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igin And Concept of Argentine Tango Music - 아르헨티나 탱고의 기원과 개요 - 1
아르헨티나 음악이라면 탱고가 유명하다. 그러나 탱고는 아르헨티나 전체를 대표하는 음악이라기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음악으로 특수하게 발달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아르헨티나 전국에 분포하는 음악은 이른바 폴클로레라고 부르는, 즉 민족음악이다. 아르헨티나에는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민속무용의 형식이 전해지며, 그 총수는 100개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그 주된 것은 북부 고원지방의 칼나바리트, 바이레시트, 서부 안데스산 기슭의 쿠에카, 토나다, 동부 라플라타강 유역의 폴카, 차마메, 페리콘, 그들 여러 지방에 둘러싸인 중앙부의 북쪽지방(산티아고, 코르도바 등의 여러 주)의 삼바, 가트, 에스콘디도, 차카레라, 그보다 남쪽의 팜
파 대초원지방의 마람보 등입니다. 멕시코와 마찬가지로 아르헨티나도 라틴 음악의 기본 3요소 중의 흑인요소가 없고 에스파냐계와 인디오계의 2요소로 성립되고 있으며, 위에서 말한 여러 종류의 댄스 리듬은 대부분이 6/8박자(칼나바리토는 예외) 이다. 가트나 차카렐라 등은 그 전형적인 것으로, 6박자와 3박자가 엇갈리는 복잡한 폴리 리듬을 기타로 표현한다. 이는 라플라타강 유역의 차마메가 인접국 파라과이의 음악을 흡수하여 발전한 것으로 보아도 된다. 삼바나 리트라레냐를 주류파로 하는 오늘날의 폴클로레는, 민속음악이라기보다는 멕시코의 음악 칸시온 란체라와 마찬가지로 대중가요라고 하는 편이 적합하다고 할 방향으로 진전되어 왔습니다.
Antonio Banderas - Take The Lead - Tango Scene
(안토니오 반데라스 - 테이크 더 리드(주도권을 잡아라) - 탱고 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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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6lAKlYTQVKY
아르헨티나엔 두 개의 나라가 있습니다. 하나는 아르헨티나라는 나라이고, 또 다른 하나는 탱고라는 나라이다. 탱고가 춤곡이라는 사실을 잊어야 한다. 탱고는 때론 저속하고, 때론 우아하지만, 항상 그 느낌이 강하고, 리드미컬하며 정열적이다. 무한한 인간의 욕망을 극도로 절제하여 엣센셜하게 표현된 것이다. 탱고의 상징 : 탱고는 원주민과 이주민 간의 갈등을 상징한 것으로, 춤을 자세히 보면 여자는 원주민이고 남자는 막 아르헨티나에 도착한 이주민임을 알 수 있다. 여자 댄서를 두고 남자 댄서 간의 갈등은 땅을 차지하려는 이민자들의 영역 다툼이자 여자를 차지하려는 싸움인 것이다.
아르헨티나 탱고의 기원
'Tango'라는 단어에는 흑인들이 춤추던 장소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탱고의 어원은 ‘만지다’'맛보다' '가까이 다가서다' '마음을 움직이다'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라틴어 ‘탄게레’(Tangere)에서 비롯되었다. 탱고는 그 어원에 이미 탱고의 초기 발생 배경을 담고 있으며 춤의 특징을 집약적으로 잘 설명하고 있다. 탱고는 19세기 유럽의 댄스와 댄스 음악이 아르헨티나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리듬이 혼용된 복합적인 음악 산물이다. 탱고의 문화적 스펙트럼을 형성하고 있는 유럽·라틴 아메리카·아프리카의 유기적인 결합은 19세기 아르헨티나의 복합적 문화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남부 유럽의 고전적인 춤곡과 아프리칸 이주민들의 칸돔베(candombes)의 경쾌한 리듬과 즉흥적인 스텝, 민속음악이 결합된 탱고 음악은 모체, 또는 원조로 쿠바 아프리칸 노예들의 음악
인 느린 하바네라(Habanera)가 시초가 되고 있다. 하바네라는 19세기 초 쿠바에서 유행한 2/4박자의 춤곡으로, 아바나에서 이 우아한 춤곡을 접한 아르헨티나의 선원들에 의해 19세기 중엽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건너왔다. 쿠바의 하바네라는 아르헨티아에서 더 강한 템포감과 아르헨티나 목동의 노래, Gaucho 목동들이 기타에 맞춰 부르던 즉흥적인 노래인 플라야다스(playadas)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변두리로 들어와 섞이면서 ‘밀롱가'―현재 탱고의 변형된 형식이나 댄스 홀을 지칭한다―라는 고유한 형식으로 발전한다. 이로써 현대의 탱고와 가장 가까운 조상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 이 새로운 댄스가 유럽계 이민자들 사이에 성행하면서, 악기를 다룰 수 있고 노래를 좋아하던 이탈리아인들의 음악과 어우러져 현재의 탱고가 발생하게 되었다.
Loreena McKennitt - Tango to Evora
(로레나 맥케니트 - 탱고 투 에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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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AIR5XPWK3Vk
1957년 1월 1일 캐나다,의 매니토바 Manitoba주 모덴 Morden에서 태여났으며 포크와 뉴에이지, 팝, 어덜트 컨템포러리, 켈틱(Celtic) Style을 추구하는 음악인 이며, 아버지는 가축생명보험 설계와 간호사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여난 여가수 로리나 맥케닛 (Loreena McKennitt)는 클래식 피아노와 가수가 되기 위한 연습, 그리고 '하리랜드 스타인(highland style / Scotland. 고지 지방 특유의)' 댄스를 배우며 소녀시절을 보냈습니다, 또한 그녀 자신만의 전통적인 음악 사랑은 위니펙 Winnipeg의 포크 클럽에서 더욱 강하게 되었습니다, 자연과 동물을 사랑하던 '로리나 맥케닛은 수의사가 되였고 그녀의 천부적 재질 중 하나가 음악 사랑이었는
데, 수많은 음악을 들으며 수많은 악기를 다루던 그녀는 특히 '켈틱 하프(Caltic Harp)'의 마력에 사로잡혔습니다, 아일랜드(Ireland) 음악의 집중탐구 끝에 그녀는 '온타리오 스트랱포드(Ontario, Stratford)'로 진출하여 포크 클럽 가에서 하프와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하게 되고, 토론토에선 스트리트 뮤지션 Street Musician으로 나서는 등 자작곡을 선보이며 스스로 프로모션 투어(홍보여행)에 나서게 된 셈이 되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자신의 '라벨(label)', '퀸란 도로(Quinlanroad)'를 설립 1985년 데뷔 앨범 '엘리멘탈(Elemental)'을 발표하기에 이르고, 1991년 4집 '더 비짓(The Visit)'으로 캐나다의 그래미로 일컫는 주노 어워드 Juno Award를 수
상 일약 스타덤 Stardom에 오르게 됩니다. 2004년 위니펙 페스티벌에서 평생 공로상, '골덴 밴죠 어워드(Golden Banjo Award / '라이프타임 어치브먼트(Lifetime Achievement)'를 수상 명실공히 캐나다의 국보급 뮤지션으로 자리 매김을 하였습니다. 레너드 코헨, 조니 미첼, 닐 영, 고든 라이트 풋 Gordon Lightfoot등과 함께 2002년 Manitoba주 에서 열린, 퀸 엘리자베스 II세가 참석했던 어전 공연에 '헤드라인 퍼포머(Headline Performer)'로 연주, 2002년 Wilfrid Laurier University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03년 7월 매니토바주 를 빛낸 인물로 선정 훈장을 받았습니다, 또한 '로리나 맥케닛은 "깨끗한 바다 지키기"(Cook Rees
Memorial Fund)' 재단과 자연보호협회(Three Oaks Foundation)을 설립, 우리돈 40억 정도의 기금을 조성(자신의 음반/공연수익 중 거액을 헌납)한 아름다운 음악인 입니다. 1860∼70년에 즈음하여 아르헨티나 전역으로 확산된 밀롱가는 아프리칸 흑인 노예의 주술적 의식을 표방한, 독특한 싱커페이션을 가진 2/4박자의 카니발 음악 칸돔블레(Candomble)로 진화하고, 이는 탱고의 원형에 가장 근접한 음악이 되었다. 그 밖에 유럽의 폴카와 중남미의 격렬한 축제 음악 살사와 볼레로에서도 그 내용을 흡수하게 된다. 탱고 음악에 함유된 복잡하고 다양한 다문화적 배경은 탱고 음악이 오늘날 인종과 민족에 구애받지 않고, 월드뮤직으로서 폭
넓은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요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탱고의 기원에 대해 다소 논란은 있으나, 대체로 1870년대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항구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카(Boca)라는 부둣가의 하층민들 사이에서, 기원이 다양한 여러 종류의 노래와 춤이 결합되면서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1870년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남부 보카 지역으로 아프리카 흑인들과 쿠바 선원들이 모여들었고, 19세기 말 전쟁으로 생계의 기반을 잃은 유럽의 이민자들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대거 유입되었다. 이민자들은 새로운 땅에 정착하기 위해 힘겨운 생존투쟁을 하였는데, 고달픈 그들의 삶의 애환을 달래주던 춤이 바로 탱고
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아르헨티나의 수도가 된 것은 1880년대이며, 1930년대까지 급속한 팽창이 이루어져, 짧은 시간에 라틴 아메리카 최대의 도시가 되었다. 19세기 말에서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유럽에서 이주해온 수많은 이주민들로 가득했다. 라틴 아메리카의 열기가 가득한 이국적인 ‘남미의 파리’의 거주자 중 75% 이상이 유럽에서 이주해온 이민자들 이거나 그들의 자손들이었다고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동남쪽에 있는 지저분한 항구인 보카에는 부두와 신생 공업 지대가 인접하고 있었고, 이탈리아에서 이주해온 극빈층 이주민들이 밀집되어 있었고, 이 가난한 서민의 도시에는 유럽의 생활양식 그대
로인 카바레와 음악이 흐르는 선술집과 레스토랑이 보헤미안의 고단한 삶을 달래주고 있었다. 거친 항만 노동자와 도축업자, 밀수꾼과 거리의 여인들이 뒤엉킨 이 도시의 풍경에는 생활에 찌든 노동자의 권태와 고독감이 가득하였다. 이렇게 하층민의 가난한 삶과 체념적인 인생관은 라틴 음악의 격정과 융화되어 탱고 음악의 정서와 내용이 되었다. 흥청대는 밤거리와 어둡고 습기 가득한 보카의 일상은 2/4박자의 강렬한 리듬감과 악센트를 자아내며, 강한 호소력으로 그들의 삶과 영혼을 지배했다. 보카의 빈민굴에서 발생한 탱고는 처음에는 항구에서 기생하는 도박사·밀수꾼 등 이방인들의 세계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했으므로 ‘포르테냐 음악’(Musica Portena)이라고도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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