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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왕이 낳은 氣 음식 [송화백일주]
나는 과장된 말을 거짓말이라고 눌러 말한다. 소설도 거짓말이고, 대개의 말들도 거짓말이다. 말은 세상을 그대로 담을 수 없고, 모두 담을
수도 없다. 속성상 과장되거나 왜곡되게 마련인데, 그 순간 거짓말이
되고 만다.
그래서 나는 내게 말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맹세하지 마라.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거든
말뿐만 아니라 글도 버려야 하고, 어쩌면 세상까지 버려야 할지 모른다. 그러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려 들지 마라. 그런 자의식에 휩싸이지
말고, 그냥 자신이 내뱉은 말을 지키려고 노력해라. '내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다.'라고 지금 내뱉었다면, 그 말이 사실이 되도록
노력해라. 축구 선수가 공을 차고 쫓아가듯이, 말을 하고 그 말을 쫓아가라. 그러면 너의 말도 아름다워지고, 너의 행동도 아름다워진다. 그러니 주점 말고 무슨 말이든지 해라, 설령 거짓말을 할 지라도. 다만
그 말을 내뱉은 이상 평생토록 혼신의 힘을 다해 지키려고 노력해라."
벽암 스님의 안내를 받아, 전주 모악산의 수왕사를 올랐다.
'水王寺? 그래 물의 왕이라고? ......거.짓.말!'
내 속에 울려퍼지는 말이었다. 과장이 심하다지만 물의 왕이라니, 나는 애써 벽암과 눈을 맞추려 하지 않았다. 그 울림은 내 성품과 의지와
무관하다. 내 상식과 합리성과 유관하다. 벽암은 이어 말했다.
예로부터 좋은 물의 조건이 몇 가지 있다. 첫째로 西出東流, 서쪽에서
나와서 동쪽으로 흘러가야 한다. 둘째로 石間水, 바위 틈에서 나와야
한다. 셋째로 사시사철 같은 온도라야 한다. 넷째로 물이 무거워야 한다. 수왕사가 기대고 있는 바위에서 이 조건들을 두루 갖춘 물이 흘러나온다. 언제적 일인지 모르지만, 나라 안의 소문난 물들끼리 겨루는
대회가 벌어졌다. 그때 수왕사의 석간수가 다른 물보다 한 량이 더 많이 나가 최고 자리에 올랐다. 그 뒤로 물의 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수왕사 주지인 벽암은 말한다. 그게 언제적 일이냐고 내가 재우쳐 물었다. 벽암은 그저 옛날 일이라고 했다. 이번엔 벽암이 나와 눈길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요사채에 머무는 보살이 물을 한 사발을 떠줬다. 마셔보니 그저 맹물이라 할 수 없다. 기름이라도 마신 듯이 무겁다. 마치 내 몸속으로 기가 빨려드는 듯하다. 한 사발 가득 마시고 나서 길게 한숨을 토하니 속이 다 후련했다. 점심을 먹자마자 시작한 산행이라 꽉 막혀 있던 속이
후악 뚫렸다. 약수라더니 진짜 약효를 본 것이다. 하지만 이 약효는 물이 좋아서라기보다는 내 몸이 원해서 얻어진 약효일 듯 싶으니 그리
감동하지 않기로 한다. 물맛을 가늠하기란 술맛을 가늠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경지이거늘 한 사발 물로 내 마음을 다 넘겨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찍이 수왕사 그 좋은 물로 술을 빚어 먹은 이가 있었다. 1579년 정유재란 때에 불탄 수왕사를 중창한 승려, 진묵대사가 바로 그이다.
진묵(1562-1633)은 기이한 행적을 많이 남겨 道僧으로 통한다. 모악산이 바라다보이는 호남 들판에서는 그가 행한 신비로운 이적들에 관한 얘기가 아직까지도 떠돌고 있다. 배고파 구걸하러 온 모녀에게 금부처의 팔뚝을 떼어주기도 하고, 소년들이 잡은 물고기를 함께 먹고
똥을 누어 다시 물고기를 살려 보내기도 하고, 해인사에 불이 났을 때에 물방울을 튀겨 팔만대장경을 구하기도 했다. 그가 머무는 곳에는
늘 구름 한 점이 떠 있었고, 육체를 놓아두고 영혼만 떠돌기도 했다.
누구의 입을 빌리는지에 따라 진묵의 소문은 조금씩 부풀려진다. 벽암에게서 듣는 것하고, 인터넷에서 뒤져본 소문하고 또 달랐다. 진묵만큼이나 진묵의 일화도 변신에 능했다.
수왕사의 옛 이름은 무량사였다. 영주 부석사에 무량수전이 있듯이,
無量이라는 말은 불가에서 흔히 쓴다. '무량사'의 물이 좋기로 소문이
나자 절 이름이 자주 거론되었다. 무량이절이라고 부르다가, 물왕이절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생겨났다. 그러다가 한자로 옮겨 적으니 수왕사가 되었다. 절의 내력을 소개한 안내판에서 비로소 '물의 왕'의 정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수왕사의 대웅전과 요사채는 비스듬히 버티고 선 토담집이다. 6.25
때에 공비를 토벌하다가 태워버려 1952년에 지은 집이다. 벽암은 이제 다시 새로 절을 짓고 싶어했다. 하지만 10리 산갈을 오르다보면 2만원 하는 시멘트 한 포대 값이 6만원으로 뛴다. 산 중턱의 대원사가
요사채를 짓는데 1억을 들였다는데, 수왕사는 3억을 들여야 요사채
하나 지을 수 있으니 엄두를 내지도 못한다고 했다. 나는 다행이다 싶어 벽암에게 말했다.
"부엌 흙담의 검정 그을음이 좋고, 요사채의 얇지만 굽은 나무 기둥이
좋습니다. 이 산중에, 시멘트 벽에 기와 지붕이 들어서면 무섭습니다.
지금의 토담집이 따뜻합니다. 이 집을 허물면 세상에 이런 토담으로
된 법당은 다시 없게 됩니다. 불편하더라도 새 절을 짓지 마십시오."
나는 그저 지나가는 듯이 말했지만, 속으론 간절한 바람이었다.
수왕사는 모악산 7부 능선께에 커다란 암벽을 등지고 자리해 있다. 암벽위에는 부챗살처럼 퍼진 정정한 소나무 한 그루가 수왕사를 굽어보고 있다. 그 소나무 아래 거대한 암벽이 있고, 암벽의 아랫도리에서는
사시사철 물이 흘러나온다. 소나무와 바위와 물, 이 세 가지가 수왕사의 보물이다. 여기에 한 가지 것을 더 추가하면 수왕사에 전해오는 곡차, 즉 술이다.
그 술을 내렸던 소줏고리를 벽암이 보여줬다.
"얼마나 오래 되었습니까?"
"한 400년?"
벽암이 그냥 툭 던지는 말이다. 내 눈앞에서 400년이 잠깐 사이에 흘러가는 것 같았다. '어떻게 400년이 된 줄 아시죠?'라고 되묻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무런 증거도 없다는 것을, 다만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얘기라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기에 묻지 않았다. 막말로 40년이면 어떻고 400년이면 어떤가 싶기도 했다. 약수가 흘러나오는 저
바위가 얼마나 되었냐고 따지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싶기도 했다.
보통 소줏고리는 장구처럼 허리가 잘록하고, 위아래 몸통은 불룩하고
벙벙하다. 아이를 가진 여자의 배 같다. 그런데 수왕사의 소줏고리는
날렵하여, 마치 선승의 파르라니 깎은 머리를 보는 것 같고, 깡마른 몸을 보는 것 같았다.
"여기를 보세요. '金生人高'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이쪽에는 '天七'이라는 글자가 거꾸로 새겨져 있고요. 소줏고리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은 처음 보시죠?"
"예, 처음입니다."
신기했다. 소줏고리 윗단에 동전 크기만하게 씌어진 한자인데, 금생인고는 제법 정성들여 썼는데 천칠은 그냥 흘려 썼다. 김씨 성을 가진
옹기장이가 그럴싸하게 서명을 하자, 반대편에서 일을 거들던 '천칠'이라는 녀석이
재빨리 제 이름을 휘갈겨 써놓은 것 같다.
"스님, 무슨 뜻입니까?"
"여기에 상당히 심오한 뜻이 있어요. 금생인고라고 함은, 인고는 사람이 높다는 뜻 아닙니까?"
"그럼 금생은 무슨 뜻인가요?"
"금처럼 빛나고 생기 있다는 뜻이지요."
"그럼 금생과 인고를 합하면 무슨 뜻이 되는 거죠?"
진짜, 나는 몰라서 물었다.
"금처럼 빛나고 생기있는 인간이 고귀하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나는 고개를 끄떡일 수 없었다. 머리만 무거워졌다.
"그럼 천칠은요?"
"칠은 아주 상서로운 숫자입니다."
"어째서요?"
"여기에서 칠은 북두칠성을 상징합니다. 산신각에서 칠성님을 모시잖아요. 하늘과 칠자가 어우러져 있으니 대단히 상서로운 의미죠."
어느 순간에 어떤 비약이 이뤄졌는지......내 보기에 천칠이란 녀석이
장난친 것만 같은데, 벽암은 심오한 의미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보세요, 이 천칠이 거꾸로 씌어 있는 것은 하늘에서 천칠이 내려오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늘에 있는 북두칠성의 상서로운 기운이 이 소줏고리 속으로 내려앉는다는 것이지요."
"아, 그래서 거꾸로 썼군요."
나는 그 순간 무릎을 치고 싶었다. 福자를 거꾸로 써놓고, 복이 하늘에서 떨어지고 문 밖에서 들어온다고 믿는 중국인들의 관습이 생각나서였다. 그러자 한 순간에 스님의 말이 모두 사실처럼 여겨졌다. 소줏고리도 진짜 400년이 됐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400년은 모두 진묵대사에서부터 계산된 햇수다. 진묵은 술을 아주
잘 마셨다. 늘 취해 있어서 非僧非俗한
존재였다고 한다. 인간의 눈으로, 인간의 언어로 포찰할 수 없던 존재였다. 그가 술을 통찰한 것은 酒仙 이태백을 능가한다. 이태백은 저 유명한 시 <月下獨酌>에서 홀로 술잔 들어 달님을 청해놓고 제 그림자까지 셋이 되어 함께 어우러져 놀았다.
하늘은 이불 땅은 깔개 산은 베개요
달은 촛불 구름은 병풍 바다는 술통이라
크게 취해 거연히 일어나 춤을 추니
긴 소매가 곤륜산에 걸릴까 걱정이네
진묵이 지은 한시를 번역한 거다. 이태백이 섬세하다면 진묵은 호방하다.
그런 진묵도 한 번 삼매경에 들면 머리에 거미줄이 끼고, 옷에 먼지가
자욱하고, 문지방에 올려놓은 손가락이 바람에 여닫히는 문짝에 으깨지는 줄도 몰랐다고 한다.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박중빈은 그를
두고 "어찌 그 마음에 술이 있었으며 여색이 있었겠는가. 그런 어른은
술 경계에 술이 없었고, 색 경계에 색이 없으신 如來시니라."하고 가늠했다.
그 진묵이 손수 빚어 먹던 술이 松竹五穀酒와 松花百日酒다.
진묵의 기일인 음력 10월 28일엔 수왕사에서 이 술을 빚어 제사상에
올렸고, 그 관례가 오늘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래서 현재 수왕사 주지 벽암은 송죽오곡주와 송화백일주를 아주 잘 담근다. 그 명성이 높아 농림부에서 전통식품 명인 제1호로 위촉했다. 한 발 더 나아가 벽암은 아예 산 밑에다가 술도가를 차렸다. 돈을 만들려는 목적보다는
전통을 이어가지 위해서다.
어쨌든 스님이 술을 마시는 것도 아니고 술을 빚어 팔다니, 이만한 파계가 없을 듯 싶다. 불가에서 금하는 다섯 가지가 있다. 살생, 간음, 도적질, 거짓말 그리고 음주다. 파계로 치면 음주는 살생이나 간음과 한가지다. 납득하기 어려운 벽암의 파계에 대해 물었다.
벽암은 아주 낮고 느긋하게 운을 떼면서 직답은 피한다.
절에서는 술을 곡차라 부른다. 곡차라고 부르는 것은 모두 술이다. 절마다 술이 있었다. 통도사 술이 있고, 해인사 술이 있었다. 통도사와
범어사의 누룩은 특히 유명했다. 곡차는 선승들에게 필요한 氣 음식이다. 찬바람도는 산중 냉골 마루나 바위에 앉아 명상에 잠기다보면
몸에 병이 찾아들게 마련이다. 고산병이다. 그 병을 예방하는 수단으로 선승들은 곡차를 즐겼다. 물론 술은 금기다. 그러나 선승들은 그 금기의 벽에 쪽문을 대고 드나들었다. 금기는 존재하지만, 그 벽을 자유롭
게 넘나든 것이다.
벽암은 뒷짐을 지고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떼놓듯이 말한다.
인간이 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재충전을 위해서는 무언가 획기적인 것이 필요하다. 방전된 배터리가 저 혼자 충전되지 않듯이, 외부의 자극이 있어야 한다. 그 비상한 조치로 술이 동원된다. 그리고 한 인간이
성장하기까지 보호막이 필요한데, 불가에서는 이를 戒라고 부른다.
하지만 완숙하게 되면 집은 필요없게 되고, 계조차 필요없게 된다. 금기마저 다 버릴 수 있는 높은 경지에 이를 선사들에게 곡차는 요망한
액체가 아니라 靈肉을 다스리는 진정한 차로서 존재한다.
벽암의 말에 의문의 꼬리를 달자면, 뒷말이 앞말을 변명하고 앞말이
뒷말을 희롱하고 있는 것 같다. 진묵의 세계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벽암의 세계도 이해하기 어렵다. 허구와 사실 사이에, 거짓과 진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벽암은 술을 氣 음식이라 했고, 가슴을 열어 가슴으로 빚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언제 어느 순간에 그만두고 산으로 들어갈지 모른다고 했다.
송죽오곡주는 보리, 콩, 조, 수수, 팥을 오곡으로 삼고 솔잎, 댓잎, 산수유, 구기자, 오미자를 놓어 빚는다. 16도짜리 발효주로, 향이 여러
갈래다. 혓바닥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야 맛을 구별할 수 있을 것 같다.
송화백일주는 누룩에 찹쌀을 넣어서 빚는데 노란 송홧가루와 산수유,
오미자, 구기자가 들어간다. 보름 정도 발효를 하고 나서 증류하여 소주를 내린다. 38도 술인데, 송화 향이 거짓말처럼 잘 잡혀 있다. 장미
향수가 장미 향보다 더 진한 것처럼, 송화백일주의 향은 솔향보다 더
짙다. 시인 박목월이 노래한 육사월 송홧가루 향이 그립거든 송화백일주를 마시면 족히 위안이 될 듯하다.
술 빚는 요령에 대해서 묻자 벽암은 둥글게 둥글게 묘사하라고 한다.
비방을 감추기 위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벽음은
술이라는 것이 컴퓨터를 작동하는 2진법의 체계가 아니라고 한다. 아무리 일러준다고 해도, 그리고 그대로 따라 한다고 해도 똑같은 술이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벽암은 수왕사의 석우 스님에게서 술을 배울
때에, 같은 방에서 같은 재료로 서로 술을 빚는데도 술맛이 다르더라고 했다. 모악산의 풍경이 발길에 따라 마음에 따라 달라지듯이, 술맛은 손길에 따라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래도 송화 향이 어떻게 잡히는지 궁금하다. 그 비책을 알고 싶다. 벽암은 다시 옛날 얘기를 꺼낸다. 송하주라는 것이 원래 소나무 밑에다가 술독을 묻고, 술독 속에 소나무 뿌리를 한 가닥 넣어두었다가 100일뒤에 마시는 술이라고 했다. 그리고 와송주가 있다. 이 술은 비스듬히 누운 큰 소나무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술을 빚어 넣는데, 역시 소나무를 깎아 마개를 하고 그 위를 진흙으로 바른 다음 풀로 덮어 빗물이 새어들어가지 않게 한다. 그 술이 익으면 향이 기가 막히게 좋다고
한다.
송화백일주가 어떤 방법을 쓰는지 스님은 끝내 밝히지 않았고, 나 또한 끝까지 캐묻지 않았다. 송화주 서너 잔에 취해 모악산 그림자를 벗어나는데, 내 머릿속에서 이런 소리가 웅웅거린다. '진묵이나 벽암은
내가 포착할 수 없는 거대한 산 그림자야, 모악산의 산 그림자야.'
집에 돌아와 송화백일주를 자작하는데, 꿈을 꾸는 것 같다.
아, 술의 세계도 모르거늘, 어찌 내가 선승의 세계를 알리요. 송화주를
마시면 내가 소나무가 되는 것 같다. 소나무 수액이 내 몸속에 들어가,
삐쭉삐쭉 내 몸의 솜털들이 솔잎으로 돋아나는 것은 아닌지, 어지럽다. 좋은 술은 결코 인체에 해롭지 않다는 벽암의 말도 생각나고, 가슴을 열어 가슴으로 술을 빚는다는 말도 떠오른다. 벽암에게 술은 하나의 화두이자 신앙이다. 나는 송화주 잔을 들고 이렇게 외쳐본다.
"수왕사여, 이제 의심하지 않을테니 물의 왕이 되어라. 진짜 물의 왕이
되고, 술의 왕이 되어라. 술의 왕이 되어 금기로 가득찬 내 인생의 벽에 쪽문을 내어다오. 자유의 문을 달아다오. 스님, 합장하나이다."