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혼인주례를 몇 번이나 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고등학교 동창을 처음으로 주례 한 때부터 최신학생 동생부부 주례한 때까지 200번은 족히 넘을 것 같았습니다.
혼인미사를 집전하다보면 참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하객이 다 신자가 아니기 때문이죠. 제의를 입고 입장하면 사람들의 시선이 의아해요. ‘뭐 저렇게 젊은 신부가 다 있어?’ 이런 식이죠. 지금도 젊은데 7년전에는 어땠겠어요? 몇 번 그런 분위기를 겪으니 내가 먼저 선수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부하면 나이도 많고 점잖아 보이는 어른일 줄 알았는데 새파란 젊은 사람이 주례자로 나와 놀라셨죠. 사실 저도 결혼 주례라면 하기 싫어요. 배가 아파서요.” 이렇게 강론을 시작하면 분위기 역전됩니다.
하지만 꼭 분위기 연출하려고 하는 말만은 아니었습니다. 사실 왜 안부러웠겠어요, 곱게 화장한 신부를 보면 다 천사같아 보이고 속으로는 ‘저 놈이 어디서 저런 예쁜 색시를 얻었는고, 아이고 내 팔자야’하고 저절로 한탄하였지요.
혼인면담 하러 온 예비부부들은 신혼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 올라 있습니다. 하기야 나도 결혼하는 꿈 꿔 보니까 좋긴 좋더라구요. 출근하면서 뽀뽀하고 퇴근하면 집밖에 기다리고 있는 아내를 반짝 안아서 들어가고. 소꿉장난같은 생활을 했어요. 애기 낳으니까 아주 환장하겠더라구요. 잠깐이었지만 아주 행복했어요. 꿈에서도 그러니 실제는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신부 생활 몇 년 지나면서 많은 부부들의 속모습을 보게 되니 이게 꼭 배아플 일만은 아니더라구요. 참으로 어렵고 험난한 길이 결혼이란 걸 보게 되었습니다.
혼자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 성품의 부조화, 의견 충동, 쉽게 말못할 예민한 문제들, 아이들 교육문제, 부모님과의 문제, 다른 부부와의 비교, 서로의 신뢰를 깨뜨리는 일들... 하나같이 심각한 문제들이더라구요.
신혼의 행복이 한 3년 간다는데 그 시간이 지나 눈에서 콩깍지가 떨어져 나가면 차츰 열정의 대상이 바뀝니다. 아내에 대한 열정대신에 일에 미치고 남편에 대한 열정대신에 아이에 미칩니다.
그렇게 살다보면 어느 날은 ‘난 이게 뭐하고 있는가 소중한 내인생 이제 절반이나 지나버렸는데 그냥 이렇게 저물어가는가?’ 빨래하면서 우울하고 설걷이하면서 속상해하고 야근하면서 나는 돈버는 기계인가? 푸념하고.그나마 경제적으로 안정이라도 되어 있다면 다행, 일자리 잃고 애들 속썩이고 그러다 뭔가 심각한 문제 하나 터지면 참아왔던 모든 게 봇물 터지듯 와장창 무너지고 말겠지요.
그러면 ‘첫째놈은 내가 키울테니 둘째놈은 네가 키워라. 이제 갈라서자.’ 하는거죠.
실제로 이혼을 가장 많이 하는게 4초3말이랍니다. 40대 초반의 남편, 30대후반의 부인은 직장, 자녀교육, 가정일등으로 지칠대로 지쳐 있습니다. 그리고 갱년기라는 신체적인 변화도 겪습니다.
스트레스의 멍이 누적되어 있는 이 위험한 부부의 나이가 4초3말이라 이겁니다.
그래서 요즘 저는 혼인면담하면서 결혼생활의 실제적인 어려움들을 준비했는지 묻습니다. 혼수준비는 신이 나서 하면서 결혼생활의 위기나 시련에 대해서는 준비하지 않았다면 솔직한 심정으로는 결혼을 좀 미루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개를 길러보니 수놈하고 암놈하고 어찌 그리 다른지요. 사람은 더 하잖아요. 표현 방식, 감정. 사고방식 등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렇게 다른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는 데 어찌 매일 행복할 수만 있겠습니까? 징그런 남편, 발톱세운 부인과 한자리에서 잠이 든다는 것이 소름끼치도록 싫을 때도 있을 것 아닙니까?
예방이 최고의 선택입니다. 그 예방주사는 바로 부부가 함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물론 부부가 함께 기도해도 어려움은 겪지요. 그러나 그것이 위기의 상황으로 커지기 전에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보호해주십니다.
그래도 위기를 겪게 되었을 땐 현명하게 처신해야 합니다. 동년배 친구를 찾아봐야 문제만 더 커질 수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부부들, 우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해낸 슬기롭고 행복한 부부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그들로부터 지혜와 용기를 얻어야 합니다. 부부생활이 수다로는, 술로는 해결 안될 심각한 어려움을 얼마나 많이 감추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 어려움의 골짜기를 건너면 얼마나 풍요로운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지요. 결혼생활의 진가는 신혼생활이라기 보다는 함께 시련을 이겨낸 후에 있지 않겠어요?
저에게 감동을 준 부부들, 그리고 그 장면들이 있습니다.
육교가 있지만 늙은 부인의 어깨를 소중히 감싸고 8차선 대로를 가로지르는 할아버지를 뵈었습니다. 어둠이 밀려오는 바닷가에서 벤치에 앉은 할머니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할아버지를 뵈었습니다. 먼저간 마나님을 그리워하며 매일같이 묘지를 찾아 예쁘게 가꾸는 할아버지를 뵈었습니다.
젊은 연인, 아이 손잡고 걷는 젊은 부부를 보면 부럽습니다. 그러나 황혼을 함께 걷는 노부부는 감동을 줍니다. 저는 천생연분을 믿지 않습니다.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말이며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천생연분을 가꾸어간 부부들을 저는 보았고 두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내가 결혼했다면 부인과 함께 이렇게 기도할 것입니다. “우리가 한날에 죽도록 해주십시오.” 정상적인 부부라면 내가 죽으면 내 부인이 눈물로 나날을 보낼 것을, 남편이 아프게 슬퍼할 것을 걱정할 것입니다. 그러니 한날에 죽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니겠어요?
언젠가 뉴스에서 한날에 죽은 부부소식을 보게 되었습니다. 빈소가 나왔는데 상주들이 표정이 밝아요. 아들이 부모님을 소개하는데 그렇게 금슬이 좋았다네요. 부부로서 더없이 행복한 죽음이었습니다. 십자고상이 살짝 보였습니다. 하느님의 축복이로구나...
어제 참 감동적인 글을 읽어서 우리교우들에게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여보, 오늘 백화점에서 옷을 하나 봐둔게 있는데 너무 맘에 드는거 있지..." 저녁상을 물리고 설거지를 하던 아내는 느닷없이 옷 이야기를 꺼냈다."정말 괜찮더라. 세일이 내일까진데..."
이렇게 말끝을 흐리는 아내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짙게 배어 있었다. 지금까지 쥐꼬리 월급으로 살림을 잘 꾸려온 아내였지만 힘들게 야근까지 해가며 애를 쓰는 내생각을 한다면 철없이 백화점 옷얘기를 저렇게 해도 되는건지 점점 야속한 생백화점 옷얘기를 저렇게 해도 되는건지 점점 야속한 생각이 들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TV앞에 앉아서도, "조금 비싸긴 하지만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데...안 되겠지?"
'이 여자가 정말...' "지금 우리가 백화점 옷 사입을 때야?" 계속되는 옷타령에 나는 결국 소리를 버럭 지르고 말았다. 흠칫 놀란 아내는 대꾸도 없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잠시동안 침묵이 흘렀고, 조금 민망해진 나는 더 이상 TV앞에 앉아있기가 불편해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만한 일로 소리를 지르다니...' 남편이 되어가지고 겨우 옷 한벌때문에 아내에게 화를 내었다는 게 창피스러워졌다.
겨우 옷 한벌때문에 아내에게 화를 내었다는 게 창피스러워졌다.
그러고 보니 몇년째 변변한 옷 한벌 못 사입고 적은 월급을 쪼개 적금이랑 주택부금까지 붓고 있는 아내가 아니던가.
잠자리에 들 시간이 지났는데도 꼼짝을 않는 아내가 걱정이 돼 거실에 나가보니 소파에 몸을 웅크리고 잠이 들었다. 울다가 잤는지 눈이 부어 있었다.
다음날 아내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침상을 차리고 있었다. 차분차분 이야기를 못하는 성격이라 그런 아내를 보고도 나는 따뜻한 말 한마디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저 현관문을 나서면서 이렇게 툭 던질 뿐... "그옷 그렇게 맘에 들면 사" 그러면서 속으로는 '며칠 더 야근하지 뭐'
그날 저녁 여느때와 같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엘 들어서는데 아내가 현관앞까지 뛰어와 호들갑을 떨었다. "여보,빨리 들어와 봐요" "왜, 왜 이래?" 아내는 나의 팔을 잡아 끌고 방으로 데려가더니,부랴부랴 외투를 벗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쇼핑백에서 옷을 꺼내 내 뒤로 가 팔을 끼우는게 아닌가. "어머,딱 맞네! 색깔도 딱 맞고" "......" "역시, 우리 신랑 옷걸이 하나는 죽인다" "당신. 정말..." "당신 봄자켓 벌써 몇년째잖아" 아내는 이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돌리더니 두루룩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언제나 나는 철이 들까' 내 어깨에 고개를 묻고 있는 천사같은 내 아내, 사랑스런 내 아내.
혼인예식 경문에 “죽음이 그대들을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그러나 사실은 죽음도 부부를 갈라놓지 못합니다. 무덤에서도 한자리에 누우니 죽으나 사나 부부인 것입니다.
저는 서로가 인생을 맡기는 결혼성소가 하느님께서 만드신 최고의 성소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부인을 나의 남편을 소중하고 고맙게 생각하세요. 저를 부럽게 하는 부부가 우리 본당에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몫까지 행복하셔야 합니다.
ps : 어느 신부님의 말씀을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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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도 琴瑟좋게 살아야징...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