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23. 일요일
어머니께서 관음재일이라 절에 가신다고
오늘하루는 어머니댁 안가고 슬며시 함 제껴보기로~
영천 기룡산, 꼬깔산
[산행코스]
용화마을~운곡지 ~낙대봉 ~기룡산 ~ 꼬깔산 ~ 용화마을(원점회귀) 12km
완연한 봄이다.
불어오는 바람도 차갑지 않고 그저 시원하게만 느껴지는 시기.
가까운 영천으로 한번 떠나려한다.
언제나 그렇듯 어딜 떠나는 이 설레이는 마음 안에는 그저 향긋함만 가득하다. ㅎㅎ
그나저나 예전에 가본 곳이긴한데
기억엔 크게 떠오르는건 없는데 ... 느낌상 왠지 묘하네? ㅎㅎ
아니나다를까
별거없는 산길인데 변수가 떡하니 돌출한다.
뭐 어떤 변수가?
낙엽.
엥? 낙엽이 뭐 어때서?
미끄러워서~!! (욕이 저절로 팍 튀어나오려하나, 점잖게 참아본다.)
시몬 들리는가~
낙엽이 우리를 괴롭히는 소리를... 덴장~
초반엔 그저 좋은 산길이다가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길을 덮고있다.
뭐가? ...
이노무 낙엽이 발목이상의 높이로 쌓여진체 산을 뒤덮고 있네
걸음을 방해한다.
낙엽 밑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으니 그저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걷는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산더미처럼 쌓인 낙엽들...
미치겠다.
세상의 모든 낙엽을 다 모아서 뿌려둔거 같다 .뭐 이리 낙엽이 많노?
산청과 의성은 화재로 지금 난리라는데...
여기에 불이 붙으면 .. 오후 노~! 생각만으로도 끔찍해진다.
등로는 비켜뒀다면 아주 낭만적이었을텐데
모든걸 다 덮어놓으면 어떡한단 말인가? ㅠㅠ
낙옆에 푹푹 빠져가며 1보 전진 2보 후퇴식으로 오른다. 죽을 맛이다.
디디는 자리의 불확실성?
보면 낙엽뿐인데 밟으면 쑥 빠져 무릎까지 들어가거나, 밑에 삐딱한 바위가 있거나
그 깊이와 내용을 헤아릴 수 없어
잘못 디디면 발목이 꺾이거나 미끄러지는 부담을 안고 오른다.
무려 3.5km 길이의 기룡산 정상까지 낙엽들의 방해는 대동단결해서 쭈우욱 이어진다.
끝없는 오르막도 미치겠는데 늪같은 낙엽까지 엿을 제대로 먹이고 있어 . ..
뭔가 극한 상황 누가 잘 견뎌내나 시합에 참여한 기분이다.
눈보다 더한 미끄러움.
참기름을 발라도 이것보다는 덜 미끄러울 것 같다.
다른 길이 없으니 무조건 견뎌내어야 하는데 지옥이 따로없다.
내가 즐기러 왔지, 체험 삶의 현장 돈벌러 왔나??
이렇게 힘든 코스였던가
아무리 잘 가려해도 후딱후딱 미끄러져 자빠지니 다리에 힘이 얼마나 더 들어가겠는가
아, 짜증만 솟구친체 악으로 깡으로~
결국~ (이 단어가 엄청 기다려졌다. 그치이?)
기룡산 정상 10여미터를 남겨두고.(조선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하는 법)
허벅지 근육안에서 뭔가 온다고~ 알랑알랑 통보를 해대더니
갑자기 ~!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이 엄청난 속도로 나를 덮친다.
으악~ !
오랜만에 느껴보는 익숙한 고통.
처절한 통증이 내 온 신경을 휘감아댄다.
그저 고함지르며 후다닥 누버 뒹구를 수밖에... 나약한 인간이더라~
그런 모습으로 어떻게 견뎌낼 방법이 있겠나?
이 몹쓸 패배감.
내 몸이지만 내 마음대로 뭐 어떻게 조치할 수 없는 고통...
꼼짝을 할 수 있어야지... 멍하니 ~ 지켜볼 수밖에.
덴장.
이노무 낙엽이 결국엔 나를 이꼬라지로 몰고가네?
평소 낙엽에 대한 그리 큰 미움이나 원망같은 건 없었는데... 이제부턴 절교다~!
월매나 미워지는지
내 체력도 그렇고 삶도 그렇고... 뭐이리 이따위인가?
자책감도 의미없고, 그저 나약한 인간 모습으로 퍼질러 뻗어 손하나 못쓴체
쥐가 빠져 나가기만을 기다릴 뿐.
오늘 산행 번개친 회원이 고맙구로 진통제와 근육이완제 약도 주고 도움을 주지만
한번 찾아온 쥐손님은 내가 얼마나 좋은지 나갈 생각을 안한다.
쥐선생 야가 암컷이던가? ㅠㅠ
워떡하나... 기다릴 수밖에.
그렇게 기룡산 정상 앞에서 개고생을 하고, 다시 꼬깔봉으로 오르는데
나도 인간인지라 갈지 말지 속으로 많이 망설여야했다.
이것도 봉우리 즉, 오르막이니까
(당연한 말이기도 하지만) 나는 산을 오르려 왔으니 가야할 거 아냐
까짓 것~! 갈때까지 함 가보자고
능선을 타고 갈때는 그런대로 괜찮더니 결국은 몇번씩 치고 올라야 하네?
쥐선생이 아까 쉽게 떠나는가 싶더니...
아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듯 다시 또 득달같이 찾아와 더 지독한 고통으로 자기 존재를 알려주네.
안다고 이새끼야~ 한번 놀러오더니 재미 붙였나?
미안치만 또 회원의 도움을 받는다.
너무 염치없지만 통증앞에 내 자존심은 전혀 쓸모없는 상황.
거기에~!
이번엔 약으로 안된다며 수지침으로 피를 빼야하니 바지까지 벗도록 했다.
뭐, 바지를 벗으라고??
있자나~ 남자 체면이 있지. 이거까진 진짜 죽어도 안하고 싶었는데..
죽도록 아프니까 어쩔 도리가 있나, 벗으라니 벗어야지...
통증에 수치심, 모멸감까지. 3종 선물세트 한아름 안고 ...
순결한 내 허벅지를 남의 손에 내어줘야하는 이 비극적 상황이 너무 짜증나더라.
수지침이 날을 세우고 하얗고 고운 내 허벅지를 마구 유린하는데
마치 러시아로부터 우크라이나 공습 받듯이 피바다로 변한다.
그 순간~ 아픔보다는 부끄러움으로 숨고 싶더라...
암튼... 그렇게 개고생해서, (말은 쉽지 얼마나 참았는지...)
결국은~!
결국은 꼬깔봉 정상을 찍는다. 이건 인간승리다.
스스로 칭찬해 주고프더라. ㅎㅎ
힘들게 얻은만큼 소중히 느껴지는 법.
꼬깔산은 내게 에베레스트 같은 존재로 기억된다는 거. ㅋㅋ
스스로 흐뭇하게 생각하며 급경사 지랄같은 하산길을 내려온다.
이 산은 누구 엿먹일려고 일부러 기획적으로 만들어놨나, 뭐하나 좋은게 없다.
중력이 실리는 몸무게의 고통 ... 으으윽 말할 필요가 있겠나?
쥐선생도 상황을 보며 안됐는지 잠시 소강상태.
그러나, 이번에는 무릎이 죽겠다고 고함을 질러대네.
어휴....댔다~!!
대충 마, 고통시리즈 정리는 요서 끝내자. 식상한다.ㅎㅎ
어머니댁 방문을 제낀 죄로 벌받은 거지 뭐~
결론은 . . .
뜻밖의 난제를 만나 총체적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일요일 하루 의미있게 ~ 보냈다는 거. ㅎㅎ
혹, 이 루트가 얼마나 빡센가 궁금하신 분이 계시다면 바로~!
영천으로 달려가 직접 확인해 보시길 ... 꼭~
겪어봐야 느낄 수 있을 테니까....ㅋㅋ
'폭싹 속았수다' 제주도 방언 드라마 제목을 땡겨 변형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