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반니 벨리니(이탈리아·1430-1516)의 부활절 관련 그림 5점
향 맑고 눈 밝으며 마음 즐겁게 하는 봄날입니다. 밤에는 제법 쌀쌀한 기운이 옷깃을 여미게 하지만, 한낮에는 포근하여 완연한 봄이요, 진달래와 개나리를 비롯하여 목련, 라일락, 벚꽃들이 그 냄새에 젖어들게 합니다.
조금 이르긴 하지만, 흰 백합꽃의 단아한 향기도 이 계절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성급하게 해봅니다. 백합꽃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활절을 맞이하여, 오늘은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이탈리아·1430-1516)가 상상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려고 합니다. 이 기회를 통해 처음 소개하는 조반니 벨리니의 약력을 먼저 살펴보았으며, 아래 작품들의 배경과 근거가 되는 성경내용을 각 그림의 앞에 붙여 실었으므로 함께 읽고 상상하면서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베네치아 회화의 봄을 부르다
▲ 쿠르츠(Don Kurtz)가 제공한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이탈리아, 1430-1516) ⓒ Don Kurtz이탈리아 베네치아파 최성기에 활동하던 화가인 조반니 벨리니는 새로운 색조를 도입하고 르네상스 모델에 근접해감으로써 베네치아 회화의 위대한 혁신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회화의 역사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서구 회화의 진로에 심대한 영향을 준 위대한 이탈리아의 화가였습니다. 더불어 베네치아를 피렌체나 로마에 견줄 만한 르네상스 미술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이바지했습니다.
조반니 벨리니는 1430년, 그 당시 화가였던 야코포 벨리니(Jacopo Bellini·대략 1400-1470)의 아들로 미술가 집안에서 태어나, 형 젠틸레 벨리니(Gentile Bellini· 1429-1507)와 함께 파도바에 있는 아버지의 화실에서 그림을 공부하였으며, 매제였던 화가 만테냐(Andrea Mantegna·이탈리아·1431-1506)의 영향을 받아 정확, 극명한 조형적 사실주의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그러다 30대가 되어서야 독립적으로 활동하였으며, 곧 아버지와 만테냐의 영향에서 벗어나, 빛과 공기의 표현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을 보여줍니다.
'산 빈센초 페레리 다폭 제단화(산자니폴로 교회·베네치아)'로 처음 그의 이름이 알려졌습니다. 그의 초기 작품으로는 아래에 소개한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변모' '천사들이 보좌하고 있는 죽은 그리스도' 등이 있으며 '게세마네에서의 고통'이나 일련의 '피에타' '크레스비의 성모' '그리스도의 변모' 등에는 만테냐의 영향이 남아 있으나 그로부터 차츰 탈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후 작품에서는 날카로운 감수성으로 딱딱한 형태감을 부드럽게 하는, 밝고 빛나는 색채감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베네치아공화국의 공식화가였던 조반니 벨리니
▲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Crucifix), 1455, Museo Correr, Venice, Italy ⓒ Giovanni Bellini
조반니는 1483년, 총독의 초상화를 전담하며 세금면제 외에도 많은 특혜를 받았던 베네치아공화국의 공식화가가 되었고, 공방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이 지역의 지도적인 화가가 되었습니다.
그는 15세기의 베네치아파를 확립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또 후대에 커다란 영향력을 끼쳤습니다. 많은 제자들이 그의 영향을 널리 퍼뜨렸는데, 제자들 가운데 그보다 6년 일찍 죽은 조르조네와 티치아노는 스승을 능가하는 세계적 명성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다양한 주제의 그림을 그렸는데, 초상화와 제단화뿐만 아니라 '성모마리아와 아기예수'를 그린 작품들이 상당수 남아 있습니다. 16세기 초반에는 빛의 효과를 섬세하고 진지하게 연구한 작품들을 제작했으며, 색채감이 풍부하고 미묘한 빛의 처리를 중시한 정서적인 화풍에 접근하게 된 것은 1487년 이후부터입니다.
1488년에 그린 베네치아의 산타마리아 디프라리성당의 제단화, 무라노섬의 피에트로대성당 제단화 등에서는 부드러운 윤곽과 따뜻하고 밝은 색채를 구사하여 예술의 성숙성을 보여줍니다.
만년에 그린 '레오나르도 롤레다노의 총독'과 같은 초상화에서는 절대군주가 지니고 있는 현명하고 관대하면서도 확고한 태도가 잘 나타나 있으며, 이 외에 우의화(寓意畵)나 풍경 묘사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The crucifixion), 1501-3, Prato, Albert Gallery ⓒ Giovanni Bellini
때가 제 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그 위에 있는 죄 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못 박으리,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마가복음 15 : 25 - 27)
위와 같은 초기의 작품들 가운데에는 인물들이 서 있는 수직적인 단순한 풍경 뒤에 하늘이 수평으로 물줄기처럼 드리워져 있는 작품이 많습니다. 이 두 그림은 화가가 위에서 투시하고 있는 구도로, 산새와 지평선을 예수의 허리 아래로 병풍처럼 드리움으로써 하늘과 관객을 동일시하는 효과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와 주변 인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골고다 언덕의 깊고 넓은 풍경이 이 장면의 극적 효과를 나타내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그의 그림에서는 등장인물과 마찬가지로 풍경의 정교한 구도와 선의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지만, 하늘 아래 뒷배경으로 묘사한 십자가 위의 천군천사나 십자가 아래의 희고 밝은 구름이 어둡고 숙연한 분위기의 그림 전체에 힘을 실어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산 너머로 찬란하게 반사되는 서광을 표현한 색채가 가장 주목할 만합니다.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죽은 해골의 표정과는 달리 미래를 예언하는 듯, 신비로운 기운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고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덤에 장사된 예수 그리스도
이날은 예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아리마대 사람 부자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귀한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 오래냐?"
묻고, 백부장에게 알아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어 주는지라. 요셉이 세마포를 사고, 예수를 내려다가 이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자기 새 무덤에 넣어 두고 큰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고 가니, 이때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마가복음 15 : 42 - 47)
▲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림(Deposition), 1515, Oil on canvas, 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Italy
ⓒ Giovanni Bellini
▲ 마리아와 성요한에게 보좌받는 죽은 그리스도(Dead Christ Supported by the Madonna and St John (Pietà), 1455, Tempera on wood. Accademia Carrara, Bergamo ⓒ Giovanni Bellini
▲ 두 천사가 보좌하고 있는 사망한 그리스도(The dead christ supported by two angels,
Oil on canvas, ⓒ Giovanni Bellini
위 세 그림은 못박은 십자가 위에서 운명을 다한 그리스도를 내려서 옆에서 양 팔을 받치고 있는 천사와 주변 인물들의 슬픈 표정과 침통한 분위기를 잘 묘사하였습니다. 처리한 색감과 원근법은 마치 화폭 안의 인물들과 함께 실제 공간에 지금 함께 서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위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은 그 뒤의 배경과 하늘로 확장되며 이 장면의 전체적인 느낌을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조화는 모든 예술의 목표이기도 하지만, 부드러운 빛과 같은 계열의 색채, 그리고 균일한 밀도로 통일함으로써 조화의 중요성을 수행하고 있으며 신비로운 효과를 더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조반니 벨리니는 인간성이 깃든 자연의 내면과 신의 성정이 깃든 자연의 웅장함을 함께 보여주며, 그 자연은 인간의 모든 종교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이루어진 신과 인간의 통일성과 빛과 색채, 밀도의 조화에는 그의 독특한 정서적 온기가 스며 있음을 엿볼 수 있으며, 어둡거나 회색조의 그림에서도 그 능숙함을 보여줍니다.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무덤을 지키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하였더라. (마태복음 28:1-6)
▲ 그리스도의 부활(Resurrection of Christ), Oil on panel, 1475-9,
Staatliche Museen, Berlin, Germany ⓒ Giovanni Bellini
바로 위의 그림을 포함하여 오늘 소개하는 모든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외광의 효과를 부드럽고 세밀하면서도 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뛰어난 풍경화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그림에 나타난 풍경으로 계절뿐만 아니라 하루 가운데 어느 때인지도 알 수 있을 만큼 정확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묘사해내고 있습니다. 그가 훗날 시도했던 자연스러운 배경과 풍경을 강조하는 새로운 자연주의를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자연스런 빛 처리와 조화로운 밀도로 종교적 속성을 예언하다
르네상스 회화의 특징과 마찬가지로 조반니 벨리니도 처음부터 자연광을 화폭에 담아 표현한 화가였습니다. 조반니 벨리니의 작품에서는 만테냐보다 선의 사용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무엇보다도 묘사된 그리스도와 뒤 배경인 하늘이 극적으로 밝은 빛을 발산하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화면에서 특히 더 돋보이게 하는 특징을 보여줍니다.
그의 초기 작품은 모두 템페라로 제작되었으나, 후에는 그 자신의 특성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적인 정서와 깊이 있는 종교적인 감성을 특유의 장엄함과 엄격함으로 잘 융합시켰습니다. 아버지의 화풍을 이어받은, 이 초기의 그리스도를 주제로 한 대부분의 그림들은 표현이 부드럽고 온화한 정서를 발산하고 있습니다.
이상에서 감상한 것과 같이, 조반니 벨리니의 위 작품들은 특히 장식적인 화려함보다는 자연 관찰에서 끌어낸 감각적인 표현을 더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특히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섬세한 빛 처리와 자연스러운 색채, 조화로운 밀도와 통일된 기법으로 자연이 내포하고 있는 종교적인 속성을 잘 드러내었으며, 암묵적인 진실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덧 붙이는 글
위 조반니 벨리니의 그림과 약력은 "Art Renewal Center(http://www.artrenewal.org)"와 "천년의 그림여행(스테파노 추피 지음, 예경)", 그리고 브리태니커사전을 참고하여 요약, 정리한 것이므로 감상에 참조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