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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혜영)
양윤모님(2011), 박성수님(2013), 김종일님(2013), 박용성 님(2013) 에 이어 이광원 님 다섯 번째 벌금 구속자 (200 만원)예요. 많은 항소들이 기각되며 더 많은 벌금 구속자가 생길 것 같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벌금 관련 구속이 파장을 일으키는 만큼 공유와 기록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습니다. 카톨릭 신도 보나벤뚜라 이광원 선생님은 2012년 5월 26일 시멘트 트럭 농성으로 7시간을 버티다 내려온 후 시멘트 분진 등에 인한 심근경색으로 병원에 실려가 수술을 받은 바 있습니다. (관련 기사) 문정현 신부님은 작년 8월 대행진 기간 중 이광원 선생님께 병원비 후원 성금을 전달하실 때 “구럼비에 사는 붉은발말똥게와 맹꽁이처럼 무리 중의 하나가 되어 열심히 살아가자고 생각했는데, 이광원 형제가 바로 그런 사람”이라고 하셨다 합니다. ( 당시 카톨릭 뉴스 참조) 이광원 (수감번호는 1259) 서울 송파구 송파 우체국 사서함 177 성동구치소 라 들었어요. 이광원 님 관련 영상 가기
사진: 조안/ 전송: 혜영
(사진: 세실)
(사진: 세실)
아래 글 전송: 세실
†하느님 창조사업의 완성은 바로 평화입니다.
평화의 인사를 드립니다.
강정에서 11시 미사.
농한기가 없는 제주에서11시 미사를 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인지 모릅니다.
90세가 넘는 할머니라 하더라도 거동만 가능하다면 모두 밭일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주일빼고 한결같이 강정 생명평화 미사에 함께 해주시는 어르신이 계십니다.
양요왕 신부님의 부모님입니다.
미사 때 경찰들이 사제를 강제이동하고 감금당하는 것을 말리다가
어깨를 심하게 다쳐서 몇 달을 어깨 깁스를하고 다니시기도 했습니다.
지킴이들을 보고 고맙다고 누군가 보이지 않으면 무슨일일 있냐고 안부를 물어보기도 합니다.
그 어르신이 말씀 하셨습니다.
4•3을 경험했기 때문에 또 다시 4•3을 겪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10월 30일 연중 30주간 수요일
주례 허승조 신부님
강론 정 쟌다크 전교 회장님
반갑습니다.
한창 바쁠 텐데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어제 강정에 작년 5월에 와서 두 번째로 어머니와 같이 잤습니다.
저는 아침에 주로 제 기도를 하구요 7시 되면 여기 지킴이들과 함께 정문 앞에서
백배 기도를 합니다. 제가 강정에 있는 한은 눈이오나 비가 오나 태풍이 불어도
항상 백번 절을 합니다. 오시는 손님들 수녀님들 신부님들 같이 합니다.
1년 넘게 지내다 보니 경찰과 우리와 싸우는 것인가?
요즘에는 경찰들과 신경전이거든요.
억울하게 경찰들이 맞았다 그러고 다리가 부러졌다 그러고 때리지도 않았는데
지킴이를 법정 구속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삼촌이 그냥 여자삼춘이 굉장히 심각하게
치매고 혼자 밥할 수 없고 빨래도 할 수 없는 그 부부가 사셨는데 할아버지가 다
그 일을 하시다가 할아버지를 법정 구속시켰어요.
그것도 그 양반 할아버지입니다. 굉장히 상냥하고 밝으신 분이예요.
우리 지킴이들 경찰과 시름 하는걸 보고 달려들어서 너희들 이러면 안 된다 하면서
제지하려하니까 할아버지를 고착을 시켰어요 경찰들이 20~30명 돌아가면서
고착이라는 말은 강정에서 쓰이는 말인데 감옥입니다. 감옥, 감옥을 만들어서
나가지도 못하고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는 거예요. 할아버지가 너무 기가 막혀서
경찰 멱살을 잡았어요. 너희들 이러면 안 된다! 우리 힘없는 사람들 지켜줘야지
그러다 너무 화가 나니까 바닥에 있는 돌멩이를 주워서 떨어뜨렸어요.
그게 죕니다.
우리 지킴이가 아침에 6시 반쯤에 할머니 식사하는 거 도와주러 갑니다.
동네 어른들 당번으로 가서 빨래하는 것 집안일을 도와줘야 합니다.
그런 할아버지 그런 상황에서 백배를 하면서 어떤 기도를 하느냐면 은요
하느님이 여기에 해군기지 미 항공모함이 들어와서 우리나라를 지키는 것이 뜻인가?
하느님 뜻도 경찰과 우리와 싸우고 우리 백성끼리 싸울 필요 없잖아요.
영광송을 백번을 합니다. 영광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엎드리고 일어서면서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하느님 나라가 정말 이곳에 왔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제가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교황님께서 아프리카 난민들이 갇혀있는 그 섬에 가셔서
위로하시는 그런 뉴스를 보고 얼마나 위로가 되던지 그리고 오늘 복음 말씀역시
정말 예수님이 오늘 이 시대에 오시면 여기에 오시겠구나! 그런 위안을 받고 삽니다.
여기는 제주도 사람이라서 이렇게 지내면서 기회는 이때뿐일 텐데 이때 여기를 우리가
제주도민이 전부 일어나서 막는 다면 해군기지 아닌 미군기지가 들어 설 수 있도록
우리가 허락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데 왜 못할까?
왜 이 일을 우리 제주도민이 전체 일어서서 우리는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얘기하지 못할까?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에게 빕니다.
보이지 않는 희망 제발 하느님 보여 달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침 백배 하고
그리고 미사 때 복음 신부님 강론 묵주기도 아마 제가 어느 공동체에 있어서
제가 20년 넘게 공소 생활을 해 왔는데 이렇게 하느님 말씀이 살아나고 살아있는 말씀에 대해서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저에게 특별히 이로가 되고 여기서 하루 하루 지낼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말씀이 이곳에서 살아나는 구나 체험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우리랑 같이 지내던 친구가 지금 감옥에 가있는데
그 감옥에 가 있는 친구 편지를 잠깐 읽어드리겠습니다.
10월 7일 날입니다. 땅에 주저앉으며 울부짖던 밤 재판 받기 바로 전날입니다.
“나 안 때렸어! 난 정말 안 때렸어! 나 너무 억울해!” “그래 은혜야 별일 없을거야 다녀오자.”
“나 재판가기 싫어. 만약에 나 붙잡혀 가면 꼭 잡아죠.”
10월 8일 어제 밤에 한말이 이렇게 비수가 될 줄 몰랐어. 난 정말 억울하다고 정말 억울하다고
내가 울었을 때 너도 많이 울었지. 너무 억울해서 지금도 마음이 아려온다.
이곳은 좀 생소한 곳이다. 6명이 한방에 살고 있고 화장실도 다 안에 있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 볼일을 보고 편하게 눕지도 못하는데다가 추워도 목에 수건조차 맘대로 두를 수가 없어 감옥에 오니 느낌이 정말이상하다. 송박사님도 양윤모 선생님도 박도현 수사님도 이분들도 너무 외롭고 화가 나겠지. 강부언 어르신 때문에 너무 걱정스럽다.
10월 9일 오늘은 한글날이라 편지가 나가지 않는다고 하더라.
10월 10일 오늘 아침에 방이모 면회온 남편이 수염 하얀 긴 할아버지가 이상한 피켓들고 앉았다고 하더라.
9시 50분 쯤 예길 들었는데 오늘 재판 갔던 다른 이모가 5시 30분쯤 들어오면서 아직도 거기 있다고 하더라 (문정현 신부님 제주교도소 앞 농성을 말합니다.) 고맙다 정말 미안하다.
영미가 해준 밥이 최고로 먹고싶다. 빨간 감자 그거랑 된장 넣고 풀넣어서 끓인 국
언제 한번은 이런 공간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짐승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
나는 물론 여기 방 사람 모두 이감옥안에 사람 모두가.
우리엄마 진짜 괜찮아. 나 우리엄마 잘 알잖아 그 누구보다. 우리 엄마 그리 강한 사람이 아니야. 엄마에게 전화 자주 해죠. 나 누구보다 엄마에게 고맙고 자랑스럽고 미안하고 고맙다고
태나맘이 편지에 그러더라 자기도 태나에게 우리엄마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고 고맙더라.나도 우리엄마가 날 낳아주고 키워줘서 너무 자랑스럽고 훌륭하게 되진 못해도 부끄럽게 살진 않겠다고 지금까지 엄마에게 단 한번도 부끄럽게 산적 없다고 .....
경찰들이 생각난다. 증오를 넘어서 볼까. 근데 쉽지는 않더라.
구슬환이나 장반장 만나면 꼭좀 전해죠.
내가 마음을 여유가 된다면 내가 당신경찰들 꼭 기억한다고 ......
10월 24일 오늘은 달순이 생일인데 벌써 그럼 돌인가?
여기서 닭뼈 나오면 화순이 달순이 생각이 많이나 근데 줄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네...화순이 달순이 낳느라 수고했고 달순이 나오느라 수고했다고 꼭 전해죠.
화순이 이모 (감옥 같은 방에 있는 이모 이름) 결혼기념일이라 오징어 넣어주고 고마워. 이모가 눈물까지 흘리며 감사하다고 하시더라.
10월 25일 오늘은 머리감는 날이고 빨래하는날이야. 화요일 금요일 빨래하는데
난 화요일 빨래 당번이야. 그래서 오늘은 빨래 안해. 강아지들이 날 알아보겠지.
박석진도 알아 봤으니까 나는 당연히 알아보겠지 막 짓거나 그러지는 않겠지.
조금 두려워 잊혀질까봐.
저녁 7시 넘어서 교도소장이 갑자기 여동으로 점검을 왔어.
쭉 돌아보는데 갑작스러운 점검이래.1번방부터 돌면서
3번방인 우리방 앞에서 이방에 김은혜씨 오더니 분위기가 좋아졌다면서
이모들이 맞다고 하더라. 나는 뭐라 대답 안했지.
그러더니 강화순씨 어제가 결혼기념일 이었다면서요. 그러더니 이재인씨라는 분이
뭐 넣어 주었다면서요.(이재인은 김은혜의 룸에이트 지킴이) 오지랖도 넓지...
덕분에 이 이모들 기분이 좋아졌어.
10월 27일 가만히 책을 읽는데 옆방에서 TV소리가 들린다. 딩동댕동하는 소리를 들으면 왜 그렇게 할머니 생각이 나는지 (강동균 회장님의 어머니) 할머니는 꼭 전국노래자랑 보시고 검질메고 (김을 메고) 꼭 그것마저 다 보시고 점심 식시도 하셨지.
갑자기 따라 부르시더니 우리가 쳐다보면 씨익 하고 웃으시곤 했어.
저녁에 씻으러 가면 약간 열린 문틈사이로 구성지고 가늘게들리던 할머니 노래소리 기억나니?
둘이서 어디서 나는 소리지? 하며 눈만 껌벅껌벅하다보면 조금 열린 문틈 사이로
할머니 노래 소릴 들을 수 있었지.
여기오기 전날 씻으러 갔다가 할머니 방에 퍼질러 누워서는
“할머니 나 내일 잡혀가면 재인이랑 같이 살아요.”하며 또르르 흐르는 눈물을 안들키려고 바로 일어나 “근데 할머니 잡혀가지는 않을 거야. 내일 조심히 다녀올게.”말하긴 했지만 두려웠지 떨렸어 태연한척 했지 그냥 그 저녁이 그렇게 포근하고 다음날 아침 햇살은 없지만 지금 이렇게 그리워 질 줄 나는 상상도 못했어. 그래서 생각해. 상상이라도 해 볼걸.
마음의 준비라는 걸 해 볼걸. 왜 이리 준비성이 없는지.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국방부 시계는 가고 법무부 시계도 간다고 한강에 나오더라.
책을 읽으면 잊혀져. 그냥 거기에 집중하다보면 책 속에서 사는 것 같아.
그래서 견딜 수 있어.
우리방에 100kg정도 나가는 이모가 있다. 코 고는 소리가 정말 봉팔 저리가라야.
그래서 저녁에 잠자는게 너무 힘들다. 웃기지만 하여튼 힘들어.
여기서 방이모와 교도관들 간호사 선생님등 모든 사람들이 날 좋아 해준다.
심지어 여기 도와주는 소지이모라고 그분이 원래 틱틱대는데 나에게는 잘해준다.
이제는 방이 무섭지 않아. 나 아주 밝고 명랑하게 잘 지내니까 걱정하지 말고
엄마에게도 그렇게 말해죠. 오늘은 머리 감는 날.
어떤 때는 빡빡 머리를 밀어 버리고 싶을 때가 있는데 머리를 깍을 수가 없어서 슬퍼.
겨울이니까 길러야 덜 춥지. 겨울이라 다행이야.
너무 먼 길을 힘들게 왔는데 고작 10분이라니 미안하다 너무(면회시간 1일 10분)
오늘 꿈을 꿨다. 이상한 꿈이야. 새로만든 공사장 정문이 문을 열었는데 예전에 있던
용역들이 다시 거기에 서 있는 거야. 예전이랑 똑 같은 애들로. 참 웃겼지 뭐야.
그리고 나는 이 수인복을 입고 공사장 정문에 출근했다가 시간이 다되면 교도소로
다시 되돌아오고 이게 참 웃긴 개꿈이야. 무료한 일요일 오늘 하루도 저물었으니까
내일이 금방 오겠지. 나 여기서 나가면 같이 여행 갈래?
"은혜는 때리지 않았습니다!"
2013년 10월 8일, 그 날에 시간이 멈추어 버린 한 아이가 있습니다.
피고인 김은혜 공무집행방해 및 상해
- 피고인이 상해를 입힌 증거는 없으나, 정황상 그럴 수 있다.
- 피해 여경과 목격자 여경의 진술이 엇갈린다고 하나, 1년 전의 일 기억 안날 수 있다.
- 전치 12주, 패해 정도가 중하다,
이상 피고인을 징역 8월에 처한다.
작년 3월 구럼비 발파 즈음 강정을 찾아온 아이
삼촌들의 고통을 가슴으로 느끼고 강정에 머무른 아이
그 어떤 명분보다 사람이 소중한 걸 알고 사람을 아낄 줄 아는 아이
올 7월 아이는 "상해"로 기소된 그 날 부터 실형을 선거 받는 것처럼 괴로워 했습니다.
그 뒤로 재판을 받고 돌아온 날이면 숨죽여 울었습니다.
제주에서 2주 진단이 서울에서 12주 진단이 되고, 당시 영상에서 아무도 쓰러진
여경이 없었음에도 검사구형 징역 3년.
억울하다 못해 무섭게 진행된 재판, 그리고 법정구속.
선고 전날 밤 터진 아이의 울부짖음.
"나 안 때렸어, 난 때리지 않았어, 나 좀 믿어 줘, 난 안 때렸어."
함께 살기위해 찾아온 이 곳에서 지금 아이는 홀로 갇혀 있습니다.
아이의 울부짖음을 법은 세상은 알아야 합니다.
"은혜는 때리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