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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유교문화와 관련 깊은 곳이라 조심스럽지만, 혹시 관심있는 분들이 있을까 하여 올립니다.
초간정(草簡亭)을 답사한 후 용문사(龍門寺)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오르면서 하늘을 보니, 비가 올 것 같았습니다. 절집 처마 밑에 앉아서 비오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제법 운치가 있지만, 준비를 갖추지 않은 일행도 있어서 걱정은 되었습니다. 용문사(龍門寺)는 통일신라시대에 건립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윤장대(輪藏臺:보물 684호)를 갖고 있는 사찰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용문사 소개 글을 읽어 보니,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예천읍에서 북쪽으로 15km 정도 떨어진 소백산 줄기인 매봉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고 하네요. 인터넷을 통해 관련 기록을 종합해보니, 용문사는 당에서 불법을 배우고 귀국한 두운 스님이 870년에 창건하였다고 전합니다.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 통일 후 많은 재물을 내려 용문사의 중건을 도왔고, 조선의 세조는 감역교지(減役敎旨, 보물 729호)를 내리는 등 왕실의 지원이 계속되었습니다.
용문사로 오르는 산길에는 나뭇잎이 제법 울긋불긋한 것이 가을이 와 있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단풍을 감상하려는 순간 일주문이 보이네요. 일주문을 버스를 타고 지나쳐서야 답사라 할 수 없지만, 시간도 없는데다가 혼자 하는 답사도 아니니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주차장에서 내리니 큼직큼직한 돌로 쌓은 축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냥 막 쌓은 것이 아니라서 용문사가 재력있는 사찰임을 느끼게 합니다. 주차장에서 절 마당으로 오르는 경사로에는 잘 다듬은 넓은 박석을 깔았는데, 오가는 사람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정성들여 다듬었습니다. 많은 돈과 노력이 들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경복궁 근정전이나 종묘의 거칠고 투박한 박석과 비교되네요.
주차장에서 절 마당으로 가는 길에 깔린 박석
사찰 마당에는 특이하게도 오층석탑과 삼층석탑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가 되면 법당 앞에 쌍탑을 건립하는 것이 일반화되지만, 이렇게 층수가 다른 경우는 처음 봅니다. 불국사에는 형태가 전혀 다른 석가탑과 다보탑이 마주보고 있지만, 높이가 비슷하여 어색한 느낌을 주지 않습니다. 용문사에서 어떤 의미를 담으려고 높이와 층수가 다른 탑을 나란히 세운 것일까요?
공양시간이 되었기에 절 마당에서 해설사님과 단체로 인사를 나누고, 식당으로 이동하였습니다. 용문사에서의 점심 공양은 우리 세심답사 회원이신 장 선생님께서 노력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바빠 답사를 같이 하는 경우가 많지는 않지만, 언제나 관심을 보여주시고, 인정을 베풀어주시는 장 선생님께는 감사한 마음입니다. 사찰 공양은 대개 비빔밥이지요. 밥과 나물,된장국이 조화를 이룬 비빔밥은 맛이 있어 과식을 하게 되지만, 소화가 잘 되기에 큰 부담은 없습니다.
난 대장전을 자세히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일행이 식사를 하고 있음에도 조용히 일어나 식기를 세척하고 대장전으로 향했습니다. 답사객이 몰려오기 전에 대장전(大藏殿:보물 145호)의 보물들을 살펴봐야 하니까요. 대장전에는 용문사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윤장대(輪藏臺:보물 684호)와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보물 989-1호), 그리고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 보물 989-2호)이 있다. 용문사에는 보물이 모두 9점인데, 이곳 대장전에 4점의 보물이 있으니, 용문사 답사 시간의 절반 이상을 이곳 대장전에 쏟아 부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장전 안에는 나무로 조각된 아름다운 부처와 보살이 앉아 계십니다. 가운데에는 중품하생(中品下生)의 수인을 한 아미타부처님이, 부처님의 왼쪽에는 관세음보살이, 오른쪽에는 대세지보살이 앉아 있는 삼존불상입니다. 참배객의 입장에서 본다면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이 관세음보살입니다. 아미타불은 극락세계를 다스리는 부처님인데,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을 ‘무량수전’, ‘미타전’, ‘극락전’ 등으로 부릅니다. 극락왕생을 염원하던 일반 민중들은 석가모니부처님보다 아미타불에게 더 간절한 마음으로 절을 올렸지요. 그런데 용문사에서는 아미타불을 모신 전각을 ‘대장전’이라 하네요. 이 건물은 처음에 불경을 보관하였던 모양입니다.
사찰에서는 최고의 경배 대상은 불상입니다. 따라서 불상 조성에 많은 공력을 들이지요. 불상을 만드는 재료는 철이나 구리, 흙과 나무, 종이와 모시 등 다양합니다. 재료가 무엇이든, 불상에는 도금(鍍金)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구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어떤 책에서 보니, 여러 가지 재료의 불상 중에서도 목불이 가장 아름답다고 합니다. 예천 용문사 대장전의 삼존불상도 나무로 만들어 도금을 하였는데, 각진 얼굴 형태이지만,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부처님의 육계 위에 짧은 원기둥이 솟아 있습니다. 집에 와서 폰에 찍은 사진을 보다가 의문이 생겨 불교문화에 대해 잘 아시는 분에게 여쭤보니, 육계 위에 있는 것은 ‘원통형 계주’, 이마에 있는 것은 ‘반달형 계주’라 한답니다. 정확한 의미는 잘 모르겠으나 17세기에 이런 형태가 나타난다고 말씀하시네요.
아미타부처님의 좌우에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앉아 계시는데,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은 보관(寶冠)은 쓰고 계시지만, 화려한 목걸이나 팔찌 등의 장신구가 없는 검소한 모습(?)입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관세음보살의 보관에 화불(化佛)이 있나 살펴보았으나 보이지 않았습니다. 겉으로 보아서는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의 외형상의 특징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불교 교리에 대해 아는 것이 있어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보살은 모두 두 손으로 연꽃 가지를 비스듬히 세워 들고 있습니다.
예천 용문사 대장전의 아미타삼존불상
삼존불의 뒤에는 그림과 같이 평면에 나무로 부처와 보살, 사천왕 등의 모습을 조각해 놓았습니다. 이것은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木刻阿彌陀如來說法像)이라 하는데, 보물 989-2호입니다. 아미타불 두에 있으니, 극락에서 아미타부처님이 많은 보살과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모습으로 봐야합니다. 이 모습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극락회상도(極樂會上圖)’도 라고 합니다. 용문사 대장전의 부처님 뒤에는 그림이 아니라 조각이기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합니다. 희소성의 원칙이 여기에도 적용되겠지요. 이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은 1684(숙종 10년)에 조성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 합니다. 답사 당시에 찍은 사진을 집에 와서 컴퓨터 화면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전체적인 모습은 상•중•하의 3단으로 나누어지는데, 중앙에는 아미타불이 앉아 계시고, 상단과 중단에는 여덟 분의 보살이 서 계십니다. 그리고 상단 좌우에 앉아 계시는 분은 빡빡 깍은 모습을 보니, 부처님의 제자인 스님이구요. 하단에는 탑을 들고 계시는 서방광목천왕, 비파를 켜고 있는 북방 다문천왕의 모습이 보니까 사천왕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미타불 곁에 서 계시는 붉은 두건을 쓴 분은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그 형태로 봐서는 금강역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삼존불 뒤 벽면의 조각상)
예천 용문사의 최고(最高) 보물인 윤장대(輪藏臺:보물 684)는 경전을 넣고 회전할 수 있게 만들어서 팽이를 연상시키는 불교공예품입니다. 삼존불 좌우에 윤장대가 서 있는데, 서쪽에 위치한 윤장대는 꽃무늬로 장식된 창살이 매우 화려하였고, 동쪽에 위치한 윤장대는 창살이 대각선으로 교차하는 격자창살이라 서쪽 윤장대의 꽃 창살에 비하면 소박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서의 윤장대는 모두 겹처마와 다포로 꾸며져 있고, 연꽃을 조각한 계자 난간을 두르고 있어서 매우 화려한 목조건축물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고려시대나 조선전기에 만들어진 윤장대는 예천 용문사의 것을 제외하고는 전쟁으로 소실되었는데, 지금은 용문사의 윤장대를 모델로 하여 강화도 전등사, 청도 운문사 등 전국사찰에 설치되었습니다.
번뇌를 끊기 위해 깨달음을 추구하던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면서 복을 비는 기복(祈福)신앙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원래 인도의 불교에는 없던 아미타불이나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등이 나타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에서 기복 신앙을 대표하는 인물은 원효스님입니다. 원효 스님은 방대한 저술을 하여 동아시아 각국의 불교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대단한 학승(學僧)이었지만, 불교의 대중화를 위해 편법(?)을 사용합니다. 일반 민중들에게 말하기를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지극한 마음으로 염송하면, 사후에 극락세계에 태어날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지요. 여기에서 ‘나무(南無)’는 ‘가르침을 따른다.’는 의미이니, ‘나무아미타불’은 ‘아미타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겠습니다.’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한문 경전을 읽을 생각을 하지 못하던 민중들은 이제 편하게 불교를 믿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윤장대’도 일반 민중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 불교의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윤장대는 안에 불경을 넣고 팽이처럼 돌릴 수 있게 만들었는데, 윤장대를 한 바퀴 돌리면, 그 안에 들어있는 불경을 한 번 읽은 것과 같다고 하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을 염송(念誦)하고 ‘윤장대(輪藏臺)’만 돌리면, 불경도 읽은 것이 되고 죽어서는 극락에 왕생할 수도 있으니.... 불교는 일반 백성들 속으로 깊이 파고들게 되면서 민족종교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것은 불교 인구의 저변 확대를 가져왔지만, 진리를 파고들던 불교가 복을 구하는 미신적 요소를 많이 갖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대장전 안 서편 윤장대
동편 윤장대
서편 윤장대 꽃창살 1
서편 윤장대 꽃창살 2
서편 윤장대 꽃창살 3
서편 윤장대 꽃창살 4
동편 윤장대 격자창살
서편 윤장대의 처마와 공포
서편 윤장대의 계자난간
예천용문사 템플스테이 팀장인 김승년씨의 글을 보면, 용문사 윤장대는 고려 명종 3년(1173)에 무신의 난(1170년 의종 24 시작)을 극복하기 위해서 대장전과 윤장대가 자엄대사에 의해 처음 조성되었고, 그 후 1476년부터 1767년까지 6차에 걸쳐 중수 되었다고 나옵니다.
윤장대를 보고 난 뒤 밖으로 나왔습니다. 고산문화센터의 이해석 선생님이 처마 부분을 살피고 계셨습니다. 대장전 공포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겹처마의 아름다움과 기능은 무엇인지를 두고 대화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대장전(大藏殿:보물 145호)은 고려 명종 3년(1173)에 초창되어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는데, 현재의 대장전 건물은 1665년에 세워습니다. 예천 용문사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축물인 것이지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다포계(多包系) 맞배지붕 건물인데, 공포에는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공포의 꽃무늬 장식은 조선후기에 나타나는 양식이라고 들었습니다.
예천 용문사 대장전 현판
예천 용문사 대장전 공포 세부
대장전을 보고 나니 마음이 가볍습니다. 이제 용문사에서의 숙제는 다한 느낌입니다. 여유를 갖고 오른쪽을 보면 용문사의 중심 전각이 보입니다. 큰 규모의 보광명전(普光明殿)입니다. 대개 ‘光 ’이란 글자가 들어간 전각은 불교의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부처를 모신 전각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습니다. 법당 안을 보니, 지권인(智拳印)을 한 비로자나불이 앉아 계시는데, 좌우에 있는 협시불은 비로자나불에 비해 크기가 너무 작다. 보물이 아니라는 이유로 자세히 보지는 않았습니다. 보광명전 뒤로 올라가니, 극락보전이 있었습니다. 극락보전이라면 아미타불을 중앙에 모신 전각인데, 안을 들여다보니 비로자나불이 중앙에 앉아 있고, 오른쪽에는 석가모니불이 왼쪽에는 아미타불이 앉아 있습니다. 뒤에는 수많은 부처님이 계시구요. 그렇다면 이 전각은 ‘光’자를 넣어 대적광전이나, 대광명전 등의 현판을 달아야 하는데, ‘극락보전’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극락보전을 보고 내려오다 보니, 원통전이 보인다. 안을 보니, 천수천안(千手天眼)의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었는데, 수많은 팔과 손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중생의 고통을 다 해결해 주겠다는 관세음보살의 서원(誓願)을 상징하는 모습입니다. 그 모습을 궁금해 하는 두 여성분이 계셔서 설명을 해 드릴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원통전을 보고 돌아서니,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집니다. 용문사 다음 답사지는 초간종택인데, 시간이 없었기에 버스로 급하게 발길을 옮겼습니다. 성보박물관을 비롯하여 많은 볼거리를 두고 그냥 가야한다는 것이 아쉬웠지만, 다른 방법은 없네요. 다음을 기약합니다.
첫댓글 불교문화에 대해 내공이 상당하네요.많이 배웁니다.
격려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여러 책을 읽고 제 느낌을 정리하려고 노력했습니다.^_^
내 고향 예천의 오래된 절 용문사에 대한 글을 잘 보았습니다.고맙습니다.
교수님의 고향이 예천이군요. 전 학교 여선생님이 예천 용궁이 고향인데, 애향심이 참 많았습니다.
관심을 갖고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제가 썼지만 목각 아미타여래설법상에 대한 설명이 조금 이상합니다. 용문사 템플스테이 관계자분의 글을 참고하여 위와 같이 서술하였지만, 사진을 다시 보니 수정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상단 우측(참배자 입장에서는 좌측)에 빡빡머리 모양의 두 분이 있는데, 한분은 앉아있고 한 분은 서 있습니다. 이 두 분이 모두 부처님의 제자로 생각되구요. 상단 좌측에 꼬깔비슷한 관을 쓰신 분이 계시네요. 이 분이 누구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보통 불화에서는 팔대보살이 등장하기에.... 보살로 보아야 하는지?
같이 근무하는 분의 사촌형님이 불교미술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교수로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문의한 결과
상단 스님 머리를 한 두 분 중 앉아계신 분은 지장보살이라 합니다. 그래서 팔대보살이 맞는 이야기고, 상단 좌우 끝에 계신 분은 부처님의 제자인 아난과 가섭이 아닐까 추정하십니다.
염화시중의 마하 가섭과 多聞제일의 아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