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살 어느 봄이었다.
특종티비연예였나..임백천씨가진행하던..
신인 가수들이 나왔다.
처음엔 그룹이름이 눈에 안들어왔다.
뭐라고 하는지도 잘모르겠고..
다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건
얇아 보이는 입을 꽉다문 하얀얼굴의 신인가수 모습.
긴장했는지 굳은채로 가타부타 말없이 서있던 작아보이던
소년같던 한 가수의 얼굴표정이 기억에 남았다...
1. 시작.
그러고서 2주정도 지났을까
짝이 쉬는 시간마다 뭐라고 뭐라고 중얼거렸다..-_-;;
참다 못해 조용히좀 하라그랬더니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라고..'난 알아요'도 모르냐고 했다.
그래~ 모른다! 어쩔래..이러면서 옥신각신 하다보니
기억이 났다. 그 굳은 표정의 하얀얼굴의 신인가수...
다시 2주가 지날즈음해선 그 그룹의 노래는 우리반 최고의
관심사가 되어 있었다.
처음 봤을때 그렇게 긴장해있던 사람은
무대위를 휘저으며 '난 알아요요요'를 외치며 방긋방긋 웃었다.
귀여웠다...와 예쁘다...춤 멋지다...
또 2주가 지날무렵엔 태지들의 노래는 전국을 강타했다.
굳이 스케줄 이런거 알 필요도 없었다.
채널만 돌려도 태지들이 나왔고
서태지 벙거지 모자..서태지 목걸이 형광잠바 형광티...
문방구에 쌓인 엽서, 아이들 필통을 뒤덮어버린 태지들 스티커..
92년은 태지들이 한반도를 집어삼켜먹은 해였던듯하다..
가슴에 손을 얹고서 생각컨데
나 역시 대다수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휩쓸려서.그 거대한 에너지에 휩쓸려서 태지들을 알게됬다.
왜 모든것이 무너지는데 환상속에 그대가 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순 없었지만..(단순...무지의 극치..)
가요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본적도 없던 난데
난생 처음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또들었다.
친구가 녹음해준 테잎이라 락엔롤 댄스와 미싱은 들어있지도 않았다.
환상속에 그대를 편곡해서 부르고 너와함께한 시간속에서를부르고
이밤이 깊어가지만 뮤비를 찍었다.
요즘 공중전화 박스건으로 덧붙이자면
그 뮤비에 태지가 까페안으로 들어선다.
왜 가사에 있지 않은가..^^ 옛 생각에 까페 문을 열고~-.-;;
이유는 알수 없었지만 그냥..무지 좋았다.
쏟아져나오던 비디오들이 불법인줄도 몰랐고
그때나온 영상집이 태지 허락없이 나온건줄도 몰랐다.
그냥 나오니까 좋아서 사고 모았다.
태지가 초상권문제들로 힘들었다는것도 몰랐다...
하긴 아무것도 몰랐다.
1.5 200일
음반을 내기 위해 쉰다고 했다.
그게 가요계의 통상을 뒤집는 건지도 몰랐다.
그냥 오래 못본다고 하니 아쉽고 빨리 다시 나왔으면 했다.
ivy팬클럽 창단식이 겨울에 있었는데
어머니한테 졸랐다가 진짜 무지하게 혼만 났다.
목동 살때였는데 목동 아이스링크에 온다기에
그날 괜히 그주위를 뱅뱅 맴돌았다. 그때 가입비가
12000원이였던거 같다..그돈이 너무 절실했다.
어머니는 비디오나 잡지사는 거 이상 경계선을 넘으면
그냥 좋아하는것도 허락 안한다고 하셨다..어쩔수 없었다.
야쿠자 피살설과 해체설이 나왔던듯 하다..
느무느무 순진했던(바보같던) 난 스포츠신문에 전화를
걸어 떨리는 목소리로...
저기여..오빠들 진짜 해체해여?-_-;;;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2. 하여가
공교로게도 컴백쇼가 시험을 얼마 남겨두지 않을때 했다.
우리집은 시험 1주일전부터 티비를 절대 못보게 했기에
결국 그날 공부도 못하고 티비도 못봤다..
담날 학교를 가니 서태지가 이상해져서 돌아왔다고 난리가 났다.
옷하고 머리가 거/지/ 같다는거다..-_-;;;;; 아..왕 쇼크...
그래도 그당시에도 꿋꿋하던 열렬팬들은 뭐가 이상하냐고
태지 옹호하느라 정신없었다...
애들이 티비에서 나온 노래를 녹음해서 가져왔다.
'예이예이' 하고 '난 그냥 이대로 '말고 아무것도 들리질 않았다.ㅠ.ㅠ
녹음상태가 안좋은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너무 빨라서 자기들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머리 맞데고 앨범도 안나온 그 노래 가사 파악한다고
쇼했다..제대로 파악한거 하나도 없었다...
태지는 이때부터 자기 팬들의 귀를 소머즈화 시켰다..
결국 레게머리와 귀걸이가 방송심의에 걸렸다.
태지들은 레게머리를 풀었다.
난 방송국에 졌다든가 그런 생각은 안들었다.
그저 방송에 다시 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오빠부대의 전형이었다..-_-;;;;)
중학교 올라간 기념으로 워크맨을 선물받아
태지들 나오는 라디오도 이때부터 들었다...
주위에 워낙 열렬팬들이 많아 ivy팬들 못지않게
회지며 자료며 스케줄 체크며 공유할수 있었다.
그래도 회원이 아니어서 생일날 사인들어간
선물 못 받은게 제일 눈물겨웠다.
팬들하고 캠프간거...눈물로 친구들 배웅했다..-_-;;;
태지가 밥떠줬다고 친구는 한달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때..이때 얻어먹었어야 했다..일평생 언제 그런 기회가 다시 오나)
주구장창 음반을 듣다가
어느날 방 창문을 보며 '마지막 축제'를 듣는데
갑자기 이렇게 좋은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게 너무 감사했다..--;;
'신비한 채로 가려져 있던~'이부분이였는데
태지가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신기하고 또 고마웠다.
이런 노래 만들어줘서...
지금 생각하면 되게 신기한(?^.^) 꽁트인지 드라마인지
많이 찍었는데 기억나는건 우주복입고 손흔들던거랑
(컴백 무대였나..무슨 화성으로 공연하러간다고.--;;
기타들고 빌딩앞에서 켈켈거리던 장면도 있었다.)
우리들만의 추억을 배경으로 백혈병걸린 팬(이재은 이었던가)
이야기 찍은거...1집때보단 덜했지만 재미난(--;;) 프로에 많이
나왔었다...
난 그때 태지가 초상권문제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는지 몰랐다.
표시 안냈으니까...그냥 싸운다는것만 알았다.
그냥 태지가 알아서 다 잘하는줄 알았다.
2집 음반 만들때 위염때문에 죽었다 살아났다는것도 몰랐다.
은퇴하고 나서 기자들이나 매니저들이 하는 얘기 듣고서야
알았다...그떄도 많이 힘들어했다는거..
신문에서는 태지더러 돈독 오른 아이돌스타라고 했다.
난 그때 태지가 가수 그만두고 기자들 한대 때리고 싶어했는지
진짜 몰랐다..-.-;;;
태지가 학 좋아한다는 발언을 하기 시작해서
친구가 7777마리 학접는다고 설쳐서 밤새 학접느라고
보낸 2집이였다..==;;; 말이 팬이지 태지한테 뭔 도움이 됬겠는가
마지막축제 콘서트 보면서
우리 다같이 멋진 어른이 되가자는
태지의 따뜻한 말에 우앙...이러면서 좋아만 하던 팬이였다.
너무 따뜻하고 행복하고 또 고맙고 그랬다.
웝빠만 줄기차게 불러데던 팬이였다.
2.5 8개월
다시 기다렸다. 음반 발매일은 자꾸 늦춰졌다.
태지가 더 속이 탔는지 우리가 더 속이 탔는지는 모르나
그해 여름은 정말이지 살인적인 더위였고
난 어서어서 태지들 나오게 해달라고 비는 심정으로
여름을 났다.
사서함이 큰 힘이 됬었다. 친구들은 요요와 포트로 흩어져다.
어머니하고 또 한바탕했다.
어머니는 더더욱 강경해지셨다. 음반과 자료를 모두
내다버릴거라는 엄포앞에서야 난 고집을 꺾었다...
어머니는 팬클럽을 조직폭력배쯤으로 아셨다..--;;
3. 발해왕자
수능 100일전이고 광복절이기도 한 8월15일을 끼워서
컴백콘서트가 열렸다. 물론 난 어머니의 결사반대로
콘서트 문턱도 못가봤다. 갔다온 친구가 태지가 칠판을
뚫고 나왔다 그래서 차력쇼한지 알았다..-_-;;
3집은 7장의 음반중에 내귀에 가장 빨리 꽂힌 앨범이었다.
한트랙돌리고 두번째 들을때 넋이 나갔으니까...
침대옆에 걸터앉아 음악을 듣다보면 날이 밝곤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영화처럼 인생의 음반이 있겠지.
한장을 굳이 뽑아야 한다면...난 3집을 꼽을 수 밖에 없다.
내겐 '어떤 답안지'가 바로 3집이였으니까...
좀 치사해도 하라는데로 얌전히만 따라준다면 가장 안전한
곳이 학교였던 나였다...
됐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줄이야...
사람들은 피상적으로 태지가 교육문제를 다루네 어쩌네 했지만
내겐 이후에도 이전에도 있을수 없었던 화살과도 같은
외침이였다...그 외침이 그대로 가슴에 와 꽃혔다...
내 삶에 작은..그러나 정말 큰변화들의 출발점이였다.
3집에 대한 구구절절한 반응들과..--**
그 케비에스 컴백쇼 방영!!!!!
태지가 울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 피디는 태지에게 악감정이 있거나 혹은
난생 처음 프로를 맡아봤을것이다...
아니 단한번도 공연실황비됴를 본적이 없었던게 틀림없다.
그렇게 엉망인 방송은 '난 알아요'때도 없었다...
뭘 예감이나 했는지 태지는 눈병이 걸렸다.
그러게 제주도까지 가서 팬들과 악수하래~~
솔직히 발해왕자보다는 그때 초반에 입었던
청치마나 검은 모자같은게 더 자유스러워보였는데...
뭐가 어떤 순서로 일어났더라...
먼저 방송금지부터였지 싶다... 치마와 귀걸이가 문제였다.
태지는 2집때처럼 방송을 나갈 생각이 없었나보다..
굴복하지 않겠노라고 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태지 나이 스물셋이였다...휴...
3위까지 올라갔던 발해를~은 소리소문도 없이 순위에서
사라졌고 3집때 태지들의 티비출연횟수는 10번을 넘지 않았다.
그중 2번이 뉴스였다....에휴..
사탄설(설은 무슨..--;;)이 터졌다..
하늘이 노랬다..밑도 끝도 없는 전쟁이였다.
연예가 중계는 비슷하게 들리네요~ 이러면서
거꾸로 돌린 테잎을 한마디 해명발언 없이 여과없이 내보냈고
주간연예지 표지는 '우리 사탄 아니에요'<-뭐냔말이다..--;;
우리반 애들은 왜 테이프 거꾸로 감고와서 음악시간에
트냔 말이다..
학생 때려치우고 한대 아니라 수백대 패주고 싶었다...
거꾸로 튼 테잎에 악마의 소리가 난다고 하자
애들은 똑바로도 틀어서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당시 보수적 기독교에서 바란건 그게 아니었을까...
우리 나라 발음은 음운구절 특성상 거꾸로 틀어
말이 되려면 똑바로 부를떄 말이 안된다는걸 주장하는
이들의 자세한 반론이 제기 됬지만 대게의 주류언론들은
나몰라라 무시했다. 그땐 왜 호기심천국도 없었떠란 말이냐..ㅠ.ㅠ
시간이 흐르는게 약일 수밖에 없던때였다.
팬들이 해줄수 있는게 별로 없었다.
'서태지 게이설 접근에 화들짝' '서태지 임신중?'
이런 문구가 스포츠지 1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곤했다..--;;
그리고 10월14일인가 26일인가..아무튼 10월 몇일에
태지가 요절한다고 어떤 점쟁이가 그랬다는 소문이 퍼졌다.
유재하가 영원을 만들어서 요절했다나 어쨌다나..
태지도 영원을 만들어서 요절한단다..
태지는 웃어넘겼지만 애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_-;;;;
내 친구는 이틀을 연달아 눈물만 짰다..나참...
결국 태지가 애들 성화에 못이겨 그날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
있었다고 한다...맞나?
처음에 기자회견을 할때만 해도 볼에 살이 왠만큼 있었던
태지는 바짝바짝 말라만 갔다.
그 와중에 스타쇼인가를 찍었는데
하얀 남방에 까만 어깨 벨트를 메고 롯데월드에서 신나하던 태지...
난 그떄 태지가 천사라고 생각했다.(이러면 안되는데..웃음이 나오네..)
'세상의 선한 기운이 모두 모여 서태지라는 사람을 만들었다.'
고 당시 일기장에 써있다..--a
얼마나 얼마나 여리고 또 강해보이던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태지였다..(레이스와 리본의 효과만은 아니였다..^^)
11월달쯤 해서 태지 어머니가 사서함을 남기셨다.
요즘 힘든떄인데 힘내라고 팬들에게 말하셨고
태지한테 물어보면 괜찮다고 말 하는데
옆에서 보면 굉장히 힘들어보인다는 그런 말이였던듯 하다..
그때 난 빨리 나이를 먹고 싶었다..그랬던 기억이 난다...
어려서..내가 너무 어려서 태지가 저렇게 힘든데
아무것도 해줄수 없다고 생각했다..
몇살만 더 먹으면 뭔가를 해줄수 있을거라고 믿었다...
지금 10살을 더먹었지만..난 여전히 아무것도 해준게 없다...
일본에서 음반도 냈다.그 짧은 활동기간중에
그나마 일본까지 갔다.
그 무렵 나는 태지생각을 할떄마다
숨이 멎을것처럼 좋고 좋고 또 좋았다...
그리고 이런 감정이 뭔지 파악이 안되게 가슴이 아렸다.
썰렁한 농담은 그떄나 지금이나 달라진게 없는데
개량한복 비슷하게 생긴옷을 입고 나타나서 기자들이 어떤컨셉이냐고 물으니
서당이데아라고 했다한다...
나의 반응은.........
'우리 오빠는 농담도 어쩜 저렇게 잘할까..;
정말로 대책없는 중딩이였다..==;;
태지는 벽을 무너뜨리진 못해도 구멍이라도 내겠다며
결연한 자세를 보였고
내겐 세상에 태지만큼 믿을 사람이라곤 없었다.
95'다른 하늘이 열리고는 태지들의 마지막 콘서트가 되었다..
정말 정말 멋진 공연이였다.
태지는 그 상황에서도 공연을 멋지게 마쳤다.
이젠 너에게는 태지판 발라드의 결정체였고
대형전광판에 뜨던 됐어!됐어! 주금이였다...
하지만 만약 지금 갔다면 그떄처럼 태극기에 감동먹진 않았을것이다..-_-;;
그렇게 3집은 막을 내렸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태지는 그떄까지도 위염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언제나 물으면 옛날에 아팠지 지금은 다 나았다고 했는데
그떄 아팠다고 한다...
태지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게 없었다..지금도 그렇지만...
그 이후로 늘 3집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팠다...
태지는 어떤 마음으로 이 음반을 만들었을까...
댄스그룹의 형태를 가지고서 이 음반을 들고 나왔을떄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까...
3집 활동을 하면서...얼마나 기가 막혔을까...
4집땐 팬들이 싸워주기라도 했지...
3집때 어린팬들 다독여가며 버티면서 은퇴를 생각했겠지...
3.5
9개월이였나...태지 기다리는 시간은 조금씩 늘어났다.
3집떄 워낙에 못봐서인지..태지 떠나자마자 보고 싶었다.
덕분에 95콘서트 뮤비순서를 동생이 다 외웠다..하도 봐서..
5월달인가 한국에 잠깐 왔다 가면서 사서함 녹음하고 갔다.
양군 집들이에 빨래비누들고 간다는 얘기하고-_-;;;
자기가 이런 얘기하면 괜히 미안해서 그런다고 하지만
자기 입장 되보라고..진짜 여러분이 큰힘이라고..그런 얘기를 했다..
너무 밝고 건강한 목소리여서... 음반에 굿바이넣고 있는줄 몰랐다..--;;
마냥..빨리와여 빨리와만 부르짖고 있었다...
당시 나의 주제가는
비바람이 치던 바다 잠잠해져 오면 언제 그대오시려나~
어떻게 그렇게 음반나오기 두달전부터 폭풍몰아치듯이
화제가 됬는지는 알수 없지만
한달전부터 D-30 뮤비 뜰때는 정말 애간장이 다 녹는줄 알았다.
달력에 30부터 1까지 써놓고 지우면서 하루야 빨리가라...
숫자만 노려보고 째려보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건 진짜 못할 노릇이다..--**
그렇게 이제나 저제나 10월6일만 기다리는데
음반 손에 잡아보기도 전에 시대유감 사건이 터졌다.
태지는 아예 가사 전체를 들어내 버렸다..ㅠ.ㅠ
4. 보이는 길밖에도 세상은 있어
태지 음반 나오던날...30만장이 하루에 매진됬다던 그날...
우리학교 애들은 점심시간에 삼삼오오 담을 넘기 시작했고
결국 학주가 교문을 열어버렸다..
미친듯이 뛰어나가서 음반을 사들고 들어왔다.
가장 빨리 뛰던 방송반 아이의 달리기 실력으로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 컴백홈을 들을수 있었따.
빠른곡도 아닌데 뭔 소린지 하나도 못알아들었다..
컴백쇼의 태지 머리는 밖으로 뻗쳐있었다..^^
콘택트 렌즈 끼는거 싫다고 선글라스 잘안끼던 태지는
시꺼면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채 무대위에 섰다..
그냥...그날 태지 보면서 애틋하다고 생각했다..-_-;;
남들은 2,3집 발표떄 느꼈는지 모르나 난 그떄
팬들을 바라보던 태지표정을 잊을수가 없다...
눈동자도 보이지 않는데 그 느낌을 잊을수가 없다...
왜..이런 느낌이 들지? 하고 넘어갔던듯하다...
시대유감은 잘려버리고 굿바이는 연주곡으로 삽입된 음반..
최다 뮤비보유 기록을 가진(슬픈아픔,필승,컴백홈,1996,굿바이
free style, taiji boys--;;) 음반이 되어버린 4집...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당시엔 그놈의 공륜하고 붙어싸우느라 그랬고
다음엔 태지의 마지막 앨범이 되어버렸으니까,,,
앨범발매 열흘도 안되어 공륜이 음반판매 가처분 조치를 내렸다.
지금 들으면 코미디 같지만 가사집과 가사 내용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에서였다.
내 친구는 그 소식을 전해듣고 갑자기 점심먹은걸 게워냈다.
그떄 내 머릿속에 '표현의 자유를 침범하는 음반 사전심의를 철폐해야
한다'와 같은 논리적인 생각같은거 들지 않았다.
머릿속이 하얘지고 하나만 생각났다...
어떻게 해서든..무슨 일이 있든간에...지켜야 한다...
태지에게서 태지에게서 음반마저 뺏아가면
태지는 뭐가 남는단 말인가...태지에게 음악빼고 뭐가 있냔말이다..
(갑자기 빅팀 생각이.....휴...)
제 정신으로 시대유감 서명운동 한거 아니였다.
그냥 종이하고 인지들고 다니며 지장을 받아냈다..
태지에게 팬레터 쓰는대신에 공륜에 편지를 쓰고 또 썼다.
당시 토론장에 나온 공륜사람...
깡패나 하는 갱스터하고 이러면서 청소년들 다 버린다... --;;
이에 맞선 한팬이 컴백쇼 방송떄 잠깐 나온 시대유감 후렴구를
따라불렀다..왜 기다려 왔자나 모든 삶을 포기하는소리를~~~
당시 우리들 사이에서는 시대유감 완성판 테잎이
팬들사이에 떠돈다는 근거없는 낭설이 있어 구한다고
여기저기 알아보고 난리를 쳤으나 결국 구할수 없었다.
'빌어먹을'과 '내속에서 살고 있는 널 죽일거야'는
음반 사전심의의 최후의 희생양이 되어 삑소리에 묻혀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대략 난감한건 왜 그때
음반사전심의제 쳘폐를 지지하는 여타 가수들과 연대하지 않았나
하는거다...아쉽다...
1996은 케비에쑤에서 방송금지를 먹었다..
연이어 컴백홈 표절시비가 일었다.
태지는 싸이프러스 힐 음반까지 들고 라디오에 나와
해명했다...싫었다..너무 가슴 아팠다...말로표현할수 없을정도로..
태지들은 더이상 어떻게 해볼수 없을 정도의 거대한
영향력의 그룹이라고 사람들이 그러는데
그 그룹과 팬들은 죽을똥 살똥 거리고 있었다.
한국 대중 가요계가 영웅들을 그렇게 대접했었다...
난 그때 태지들이 영웅같은거 안해도 되니까 조금만이라도
태지들 가만히 내버려뒀으면 했다...
너무 안되보여서 참을수가 없었다.
라디오에서 태지가 그랬다.
'여러분이 아파하면 저희도 아프고 여러분이 힘을 못내면
저희도 힘을 낼수 없어요..그러니까 아파하지 마세요..'
나중에 은퇴기자회견문에 문구 그대로 실렸다.
그떄 그 기자회견문을 태지는 쓰고 있었던게다.
공륜이 무너지고 조금씩 여유를 가졌따..
태지는 가을엔 두꺼운 스노보드복 입고 땀 뻘뻘 흘리더니
한겨울에 얇은 남방 하나 걸치고 서울시내를 질주했다.
너무 선명해서 슬픔을 감추어버린 빨간머리로 태지는
난 버림받았다며 절규했고 우리는 뭣 모르고 마냥 좋아했다...
별밤에서 한팬이 콘서트 안하는 이유가 이벤트떄문이라는데
사실이냐고 했다..태지가 이벤트는 아니고 준비하는게 있다고 했다..
이벤트도 아니고 콘서트도 아니고 붤까...난 기대하기에 바빴다..
다른 라디오에서 해체설을 물어보는 팬이 있었다.
태지가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흔들림없이 말했다.
그런 떄가 오면 가장 먼저 여러분에게 저희가 제일 먼저 말할께요
태지는 처음으로...약속을 어겼다...
우리가 제일먼저 알지도 못했고 태지들에게서
직접 듣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런건 생각도 안났다.
그날도 스케줄을 적기위해 수첩을 들고 사서함을 확인했다.
무슨 내용이였는지 아무것도 하나도 기억안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난 방바닥에 주저앉아 끝없이 울고 있었다...
그렇게 열흘을 울었다...
태지 집앞에 간날...태지 아버지가 태지방에서 커다란 배모양의
유리용기에 담긴 학접은걸 조심스레 차에 옮기셨다...
이 와중에..그놈의 얼어죽을 학~학~학~
학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이와중에~~~~~~~~~ ㅠ.ㅠ
케비에쑤였다. 자살특공대에 대해서 얘들한테 물었다.
그리고 모여앉은 애들한테 지금 심정을 물었다.
제정신이 아닌애들..죽자!를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장면이 여과없이 뉴스에 자막처리까지 되어 나왔다.
빌어먹을...근데 뭐 방송심의를 해?살인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애들도 제정신이 아니긴 했지만 언론이 더 부풀리고 부추기고 그랬다.
조폭개입설은 상황을 더 웃기게 만들어갔다.
난 그 무엇을 느낄수도 알수도 없었다.
그떄 내가 버티었던건..태지팬들떄문이였다....
팬들 없었으면 못버텼다...
뉴스를 보며 '저기 있는 애들 부모는 대체 뭐하는 사람들이야'
하시던 우리 아버지...0.3초정도 비춰진...
오직 부모만이 알아볼수 있을듯 했던 그 짧은 나의 티비출연에
넋을 잃으셨다고 전해진다...
태지는 열흘만에...열흘내내 굶은것 같은 얼굴로 나타났다..
피골이 상접하다 못해 핏기 하나 없었다.
사람들은 기자회견장이 유림회관이었다고
신세대가 무릎을 꿇는 순간이라는둥 마지막까지 쓸데없는
소리에 열을 올렸따..
기자회견이 끝나자 태지는 바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태지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계단을 내려가는 영상이 잠깐 잡혔따.
고개를 숙이고 손을 갖다데고 있었다...
태지는....울고..있었다....
태지가 힘들꺼라는 생각 안한건 아니였다...
그래도....그래도....그렇게..뒤돌아 설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렇게 끝까지 바보같이 눈물한방울 떨구지 않고
뒤돌아서서야 엉엉 울면서 떠날줄 몰랐다...
저런 모습으로 떨리는 목소리로...그렇게 너무 힘들었노라고
말할 줄 몰랐다...아는게 아무것도 없었따...
그리고...부모외에 모든 이들에게 잊혀지고 싶다고 말할만큼
깊은 절망을 안고 있는지 정말..몰랐다...
나이드신 팬들은 태지가 다시 돌아올거라 믿었다 한다...
나는 정말 안 돌아오는줄 알았따...
태지는 한번 한말은 주워담지 않는 성격이였으니까...
아니...태지 모습에 너무 쇼크먹어서...어쩌면 정말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세상이 모두 내 안에서 통쟤로 소실됬다...
태지없는 세상이....너무 끔찍했다....
사람들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는거라 했다.
어떤 평론가는 열라 시니컬하게..
뭐 어짜피 서태지도 팬들에게서 잊혀지겠지만..이렇게 글을 끝맺었다...
어머니는 1,2년만 지나면 왜 그댸 그렇게 철이 없었나 싶을거라고 하셨다...
그들은 그렇게 밖에 말할줄 몰랐따....
4.5
서태지와 아이들 기념사업회 일명서기회가 발족됬다.
체조 경기장에서1회 영상콘서트도 열렸다.
태지들이 입었던 옷 바자회가 열렸다.. 교실이데아 옷은 100마넌에 팔렸다..
시대유감도 부활했다..무려7500원에..--;;
태지만...그래..태지만 없었다...
고1,2,3
나의 고등학교시절은 8할이 떠나버린 태지와 함께지나갔다..
떠났으되 떠난게 아니였던 사람이였다..
어떻게 한시라도 잊을수 있었겠는가...
어느날 서점에서 그림책을 보다가 눈에 들어온 문구하나...
'혹시 어린왕자를 보지 못하셨나요....
보셨다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전해줄래요'
눈물이 끝도 없이 쏟아졌다..
작은거 하나에도 금방금방 눈물이 맺히고 떨구고...
명절이나 태지 생일 또 무슨무슨 날들이면
더 간절한 태지생각에 목구멍에 가시가 걸리는것 같았다..
미역국이라도 끓여 먹는단 말인가..ㅠ.ㅠ
중간에 쿨 사이다 광고도 찍었다..라기보단
그 회사에서 태지 뮤비를 짜집기해서 광고했다.
태지 최근 사진1장 공개에 10억원을 제시하는 핸드폰회사
주유소 사장 딸하고 결혼했다는둥
아무튼 온갖 난잡한 소문만 떠돌았다...
태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몸은 건강한건지...
당최 믿을만한 소식통은 하나도 없고
자유롭게 쉬고 있어야 할 태지를 어떻게든 쿡쿡 찌르는
말들 뿐이였다.
5. 내겐 좋은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
고3 6월 어느 하늘 파랗게 개인날이였다...
태지가 음반을 낸다고 했다..처음엔 친구의 농담인줄 알았다..
사실을 확인하고 양호실간다고 그러고
학교 등나무 벤치에 서서 야호~를 부르짖었따..
길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우리 태지가 다시 음악을 한데요...다시 말이에요~~'
이렇게 자랑하고 싶었다...
그땐 얼굴 평생 안봐도 좋으니까 음반만 듣고 살아도 좋으니까..
태지가 이렇게 계속 음반을 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태지는 삼성과 손잡는 바람에 대기업과 손잡는다는
욕을 한아름 얻어먹고 이후 삼성이 음반에서 손떼면서
5집이 희귀음반이 되어버렸따...
왜 하필 삼성과 손잡았는지는 며느리도 몰라..시애비도 몰라...
서면 인터뷰도 했다.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하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부처님 알라님 감사합니다..
난 믿지도 않는 온갖 종교의 신들께 간절하게 감사드렸다..
별도 보고 여행도 다닌다고 했는데
또 힘들고 외로운데 괜찮은 양 하는거 같아서
마음이 완전히 놓이지 않았다...
그리고 자기는 한국사람을 본적이 있어도 그 사람은
자기 얼굴을 봤을리 없다는 말에 벙벙-_-;;;
성형수술이라도 했나..아님 변장이라도 하고 다니나..
태지 아버지가 빌딩을 짓는데 그거때문에 음반낸다고 했던 기사들...
만원이면 자장면이 몇그릇인데 철없는 10대20대는
이 어려운 경제상황에 서태지 음반을 산다고 하던 이들...
예..깡통같은 자식들..태지가 아무러면 그렇게 멍청할것 같냐~~
진짜좀 더럽게좀 그러지마~~~~
7월7일...(그러고 보면 태지 이런거 무지 좋아하네..0909이런거)
강남역 타워레코드엔 정체불명의(--;;) 음악이 울려퍼지고 있었고
-태지 음악이였다...-_-;;;;;;;-
난 보라색 씨디를 사들고 타워레코드를 나서는데
타워레코드에서 테크5가 흘러나왔다...
내겐 좋은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
이젠 너를 통해서 내가 살아가고 있어~~~
강남역 그 사람많은 거리에서 친구 어꺠에 기대
죽어라고 펑펑 울었다...
(친구가 한번만 더 그런짓하면 절교한다고 했다..--;;)
태지는 그렇게 힘들어하면서 갔는데
그렇게 상처받고 떠났는데...
좋은 사람이 많단다...팬들을 통해서 살아간단다...
남은 고3생활은 서태지 음반때문에 망치는거 아니냐는
어머니의 우려와 달리 마음 편하게...후회없이 성실하게 지나갔다..
태지는 다시 음악도 하는데..이깟 수험생활...못하랴...
5.5
양군도 음반을 냈다. 양군이 라됴에 나왔는데
전화건 팬..한참 망설이다가..물었다...
태지오빠..살 좀 쪘어요?
양군이 그렇다고 했다....
다행이다...적어도 그 해골바가지(ㅜ.ㅜ)같은
모습은 아니란다...진짜 그모습으로
지낼까봐..그 모습이 너무 뇌리에 깊이 남아서
늘 안타까웠는데...
어쨌든 5집이후부터는 그래도 맘이 많이 편해졌었다..
적어도 눈만왔다하면 수도꼭지이던
내 고등학교 생활은 그렇게 끝이났다..
언제든 자유롭게 음악 하고 싶을때 해서 낸다는
태지의 인터뷰는 해석하기 나름이고..말 그대로
내 맘이야!인지라...
그게 5년이 될지..하물며 10년(--a)이 될지 모를일이였다..
지상서기회만 하던 나는 나우누리 서기회에서 정모하며
태지 비됴와 음악을 다시 공부하며 보냈다...
슬그머니 아예 돌아오면 안될까 하는 욕심을 부려보기도 했따...
서로 그립다고...보고 싶다고..그런말들을 하다가도
고개를 저으며 오고 싶으면 오겠지...
와서 또 힘들면 어떻해..이러면서
허벅지를 찔렀다...
서른이 다 되어갈 태지의 모습이 상상이 안갔다...
이러다 나중에 마흔살쯤에야 태지를 보는거 아냐..하는 생각도
들었다...왜 이렇게 욕심이 많아졌냐며 끝없이 허벅지만 찔렀다..
6. 얼음나라 왕자..
온다고 했다. 왔다. -_-;;;
공항에 태지 마중나가러 가는날
아침부터 심장이 떨려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연일 계속되던 태풍은 신기하게도 그날만 멈췄다.
하늘은 너무나도 푸르렀다.
난 태지가 한국에 오는날이란걸 하늘도 알겠거니-_-;;;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도로변에 야생초가 피어있었다...
세상이 이보다 아름다울순 없다고 생각했다
너무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이제는'을 죽어라고 연습했는데 막상 태지는
공항문턱에서 기자들한테 들은
'야 이새끼야 거기 다시 서!'가 한국에 와서 처음
들은 말이 되버렸다...
이젠 절~떄 절~떄 기자들이 함부로 하게 두지 않을거야...
지켜줄거야..다나와..우씨...
그런 걱정은 할 필요도 없었다..--;;
태지는 무지 멋있어졌다.
엄청 강력한 칼 있쑤마를 풍기며 돌아왔다.
기자들한테 내돈 내가 알아서 쓴다고 말하는 칼 있쑤마
리허설때 기자들한테 고개 하나 까딱이지 않던 칼 있쑤마
5년만에 서는 무대에서 '안녕하세요'하나 없는 칼 있쑤마
그놈의 노란손수건떄문에
태지팬의 자격에 관한 논쟁이 게시판을 뒤엎었다.
내가 태지팬 될 자격이 없는가 싶어 행복은 고사하고
한참을 우울하게 서성거렸다.
태지팬 될 자격이 있는가라...그런 고민을 하게 될줄은 몰랐다..
그렇게 헛살아왔나..싶었다...
여담이지만..태지팬의 자격이 있네 없네 하는 논쟁 백해무익이다.
그걸 갈라서 어쩌자는건지..
그 이후의 사건들은 단 몇줄로 요약...
다 아는 얘기인데다..길게 써봤자..다시 퇴출..-_-;;
태지는 찬바람 쌩하게 불었다.
우리는 모든 사전녹화를 다 따라다녔다.
콘서트도 다갔다.
태지 다시 온기가 돌다.
여한이 없냐구? 모르겠다.....
6.5
가장 많이 앓았다....
태지 은퇴하고 난 다음만큼 아팠다...
난 태지가 상처받는건만 아픈줄 알았다...
그게 아니였다..태지가 상처받는걸 보고
내가 상처받아서 아팠던 거였다...
따라서 내가 상처받으니 죽도록 아팠다...
1년은 그래도 여기까진 안되라며 경계선을 쳐놓고
혼자 쌩 버라이어티 쇼를 했고
다음1년은 그래도 어쩌겠어..받아들이자 이러며 보냈다.
태지한테 쓰는 편지로 몇권의 노트가 날라갔는지 모른다..
노트 한권 쓰고서 태우고 또쓰고..진짜 코미디였다..ㅠ.ㅠ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어 어이없어 하기도 했다..
그 기사만 안봤으면 멀쩡히 보냈을 1년이 다시 뒤집혔다.
난 38개월 동안 태지를 기다린게 아니라 혼자서 장구치고 북치고
온갖 쌩쇼를 다한거다..나참..-_-;;
아픈 만큼 성숙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남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것에 대해 마음이 많이 넓어지는걸 느꼈다...
이 입장 저입장에 대해 살면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생각해본적은 없었다.
7. come back home!
공연장 갈 표를 끊어놓고 독하게 마음을 먹었다.
설령 머리위에서 에어콘 바람이 불어온다 해도
뜨거운 바람이라고 생각하자..마인드 콘트롤~~~
중립..중립..+든 -던 감정에 휘둘리지 말자...
마인드 콘트롤 마인드 콘트롤.....
은 무슨 개뿔..-_-;;;
태지7집듣고 밤새 울었다...
가슴 구석구석 저미어오는데 안무너지고 베길쏘냐..
그래도 공연장 가는건 무서웠다...
내심 겁이 나기는 했다...
그래서 공연 시작하기전..다시 마인드 콘트럴...
뜨거운 바람..뜨거운 바람..이러고 있었다...
독한 마음같은거 가질 필요 없었다.
태지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팬들을 맞이했다.
팬들도 넉넉하게 태지를 맞이했다..
혼자 바보된 느낌이였다...
모냐..나의 30개월간의 방황은..--;;;
이제 스케줄을 다따라다닐까
아님 이 충만하고 행복해 죽겠는 기분을 그대로
흠집하나 내지 않고 보존하기 위해
집에서 티비를 볼까...
모든 골수 팬들이 그렇겠지만...지난 12년의 기쁨과 슬픔...그리고... 아픔과 기다림에 대한 모든 기억들 때문에...사무실에서 낯빛 검어지도록 소리 삼키며 울고 있습니다...8집때 다시 눈물 삼키지 않기 위해서라도...더이상 태지의 힘들고 화난 모습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Victim 만큼은...꼭...
첫댓글 에궁.. 이 글 쓴 매냐.. 존경스럽네요..
모든 골수 팬들이 그렇겠지만...지난 12년의 기쁨과 슬픔...그리고... 아픔과 기다림에 대한 모든 기억들 때문에...사무실에서 낯빛 검어지도록 소리 삼키며 울고 있습니다...8집때 다시 눈물 삼키지 않기 위해서라도...더이상 태지의 힘들고 화난 모습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Victim 만큼은...꼭...
이 글 쓴 매냐분... 최고에~~여 그때가 세롯세롯 생각이 나네여.. 너무나 울궁 웃고했던 우리였는뎅.. 이젠 그런 아픔은 다시는 없겠죠? 집이아니라 회사라서 막 울수둥없궁 참궁있는뎅... 참아서 그런지 목이 메이궁 아프네여 ㅠㅠ
태지는 정말 행복해야 하는데....왜들 그렇게 그 순수하고 착한 사람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들인지....ㅠ.ㅠ 아직도 소년같이 맑은 얼굴을 보면 요새는 가슴이 아려요..
눈물이 나려고...참으려고 몇번 끊어서 읽었음.
정말 눈물나네요...태지는 정말 이렇게 힘들어 했었나요 그때는 너무 어려서...내나이에 이렇게 ...가슴이 너무 아프네요 너무요 ...ㅜ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