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지방에 대설주의보가 발령되어 급히 산행지를 변경하였다.
남파랑길 48코스는 유유희 흐르는 섬진강 강변길을 따라 걷는 길이다.
아름다운 섬진강 풍경과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행복하게 걸었다.
남파랑길 48코스는 섬진교에서 시작하여 진월초등학교까지 걷는 13.7km의 길이다.
섬진강을 가로질러 놓인 섬진교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잇는 교량이다.
섬진교를 휘감아 부는 바람이 어찌나 차가운지 가슴속까지 서늘하였다.
경남 하동에서 섬진교를 건너면 전남 광양 땅으로 들어선다.
「젊은 교육도시 광양, 아이 양육하기 좋은 광양」이란 글귀가 반겨주었다.
광양은 섬진강과 남해, 백운산을 품고 있어 산, 강, 바다의 삼박자가 어우러진 곳이다.
섬진교 끝부분에 남파랑길 48코스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이 있었다.
전주에서는 쌓인 눈이 발길을 잡았는데 이곳은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섬진교 아랫쪽에 있는 갈대밭에서 화이팅을 외쳤다.
겨울바람이 매서웠지만 우리들에겐 오히려 짜릿한 희열이다.
우리들은 추워질수록 뜨거워지는 가슴을 가졌으니까...
강 건너쪽에 하동 송림공원이 보인다.
바람과 수해를 막기 위해 조선 영조 4년에 조성된 소나무 숲이다.
900그루의 소나무가 섬진강변을 따라 2km나 이어지는 길이다.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곱게 지켜
곱게 바치는 땅의 순결,
그 설레이는 가슴
보드라운 떨림으로
쓰러지며 껴안을,
내 몸 처음 열어
골고루 적셔 채워줄 당신.
혁명의 아침같이,
산굽이 돌아오며
아침 여는 저기 저 물굽이같이
부드러운 힘으로 굽이치며
잠든 세상 깨우는
먼동 트는 새벽빛
그 서늘한 물빛 고운 물살로
유유히.
당신, 당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김용택의 詩 <섬진강 11> 전문
숲길의 절반쯤 걸으면 섬진강 하모니철교가 나온다.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하는 경전선 철도가 반세기 동안 오고 갔던 길목이다.
지금은 사람이 건너는 다리이자, 관광 명소로 활용되고 있다.
섬진강가에 세워진 '제첩잡이 손틀어업' 홍보판이 보인다.
'거랭이'라는 도구로 강바닥을 긁으면서 재첩을 채취하는 방식이다.
2023년에 FAO에서 '제첩잡이 손틀어업'을 세계 중요 농업유산으로 선정하였다.
강변에 대나무숲을 조성한 마을이 많이 보인다.
아마도 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우리가 걸어가는 길은 섬진강 자전거길이다.
전국 자전거길 가운데 자연미를 가장 잘 살린 자전거길이다.
전북 임실에서 시작하여 전남 광양배알도까지 174Km에 이르는 길이다.
섬진강 둔치에 조성된 파크골프장이 보인다.
서너 명씩 움직이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건강해 보인다.
강가에 우거진 갈대숲 사이를 걸어간다.
스러져가는 갈대는 무욕의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강변에는 봄을 기다리는 유채가 꿈을 키우고 있었다.
머지않아 노란 꽃으로 채워질 강변의 풍경을 그려보았다.
점심 식사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애를 먹었다.
다행히 양지쪽에 있는 공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신부님께서 가져오신 고량주가 온몸을 후끈 달구어주었다.
식사 후 거북 등 터널을 지난다.
거북이 모양의 터널 구조가 인상적이다
이 터널을 지나면서 강변을 따라 펼쳐진 자연을 만끽할 수 있다.
돈탁마을 숲으로 들어가면 울창한 숲과 평화로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돈탁(敦卓)마을 이름은 둔덕 형태의 ‘돔테기’에서 변형된 ‘돈테기’로 불렀다.
이를 한자로 ‘돈탁(敦卓)’으로 썼는데, 지금도 마을 노인들은 ‘돈테기’라 부른다 한다.
돈탁마을 숲은 홍수와 바람 등 재해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하여 조성된 숲이다.
수령 250년 이상의 소나무 100여 그루가 아름다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중종 23년(1528년) 광양 현감 박세후가 광양 8경의 하나로 지정하였다고 전해온다
섬진강 끝들마을은 광양시의 최동단, 섬진강변에 위치해 있다.
지리적으로 백두대간 자락과 섬진강 하류가 만나는 곳이다.
관광객들에게 따뜻한 시골의 여유로움을 선사하는 마을이다.
남파랑길 광양 48코스 중간에 작은 쉼터가 있다.
'마음의 편지를 보내는 곳'이라 쓰여있는 화장실이다.
화장실은 우체통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배설물에 마음을 담아 시원하게 내보내라는 의미일까?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 가도 퍼 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 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김용택의 詩 <섬진강1> 부분
이 길은 '맹고불고불길'로 명명되었다.
이명박 정부 당시 행안부 장관이었던 맹형규의 도움으로 조성된 탓이다.
녹슬고 부서진 안내판에서 먼지처럼 사라진 권력의 남루함을 느꼈다.
1996년 남해선 확장 공사에서 생긴 폐도로를 복원한 곳이다.
단절된 서식처를 복원하여 주변 생태계를 연결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곳에서 지친 다리를 주무르면서 오래오래 쉬어갔다.
전망이 좋은 곳에 멋진 포토존이 있었다.
눈이 하얗게 덮힌 금오산이 배경으로 보였다.
서늘한 물빛 고운 물살로 유유히 흐르는 섬진강은 덤이다.
오늘의 걷기 여행은 진월초등학교에 도달하면서 마무리된다.
이곳에서 남파랑길 48코스가 끝나고 49코스가 시작된다.
우리들은 또다른 길을 꿈꾸며 행복한 걸음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