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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가모 1 - 밀라노에서 기차로 중세풍의 고풍스런 도시 베르가모에 가다!
5월 14일 아침에 스위스의 루가노 를 출발해 이탈리아 도시 코모 에 도착해서는
코모 호수 를 보고 국철 코모 지오반니 Como S Giovanni 역으로 돌아와
유레일 이탈리아 패스를 개시하여 밀라노행 10시 17분 유로시티 열차 를 탑니다.
밀라노역 에 내려 황색 종이에 베르가모 행 출발시각표를 보니 11시 50분이라 40분이
남았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역에서 5~ 6분을 걸어 며칠전에 우리가 묵었던
Hotel Virgilio Milan 에 가서는 배낭을 맡기고는 다시 밀라노 중앙역 으로 돌아 옵니다.
밀라노역 전광판 에서 베르가모행 기차 플랫폼 이 뜨기를 기다려서는 이윽고
해당 플랫폼 으로 찾아가 기차에 오르는 데... 기차는 처음 부터
지연 출발해서 평원을 가로질러 달려서는 45분 만에 베르가모 에 도착 합니다.
오늘 우리가 거치는 코모, 밀라노, 베르가모 및 파비아 는 롬바르디아 주 에 속하는데
이 지명은 서기 568년에 북부 이탈리아를 점령한 게르만 랑고바르디족 에서 기원합니다.
일찍이 서기 248년 훈족에 쫃긴 고트족등 게르만족 이 라인강과 도나우강을 넘어 침략해
오자 적절한 방어를 위해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는 로마 제국을 나누게 됩니다.
디오클레티아누스 는 284년에 황제로 즉위하자 막시미아누스를 카이사르 에
지명하여 서로마 를 맡기고는... 자기는 도나우강과 시리아, 이집트 를
맡았으니 다시 도나우강 으로 달려가서는 게르만의 사르마티아족을 격퇴 합니다.
293년에 동방에는 갈레리우스를 부제 로 임명하고 서로마는 막시미아누스를 정제 로 올리고
콘스탄티우스를 부제 로 임명하니..... "황제 4명이 로마 방위" 를 분담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305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은퇴한 후에는 내란 이 일어나니 콘스탄티누스
가 처절한 여러차례 전투를 통해 로마를 재통일 하고는 기독교 박해를 멈추고
지원 했는데 이후 서기 395년 에는 후계자인 테오도시우스가 밀라노에서 병사 합니다.
동로마 테오도시우스 황제 는 기독교를 국교 로 격상시키고는 다른 종교를 탄압 했는데
황제는 죽으면서 서로마는 호노리우스 그리고 동로마는 아르카디우스 두 아들
에게 물려 주니... 로마 제국은 이로 부터 완전히 "동서로 나누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해에 알라리크 가 이끄는 게르만 서고트족 이 발칸 반도에 침입해서는
농촌과 도시를 무차별 약탈하자.... 테오도시우스 황제 에 의해
군 총사령관에 임명되었던 게르만 반달족 출신 스틸리코 장군 이 출전합니다.
게르만족 부친 과 로마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스틸리코 는 총명하여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사위 가 되었었는데... 2년 후에는 서고트족을 그리스에서 몰아
내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동로마 황제 아르카디우스 는 심약한 탓에
도망친 알라리크를 일리리쿰 사령관 에 임명하여 서고트족을 달래야만 했습니다!
401년에 게르만 서고트족 이 방향을 돌려 이탈리아 북부 에 침입하자 다시
스틸리코 가 격퇴하나 위험을 느낀 서로마 황제 호노리우스 는
404년에 수도 를 밀라노 에서 멀리 동쪽 바닷가의 험지인 라벤나 로 옮깁니다.
다음해에는 서고트족의 이웃 부족인 동고트족이 이탈리아에 침입 하자.....
로마군 총사령관을오 역전의 용장 스틸리코 가 이를 다시 격퇴 하나
3년후에는 장군의 명성을 우려한 황제의 시샘 을 받아 살해 되기에 이릅니다?
408년 서로마 황제 호노리우스는 베르가모 남쪽 파비아 군단기지를 방문해 스틸리코 휘하
장군들을 살해한 후에 이를 해명하기 위해 라벤나 황궁 으로 찾아간 스틸리코를
반역죄로 처형 했던 것이니.... 훗날 451년에 서고트족 및 프랑크족과 연합해서
훈족을 물리치고 갈리아를 지킨 아이티우스 도 발렌티니아누스 3세에게 살해 를 당합니다.
중국 속담에 장수가 전쟁에서 공이 지극히 높으면 "임금도 질투하고 하늘도 미워한다"
라고 했던가요? 스틸리코가 제거된 틈을 노려 408년 부터 알라리크의
서고트족이 이탈리아를 재침 입하니, 410년에는 로마 를 5일간 합의하에
겁탈하게 됩니다! 세상에나? 재산 약탈과 부녀자 겁탈이 상호 합의하에 이루어지다니?
이때 호노리우스 황제 누이동생 갈라 플라키디아 는 서고트족에게 끌려가 강제로 결혼을
당하는데 서고트 족장 아타울프가 죽은후 돌아와 콘스탄티우스 장군과 재혼한 갈라
플라디키아는 호노리우스 사후 라벤나에서 아들을 서로마 황제 로 등극시키고 섭정을 합니다.
이후 북아프리카 는 독일과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에서 서고트족에 밀려나 바다를 건너온
게르만 반달족 에게 점령되지만.... 갈리아에 침입한 훈족 동맹군 을 451년에
프랑크족 및 서고트족과 연합한 로마의 아이티우스 장군 이 저지하니 한숨을 돌립니다.
하지만 다음해인 452년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 이 보복으로 북이탈리아를 침입 하니....
밀라노 등 여러 도시가 유린당하고 북 이탈리아에 위치한 도시 "베르가모 도
철저히 파괴" 되었던 것인데 그래도 아이티우스의 활약 으로 이 정도에 그쳤지만
454년 아틸라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황제는 아이티우스를 살해 하니 토사구팽 이라?
로마의 장군 아이티우스가 명성을 시샘한 서로마 황제에게 살해당한 이후 로마는 내리막
길을 걸으니..... 그후 12년만인 476년 에 서로마에 고용된 게르만족의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 가 반란을 일으켜 서로마 제국은 망하고 동로마 제국과 대치상태에 들어갑니다.
488년에는 이런 기묘한 정세 를 이용해.... 오도아케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동로마
제국 황제의 묵인 하에 테오도리크가 이끄는 동고트족 이 쳐들어와서는
5년간의 처절한 전투 끝에 라벤나 를 포위 함락후 이탈리아의 새로운 지배자 가 됩니다.
이후 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는 동고트족이 정렴한 이탈리아 반도를
수복하기 위해 벨리사리우스 장군 을 보내 카르타고와 시칠리아 및
이탈리아 일부 지방을 회복하지만 동고트족은 547년 로마를 습격해 약탈 합니다.
로마가 서고트에 이어 동고트에 2번째로 약탈당한 5년후인 552년 동로마 나르세스 장군 이
게르만 랑고바르디족 용병 과 연합하여 로마를 탈환하고 이탈리아를 수복 하지만,
나르세스장군이 죽자 568년에 랑고바르디족 이 다시 이탈리아를 침입하여 정복 하게 됩니다.
하지만 병사의 수가 적다 보니 게르만족 랑고바르드 왕국 은 동로마 비잔틴 제국
과 이탈리아를 양분 하여 동거하는 기묘한 상황 이 이어지는 가운데....
773년 프랑크 왕국의 샤를마뉴 가 동진해 북이탈리아 파비아에 입성 하기에 이릅니다.
그럼 약 200여년 동안 이탈리아 북부와 중부 일부 지방을 랑고바르드족
이 지배했으니 그 영향으로 여기 이탈리아 북부 지역이....
“랑고바르드”에서 이름이 변한“롬바르디아”라는 지명이 남은 것입니다!
밀라노역 을 출발한 우리 기차는 롬바르디아 들판 을 달려서는 45분만에
드디어 베르가모 역에 도착하기로...... 우리 일행
4명은 택시를 잡아 타고는 고지대인 "구시가지 치타알타" 로 향합니다.
택시 안에서 차창으로 보노라니 일직선으로 뻗은 대로 저 끝 언덕 위에는
튼튼한 성벽으로 둘러쌓여 천상의 도시 라는 별칭을 가진 옛
중세도시 베르가모 가 그 자태를 드러내는 모습이 자못 세월을 느끼게 합니다.
택시는 성벽을 옆으로 돌아서 언덕을 한참 올라가서는 드디어 치타알타 의
푸니쿨라 정류소 이기도 한 메르카토 텔레 스카르페 광장 에 멈춥니다!
베르가모 는 고대에는 베르고뭄 이라고 부르던 갈리아인 도시 로
출발하여 롬바르디아 공국 의 수도가 된 후에.... 13세기
이후에는 밀라노와 베네치아의 지배 를 받았던 오래된 도시 입니다!
중세시대의 흔적 이 남아 있는 고색창연한 도시 인 베르가모 Bergamo 는
밀라노의 비스콘티 가 의 지배하에서 성곽 도시 를 이루었습니다.
1,428년 부터 베르가모 는 밀라노 세력을 쫓아낸 베네치아의 지배 하에
들어가는데.... 당시의 성벽을 따라 산위의 구시가지
치타알타 Citta Alta 와 그 아래 들판에 신시가지 치타바사 로 나뉩니다.
이후 베르가모 는 나폴레옹의 침략으로 베네치아가 망하면서 오스트리아의 지배 를
거쳐 1,859년부터 이탈리아로 돌아온 도시 를 중국 작가 서추우 는“잠들어
있는 중세를 깨울까 살그머니 발걸음을 옮겼다”라고 치타알타의 돌길을 표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위스 루가노에서 코모와 밀라노 를 거쳐 한 낮 에 도착했으니...
새벽 에나 보게 되는 저런 감정은 느낄 수가 없는게 아쉽네요?
베르가모 기차역 에서 1번이나 3번 버스를 타고 5~ 6분후 세 정거장째에 내려서는
케이블카 정거장 에서 Funicolare 를 타고 올라가면 성벽안의 구시가지
치타알타 Citta Alta 메르카토 텔레 스카르페 광장 이라고 여행계획서에 적어 왔지만?
역전에 버스가 보이지 않아 부득이 택시 를 타니 기본 요금은 밀라노나 나중에
파비아도 3.5유로 에서 시작하는데 여기 베르가모는 7유로 에서 시작합니다?
메르카토 텔레 스카르페 광장 Piazza Mercato delle Scarpe 에서
사람들을 따라 한 모퉁이를 도니......
또 자그만 광장인데 이곳은 안젤리나 광장 이라고 부르는 모양입니다.
다시 오밀조밀하게 생긴 곰비토 거리 Via Gombito 를 한 4~ 5분이나 걸었을까요?
바로 왼쪽 에 제법 너른 광장이 보이는데..... 관광객들이 제법 보입니다!
바로 베키아 광장 Piazza Vecchia 인 데, 광장 맞은편 건물이 누오보궁 이고 광장에 들어
서서 오른쪽이 포데스타 궁 이며 정면에 라조네 궁전 Pal. d' Ragione 이 자리합니다.
라조네궁 과 연결된 왼쪽 건물이 두오모 Duomo 이며 그 너머로 산타마리아 마조레 교회 와
콜레오니 예배당 이 보이는데..... 야외 계단으로 종탑 에 오를 수가 있다고 합니다.
프랑스의 건축가 르 꼬르뷔제 는 이 광장을 유럽에서 가장 이상적인
공간으로 보았다는데 중세 건축물 팔라초 가 둘러싼
1,780년에 베베치아 총독 콘타리니 가 건축한 분수 가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분수에는 흰대리석으로 조각된 사자 와 사람 머리로 장식된 스핑크스 가 눈에 띄는데
스핑크스에서 사시사철 흘러나오는 물 은 시민에게는 생명의 물 이었다고 한다.
또 큰 회랑이 있는 중후한 옛 건물 팔라초는 라조네궁으로 옛 시청사 라고 하네요!
골목과 광장을 보면서 느낀 것은 처음으로 프라하나 톨레도 를 보았을 때와 같은
그러니까 ...타임 머신 을 타고 500년 전 중세시대 로 돌아간 느낌이랄까요?
작은 돌을 깐 좁은 도로 에 간판 하나도 쇠로 된 개성있는 특이한 모습 이며.....
기념품 숍과 예쁜 카페 는 현대 문명에 지친 심신을 다독여 줄 수 있을 것도 같네요?
고대에 이탈리아 반도에는 북부 지방에는 갈리아(켈트족)인 이 살았고 피렌체를 중심으로
토스카나와 움브리아 지방에는 에트루리아인의 12개 도시 국가 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시 로마 와 주변에는 라틴족들의 도시국가 가 있고 그
남쪽 산속에는 삼니움족이 거주 했으며 나폴리에서
타란토등 남부와 시칠리아는 그리스인들의 식민도시 가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도시 베르가모는 베르고뭄 이라고 부르던 갈리아인들의 도시 로 출발하여...
롬바르디아 공국의 수도 가 된후 1264년 이후 밀라노 비스콘티가의 지배 를 받았습니다.
이후 1428∼1797년 까지는 베네치아의 지배 를 받았으며... 그 후에도 나폴레옹의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에게 차례로 점령되었다가 1859년에야 이탈리아 왕국 으로 통일되었던 것이지요.
이 도시 베르가모 를 치타 데이 밀레 Citta dei Mille 라는 애칭으로도 부르는데
“천의 도시” 라는 뜻으로..... 바로 "가리발디의 천인대" 를 의미합니다.
이탈리아 통일 을 위해 수차례나 혁명 을 일으켰다가 실패해서 남미, 프랑스 등지로
망명하거나 투옥 됐던 프랑스 남부 니스(당시는 이탈리아땅) 출신인
가리발디 가 1,859년에 알프스 의용대 를 조직할 때 베르가모인 들도 참여했나 보네요?
견고한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 에는 옛 베키아 광장 을 중심으로 1470년대에 건설된
콜레오니 예배당 과 15세기에 건립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산타마리아마조레 성당 이 있습니다.
즐거운 유럽여행! 함께 나누는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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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길잡이★유럽 배낭여행
(http://cafe.daum.net/bpguide)
첫댓글 꼬모 가고 싶습니다
언제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그렇지요? 코모 호수.....
알프스의 눈 녹은 물로
푸르디 푸른 호수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