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 장편소설 <별 것도 아닌 인생이>를 읽고 / 성유지
--- ‘로라’와 너무나 대비되는 한국 사회에 대한 나의 생각을 중심으로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나는 입시에 치여 원하는 만큼 독서를 하진 못했다. 그러나 마광수 교
수의 유명한 책들은 예전부터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인터넷 소설들을 상당
히 좋아하는 편이다. 중학교 때부터 시작한 인터넷 소설 읽기는 고등학교 때까지 쭉 이어졌
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에 퍼져 있는 온갖 종류의 소설을 섭렵할 수 있었는데 평범하고 유치
한 학생들의 연애 소설부터 시작해서 좀 더 발전한 로맨스 소설, 판타지소설, 게임소설, 동성
애 소설, 심지어는 팬픽까지도 읽어보았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은
분야의 인터넷 소설을 읽었냐는 것은 아니다.
이런 책들을 계속 읽다보면 여러 작가들의 생각에서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런 일치하는 부분이 바로 한국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유한 관념이라는
것을 깨닫고 한국 사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된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소설들 안에 담긴 한국
의 특징적 사회상과 마광수의 장편소설 <별 것도 아닌 인생이>를 연관시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보수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입으로는 진보와 진보주의를 허울 좋게 외치고
이념적으로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는 내가 보수파인 것을 잘 안다. 특히 ‘성’에
관해서는 더 심하다. 어렸을 때 난 미국에 있는 이모 댁에서 살아 성이란 것에 대해 보다 자
유롭게 열린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한참 성이란 것에
관심이 생기고 있을 때 인터넷에 관련어를 쳐본 적이 있었는데 다음날 이모, 이모부께서 그
기록을 보고 혼을 내셨다. 나는 그때 정서적으로 민감할 때라 굉장히 수치심을 느꼈고 그 뒤
로 한국에 올 때까지 성에 대한 궁금증을 참고 억눌렀다. 한국에 왔을 때가 중3이었을 때인
데, 그때 이후에야 나는 풍부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드디어 ‘성’에 대해 접할 수가 있었다.
한국 사회가 이상한 점은 바로 ‘성’에 관련된 이슈에 대한 자신의 관심을 의식적으로 남으로
부터 숨기려 한다는 데 있다. 본능적인 성(性) 욕구를 잘 숨기고 고상한 말과 행동을 하는 사
람이 보다 높은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나에게는 지극히 이중적이고 위선적으
로 보인다. 너무 “겉 다르고 속 다른” 문화다.
사실 ‘성’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인간이 동물인 이상 번식을 위해 관계를 맺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고 이것을 넘어 조화로운 인간관계와 개인의 정신적 안정감 형성 등
을 위해서 ‘좋은’ 섹스에 대한 토론이 꼭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이 한국에서는 터부시된다.
서로간의 성에 대한 사회적 커뮤니케이션의 부재는 결국 성에 관한 이야기들이 익명성이 보
장된 인터넷상에 여과없이 분출되게 한다. 때로는 심하게 과장, 왜곡되어서 말이다.
인터넷 소설의 인물 설정은 뻔하다. 거의 항상 순진한 여자 주인공에 인기 있고 멋있는 남자
주인공이 등장해서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가벼운 연애 소설에는 그들의 깊은 관계에 대
해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로맨스 소설 정도 되면 진한 love scene이 등장한다. 바로 이 부분에
내가 이야기하고픈, 고질적인 화두가 등장한다. 바로 여자 주인공의 ‘처녀성’이다.
한국에서는 자유분방한 남성은 용서받는데 자유분방한 여성은 비난받는다. 남성은 오히려
자유분방하길 권장 받는다. 경험이 많고 섹스 테크닉에 능숙하면 매력적인 남성이 된다. 반
면에 여성은 처녀가 아니라면 더러운 여자라고 욕을 먹는다. 이러한 여성순결지상주의는 소
설에서도 잘 나타난다. 인터넷상 소설 속 여주인공은 나이가 들었어도 절대 다수가 남자 주
인공과의 관계가 남성과의 첫 관계다. 따라서 소설 속의 여자처럼 행복해 지고 싶다면 여자
는 ‘순결’해야 한다.
<별 것도 아닌 인생이>의 로라는 바로 그런 여성 억압적이고 남성우월적인 인식풍토로 인해
스트레스 받고 있던 나를 구원해준 캐릭터다. 여성이 능동적으로 성을 주도한다. 이 자체만으
로도 나는 미약하게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일단 그녀는 너무나 새롭다. 외국 갑부에게 시집
가 마음껏 치장하고 머리와 손톱, 발톱을 길게 기르는 등 본인의 아름다움을 가꾼다. 평범한
여성은 아니다. 그녀는 자신을 원하는 여러 남자들과 고루 성관계를 맺지만 결코 천박해 보이
지 않다. 오히려 모두가 그녀를 원하고 있다. 그녀의 탐미주의적인 대담성과 그로테스크한 아
름다움을 숭배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소설 속 ‘한그루’ 같이 사귀는 여성의 순결에 집착하던
남성마저도 그녀와 사랑에 빠질 정도로 말이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경험이 없어야만 여성의 가치를 인정받는 한국의 풍토를 지극히 경멸하면
서도 일면으로 거기에 순응하고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나만이 비난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다. 하지만 ‘로라’의 자유롭고 현실에 구애받지 않는 당당함은 나로 인해 대리만족을 느끼게
했다. 여기 더해 갑작스럽지만 책을 읽는 도중 하근찬 작가의 <왕릉과 주둔군>의 주인공 금례
가 생각났는데, 이유는 그녀가 낯선 서양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녀 또
한 시대 변화의 물결에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했던 여성이었다. 혹시 그녀는 시대
를 잘못 타고 태어난 ‘로라’는 아니었을까? 이러한 생각이 꼬리를 물면서 나는 내 안의 고지식
하고 안정만을 추구하는 그 무언가도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처음 든 생각은 제목이 굉장히 친근하다는 것이다. “인생 별거 있느냐”
라는 말을 요즘 주위에서 많이 듣는 말이다. 처음엔 대단해 보이고 중요하게 느껴지는 일들
이 막상 겪어보니 정말 별 것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그 제목대로 인생은 무엇일까라
는 질문에 해답을 찾기 위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이 질문 앞에서 많은 이들이 갈등한다. 사람들 저마다 의견도 다르고 해답도 다르다. 살아온
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책은 우리의 삶에 너무나 거창한 의미를 두지 말라고 말한다. 우리
네 인생은 그저 우연히 ‘내던져진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냥 “살아지는 대로” 살기. 세상은
사람들에게 성공한 인생을 살라, 출세가도를 달려라, 채찍을 때리며 계속해서 더 무거운 짐
을 지게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것에서 조금만 벗어나 갓길을 달리면 어떠하냐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오히려 갓길이 한적하고 좋다고 말이다.
작품 속에 많은 시들이 담겨 있지만 맨 마지막, 여운을 느끼게 하면서 책 전체의 의미를 포괄
하고 있는 다음의 시 <별것도 아닌 인생이>를 나는 가장 좋아하게 되었다. 아마 나 말고도 많
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좋아하게 된 시라고 생각된다…….
별것도 아닌 인생이/이렇게 힘들 수가 없네//별것도 아닌 사랑이/이렇게 어려울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돈이/이렇게 안 벌릴 수가 없네//별것도 아닌 섹스가/이렇게 복잡할 수가 없네//
별것도 아닌 시가/이렇게 수다스러울 수가 없네//별것도 아닌 똥이/이렇게 안 나올 수가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