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디와 래리, 워쇼스키 형제의 [스피드 레이서]는 매우 상업적인 내러티브로 전개된다. 자동차 경주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음모와 배신 그리고 반전은 상투적이며 전형적이기까지 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속에 영화의 미래가 딤겨 있다는 것이다. 촬영과 편집의 독창성은 물론, 몽환적 비주얼 효과를 만들어내면서 영화라는 매체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 [스피드 레이서]에서, 사실 내러티브 자체는 별로 의미 있는게 아니다. 형식적 측면에서 혁명적 실험을 하고 있는 [스피드 레이서]에서 워쇼스키 형제는 그 충격을 중화하기 위해 내러티브는 매우 안전하게 낯익은 내용으로 채워 놓았다.
영화는 이제 영화와 싸우는 게 아니라 다른 영상 매체와 경쟁해야만 한다. 지금은 영화나 TV, 케이블 TV, 비디오, DVD, 컴퓨터 게임, 휴대전화를 이용한 영상 모바일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상매체들이 실핏줄처럼 연결되어 있고 그 네트워크의 한 복판에 영화산업이 자리잡고 있어서 고부가가치를 획득할 수 있지만, 곧 영화를 압도할만한 새로운 매체가 출현할 것이다. 현재의 영화 장르가 그렇다고 곧 사멸하지는 않겠지만 영향력은 현저히 감소되고, 영화는 다른 매체 혹은 장르와의 합종연횡이나 새로운 탈바꿈을 통해 지속적인 생존전략을 펴나갈 것이다.
워쇼스키 형제의 [스피드 레이서]는 영화의 미래적 탈출구에서 시도할 수 있는 한 방향을 제시한다. 내러티브 자체의 짜여진 틀이나 미학적 실험 대신, 자유분방한 상상력으로 시각적 영상혁명을 시도하고 있는 이 영화의 가치는, 지금보다는 더 시간이 지난 미래에 높이 평가받을 것이다. [매트릭스]가 존재론을 뒤흔들면서 참과 거짓, 가시적인 것과 비가시적인 것,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을 넘나들며 삶의 근원적 에너지에 관한 내재적 질문을 던졌다면, [스피드 레이서]는 영화라는 형식의 외형적 틀이 파생시키는 다양한 질문을 던지게 한다.
가령 [반지의 제왕]이나 [나니아 연대기]같은 환타지 영화가 거대한 우주적 질서를 재창조하면서 그 속에서 삶의 다양한 모습들, 사랑과 이별, 전쟁과 평화, 믿음과 배신 등, 욕망과 초월 등의 주제를 변주하고 있다면, [스피드 레이서]는 현실 자체를 판타지로 탈바꿈시켜 버린다. 감각의 교란에 의해 다양하게 연출되는 시각적 흡인력은 놀라운 것이어서 우리는 현실에서 가상의 세계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간다.
질주의 본능과 두려움을 모르는 강인한 정신력, 급회전 코너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다양한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수많은 레이싱에서 우승한 경력의 천부적인 레이서, 스피드 레이서(에밀 허쉬 분)는 레이싱 가족이다. 아버지 팝스 레이서(존 굿맨 분)가 직접 설계한 레이싱 카 [마하5]를 몰고 각종 레이싱 대회에 출전한다. 하지만 거대 기업 로열튼의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하면서 로열튼 회장의 분노를 사며 위기가 닥쳐온다. 그리고 스피드 레이서는 수많은 레이싱 대회의 배후에서 소수의 실력자들이 우승을 조종하며 막대한 이익을 채워온 레이싱계의 추악한 이면을 알게 된다.
태조 역을 맡은 레인(비)의 비중은 생각보다 높다. 깊은 내면연기를 요구하는 배역이 아니기도 하지만, 비에게는 자신의 장점을 최대한 내세우면서 헐리우드에 입성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토고칸 모터스]의 리더로 등장하는 레이서 태조는, 스피드 레이서의 라이벌이자 그를 함정으로 이끄는 인물이다.
스피드 레이서는 태조의 제안으로 옛 라이벌인 레이서 X(매튜 폭스 분)와 팀을 만들어, 회전각도가 크고 운전하기가 아주 까다로운 전설의 자동차 경주 코스 [카사 크리스토 5000]에 출전한다. 로열튼이 주최하는 이 대회는 스피드 레이서를 사지로 이끄는 함정으로 가득차 있다. 이 대회에서 로열튼 소속의 레이서들과 맞서 이기는 것만이 스피드 레이서가 가족의 명예를 지키고 살 수 있는 길이다.
[스피드 레이서]의 내러티브는 낯익은 것이다. 새로운 것은, 워쇼스키가 꿈꾸는 비주얼 시각혁명이다. 상상 이상의 것을 보여준다는 카피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허구와 살재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현실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던 삶의 영역을 전방위적으로 확대한다. 실험은 성공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높고 그만큼 많은 위험요소를 안고 있지만, 실험 없는 진보는 없다. 워쇼스키의 무서운 영상실험이 영화 매체 전체에 미치는 파급력은 작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