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천역사를 나서 청량산자락 남한산성등산로 입구 성불사까지 15분쯤 소요됐을까?
터가 좁아선지 옹색해 보이는 사찰경내를 일별하고 낙엽 두텁게 깔린 만추의 청량산자락을 헤친다.
나는 마천역에서 남한산성 등정코스가 있단 걸 며칠 전에 알았다.
울`집에서 남한산성에 갈 수 있는 최적의 코스란 걸 알고,
엄습해 오는 동장군에 앞서야겠다고 나선 게 오늘 처녀산행코스인 셈이다.
남한산성의 운영에는 승군의 역할 또한 지대하였다.
승군은 6도의 사찰에서 차출되어 매년 2개월씩 성안의 9개 사찰에 머물며
비상시에 전투에 나아가 적을 토벌하고, 군량미의 수송, 성곽축조와 보수,
둔전의 개간, 무기의 제작, 시신의 수습과 같은 여러 가지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는 의무제였다.
또한 승려본연의 종교적인 의식을 수행하면서 서책의 인쇄, 기타 잡역에 동원되었다.
더는 병자호란 후 신해박해에 천주교인들이 순교한 피비린내 나는 처형장이 되어버리고-.
출처: https://pepuppy.tistory.com/1330 [깡 쌤의 내려놓고 가는 길:티스토리]
남한산성(南漢山城)은 해발 497m인 청량산(淸凉山)을 서쪽 끝으로,
해발 514m 벌봉을 동쪽 끝으로 하여 긴 장방형 돌로 쌓아 한양을 방어하기 위해
쌓은 총 12.4㎞산성이다.
나는 오늘 남한산성 탐방코스 중 1코스인 ‘장수의 길’을 트레킹한 셈인데
6.25때 파괴된 북문은 최근 보수하여 새롭게 단장했다.
북문은 주전파의 독촉에 이시백이 조선군 300명을 이끌고 청군과 싸우려 나갔다가
청군의 기습에 몰살당한 통곡의 장소였다.
참화의 비극은 주전파(김상헌)의 득세와 이에 휘둘린 쫄남 인조의 우유부단이 빚은 참극이다.
김상헌은 청에 인질로 끌려간 후 귀국하여 병자호란의 비극이 주화파(최명길) 탓이라고
인조를 꼬드겨 부화뇌동한다.
오늘날 전쟁불사를 외치며 군비증강을 도모하는 위정자들한테 김상헌의 말장난이 오버랩 된다.
북문 누각에 올라서서 주전파의 독촉에 개죽임 당한 300여명의 넋을 헤아려봤다.
북문을 통과 연주봉옹성 암문에 부러 와봤는데 너구리의 행방은 묘연했다.
개선충 병이 아니길 바래며 하산길에 들었다. 오후3시인데도 기온이 뚝 떨어져 손 시리다.
붉은 연지 바르다 누렇게 말라버린 단풍잎이 이소하여 여행길에 오른다.
짙어지는 만추에 멸종위기동물인 너구리가 먹이사슬 상층부에서
우리 산야의 건강한 생태보전에 일익이 되길 염원해 봤다.
5시간의 행복한 시간을 남한산성이 선물해줬다. 2023. 1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