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드로의 명령대로 사는 것은 우리에게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2) 9절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베드로는 8절뿐 아니라 9절에서도 "이런 것" 즉 5-7절에서 말한 덕을 힘써 더해가는 것이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를 설명했습니다. 9절에서 베드로는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고 신랄하게 책망합니다. 또,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이 구절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일까요?
이 구절의 뜻을 크게 둘로 구분해서 여러분에게 설명해드리겠습니다.
1)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우리는 비진리를 진리로 착각하고 있는 자들을 맹인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맹인으로서 매인을 인도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더 나아가 덕이 없는 사람도 맹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이것을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이 용어의 배합은 매우 이상합니다. 왜냐하면 '맹인이면 전혀 못 보는데, 왜 멀리 보지 못한다고 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리차드 J. 보컴도 "눈 먼 것보다 덜 심각한 상태를 가리키는 이 단어가 튀플로스('눈 먼')와 함께 사용되고 있는 것은 이상하다."고 했습니다. 또,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NIV성경은 헬라어 순서를 바꾸어 '시야가 좁고 보지 못한다'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는 '보지 못한다' 그리고 '시야가 좁다' 순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한편, 헬라어 원문에서 '멀리 보지 못하고'('뮈오오파존')는 분사로서, '눈을 감았기 때문에'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몇몇 주석자들(Spitta, Spicq, Green, Kelly)은 이 단어의 어원론적인 의미인 '눈을 감다'를 거론하며, 이 단어가 튀플로스('눈 먼')에 고의적인 눈 멈, 즉 의도적으로 눈을 감는 것이라는 개념을 추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참조. 사 6:10 LXX: '그들이 그들의 눈을 감았다'). 그러나 이 견해의 난점은 이 어원론적 의미는 근시인 사람이 무엇을 보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리어 더 잘 보기 위해서 눈을 가늘게 뜨는 것을 가리킨다는 것입니다(Mayor). 그러므로 우리는 베드로가 다른 단어 쌍들을 사용할 때 흔히 그렇게 하듯, 이 두 단어를 실질적인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고, 뮈오파존('원시치 못하고')을 첨가한 것은 수사적 효과를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결론 내려야 합니다. 이것이 최선입니다.
그건 그렇고 과연 "멀리 보지 못하고"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서 '멀리 본다'는 것은, 특별히 먼 훗날인 종말에 관한 지식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멀리 보지 못한다는 것은 거짓 교사들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종말이 없다'고 주장했고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 3:3-5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또, 이것은 흔히 말하는 근시안적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것만 보고 멀리 있는 것은 볼 수 없습니다. 즉, 세상의 일들에만 몰두하고 천국의 일들에는 어둡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베드로는 자라지 않는 신자들은 그들 주위에 있는 가시적 세상만을 본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근시안적인 시각은 큰 그림, 즉 영원에 대한 약속과 그리스도를 닮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 눈이 멀게 만듭니다. 그 결과 세속적인 소유들과 덧없는 것들에만 집착하며 살다가 멸망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험천만하고 비극적인 상태입니다. 때문에 로이드 존즈는 이들을 이렇게 고발했습니다.
"그는 먼 것을 보지 못하는, 즉 근시안을 가진 사람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는 바로 그의 앞에 있는 것만을 보는 사람입니다. 그는 멀리 보지 못하고 일시적이고 현재적인 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여기에서 현재 인생을 즐기기를 원하는 사람이고 다가올 다른 인생은 잊어버립니다. 그는 그 주위의 그렇게 많은 세상사와 세상의 화려한 보상들과 소위 행복과 기쁨과 세인들이 목적으로 하는 모든 것을 보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그의 바로 앞에 있는 것은 보나 다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사도가 명백하게 의미하는 것은 이런 유형의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는 최종적인 목표를 보지 못합니다. 그는 여행을 떠났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즉, 그는 떠난 이유와 목적을 잊어버린 사람입니다."
저는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가시밭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정확히 이들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13:22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마가복음 4:18-19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누가복음 8: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이들도 "말씀을 듣기는 하되"가 보여주듯이 예배에 참석합니다. 이들도 설교를 듣습니다. 이들도 신앙생활이라는 것을 합니다. 그러나 관심은 온통 하늘의 것이 아니라 땅의 것입니다. 자기 영혼을 위해서 근심하지 않습니다. 온통 세상 것들에 대해서만 근심합니다. 또, 이들은 하늘의 것으로 기뻐하지 않습니다. 이들의 관심과 기쁨은 온통 땅의 것들입니다. 즉, 이들은 실제로는 본향(천국)을 향해가는 영적인 나그네가 아니라 이 세상의 거주민(불신자와 같은 사람)입니다.
또, 중요한 것은 씨 뿌리는 비유에서 가시밭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씨를 뿌리는 목적은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고백을 하고, 교회에 다니고, 신앙생활을 해도 더욱 힘써 베드로가 말한 것들을 더하지 않으면 바로 우리가 그 사람입니다. 정말 끔찍하지요!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베드로가 말한 "이런 것이 없는 자"가 되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