절하여서, 주님의 목표에 들어가는 관문 밖에서 자신을 향한 동정으로 점점 말라져가 죽어 갑니다. 다른 그리스도인 동료들의 동정심은 다만 우리가 죽는데 도움이 될 뿐입니다.) The first thing God does is get us grounded on strong reality and truth. He does this until our cares for ourselves individually have been brought into submission to His way for the purpose of His redemption. Why shouldn’t we experience heartbreak? Through those doorways God is opening up ways of fellowship with His Son. Most of us collapse at the frist grip of pain. We sit down at the door of God’s purpose and enter a slow death through self-pity. And all the so-called Christian sympathy of others helps us to our deathbed.
ჶ (주님은 못 자국난 손으로 우리를 붙드시며 주님과 함께하는 관계를 갖도록 하고 일어나서 비추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애통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주님의 목표를 이루셨고, 주님의 목표를 이루시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주님이 깨뜨리지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깨어짐을 감사하지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 But God will not. He comes with the grip of the pierced hand of His Son, as if to say, “Enter into fellowship with Me; arise and shine.”If God can accomplish His purposes in this world through a broken heart, then why not thank Him for breaking yours?
ჶ (오늘의 idiom) (달려들다, 직원으로 채용하다) take someone on = (1) to challenge him or her in a competition (2) employs a new worker
ჶ Do you know which psalm is quoted most often in the New Testament? You may have guessed the familiar and beloved 23rd Psalm, but actually it is Psalm 22. This psalm begins with David’s poignant, heart-breaking words that were quoted by Jesus on the cross, “My God, My God, why have You forsaken Me?” (Matt. 27:46; Mark 15:34).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시편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아마도 잘 알려 지고 많이 읽히는 시편 23편으로 짐작하셨겠지만 실은 시편 22편입니다. 이 시편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27:46; 마가복음 15:34)라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용하신, 다윗의 깊은 고뇌와 가슴이 찢어지는 말로 시작됩니다.
ჶ Imagine the situation David must have found himself in that caused him to cry out to God in this way. Notice that he felt forsaken and abandoned: “Why are You so far from helping me?” (Ps. 22:1). He also felt ignored: “O my God, I cry in the daytime, but You do not hear” (v.2).
다윗이 이와 같이 하나님께 부르짖도록 처하게 된 상황을 상상해보십시오. 그는 버림받아 내팽개쳐졌다고 느꼈습니다. “어찌 나를 멀리 하며 돕지 아니 하옵시며”(시편 22:1). 또한 그는 무시당했다고 느꼈습니다. “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으나 응답지 아니 하시나이다”(2절).
ჶ Ever been there? Have you ever looked up into the heavens and wondered why it seemed that God had abandoned you, or was ignoring you? Welcome to David’s world. But for every plaintive cry David expresses, there is a characteristic of God mentioned that rescues him from despondency. Through it all, David discovers that God is holy (v.3), trustworthy (vv.4-5), a deliverer and rescuer (vv.8,20-21), and his strength (v.19).
그 같은 상황에 처해본 적이 있으십니까? 하늘을 쳐다보며 왜 하나님이 당신을 버린 것처럼 보이는지, 혹은 무시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이는지 깊게 생각해본적이 있으십니까? 다윗과 같은 처지에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다윗이 애절하게 울부짖는 표현 하나하나에는 그를 절망에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품성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 어려운 모든 과정을 통해서 다윗은 하나님은 거룩하시고(3절), 신뢰할 만하며(4-5절), 구원자시고(8,20-21절), 능력이 있으신 분(19절)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ჶ Do you feel forsaken? Seek the Lord. Rehearse His character. And “let your heart rejoice with everlasting joy” (v.26 nlt).
버림받았다고 느끼십니까? 하나님을 찾으십시오. 하나님의 품성에 대해 되풀이해서 말하십시오. 그리고 “ 마음으로 영원한 즐거움을 즐거워하십시오”(26절, NLT성경).
ჶ Lord, sometimes I feel as if You don’t care
about my life. When those times come,
please remind me of Your character as
You did David. Help me to lean on You
again and know that You are there.
주님, 저는 가끔 주님께서 제 삶에 무관심하신
것처럼 느낄 때가있습니다. 이럴 때마다, 다윗에게
행하신 것 같이 저에게도 주님의 품성을 기억하게
하여주옵소서. 주님께 다시 의지하며 주께서
저와 함께 하심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ჶ Even when we don’t sense God’s presence,
His loving care is all around us.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라도,
그분의 사랑의 돌보심이 우리를 전부 감싸고 있다.
ჶ Those who seek Him will praise the Lord.
Let your heart live forever! —Psalm 22:26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찌어다 —시편 22:26
ჶ 입 냄새가 심하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전문의를 찾아 그 원인을 찾는 것이다. 질병으로 인한 경우도 있고, 적절치 못한 구강 관리 때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직장인들이 조심해야 할 사항 중 하나는 식사 후 마시는 커피나 탄산음료는 입 냄새를 키우는 일등 공신이라는 점이다. 식사 후 1시간 동안 위장에서는 소화 작용이 이뤄지는데, 이때 가스가 만들어지고 올라오는 가스가 카페인과 만나면 구취의 강도는 더욱 강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식사나 커피 등을 마신 뒤 양치질은 기본이고, 1시간마다 물로 입안을 헹궈 주는 것이 입 냄새를 없애는 방법이라고 한다.
냄새와 관련된다고 해서 입 냄새를 smell과 연관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정확한 영어가 아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입 냄새는 ‘morning breath’라고 한다. 일반적인 입 냄새는 ‘bad breath’라고 한다.
[예문 1] Morning Breath is due to the growth of bacteria on the back of the tongue during the night. 아침에 나는 입 냄새는 밤새 혀 뒤쪽에서 세균의 증식 때문에 발생한다.
[예문 2] Morning breath happens to nearly everyone. 거의 대부분 사람은 아침에 입 냄새가 난다.
[예문 3] She made fun of his bad breath and snoring. 그녀는 남편의 입 냄새와 코 고는 버릇을 농담 삼아 이야기하곤 했다.
[예문 4] People suffering from body odor need no longer wait with bated breath or bated bad breath as the case may be, for a quick and easy solution. 체취 때문에 고생하는 분들은 이제 더는 숨을 죽이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입 냄새를 억누르며 신속하고 손쉬운 해결책을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ჶ 'line'은 '선'을 의미하는 것으로, 두 점을 연결한 직선입니다. line과 line 사이의 공간을 'lane'이라고 합니다. 도로에 그려진 차선과 차선 사이의 차로도 'lane'이며, 육상 단거리 경기에서 트랙에 그어 놓은 line들 사이의 공간들이 각각 lane이 되고, 수영장에서 직선으로 설치해 둔 부표와 부표 사이의 공간이 'lane'이 됩니다.[예문 1] Some workers are painting the crosswalk lines. (일부 작업자들이 건널목의 선을 페인트칠하고 있다.)[예문 2] All lanes of the road are blocked for maintenance work. (도로의 모든 차로가 유지 보수 공사로 인해 막혔다.)
ჶ “There’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세상에 공짜는 없다.)”
겉보기엔 공짜 같고 매우 쉽게 이득을 얻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이면에는 분명히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는 뜻의 이 문장은, 지금도 경제학에서 아주 중요한 이론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국 술집에선 땅콩 같은 견과류 안주는 공짜로 주면서, 물은 돈 받고 파는 경우가 많다. 짭짤한 견과류를 많이 먹는 사람일수록 맥주나 칵테일을 더 주문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값싼 안주를 공짜로 주는 대신 비싼 술을 더 많이 팔겠다는 것이다. 반면 물을 많이 마신 사람은 술을 적게 주문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물은 돈 받고 파는 것이다.
컴퓨터와 관련된 소프트웨어 중에는 공짜로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는 프리웨어들이 널려 있다. 개발비가 만만찮을 텐데 왜 공짜로 줄까? 이 역시 ‘공짜 점심’과 관련 있다. 소프트웨어 회사라면, ‘더 많은’ 자사 제품 이용자를 확보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경쟁 우위 전략이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제품의 이용 가치는 높아지기 마련이다. 소프트웨어를 공짜 또는 거의 공짜에 가까운 가격으로 PC에 끼워 파는 것도 제품의 시장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일단 이 제품이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면,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비용은 광고, 정품 판매 등의 모습으로 결국 소비자들이 부담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짠돌이 직장 상사가 갑자기 ‘공짜 점심’을 산다면, 그가 어떤 대가를 바라는 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문] He offered me a room in his house, but he seems to expect me to do all the housework. I should have known there’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 그가 나에게 방을 내주겠다고 했지만, 그는 내가 집안일을 모두 맡아 주길 바랐던 모양이야. 공짜 점심이란 없다는 걸 알았어야 하는 건데.
ჶ 'bully'는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거의 범죄자로 취급되는 '왕따나 괴롭힘을 주도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감탄사로 “Bully for you!”라고 하면 용기에 대해 칭찬하는 말이 됩니다. 오래된 표현이기는 하지만 가끔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After the performance, the audience shouted, "Bravo! Bully for you!"(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은 “브라보! 멋져요!”라고 소리를 질렀다.)”와 같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의미로, 비꼬는 투의 “잘됐네!, 좋겠네!' 정도의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따라서 문맥에 따라 긍정과 부정적인 어감을 줄 수 있습니다.[예문 1] [부정적 의미] I managed to save three dollars last week. - Three dollars? Well, bully for you! (지난주에 3달러를 저금했어. - 3달러라고? 음, 좋겠다.)[예문 2] [긍정적 의미] I cleaned the whole house yesterday. - Well done. Bully for you! (어제 집 전체를 청소했어요. - 잘했어. 멋지다!)
ჶ A: Forgive me for calling late. 시계를 안 봤네. B: Not to worry. I’m just watching the movie channel.A: I just wanted to make sure that we’re on for tomorrow.B: Absolutely. I’ll see you at 5:00 on the dot.
ჶ A: 늦은 시간에 전화 드려 죄송합니다. 몇 시인지 I didn’t check the clock.B: 걱정 마세요. 티비로 영화채널을 보고 있는 중이니까.A: 내일 우리 약속이 유효한 지 알고 싶어 전화한 거에요.B: 당연히 유효하죠. 5시 정각에 만나요.
ჶ [Additional expressions]*Forgive me for calling late. – I’m sorry for calling so late. / My bad for calling at this late hour.*I didn’t check the clock. – I forgot to look at the clock first. / I didn’t realize what time it is before calling.*Not to worry. – No problem. / It’s OK. / No worries. / It’s all right.*I’m just watching the movie channel. – I’m not doing anything but catching a movie on TV.*I just wanted to make sure that – I only wanted to confirm that / I basically am reconfirming that*we’re on for tomorrow – we still have an appointment tomorrow / we’ll be meeting tomorrow*Absolutely. – One hundred percent. / That’s a fact. / You’ve got it right.*I’ll see you at 5:00 on the dot. – We’ll get together exactly at 5:00. / I’ll get there right at 5:00.
ჶ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에게 사적인 삶이란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사적인 생활을 밖으로 드러내셔서 세상을 향한 고속도로요 주님을 향한 고속도로로 만드셨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주님과 동일시되는 바른 관계를 갖지 않으면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There is no such thing as a private life, or a place to hide in this world, for a man or woman who is intimately aware of and shares in the sufferings of Jesus Christ. God divides the private life of His saints and makes it a highway for the world on one hand and for Himself on the other. No human being can stand that unless he is identified with Jesus Christ.
ჶ (당신이 주님과 관계를 맺게 되면 주님이 원하시는 대로 주님의 일이 생겨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거치는 돌이 될 뿐입니다.) We are not sanctified for ourselves. We are called into intimacy with the gospel and things happen that appear to have nothing to do with us. But God is getting us into fellowship with Himself. Let Him have His way. If you refuse, you will be of no value to God in His redemptive work in the world, but will be a hindrance and a stumbling block.
ჶ 주님은 먼저 우리가 확고한 현실과 진리에 자리 잡도록 하십니다. 왜 우리가 찢어지는 마음의 고통을 받지 않아서는 안 됩니까? 그것이 바로 주님과 절친한 관계를 맺게 하는 관문입니다. 대부분의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붙드실 때 경험하게 되는 아픔의 첫 손에 바로 혼절하여서, 주님의 목표에 들어가는 관문 밖에서 자신을 향한 동정으로 점점 말라져가 죽어 갑니다. 다른 그리스도인 동료들의 동정심은 다만 우리가 죽는데 도움이 될 뿐입니다.) The first thing God does is get us grounded on strong reality and truth. He does this until our cares for ourselves individually have been brought into submission to His way for the purpose of His redemption. Why shouldn’t we experience heartbreak? Through those doorways God is opening up ways of fellowship with His Son. Most of us collapse at the frist grip of pain. We sit down at the door of God’s purpose and enter a slow death through self-pity. And all the so-called Christian sympathy of others helps us to our deathbed.
ჶ (주님은 못 자국난 손으로 우리를 붙드시며 주님과 함께하는 관계를 갖도록 하고 일어나서 비추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애통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로 주님의 목표를 이루셨고, 주님의 목표를 이루시기 위해 우리의 마음을 주님이 깨뜨리지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깨어짐을 감사하지 못할 것이 무엇입니까?) But God will not. He comes with the grip of the pierced hand of His Son, as if to say, “Enter into fellowship with Me; arise and shine.”If God can accomplish His purposes in this world through a broken heart, then why not thank Him for breaking yours?
ჶ (오늘의 idiom) (달려들다, 직원으로 채용하다) take someone on = (1) to challenge him or her in a competition (2) employs a new worker
♣ 암내가 심한 경우를 의학 용어로 액취증(액(腋)은 겨드랑이, 취(臭)는 냄새)이라 부른다. 겨드랑이에는 아포크린샘이라는 땀 분비선이 있는데, 여기서 분비되는 신선한 땀에는 악취가 없지만 세균이 이를 분해하면서 악취를 내게 된다.
암내나 액취는 의학 용어로 bromidrosis라고 하지만 이렇게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일반적으로 armpit odor, body odor, foul smelling sweat 등으로 표현한다.
[예문 1] How do I get armpit odor out of clothing? 옷에서 나는 암내를 어떻게 없애죠?
[예문 2] By eating less of such food, you can reduce the intensity of foul smelling sweat. 그런 음식을 적게 먹음으로써 암내의 강도를 줄일 수 있다.
‘악취가 나는’이라는 형용사는 foul-smelling, funky, smelly 등을 사용한다.
[예문 1] The kitchen smelled really funky. 부엌에서 진짜 이상한 악취가 났다.
[예문 2] The toilets are filthy and smelly. 그 화장실들은 불결하고 악취가 진동한다.
외국에서는 암내를 방지하는 각종 탈취제를 많이 사용하는데, 슈퍼에 가면 샴푸나 치약만큼이나 그 종류가 다양하다. 탈취제는 deodorant라고 하며, 젤 형태의 스틱이나 분사형으로 되어 있다.
[예문 1] I used to buy me deodorant when I was in high school. 난 고등학교 때 바르는 탈취제를 사곤 했어.
[예문 2] Deodorants are substances applied to the body, most frequently the armpits. 바르는 탈취제는 몸에 바르는 것으로, 특히 겨드랑이에 가장 많이 바른다.
♣ 일반 가정에서 의약품이나 치료 대신 전해 내려오는 방식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을 '민간요법'이라고 합니다. 흔히 체했을 때 손가락 끝을 바늘로 따거나, 감기에 걸렸을 때 생강차를 마시고, 가스에 중독되었을 때 동치미를 마시거나, 근육통이나 다른 목적으로 뜸을 놓거나 지압을 하는 등의 요법을 말합니다. 영어로는 'home remedy' 또는 'folk remedy'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Everyone has a different home-remedy. (모든 사람은 서로 다른 민간요법을 가지고 있다.)” 또는 “The leaves were regularly used as a folk remedy for fevers and colds. (그 잎들은 민간요법에서 열병과 감기를 치료하는 데 정기적으로 사용되었다.)”와 같이 사용합니다. 민간요법은 일종의 대체 의학인데, 이에 해당하는 표현은 'alternative medicine'입니다. 예를 들어, “Alternative medicine ranges widely from acupuncture to herbal remedies. (대체 의학은 침술에서 한약 처방까지 광범위합니다.)”와 같이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과학적으로는 근거가 없지만, 예전부터 내려오는 치료법이나 예방법은 ‘old wives’ tale’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My grandma believes in the old wives’ tale that eating carrots will improve eyesight. (우리 할머니는 당근을 먹으면 시력이 좋아진다는 옛말을 믿으셔.)”와 같이 사용합니다
♣ A: I’m not allowed to drive. I’m on medication.
B: You should seriously look into alternative treatment.
A: 난 아는 게 없어요, about such things.
B: Ignorance is no excuse. Educate yourself on the topic.
♣ A: 난 운전하면 안돼. 약을 복용 중이라서.
B: 약 말고 진지하게 다른 방법도 찾아봐.
A: 그런 거라면 I know diddlysquat .
B: 무지한 게 변명이 될 수는 없다고. 공부를 좀 해야지.
♣ [Additional expressions]
* I’m not allowed to drive. – I can’t drive. / I shouldn’t get behind the wheel. / Driving is out, for me.
* I’m on medication. – I’m taking medicine. / I’m currently medicated. / I’ve got medicine in my system.
* You should seriously look into – You really ought to check out / You’d be smart to take a look at
* alternative treatment – other forms of medical treatment / different ways to treat your health problem
* I know diddlysquat about such things. – I don’t know anything about things like that.
* Ignorance is no excuse. – Not knowing isn’t an excuse. / If you don’t know, you can learn.
*Educate yourself on the topic. – Look it up on the Internet. / Study about it. / Learn something about it.
For man looks at the outward appearance, but the Lord looks at the heart. —1 Samuel 16:7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무엘상 16:7
As I shopped for groceries one day, I was perceived as a thief by one person and a hero by another. As I exited the supermarket, an employee said, “Excuse me, Sir. There are too many unbagged items in your cart.” This is evidently a strategy used by shoplifters. When he saw that they were products too big to be bagged, he apologized and sent me on my way. 어느 날 식품점에 장을 보러 갔는데, 한 사람은 나를 도둑으로 인식하고 다른 한 사람은 나를 영웅으로 알아봤습니다. 내가 슈퍼마켓을 나오는데 직원 한사람이 “손님, 잠시 만요. 봉지에 담기지 않은 물품들이 수레에 너무 많네요.”라며 붙들었습니다. 그것은 가게 좀도둑들이 흔히 쓰는 방법입니다. 그 직원은 상품들이 너무 커서 봉지에 넣을 수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내게 사과하고 나를 보내주었습니다. In the parking lot, a woman glanced at my gold embroidered sportsman’s cap. Mistaking it for a military hat, she said, “Thank you for defending our country!” Then she walked away. The supermarket employee and the woman in the parking lot had each formed hasty conclusions about me. It’s easy to form opinions of others based on first impressions. 주차장에 나오자 어떤 여성이 금실로 새겨진 내 스포츠맨 모자를 힐끗 보고는, 내 모자를 군인모자로 잘못 봤는지 “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하고 지나갔습니다. 슈퍼마켓 직원과 주차장에서의 그 여인은 각각 나에 대해 너무 빨리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우리는 이처럼 첫 인상을 기반으로 다른 사람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기가 쉽습니다. . The impossibility in Mary’s life was overshadowed not by darkness but by the brightness of God’s glory and power. Her response continues to leave us in awe: “Let it b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v.38). 마리아의 삶에 일어났던 불가능한 일은 흑암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의 광채로 덮여진 일이었습니다. 그녀의 반응은 우리를 계속 놀라게 합니다.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38절).
When Samuel was to select the next king of Israel from the sons of Jesse, he too made a judgment based on first impressions. However, God’s chosen was not any of the older sons. The Spirit told Samuel, “Do not look at his appearance or at his physical stature” (1 Sam. 16:7). God chose David, the youngest, who looked least like a king. God can help us view people through His eyes, for “the Lord does not see as man sees; . . . the Lord looks at the heart” (v.7). 사무엘도 이새의 아들 중에서 이스라엘의 다음 왕을 선택할 때 첫 인상으로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는 형들 중에 그 누구도 아니었습니다. 성령님은 사무엘에게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사무엘상 16: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어리고 가장 왕 같아 보이지 않는 다윗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람들을 보도록 도와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보시는 것은 사람이 보는 것과 같지 아니하며......하나님은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7절).
If we could view through eyes of faith The people we meet each day We’d quickly see God’s gracious hand In all who come our way. 우리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은혜로운 손길을 바로 볼 수 있을 텐데
First impressions can often lead to wrong conclusions. 첫 인상이 종종 잘못된 결론을 내리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